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빛 속의 여인 #예은

2015.09.23손기은

빛 속에서 예은은 자꾸 노래를 불렀다. 입술을 아주 조금만 움직이면서.

니트 톱은 자라, 카디건은 H&M, 하이웨이스트 스윔웨어는 아메리칸 어패럴.

과감해요, 원래? 저요?

촬영할 때 속옷을 아예 벗는 게 어떻겠냐고 했을 때…. 아, 그건 저도 벗는 게 예쁠 것 같았어요. 저 원래 완전 더 과감해요. 작년에 핫펠트로 솔로 활동했을 때는 상반신 등 누드도 찍었잖아요. 미국 가면서부터 과감하게 변한 것 같아요.

과감한 자신이 좋아요? 네. 근데 전 약간 ‘투 머치’. 선 조절하는 게 어려워요. 뭐랄까, 노래를 불러도 되게 크게, 춤을 춰도 힘을 팍팍 줘서 추고…. 하고 싶은 것의 한 반 정도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2008년, 원더걸스 다섯 명을 인터뷰했을 때가 생각나요. 잠시 옷을 갈아입는 사이, 텅 빈 스튜디오에서 혼자 목청껏 노래를 불렀어요. 정말요? 나 미쳤나 봐. 왜 그랬지? (웃음) 옛날에는 잘 그랬어요. 노래를 한번 부르기 시작하면 좀 못 멈춰요. 멤버들이 제가 집에 오고 있다는 걸 다 알아요.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노래를 부르면서 올라가서요. 근데 의식을 못해서….

그때 그 모습에 주저함이 없어 보였어요. 근데 뭐든지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전 좀…. 저희 회사는 약간 설렁설렁해야 된다, 이런 거잖아요. 너무 노력한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이제 조금 배웠죠.

변했어요? 옛날에는 욕심도 진짜 많았고 현실감도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현실적인 얘기들을 해줬는데, 저는 그냥 귀가 아예 닫혀 있었던 거죠. 나는 잘될 거고, 그냥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근데 저희 굴곡이 많았잖아요.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고. 이제는 현실을 조금 더 고려하려고 해요.

우여곡절, 산전수전, 이런 말을 들으면 어때요? 우리가 진짜 화려하게 살았구나. 저희 컴백하는 시기에 맞춰서 페이스북에서 역대급 원더걸스 드라마, 뭐 이런 게시물이 한참 돌아다녔잖아요. 저도 읽어보니까 진짜 산전수전, 파란만장….

댓글도 봤어요? 누가 드라마로 일부러 쓰라고 해도 이렇게 못 쓰겠다고…. 근데 전 되게 꿈꿨던 것같이 느껴져요. 아, 내가 저런 적이 있었구나, 맞아, 맞아.

가만히 생각해보면 화나는 사람 없어요? 요즘은 사람 얼굴도 잘 기억 못해요. 너무 심각해서 진짜 치매가 아닌가 고민을… (웃음)

이런 말 어색하지만, 문득 세월이 많이 흘렀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많이 느껴요. 최근 화보 촬영을 계속하는데요, 요즘은 막 영상으로 다 찍어요. 옛날에는 화보니까 예쁘게 잘 만져주시겠지, 생각하고 촬영 중에 막 먹고 그랬는데 요즘은 동영상을 찍는 거예요! 아, 진짜 큰일 났다. 흐흐.

살찌는 게 늘 고민이에요? 사실 매번 컴백할 때마다 살을 빼요. 계속 유지하면 컴백할 때마다 살 뺄 일이 없는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이번엔 진짜 풀어지면 안 되겠다, 정신을 잘 잡고 몸을 망가뜨려선 안 되겠다, 다짐했는데 벌써 2킬로그램 쪄가지고…. 죄송한 마음으로 오늘 아침에도 되게 열심히 운동을 하고 왔어요.

아… 인스타그램에 냉면, 돈가스, 많이 올렸잖아요. 저 먹는 거 정말 좋아해요. 저희 가족이 다 통통해요. 어렸을 때부터 피자, 치킨, 햄버거 이런 거 엄청 많이 먹었고요. 특히 삼겹살 엄청 많이 먹어요, 저희 집은. 그래서 제가 다이어트 할 때 집에 잘 안 가요. 고기 굽고 생선 굽고, 막 다 나와요.

걸그룹 고민 상담 분위기가…. 그런데 저 옛날에는 예뻐 보이려고 노력도 안 했고, 몸매 관리도 항상 잘 못했어요, 다른 걸그룹처럼 팬 관리하고, 예쁘게 애교 부리는 그런 걸 못했어요. 그냥 다른 걸그룹들 보면서, 저 친구들 관리를 참 잘한다, 그랬어요.

 

화이트 톱은 분더캄머.

니트 원피스는 로우클래식.

