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나라에서 온 장마라는 이름의 소년. 촬영장으로 들어선 라이관린은 서늘한 습기를 머금은 듯 나른했다. 커다란 그는 느리고 우아하게 움직였고, 큰 보폭으로 걸었다. 몽롱한 감기 기운을 이겨내려는 모습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특유의 분위기를 더 짙게 만들었다. “힘들어도 재미있고 많이 배울 수 있으니까, 저는 되게 좋아요. 지금이 너무 좋아요.” 라이관린은 ‘지금’이라는 말에 유독 힘을 줬다. 서툴고 단순하지만 그래서 더 정확하게. 3개 국어를 하는 라이관린에게 언어는 매번 새로워지는 세계다. “언어는 되게 재미있어요. 배우는 게 즐거워요. 새로운 걸 알게 되니까요.” 열 살 때까지 아버지를 따라 외국을 오가며 영어와 매너를 익힌 소년은 열다섯 살에 한국행을 택했다. “원래는 농구선수가 되려고 했는데, 좀 더 빨리 성공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만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겼고, 2천 명 중에 됐어요. 그리고 여기 왔어요.” 중간에 몇 단계가 생략된 것처럼 들리지만, 말 그대로다. “H.O.T.부터 한국 가요의 역사를 공부”하며 맨땅에 헤딩한 그는 한국 땅을 밟은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데뷔의 꿈을 이뤘다. 단지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을까? 사진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때 무구한 눈망울로 “저,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순진함과, 열다섯 살의 나이에 홀로 낯선 타국에 온 담력 사이의 라이관린을 생각한다. 그는 모르는 것이 두렵지 않다. “한국 와서 눈을 처음 봤는데 신기했어요. 예뻤어요. 올해도 볼 수 있겠죠?” 눈이 내리는 제스처를 동원하며 말하는 라이관린이 ‘눈’이란 단어를, 그것이 ‘예쁘다’는 단어를 배우기까지의 과정은 어땠을까. 서바이벌의 한복판, 여유를 잃지 않고 재킷의 첫 단추를 여미고 풀 때, 비범함은 이미 증명된 것인지도 모른다. 2등으로 호명된 순간, 20등으로 급락한 순간, 데뷔가 확정된 순간에도 매너를 잊지 않았고, “사실 11등 안에 드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죠. 그래서 기분이 괜찮아요”라고 담대히 말하던 그릇의 크기로 말이다.
“좀 더 빨리 성공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학교에만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오디션을 볼 기회가 생겼고, 2천 명 중에 됐어요. 그리고 여기 왔어요.”
-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곽기곤
- 캐스팅
- 최자영
- 헤어 & 메이크업
- 이소연, 장해인
- 어시스턴트
- 송재훈, 박혜정, 정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