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제러미 아이언스는 아일랜드의 버려진 15세기 성을 사서 복구하기로 결심했다. 중년의 위기감? 창조가 필요해서? 어쩌면 도박? 이 모두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아이언스의 독특한 취향을 잘 반영한 멋진 왕국이 탄생했다. 아이언스와 그 주변의 여러 아마추어가 폐허를 마법과도 같은 휴식지로 변신시킨 킬코성을 찾았다.
아일랜드 남서부 해안의 발리드홉과 스키버렌 사이쯤에 로어링워터만이 있다. GPS는 그곳으로 향하는 좁은 시골길을 따라 나를 안내했다. 내가 찾고 있는 성은 1600년대 말에 잉글랜드에게 함락된 마지막 성 중 하나로, 1601년의 역사적인 킨세일 전투에서 스페인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에 패배해 아일랜드는 완전히 정복되었다. 당시 잉글랜드는 머스킷 총과 검, 그리고 악의를 품고 배와 말을 타고 몰려들었다. 나는 약속이 있어 흰색 기아 스포티지를 몰고 가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다 마지막 코너를 돌자 눈앞에 갑자기 장관이 펼쳐졌다. 테라코타 빛의 크고 작은 탑 두 개로 이루어진 킬코성이 짧은 둑길로 본토와 이어진 작은 섬 위에 꼿꼿하게 솟아 있었다.
나는 섬에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관찰 당했다. 약 15미터 높이에 있는 작은 창문(금속 투구를 쓴 사내들이 화살을 쏠 때 사용하는 것 같은 창문)에서 작고 흰 개가 의아한 듯 내 차를 내다봤다. 성문 앞에 차를 세우고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키패드에 누를 번호를 알려줬다. 숫자를 입력하자 천천히 킬코성의 문이 열렸다.
20년 전만 해도 이곳은 폐허였다. 옛날 사진 속에서 본 킬코성은 낡디낡은 회색 돌로 된다 무너져 내려가는 건물이었고 지붕조차 없었다. 남아 있던 가장 높은 층은 비바람에 노출된 채 잔디와 야생 덤불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그 날 오전에 본 킬코성은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메인 탑은 높이가 20미터에 달하고, 그 북동쪽 코너에 붙은 작은 탑은 30미터가 넘어 높이는 오히려 더 높았다. 탑 난간의 총안은 맥카시 가문의 족장 더못 맥카시가 이 성을 지은 15세기 모습과 비슷하게 복구했다. 탑의 망루에는 킬코라고 새겨진 긴 자줏빛 페넌트가 북서쪽을 향해 걸려 있었다. 뜰에 있던 나는 인상적인 아치문으로 걸어갔다. 묵직한 느릅나무 패널에 철제 스터드가 박혀 있었다. 문 위 왼쪽 벽에 박아놓은 밝은 색 돌판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었다.
커다란 문을 두드리고 기다리다가 노크 소리가 들리긴 들렸나 생각할 때쯤, 제러미 아이언스의 긴 몸과 친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는 ‘윌리 웡카와 초콜릿 공장’에서 진 와일더가 처음 등장할 때처럼 머뭇머뭇했다. 나를 들여보내고 앞장서는 아이언스의 얼굴은 잿빛이었고, 외부 계단을 올라갈 때 다리를 저는 것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외딴곳에 살다 보니 미남 배우 아이언스가 곧 쓰러질 것처럼 쇠약해진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아이언스는 일어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았고, 족저 근막염 때문에 잠시 발이 아픈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애연가인 그가 직접 말아 피우는 담배를 한 개비 피우고 나자, 곧 웡카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의 상상력에서 태어난 마법 같은 세계를 설명했다.
“여기서 혼자 잔 첫 밤을 기억합니다. 이곳은 아주 흥미로운 건물이에요. 아주 남성적이고 곧게 솟은, 즉 남근 같은 모습이죠. 그러나 내부로 들어와 보면 자궁의 모습입니다. 아주 신기해요. 이 안에 있으면 철저히 보호받는 기분입니다. 모든 것에서 떠나 있을 수 있어요. 정말 멋진 기분이죠. 이곳은 내게 그런 공간입니다.”