원더걸스는 여느 걸그룹과는 달랐죠. 예은은 작곡과 작사에 깊게 관여하고 있고요. 이젠 밴드 연주까지 하잖아요. 사실 제가 처음 작곡, 작사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니네가 뭐 했겠어? 그냥 누가 해준 거에 이름 올렸겠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안 보이는 과정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부분에 더 욕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제가 원하는 거 자체가 일반적인 아이돌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2008년부터 자작곡을 만들었고 이후 앨범엔 꾸준히 수록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몰라줘서 서운한가요? 저는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해요, 아직은. 정규 1집만 해도 그냥 회사에서 모아준 곡들 받아서 노래만 부르면 됐으니까, 앨범 만드는 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그러다 2집 <원더 월드> 때부턴 저희가 다 같이 모여서 원하는 곡들을 골랐어요. 이번 앨범은 시작부터 저희랑 작곡가 분들이랑 딱 팀을 만들어서 어떤 음악을 만들자, 한 거죠.

원더걸스가 음악적으로 하나 된 의견을 내야 할 때, 멤버 중 누가 주도하나요? 목소리가 큰 건, 제가 제일 크고요.(웃음) 멤버들이 의견을 일단 다 저한테 얘기해요. 나는 이게 아닌 것 같다, 난 이게 좋다, 이런 얘기를 하면 제가 회사에 전달하죠. 그래서 욕은 다 제가 먹어요. 그래서 회사의 몇몇 분은 저에게 너무 총대 메지 말라고 하세요.

‘프리스타일’ 장르는 회사의 제안이었죠. 예은은 원더걸스 컴백을 앞두고 어떤 음악을 생각했어요? 유빈 언니랑 혜림이 둘 다 래퍼다 보니까 좀 더 랩 위주의 곡을 했으면 좋겠다, 힙합이 많이 가미된 댄스 팝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박진영 피디님이 별로 안 좋아했죠. <원더파티> 때 ‘Real’이라는 곡을 제가 썼는데, 랩 메이킹도 제가 다 했거든요. 원더걸스는 어쨌든 모두의 동의하에 해야 하니까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할 수는 없어요. 근데 제 안에 하고 싶은 건 쌓여가고, 어떻게 보면 솔로라는 분출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팍 쏟을 수 있도록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거 하자, 그 생각밖에 없었어요. 어떻게 보면 저 좀 못된 것 같아요.

‘Ain’t Nobody’로 솔로 활동할 땐 마음껏 밀어붙이는 느낌이었어요. 영상도 무대도 하고 싶은 대로, 남들 안 하는 걸로. 다름을 위한 다름이고 싶진 않았어요. 내가 이걸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면 했어요. 그냥 예쁜 걸 하자, 멋있는 걸 하자, 이런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노래, 그 노래에 맞는 영상, 이게 다 연결됐으면 좋겠어요.

‘진심’이라는 말을 많이 했죠. 새로 지은 예명인 ‘핫펠트’도 ‘진심 어린’이란 뜻의 조어고요. 진심은 어떻게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디테일의 차이인 것 같아요. 제가 100을 준비해도 대중에게 보여지는 건 딱 30인데, 그러면 눈앞에 보이는 30만 준비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100을 다 볼 거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 게 진심 아닐까요? 저희가 노래를 부르면 튠을 하잖아요. 그러면 음에 딱 맞게 튠을 쫙 해놔요. 근데 저는 너무 가짜처럼 들리는 거예요. 사람이 이렇게 부를 수가 없으니까. 근데 듣기엔 일관되게 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저만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음을 내는 방식을 망가뜨리는게 너무 싫어서 튠 작업할 때 제가 일일이 같이해요. 그런 디테일에 조금 집착해요.

가사에선 억지로 다듬은 느낌이 없어서 좋았어요. 가사 쓰는 게 되게 재미있어요. 생각이 요만큼 작았는데 글을 쓰면서 또다시 생각이 덧붙고, 그런 과정이 재미있어요.

 

점프 수트와 퍼 재킷은 모두 H&M.

밑천은 두둑한가요? 솔로 활동하고 많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1년 사이 또 많은 일이 있었어요. 보편적인 이야기보다는 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저희 엄마가 재혼을 했어요. 그런 일들에 대해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아까부터 느꼈는데, 꼭 반장처럼 말해요. 회사 면접도 잘 통과할 것 같은. 인터뷰할 때 별로 안 좋은 것 아니에요? 안 그려려고 노력하는데…. 저는 막 이렇게 떠다니는 얘기하는 걸 너무 싫어해요. 질문에 맞는 답을, 논리 있게 말하려고 해요.

남자들은 예은을 어떻게 봐요? 무섭게 생각해요. 눈도 올라가 있고 눈동자는 작고. 누구를 거쳐서 저한테 이야기도 들어와요. “야, 예은 진짜 무섭더라.” 난 뭐 아무것도 안 했는데! 제가 무슨 얘기를 해도 “아” 하고 그냥 수긍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까 “난 너무 똑똑한 여자 싫은데”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었어요. 뭐, 나도 그런 남자 필요 없어!

정말 못났다고밖에는…. 얼굴에서 어디를 제일 좋아해요? 이마요. 근데 사진을 찍으면 너무 넓게 나와요. 그래서 셀카를 잘 못 찍어요. 그리고 웃을 때 되게 이상하게 들어가는 보조개를 좋아해요. 저만의 얼굴인 것 같아서요.

    에디터
    손기은
    포토그래퍼
    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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