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AOA의 설현은 ‘단발머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1970년대 한국의 강남 개발 패권을 다룬 영화 <강남 1970>를 찍을 때였다. 영화 현장에선 울었고, 무대에선 웃었다. 이제 설현은 뭐든 할 준비가 됐다.
내일이 시사회죠? 떨려요? 아직 영화 편집본도 못 봤어요. 그래서 시사회보단 제 연기를 본다는 게 떨려요. 첫 영화니까요.
첫 드라마 땐 어땠는데요? 드라마도 처음 볼 땐 떨렸어요. 그런데 계속 보니까 객관적이기가 힘들더라고요. 끝나고 나서 부족한 게 보였어요.
객관적으로 보기 힘들었다는 건 나 너 무 잘하는데?, 이런 건가요? 하하, 아니요. 연습 때보다는 잘했다, 이런 거 있잖아요. 생각보다 잘했네, 생각보다 못했네, 정도만 보이고 제3자의 입장에서 보는 건 안 됐어요.
누가 자길 제3자의 입장으로 봐요. 자기가 주관적인걸 아는 게 그나마 객관적인 걸 수 있어요. 그런가요?
자신감 있어 보이는데. 아니에요, 저 A형이에요. AOA 멤버들이랑 있을 때만 자신감이 있어요. 활발해지는 걸지도 모르겠는데, 혼자 생각할 새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마냥 떠들고 웃고 즐거워요.
하지만 연기는 혼자 하는 거죠. 혼자 편하게 차 타고, 먹고 싶은 메뉴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아요. 하하하. 하지만 AOA에서는 하나를 일곱 명이 나눠서 했는데, 혼자 다 해야 하니까 신중해져요. 그래서 자신감이 더 떨어져요. 혼자서는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스스로 자신감이 없다고 말하면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 사람은 자기 장점에 대해 잘 모르는 것 아닌가요. 그게 미덕일 수도 있지만.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딘가에 설 때는 긴장하지 않은 척해요.
내일은 어떻게 준비해서 갈 거예요? 긴장이 좀 될 것 같은데, 오히려 뭘 준비해가는 게 더 떨릴 것 같아요.
언론 시사회에서 배우마다 한마디씩 시키잖아요. 그것까지 안 해가도 되겠어요? 그런 건 머릿속에 있는 말을 하면 돼요. 떨리긴 하지만 또 제가 준비해가면 준비한 대로만 딱딱 해서요. 그러면 재미없잖아요.
재미를 아네요. 이전에 유하 감독 영화 본 적 있어요? 네, <말죽거리 잔혹사>는 영화관에서 봤고, <비열한 거리>는 감독님 미팅 전에 찾아봤어요.
재밌던가요? <말죽거리 잔혹사>는 재밌게 봤는데, <비열한 거리>는 어려웠어요. <강남 1970>도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는 좀 이해가 안 됐고요. 제가 연기한 선혜는 요즘 여자애들이랑 생각이 좀 달라요.
어디가 이해하기 힘들었는데요? 선혜가 되게 부자랑 결혼하거든요? 상견례하면서 우는데 왜 우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냥 아빠한테 가서 따지지! 흐흐.
유하 감독이 어떻게 연기하라고 주문한 게 있나요?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셨어요. 너대로 하라고요. 머리든 화장이든, 뭘 하는 걸 되게 싫어하셨어요. 얼굴 표정도 만들지 말라고 하시고요.
‘나대로’ 연기하는 건 뭘까요? 드라마 <못난이 주의보>에서는 발랄한 여자아이였잖아요? 연기공부 할 땐 계획을 많이 해요. 이 상황에선 이렇게, 저 상황에선 저렇게. 근데 현장에 가면 그게 다 필요없어요. 그냥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예요.
아직 초보잖아요? 잘 되던가요? 네, 처음엔 어려웠는데 많이 배워서 나중엔 좀 편했어요. 첫 신, 두 번째 신은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요. 드라마만 해서 몰랐는데, 영화도 되게 매력 있고 재밌더라고요.
