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개한 지코를 1년 만에 다시 만났다. 지코와 ‘Boys and Girls’를 같이 부른 베이빌론은 이제 막 기지개를 켠다. 얼굴도 목소리도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게 어우러졌나?
지코는 딱 1년 만이네요. 지코 이후 1년 동안 저한테 너무나 많은 일이 벌어졌죠. 마라톤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에요.
뛰기 전에 인터뷰를 하고, 완주한 뒤 인터뷰장으로 돌아온 기분인가요? 지코 맞아요. 이제 제 포지션이 생긴 것 같아요. 그때만 해도 아이돌이라 하기도 MC라 하기도 뭣한 상황이었죠.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정체성에 구애 받지 않고 싶은 심정은 똑같아요.
결정적 순간을 꼽는다면요? 그 자리를 쟁취하게 된. 지코 굳힌 건 미니 앨범 < GALLERY >였죠. 포문을 연 건 < Show Me The Money 4 >.
굳히기에 들어간 지금, 지코란 개인도 달라졌나요? 지코 인간 지코는 그렇게 행복하지가 않아요. 뮤지션 지코는 정말 많은 걸 이뤄서 좋은 상태인데, 행복을 누려야 할 시기에 그럴 겨를이 없어진 거죠. 예정된 것들을 진행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VENI VEDI VICI’에 썼듯, “수면을 포기해야 수면 위로 뜨는” 상황인가요? 지코 요즘은 좀 나아요. 2주 전까지만 해도 두세 시간도 못 자고 다시 나가고 그랬어요.
좀 우쭐해진 지코를 기대하기도 했는데. 지코 저 똑같죠? 오히려 작년이 더 러프했어요. 편견이란 말이 저한테 많이 따라붙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많이 없어졌고요. 여전히 저를 욕하는 분들은 있지만, 그게 편견 때문은 아닌 거죠.
그리고 다시 블락비의 리더 지코로 돌아왔죠. 신곡 ‘Toy’와 ‘몇 년 후에’에선 꽤 힘을 뺐고요. 빅뱅이 ‘Blue’와 ‘Bad Boy’를 냈을 때처럼. 지코 작년에 묵직하고 비트가 센 음악이 많았잖아요. 그땐 와, 진짜 보여줄 거야, 같은 기분이었고. 지금은 감수성이 예민해졌다고 해야 하나? 이런 감정을 최대한 많이 옮겨놓고 싶었어요. < Blooming Period >라는 음반 이름답게, 꽃이 만개하는 느낌으로 작업했죠.
기 센 남자 지코에게 봄이란? 지코 아직 찾아오지 않았지만, 환상에 빠져서 저를 이끌어줄 수 있는 계절.
아직이라고요? 지코 이뤄낸 게 많지만, 또 다른 목표가 생기잖아요. 2015년의 봄은 2015년의 봄이고, 또 다른 봄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봄 같은 노래를 만들기도 했죠. ‘너는 나 나는 너’와 f(x)의 루나가 부른 ‘사랑이었다’. 래퍼 지코의 사랑 노래는 다른가요? 지코 ‘사랑이었다’는 힙합이 아니에요. 그리고 블락비의 ‘몇 년 후에’엔 랩이 16마디밖에 없어요. 누누이 얘기했지만 블락비는 힙합 그룹이 아니고요. 거기서 저는 랩을 제 악기로서 넣는 것뿐이에요.
‘너는 나 나는 너’는 빈지노의 ‘Dali Van Picasso’를 쓴 피제이와 협업한 곡이죠? 지난 인터뷰에서 “아직 남의 비트에 랩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은 없어요”라고 말했는데, 꽤 의외의 인물이었고요. 지코 우상 같은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같이 해보고 싶었어요. 근데 남의 감성에 내 아이덴티티를 얹어서 좋은 게 나올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거죠. 다행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스럽게 진행됐어요.
베이빌론의 피처링(‘Boys and Girls’)도 뜻밖의 한 방이었죠. 딘의 노래(‘풀어’)에 랩을 하기도 했고. 화제를 원했다면 예컨대 베이빌론보다 크러쉬, 딘보다 박재범과 같이 하는 게 더 확실했을 텐데. 지코 ‘Boys and Girls’는 멜로디 나오자마자 베이빌론 형이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새로운 보컬이니 호기심이 생겼고, 솔직히 이 노래로 베이빌론이란 사람을 브랜딩시킬 자신도 있었고.
원래 알고 지낸 사이인가요? 지코 5년쯤 됐죠. 그러다 개코랑 얀키 형의 ‘Cheers’가 나왔는데, 충격적이었어요. 원래 이런 보컬이 아니었거든요. 훨씬 솔 느낌? 근데 아예 하드웨어 자체를 알앤비 보컬로 바꿨더라고요. 진짜 이를 갈았구나, 싶었죠.