킬코는 아름답지만 조금은 제정신이 아닌 대저택인 동시에, 주인의 독특한 정신 상태를 360도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아이언스와 이틀을 함께 지내보니 그가 자연스럽고 편안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말할 때면 어색함이 없고, 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강한 바람을 뚫고 거침없이 배를 몰거나, 마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성안의 모든 방에 설치해둔 인터콤으로 연극에서 나올 법한 아침 인사를 건네 손님들의 잠을 방해하는 등이다. 내가 갔을 때는 그의 친구 두 명이 와 있었다. 둘 다 여성이었다. 아이언스가 특유의 영국 상류층 발음으로 건네는 “좋은 아침입니다, 숙녀 여러분!”이란 인사가 인터콤에서 흘러나와 수백 년 된 건물을 울렸다. “아주 멋진 날입니다. 비는 오지 않고, 바람은 잔잔합니다. 어서 내려오셔서 토스트 굽는 냄새를 맡으세요.”
그의 보디랭귀지도 볼 만했다. 69세지만 그의 외모는 여전했고, 지금까지 그가 인기를 유지하게 해준 1981년에 방영한 영국 미니시리즈 <브라이즈헤드 리비지티드>의 캐릭터 찰스 라이더처럼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벽에 기대더니 소파 위에 편히 누웠다.
게다가 그가 키우는 개 ‘스머지’는 그의 우아한 움직임을 흉내 낸다. 아이언스가 보호소에서 데려온 테리어 잡종견 스머지는 성에 다가오는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그 개다. 스머지는 우리가 어딜 가든 아이언스를 따라다녔고, 그는 쉬지 않고 “착하지”라며 스머지를 격려했다. 아이언스가 슬픈 듯한 표정으로 바다를 바라볼 때도, 킬코의 가파른 계단을 뛰어오를 때도 스머지는 그를 따라 했다.
400년 가까이 버려져 있던 성을 복구하는 엄청난 일을 떠맡을 정도라면 자신감이 강한 사람이어야 했을 것이다. 이름난 건축가, 종합 건설업자, 중세 전문가 없이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특히 자신의 본능을 굳게 믿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쩌면 조금 무모한 사람이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추어들이 잔뜩 모여 직관을 따라갔어요.” 아이언스에 따르면 언제나 삼사십 명 정도가 이곳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다고 한다. 개인적인 친구들, 아일랜드 주민들, 떠돌이 석공과 목수, 그리고 기타 장인들이었다. “그들 모두에게 우리가 하고 있는 건 ‘중세의 재즈’라는 걸 잊지 말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킬코는 600년 전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 성과는 거리가 멀다. 냉온수, 전기, 와이파이를 갖춘 곳이다. 아름답지만 조금은 제정신이 아닌 대저택인 동시에, 주인의 독특한 정신 상태를 360도로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 성에서 가장 멋진 곳은 천장 높이가 다른 공간의 두 배인 주 거주 공간 솔라 solar인데, 총 4층짜리 메인 탑의 3층에 있다. 중세에는 이런 공간을 솔라라고 불렀다고 하여 이름 지었다.
메인 탑의 긴 가로세로 길이(약 10미터 x 12미터)를 활용한 이곳에는 온갖 예술품과 오브제 등 아이언스가 모았던 것들을 모아두어 기분 좋게 산만하다. 모로코 카펫, 네팔에서 낙타를 끌고 다닐 때 쓰는 멍에, 트리불럼이라고 하는 옛 로마식 탈곡판, 그가 슬로바키아에서 만든 바이올린(가끔 연주도 한다) 등이다. 솔라는 놀라울 정도로 채광이 좋다. 아이언스가 다시 끼우긴 했으나 원래 위치에 그대로 설치한 직사각형 창문을 통하면 동서남북 정방향을 볼 수 있음을 내 아이폰 나침반으로 확인했다.
방 한가운데에는 프랑스에서 온 무쇠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고, 그 아래 큰 난로와 소파 두개에 둘러싸인 대화하기 좋은 공간이 있다. 솔라의 위층에는 갤러리가 있다. 서쪽에는 서재 겸 사무실이, 동쪽에는 그랜드 피아노와 장작 난로, TV를 보는 방이 달린 공간이 있다.
