이준기는 자신이 변했다고 말한다. 사람이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어느 날 보니 달라졌더라고, 신드롬에 가까운 세간의 관심으로부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누구나 이십대를 살지만 아무나 이준기처럼 마음먹진 못한다. 혈기방장한 그는 하고 싶은 게 많은 데다, 다 잘하고 싶어서 터질 것 같다. 아주 부글부글 끓는다.
모자를 쓰고 거울을 본 그가 노래를 부른다.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우스개였고 다들 웃었다. 그 잠깐 동안, 이준기의 얼굴엔 노래도 웃음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오늘 아침 창문 밖으로 뭘 봤나? 창밖이 벽으로 막혀 있다. 또 모두 블라인드를 친다. 누가 들여다 본다는 느낌이 들어서. 4층이라 프라이버시가…. 어떻게 보면 철창 없는 감옥이다.
이준기에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는 모르겠다. 혼자 있을 때만큼은 그냥 혼자이고 싶다는 쪽이다. 영화 보고 게임하고 인터넷하고 자료 찾고 운동하고….
한시반시 가만히 있질 못하는 쪽일 거라고 짐작했다. 잠자는 세 시간 빼곤 뭔가 한다. 원랜 잠이 많았는데, 뭔가 세상의 관심에 들면서 불면증 같은 게 생겼다. 항상 쫓아가거나 뭔가를 갈망하고 있는 거 같다. 이젠 뭐,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잡다한 가십거리라도 인터넷으로 찾아본다. 주위에서 ‘걸어다니는 네이버’라고도 한다. 필요 이상 잡다한 것들까지 찾아보고 그러니까. 어쨌든 배우로서는 인생공부가 딴 게 없고 사람 사는 얘기나 살아가는 환경을 보는 거니까, 이런 생활이 괜찮다.
그렇게 사는 게 어떻게 괜찮을 수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양자리들이 적응 하난 잘한다더니. 맞다 내가 양자리다. 예전엔 진짜 말도 없고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편이었다.또 어느 위치에 올라가면 아래 있는 사람들을 낮게 보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변했다.
사람은 안 변한다는데…. 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사람이 어떻게 변해? 그런데 그렇게됐다. 갑자기 신드롬의 주인공이 되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내 이미지에 벽을 느끼는 것같았다. 일부러 바꾸려고 노력했다. 배우로서도 좋은 거고 인간 이준기한테도 좋은 거고.
<왕의 남자>는 그저 당신이 열심히 연기한 한 작품이라기엔 이미지가 너무 압도적이었다.이후 당신이 고른 작품이나 연기도 왠지 <왕의 남자>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으로 보일만큼. ‘봐라, 나 이런 작품, 이런 연기 한다’ 그런 느낌이랄까? 이십대 배우들은 노련하지도 않고 하나하나 흡수해야 하는 입장이다. 한번 제대로 모든 걸 발산하겠다고 맞부딪치면 파동이 생긴다. 고되더라도 계속 나를 소진시키는 작업을 좋아한다. 나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다 뽑아내고 다시 담으려고 하고…. 보는 사람 입장에선 굳이 저렇게 까지 몸부림치듯 연기를 해야 하나? 그럴지도 모르지만….화면 속에서 당신은 대체로 ‘뜨겁다’. 작년에 했던 <일지매> 후반부엔 아예 목이 쉰 채 연기를 했다. 여러 가지를 생각했었다. 그땐 나한테 화가 많이 났었다. 이게 참, 젊은 배우로서 칭찬도 듣고 싶었을 것이고 그래서 1분 1초도 안 쉬고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스태프들이랑 함께 하려고 했는데 정작 내 자신을 컨트롤 못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미칠 것 같았다. 그런 것들이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고 해도 어쨌든 타이틀 롤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몸 관리를 못 한 거다. 뭔가 영악해질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영악하다는 말이 정말 싫었는데, 한 번 더 배운 거 같다.
‘뜨거운’ 배우의 ‘뜨거운’ 연기를 보는 일은 때로 피곤하다. 촌스럽게 보일 때도 있다. 아직 연기를 얼마 해보지 않은 입장이라, 내 연기가 어떠니까 시청자들이 지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건 좀 애매하지만, 일단 팬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늘 장난이 아니니까. 내 욕심이라면 이거 하나다. 나는 이십대고, 힘이 넘치는 이때는 다 쏟아 붓는 걸하고 싶다는 거다. 매니저들은 좀 편한 거 했으면 좋겠다고 한다. 트렌디한 거나 멜로가 여성팬덤 만들기에 유리한데 왜 강한 느낌만 하냐고. 근데 남자는 삼십대가 멋있지 않나? 지금 거울을 봤을 때 야릇한 눈빛 하나로 여자를 죽일 만한 내공이 없는 것 같다. 군대도 갔다 오고 시련도 겪고 뭔가 축적되고 버리면서 더 멋있어졌을 때 멜로를 하고 싶다.
<꽃보다 남자>는 어떻게 보나? <꽃보다 남자> 얘기가 나왔을 때 매니저들은 한류 뭐, 이런걸로 한 번 치고 나가야 한다고들 했다. 근데 나는 그런 게 싫은 것 같다. 그런 연기가 쉽다는게 아니라 내가 즐거워야 좋고, 거기에 빠질 수 있는 작품이 더 좋다.
너무 빡빡해 보인다. 연기는 물론이고 수상소감 하나를 발표할 때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상의 종류에 따라 이 상엔 이런 소감, 저 상엔 저런 소감, 다 뭔가 정확한 타당성이 있어야하는 것처럼 보인다. 맞다. 내가 그런다.