영화가 드라마보다 더 느리고 정교하게 진행되죠. 네, 깊이를 요구해요. 드라마에서는 표면적인 것만 표현하면 되는데, 영화에서는 그 사람의 내면과 일생을 연기에 드러내야 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공개된 영상들을 보니 우는 장면이 많은 것 같던데요? 좀 어두운 영화예요. 좋은 일이 거의 없어요. 그나마 초반에는 선혜라도 밝은데 점점 어두워져가요. 저도 촬영할 때 운 기억밖에 없어요. 하지만 다 똑같이 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는 연기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연구한 보람이 있던가요? 여기선 어떤 감정을 표현해야지, 어디 근육을 써야지 생각하고 갔죠. 근데 촬영장 가서 해보니까요. 그냥 그 상황을 믿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믿으면 오케이예요.
영화연기가 다른 걸까요? 드라마 할 땐 다양한 시도를 할 기회가 없었어요. 드라마가 음악 방송처럼 다 준비해 간다면, 영화는 사진처럼 현장에서 만드는 게 큰 것 같아요. 드라마는 빡빡하게 한 신 한 신 찍어야 하니까, 어떻게 해야겠다고 미리 생각해가는 게 맞는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전 어떻게 할지 생각해갔을 때 연기가 더 잘 나오는 것 같긴 해요.
평소에도 잘 울어요? 네.
음악 활동하면서는 언제 울었어요? 1위 했을 때 울었고, 가끔 너무 힘들 때 울었고요.
AOA가 처음 1위를 한 게 ‘짧은 치마’ 때더라고요? 다들 눈물바다였는데, 그 자리에 설현은 없었어요. 보고 있었나요? 네, 매니저 언니랑 DMB로 봤어요. 그땐 숙소에 TV도 없었거든요. 저도 같이 울었어요. 근데 언니들과 같은 감정은 아니었어요. 정말 많이 기뻤는데, 기쁜 감정만 있었던 건 아니에요.
말을 잘하네요. 그렇죠. 같지만 다른 눈물이었겠죠. 쉴 땐 잘 몰랐어요. 무릎 다친 김에 그냥 쉰다고 생각했는데, 언니들이 무대에 서는 걸 보고, 1위하는 걸 보고, 회사에 돌아온 걸 보니까….
보니까? 내가 없어야 잘되나? 사람들이 AOA가 여섯명인 줄 알면 어떡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이미 잘 알겠지만 설현 씨가 빠져서 AOA가 잘된 거 아니에요. 네, 지나고 나서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단발머리’ 때 필사적으로 했고요.
<강남 1970> 촬영이랑 겹친 걸로 아는데 힘들었죠? 아니요. 너무 재밌었어요. ‘단발머리’ 활동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어요.
하긴 설현 씨가 “날씨 참 좋아요, 분위기 참 좋아요” 부분에서 춤출 때 좀 과하게 신나 보이더라고요. 하하. 무대에 너무너무 서고 싶었으니까요. 이제 딱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두운 영화를 찍으면서 발랄한 댄스곡으로 활동했으니까 서로 어떤 영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단발머리’로 활동 안 했으면 진짜 우울했을 수도 있어요.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드라마 할 땐 캐릭터가 밝으니까 저도 밝았거든요. 영화에선 선혜가 어두우니까 저도 어둡더라고요. 그런데 무대에 서면 그런 게 많이 사라졌어요. 오히려 촬영장에서 밝은 상태를 진정시키는 게 힘들었어요.
영화와 음악 활동을 같이 한다는 게 지금으로선 아주 좋네요? 그렇죠, 둘 다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해요. 저를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은 거고, 제가 경험해볼 수 있는 게 더 많은 거잖아요. 더 많은 기회를 주신다면 다 하고 싶어요, 연기나 음악 활동이 아니라도 뭐든지.
그러다 한 가지가 심하게 잘되면 어떻게 할 거예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심하게 잘된 적이 없어서.
스물한 살이죠? 서른 살엔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돼요? 결혼은 아니고? 그때까진 일에 열중할 거예요. 근데 제가 계획이나 목표가 없어요. 그때그때 열중해서 사는 게 목표예요. 뭘 하고 있을지 저도 궁금해요. 하지만 남자친구는 꼭!
올해는 뭐 해보고 싶어요? 아직 연속 1위를 못 해봤어요. 1위 가수가 되려면 연달아서 1위를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자격증 딸 거예요.
무슨 자격증이요? 뭐든지요. 작년엔 운전면허증 땄거든요. 아! 그리고 카페도 차리고 싶어요. 제가 커피랑 디저트를 정말 좋아해서요.
올해요? 아뇨, 서른살에요.
정리하자면, 서른 살에는 남자친구가 있고, 자격증이 11개고, 커피를 내린다? 조합이 되게 이상하네요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안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