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데뷔를 앞둔, 연세대 졸업반 허훈은 올 시즌 무조건 다 이기고 싶다.
아직 학기 중이죠? 시험 기간인가요? 맞아요. 시험 보고 있어요. 시합 때문에 수업에 많이 빠졌는데, 결석계 같은 거 꼬박꼬박 다 냈어요.
옛날 농구부 선배들은 전공이 법대, 경영대, 그랬잖아요. 요즘은 다 체육 관련 전공이에요.
체육 전공이 아닌 한 가지를 고를 수 있다면 뭘 배우고 싶어요? 의대? 사촌 형이 의대 나왔는데, 농구하기 전에 꿈이 의사였어요. 형(허웅)이 농구를 한다고 해서, 형 다치면 내가 고쳐준다고.(웃음) 물론 농구 시작한 이후로는 농구만 생각하고 있죠.
요즘은 어떤 생각을 해요? 와, 내가 내년이면 벌써 프로로 가네. 실감나면서도 신기하고 그래요.
드래프트 1순위가 유력하죠. 주위에서 1순위, 1순위 하시는데 아예 범접할 수 없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꺾이지 않는.
아버지인 허재나 서장훈과 김주성 정도만이 그 정도 ‘클래스’였다 말할 수 있을 텐데, 그 반열까지 오르고 싶다는 말인가요? 거기까진 아니라도, 지금 시대에선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얘기예요.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나요? 그렇죠. 180대 중반까지만 컸어도 좋았을 텐데. 겨우 180이 되긴 했는데, 뭐 요즘은 키 작다고 농구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가드로서 키가 작아서 좋은 점은 뭘까요? 많진 않아요. 스피드나 순발력 정도. 웨이트 훈련 열심히 해서 단점을 커버해야죠.
보통 키 작은 가드는 수비에서 애를 먹는데, 허훈이 수비를 못한다는 평은 드물어요. 어릴 때 잘 배웠어요. 수비는 사실 별다른 기술이 없어요. 의지가 더 중요해요. 공격은 재능에 따라 어떤 선수가 뭘 잘하고 뭘 못하고가 있지만.
슛도 노력이 아니라 재능이에요? 노력 반 재능 반.
친형인 허웅 선수가 뛰어난 슈터잖아요. 형은 진짜 열심히 했어요. 대학교 때부터 새벽에 운동 나가고.
“재능은 허훈, 노력은 허웅”이라는 평가가 고교 시절부터 있었죠. 이런 말은 어때요? 아무렇지 않고 아, 정말 내가 재능을 받았구나, 생각해요. 실제로 자주 들은 얘긴데, 맞는 것 같기도 하고요.
프로 데뷔 후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요? 완벽하게 하고 싶어요. 모든 분야에서 월등한 선수. 남들이 10번 시도해서 7번 성공하는 공격 기술이 있다면, 저는 거기서 10개 다 넣을 수 있게? 욕심이죠.
아버지인 허재 감독도 “(허)훈이는 배짱 두둑한 플레이가 나를 닮았다”고 했죠.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운동하는 선수가 성격이 소심해서 좋을 것도 없고. 저는 워낙 낙천적이고 단순해요. 모험도 좋아하고. 예를 들어 3점을 뒤지고 있으면 3점 슛을 던져서 동점을 만들어야 돼요. 그 슛을 어쨌든 누군가는 쏴야 들어가든 안 들어가든 할 거 아니에요. 실패하면 연습해서 다음엔 넣으면 되고, 넣으면 스타가 되는 거고.
그런 슛은 내가 던지고 싶다? 네. 대신 남들이 그만큼 인정을 해줘야겠죠.
대학교에서는 득점과 리딩을 병행하고 있어요. 듀얼 가드에 가깝죠. 프로에서 포인트 가드로 정착하고 나면, 그런 슛을 결정적 순간 양보해야 할 텐데. 그런 것도 좋아요. 가드의 희열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패스를 준 사람이 쉽게 득점하는 것.
대학 초년생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슈팅 가드라 소개했어요. 지금은 그렇지 않고요. 신체조건을 감안했을 때 향후 포인트 가드로 정착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나요? 책임감이죠. 지금 4학년이고 주장이기도 하고. 포인트 가드는 팀의 선장이잖아요.
허웅은 3학년까지만 마치고 ‘얼리 엔트리’로 프로에 왔어요. 허훈 선수도 만약 지난 드래프트에 나왔다면 4순위 지명이 유력했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요? 부모님도 대학을 졸업했으면 하셨고, 저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4학년 마치고 나가면 더 좋은 순위로 뽑힐 수 있는데, 왜 미리 나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늦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학 생활이 재밌어요? 프로 진출한 형들이 그랬어요. 대학교 4학년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건드리는 사람도 없고.(웃음)
연세대가 지난가을 대학농구 리그에서 고려대를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어요. 남은 목표라면 역시 ‘연고전’ 승리인가요? 6년째 승리가 없어요. 전관왕이요. 지난 시즌엔 연세대가 이런 학교다, 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고요. 2017년엔 아무래도 정기전이 제일 중요하긴 하지만, 나머지 대회도 다 이기고 프로에 가고 싶어요.
프로 입단 후 곧장 주전으로 나설 수 있는 확률은 절반 정도 될까요? 이를테면 양동근이 버티고 있는 모비스라면 쉽지 않겠죠. 모비스 좋죠.
유재학 감독처럼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정평이 난 지도자와도 잘 맞나요? 맞춰야죠. 사회생활인데. 그리고 (이)종현이 형도 올해 모비스에 입단했잖아요. 뛰어난 센터랑 뛸 수 있는 거니까.
약팀에서 곧장 주전을 꿰차는 쪽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동근이 형 이제 연세가.(웃음) 제가 보고 배울 수 있는 가드잖아요. 차차 성장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다 운명이죠 뭐.
지난여름 처음 합류한 국가대표팀에서는 김선형과 호흡이 유독 잘 맞았어요. 선형이 형이 원래 슈팅 가드인데, 제가 없을 때는 계속 포인트 가드로 뛰었어요. 진짜 빨라요. 제가 공 잡으면 항상 앞에서 달리고 있더라고요.
국가대표 선발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죠. 마침 대표팀을 허재 감독이 맡고 있던 상황. 그건 신경을 안 쓰려야 안 쓸 수가 없었어요. 남들이 부러워서 그렇게 얘기한 면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 내가 뭔가 더 보여줘야겠다, 싶기도 했고.
차두리의 경우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나 축구선수로 인정받기가 너무 힘들었다, 는 유의 말을 했죠. 어떤가요? 어릴 때부터 워낙 많이 듣던 얘기라…. 언젠간 인정해주겠지, 같은 생각이었어요. 주변에서 뭐라고 하건 내가 알아서 한다. 부담감 전혀 없어요. 내가 욕하면 내가 욕먹고, 잘하면 내가 칭찬받는 거죠. 마이 웨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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