쉽게 말하자면 창법을 아예 바꾼 건가요? 베이빌론 제가 좋아하는 걸 프로페셔널하게 뽑아낼 자신이 없었어요. 아, 이런 거 하고 싶다, 생각만 했죠.
이 보컬리스트들은 완전히 나랑 다른 차원에 있다? 베이빌론 저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던 상황. 그러다 결과물을 하나둘 내봤는데, 피드백이 생각보다 좋은 거예요. 그때쯤 지코한테 연락이 왔고. 안 믿겼죠. 아까 얘기하셨듯, 저랑 할 이유가 없거든요.
솔로 곡 ‘Pray’는 ‘Boys and Girls’와 완전히 달라요. 후렴구는 빨랫줄 같은데, 도입부는 나긋하고. 여러 목소리가 한 곡에 섞여 있달까요? 베이빌론 뒤처지지 않으려고 계속 연구하는 편인데, 바로 그 포인트가 제가 집중하는 지점이에요.
여러 목소리를 내는 거요? 베이빌론 영화에 빗대자면 어떤 노래에서는 악역이 되고 어떤 노래에선 선한 주인공이 되고.
하지만 노래를 듣고 가수가 베이빌론이란 건 대번 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이빌론 그건 고음역대에서 내가 만들 수 있는 감정선, 부릴 수 있는 기술을 통해 유지하려 해요. 어떤 노래든 특정 음역에서만 나오는 매력적인 목소리는 곡 안에 있어야죠.
‘오리지널리티’에 대해 묻는다면요? 지코는 몇몇 곡의 모방 논란이 있었고, 알앤비 보컬리스트에게 ‘레퍼런스’는 지긋지긋한 얘기겠지만. 지코 표절의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긴 하지만, 사람들의 피드백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예를 들어 ‘Boys and Girls’가 크리스 브라운의 ‘Ayo’랑 비슷하대요. 코드, 리듬, BPM 다 다른데. ‘거북선’ 냈을 때도 바로 논란이 생겼잖아요. 돈 내고 산 샘플 CD는 제 악기 같은 건데 표절이라 하면 당황스럽죠.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믿게 되니까.
베이빌론 크리스 브라운이나 제레미 따라 한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는데, 듣는 음악이 그거니까요. 연습하거나 멜로디 짤 때 본능적으로 자꾸 비슷한 부분이 생겨요. 그걸 저만의 것으로 바꿔가야죠.
지코 맞는 것 같아요. 내림 학습이라고 해야 하나? 제임스 브라운에서 마이클 잭슨, 마이클 잭슨에서 어셔, 어셔에서 크리스 브라운, 크리스 브라운에서 어거스트 알시나. 이렇게 쭉 오잖아요.
지코가 눈을 치켜뜨면 베이빌론은 눈을 감았다. 지코가 고개를 들면 베이빌론은 턱을 내렸다. ‘Boys and Girls’에서 랩과 노래를 주고받던 그 조화로움이 여기에도 있었다.
자기 걸 만드는 과정, 그 단계로 넘어서는 계기를 찾는 일이야말로 뮤지션의 책임이겠죠. 지코 피드백이 큰 역할을 해요. 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게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가 있어요. 저도 힙합의 팬이니까. 그건 경계하고 검토해야죠.
계속 곡을 내는 게 독창성에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지코 그렇죠. 욕먹어도 계속 관심을 받는 게 나아요. 그러다 아 맞아, 내가 이건 몰랐어, 같은 순간이 오죠. 베이빌론 지코한테 많이 배워요. 꼰대 마인드가 되면 안 되겠구나.
‘꼰대 마인드’요? 베이빌론 우기면 안 되겠구나. 자존심 세우려고 아닌 걸 알면서 맞다고 하지 말아야지. 절대로.
지코는 이제 자기 레이블을 꾸리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소속사가 있더라도. 지코 공부할 게 남았어요. 레이블이 음악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주변에서 10개 차리면 8개 문 닫아요. 솔직히 전 만들면 잘할 수 있어요.
시끄럽던 힙합 신이 소강 상태에 들어간 지금 같은 때라면, 더욱 뭔가 해 붙이고 싶지 않나요? 지코 요즘 전반적으로 조용하죠. 근데 이럴 때 제가 한술 뜨면 나대는 듯 보일 것 같아서. 프로젝트도 많았는데 자제했어요. 정말 제가 2015년에 계획했던 게 100퍼센트 실현됐거든요. 덜컥 무섭기도 했죠. 그래서 참았어요. 딱 박수받을 때까지만.
그래서 다시 블락비로 돌아온 건가요? 지코 안으로 들어왔죠. 넓게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야를 좁히면서 생기는 통찰력이 있잖아요.
래퍼가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건 어떻게 생각해요? 지코 충분히 가능하죠.
그런데 아무도 안 하고 있죠. 놀라울 정도로. 지코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억지로 관심을 가져도 안 되죠. 무지한 상황에서 함부로 얘기했다간, 더 큰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어제 투표는 했나요? 지코 그럼요. 변화가 일어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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