이 성에서는 13명이 잘 수 있다. 침실과 욕실 대부분은 5층짜리 작은 탑에 있지만, 아이언스가 쓰는 침실은 솔라와 갤러리 위에 있다. 큼직한 선장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우아한 아치 모양 목제 천장은 그가 프랑스에서 <아이언 마스크>를 찍을 때 잠시 지낸, 약 1100년경에 지은 농장 주택의 천장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뒤집어진 보트 아래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라 정말 좋아합니다.”
이 성의 주인이 배우란 점에 걸맞게, 킬코에는 드라마적 요소가 깃들어 있다. 입구에서 솔라로 가려면 성의 길고 좁고 가파른 메인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아이언스는 계단 양쪽 벽의 머리 높이 정도에 나 있는 구멍들을 가리킨다. 그 구멍에 긴 나무 막대를 꽂고 흔들면 침입자가 올라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당신이 올라오는데, 내가 창이나 부지깽이 같은 걸 들고 위에서 당신 눈을 찌를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언스가 설명했다. 그의 발목 옆에 있는 스머지도 날카로운 눈으로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러나 1990년대 말쯤 되자 연기가 지겨워졌다. 정체기에 들어왔다고 느꼈다. 몇 년 전, 그는 아내 시네드 쿠삭과 함께 아일랜드 카운티 코크 서부의 일렌 강변에 있는 자그마한 집을 하나 샀다. 집을 수리하고 이름을 테아흐 이아스크(아일랜드어로 ‘물고기 집’)라고 지었다. 가족의 집은 잉글랜드 옥스퍼드셔에 있었지만 그들은 이곳을 자주 찾았다. 약 10분 떨어진 곳에 폐허로 있던 킬코는 그들이 즐기는 피크닉 장소가 되었다. 아이언스는 두 아들과 함께 성벽을 기어올라 위험할 정도로 높은 곳에서 움푹 파인 로어링워터만의 경치를 감상하곤 했다.
1997년에 아이언스는 킬코를 구입해서 되살려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쉽지 않겠지만, 그가 원했던 위험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에이드리언 라인 감독이 영화화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원작 <로리타>를 막 마친 참이었다. “이제부턴 일이 좀 줄겠다 싶었어요.” 아이언스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킬코 생각을 하면 할수록 얼른 손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20세기 말에 ‘셀틱 타이거’라는 별명까지 붙었을 정도로 잠시 아일랜드를 풍요롭게 만든 해외 투자 증가가 시작되고 있었고, 아이언스는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나타나 그곳을 망쳐놓을까 두려웠다고 한다. 몇번에 걸쳐 비밀스럽게 문의했고, 그해가 끝나기 전에 킬코성은 아이언스의 것이 되었다.
이곳은 아주 흥미로운 건물이에요. 아주 남성적이고 곧게 솟은, 즉 남근 같은 모습이죠. 그러나 내부로 들어와 보면 자궁의 모습입니다.
아내 쿠삭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재미있어한다. 아이언스는 성을 사고 난 뒤에야 쿠삭에게 말했다. “당시 무척 충격을 받았고, 격한 과호흡이 시작됐어요.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어요. 그가 한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며 과호흡하고, 바닥부터 끝까지 올라가야 할 계단이 너무 많아서 과호흡하고 있죠.” 쿠삭이 옥스퍼드셔에서 전화를 통해 내게 한 말이다. (내가 킬코에 갔을 때 쿠삭은 없었다.)
하지만 쿠삭은 남편이 저지른 일을 도왔다. “아이언스가 중년의 위기에 닥쳤다고 생각했고,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도 이해했죠. 제러미는 낭비를 참지 못해요.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죠. 제 생각에 그는 킬코성을 반드시 구해야 할 아름다운 폐허, 죽지 말아야 할 무언가로 본 것 같아요.”