그게 어떤 느낌이냐면, 데모하는 사람 같다. 나 지금 이러이러한 게 싫어서 이렇게 이렇게하는 거거든? 이런 느낌. 맞다. 하하하. 공식석상이나 대외적인 자리는 뭔가 올바른 사람이고 싶다. 그런 자리에서 사람들이 뭔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좀 거리감이 생긴다.놀 때는 놀고, 아닐 때는 딱 부러지게. 그런데 작년 SBS 연기대상 때는 무대에서 ‘웅이 아버지’를 했다. 시상 멘트하거나 소감 발표할 땐 똑 부러지게 하고 ‘웅이아버지’하면서는 망가지고 싶었다.
‘웅이아버지’를 하는 모습에서조차, ‘어 그래? 그럼 이건 어때? 내가 이렇게 망가져줄게’이러는 것 같았다면? 맞다. 하하하.
당신도 성장하면서 뭔가 유연해질까? 점점 유들유들해질 거 같다. 이제 겨우 시작이니까.우리나라엔 배우가 배우로만 보여야지 하는 식의 분위기가 있다‘. 내가 배우인데, 배우가 연기를 해야지, 연기 말고 뭘 해?
극 중 캐릭터 연기보다 배우 연기를 더 잘하는 자칭 ‘배우’들 꽤있다. 그런 엄격한 것에서 조금씩 벗어나려고 팬미팅도 자주 하고 팬들과의 소통도 열어둔다. 지금 준비하는 공연도그렇고, 뭔가 풀어나가겠다고 생각한 걸 풀어나가는 중이다. ‘웅이아버지’가 그 시작 같은거 였달까?‘어차피 다 보여주려고 했어’그런 느낌이 들어갔나 보다.
스물 여덟인가? 스물 여덟이다. 살 날이 더 많다. 까불거리기도 하고, 철없어 보이기도 하는게 내 나이의 매력인데, 배우라는 타이틀 때문에 어깨에 힘 들어가고 말도 또박또박, 어디가서 유식한 척해야 되고 이러는 게 너무 싫다. 옛날에는 촬영하러 가면 쪼르르 들어가서 메이크업만 하고 촬영 끝나면 쪼르르 가고 그랬는데, 너무 억울한 거다. 경험을 해야 뭔가 쌓일 것 아닌가? 그래서 현장에선 아예 나를 풀어놓는다. 어떤 때는 욕도 막 한다.
뾰족한 당신이 가장 둥글둥글해질 때는 언제인가? 살쪘을 때?
이준기도 살이 찌나? 잘 찐다. 지금도 평소보다 2킬로그램 찐 상태다. 요즘 노래 연습을 하다가, 현진영 씨 살찐 걸 보고 저렇게 돼야 성량이 좋아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살이 쪄야 노래를 잘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쉬는 시간이니까 살을 막 찌웠다. 근데 성량은 안 좋아지고 살만 찌길래 다시 부랴부랴 뺐다.
살 찌고 빼는 게 당신 말처럼만 쉽다면 세상의 많은 스트레스가 사라질텐데. 무릎팍도사는아니지만 요즘 고민이 뭔가? 얼마 전까진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은 해소가 됐다. 내가 빨리출세를 경험하고 부를 쌓고 그러면서 사람들과….
출세하고 돈 벌고 얼마나 좋나? 그렇다. 좋다. 안 좋으면 벌써 은퇴했다. 다만 그런 것들에빠져 있지 않고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 소속사 문제도 그렇고…. 별로 티를 안 내긴했지만 가장 힘든 1년이었다. 몇 달은 웃지도 않았다. 사람을 잃고 사람을 만나면서 생기는 아픔이 정말 힘들다는 걸 절실하게 느꼈다. 결국 다 내가 뿌린 씨앗이었다.
이제 배우가 아닌 이준기는 상상할 수 없나? 지금은 그렇다. 배우도 배우지만 아티스트라는 소리까지 듣고 싶어서 여러 가지를 고민한다. 많은 걸 해보고 싶다.
뭘 하든 아트라고 생각하고 하면 당신은 이미 아티스트인 게 아닐까? 등단을 해야만 시인이아니라 시를 쓰고자 할 때 이미 시인이듯이. 맞다. 지금은 정말로 편해졌다. 내가 하는게 다다, 내 인생 내가 사는 거고, 내 배우 인생도 내가 사는 거다.
연애할 시간은 더욱 부족하겠다. 연애해야 되는데 좀 누른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이랑 술자리를 해도 사적인 자리로 이어지진 않았다. 언제나 매니저 매니저 매니저뿐이다.그러다 일 얘기하고, 그러면 그 일에 관련된 남자가 술자리로 온다.
지겨워라. 그게 그냥 그렇게 된다.
당신이 여자에게 기대하는 부분은 뭔가? 아무래도 사랑으로서의 휴식이다. 각자 반쪽이되는 건데, 나를 포용해 줄 수 있는 여자가 좋다. 나는 잘 못 챙긴다. 앞만 보니까.
그 여자가 당신에게 기대했으면 하는 건 뭔가? 음, 경제력?
그 말 뒤엔 아무 말도 안 해야 한다. ‘경제력 크흐흐흐’ 이렇게 할까?
아니다. 딱 끝내는 게 좋겠다. 당신은 어떤 남자인가? 글쎄, 난 어떤 남잘까? 예전에는 좀 투박하고 털털하고 뭐 그렇게 정의가 됐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상당히 릴랙스된 상태여서 내가 어떤 남자일까 찾아가는 시기가 아닐까 한다.
연애를 하면 바로 알게 되련만. “그렇겠죠?”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TAK YOUNG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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