아이언스는 킬코성과 관련된 경험을 적은 짤막한 글을 주었다. 읽어보니 흥미로운 연결 고리가 있었다. 젊었을 때만 해도 그는 그렇게 자신만만하지 않았다. “내가 차갑고 열정 없는 앵글로 색슨이 아닐까 두려워했습니다. 거기서 나를 끄집어내줄 사람이 필요하다 느꼈어요.”
그 사람은 바로 아일랜드의 유명한 배우 집안 출신의 젊은 여성이었다. 더블린에서 온 그의 연인은 거칠고 걸걸하지만 사랑스러운 쿠삭이었다. 둘은 1978년에 결혼했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다. 더블린 출신인 그녀에게도 웨스트 코크 시골은 낯선 곳이었다. 영국의 영화 프로듀서이자 콜롬비아 픽처스의 전 수장이었던 데이비드 퍼트남을 찾아가고 나서야 테아흐 이아스크가 될 집을 처음으로 봤다. 퍼트남은 근처에 있는 농가 하나를 복구한 직후였다.
아이언스는 웨스트 코크가 ‘히피 트레일’의 종착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잉글랜드 남부, 웨일스, 아일랜드를 잇는 길이다. 수십 년 전부터 히피 성향이 있는 유럽 모험가들이 하치하이크, 오토바이, 캠퍼밴(중간에 배도 한 번 타야한다) 등으로 오갔다. “화가, 목수, 침술사, 작곡가, 식당 경영자, 석공, 정비공, 이엉장이, 방직공, 보석 세공인을 이 지역 농부와 어부들은 재미있어하며 따뜻하게 대해줬어요.”
아이언스와 퍼트남은 호화로운 사람들이었지만, 그래도 타지 사람들이긴 마찬가지였다. 퍼트남을 통해 아이언스는 다른 타지 사람을 또 한 명 알게 되었다. 가까운 어촌 마을 유니언 홀에 살고 있던 유명한 영국 건축가 와이클리프 스터치배리였다. 그는 퍼트남의 농가 리노베이션을 감독했고, 곧 아이언스와 쿠삭의 농가도 맡게 되었다. 프랑스 남부로 휴가를 간 어느 운명적인 날, 스터치배리는 레스토랑에서 일어나 “내 위엄 있게 말하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랑이야!”라고 말하고는 쓰러지더니 테이블 앞에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버렸다. 테아흐이아스크 작업이 끝나기 전의 일이었다.
스터치배리는 자기가 알고 있는 건축에 대한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려고 딸 베나를 훈련 시키고 있었다. 베나는 아이언스에게 아버지의 사망을 알리고 남은 계약을 지킬 의무가 없다고 전했다. 12주 동안 훈련받은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언스는 베나의 타고난 재능과 개인적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베나도 아이언스처럼 오토바이를 탔다. 아이언스는 베나에게 이번 프로젝트를 끝까지 맡기고 싶다고 우겼다. 베나는 아이언스와 쿠삭의 마음에 쏙 들었다.
몇 년 뒤, 아이언스가 베나 스터치배리에게 킬코를 사고 싶다고 털어놓자, 베나는 킬코성과 킬코가 있는 섬의 현재 주인이 우연히도 자기 사촌이라고 알려주었다. 마크 와이클리프 사무엘이라는 사람은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고고 학자였다. 그 역시 킬코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다. 사무엘은 기꺼이 킬코를 팔았다. 킬코를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작업은 1998년에 시작되었고 6년 뒤인 2004년에 완료됐다. 스터치배리의 경력은 화려하지 않지만 사실상 건축가, 인사팀, 행정 관리를 다 맡게 되었다. 아이언스는 일손이 필요하면 늘 찾던 브라이언 호프에게 프로젝트 감독을 맡겼다.
호프는 상냥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영국 남성이다. 그는 의연한 태도로 “아주 좋은 생각이야, 해보자!”라고 말했다. 아이언스와 스터치배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졸업장이나 자격증보다는 경험으로 능력을 쌓았다. 대장장이의 아들이자 독학 사진가인 호프는 젊은 시절 유럽과 아메리카를 돌아다니며 여러 기술을 익혔다. 예를 들어 1970년대에는 오랫동안 조지 해리슨의 어시스턴트를 맡았던 테리 도란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 록 밴드 리허설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호프는 킬코 프로젝트의 규모로 볼 때 장비와 자재를 대여하기보다는 구입해야 할 거란 사실을 깨달았다. 여러 층의 발판, 크레인, 발전기, 지게차가 필요했다. 둑길 옆 들판에 작업장도 만들었다. “우리는 대장간, 석공 작업장, 목공소를 만들었고, 밖에서 일하는 팀도 여럿 있었어요.” 작업할 땅은 아이언스의 새 이웃이 된 농부에게 임대했는데, 그는 곧 친구들에게 “내가 제러미 아이언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제러미 아이언스가 성을 복구 중이고, 채용도 하고 있다는 소식은 곧 웨스트 코크에 퍼졌다. 사람들이 매일같이 킬코로 찾아왔다. 경험 많은 기술자도 있었고, 현금을 좀 벌거나 그저 참여하고 싶은 히피 순례자도 있었다. 호프는 배관과 전선만큼은 자격증이 있는 프로들에게만 맡겼다. 하지만 아이언스는 구체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누구에게나 기회를 주려고 했다. 둑길 입구에 트레일러를 놓고 사무실로 썼던 스터치배리는 현장에 나타나는 온갖 사람들을 처음으로 만나보는 역할을 맡았다. “일하고 싶다는 사람들에겐 ‘무슨 일을 할 줄 아나요?’라고 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하지만 제러미의 취향을 알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거나 뮤지션인가요?’라고 물었죠. 만약 그렇다면 리스트 상위로 올라갑니다. 이름이 웃겨도 위로 올라갔어요. 자기 이름이 앤서니 컴버배치라고 말한 화가가 찾아왔었는데, 제러미는 ‘그 사람에게 꼭 급여를 줘야겠어. 채용해!’라고 말했어요.”
새로 찾아온 사람들 가운데 아무 기술도 없는 사람들에겐 발판 쓸기를 시켰고, 벽의 돌들 사이에 자란 풀과 흙을 뽑아내는 일을 맡겼다. 벽에 벽돌 줄눈을 다시 칠하기 전에 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색다르지만 재능 있는 장인들도 좀 있었다. 높은 실크 햇과 연미복 차림으로 나타난 독일인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은 오래된 의례를 하던 중이었는데, 견습공이 훈련을 마치면 몇 년 동안 여행하는 것이었다. 옷을 잘 차려입은 까닭은 고용주가 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떠돌이 부랑자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독일인 중 하나는 목수였고 하나는 석공이었다. “그들은 6개월에 걸쳐 우리의 창문을 전부 조각한 다음 떠났습니다.” 아이언스의 말이다.
실라나 기그는 다리를 벌리고 과장된 성기를 드러낸 나체 여성 조각상인데, 중세 아일랜드 성 입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영국의 조각가가 실라 나 기그 조각을 맡았는데, 그가 불교도였기 때문에 아일랜드라기보다는 아시아 스타일로 만들었고 부처처럼 배가 불룩 나온 모양이었다. 아이언스의 개인 화장실 안팎의 정교한 물결 모양 나무조각은 감정적으로는 불안정하지만 기술은 대단했던 아르헨티나 목수가 맡았다. 하지만 작업 속도가 너무 느려 해고해야했다. 그는 해고 소식을 듣고 눈물을 터뜨렸다.
사소한 문제야 많았지만 리노베이션은 리듬을 타고 꾸준히 진행 되었고, 가끔은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내기도 했다. “사람들이 톡톡톡 돌을 쪼는 소리, 키득거리는 소리, 농담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럴 때면 중세의 삶은 이 현장과 아주 비슷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스터치배리의 말이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에는 취미로 기타를 치는 아이언스와 호프는 툭하면 다른 뮤지션 일꾼들과 함께 근처 펍에서 어쿠스틱 악기로 연주를 하곤 했다.
아이언스는 가끔 변덕스런 요구로 일꾼들을 짜증 나게 하기도 했다. 석공들에게 처음으로 만든 메인 탑의 총안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거나, 구멍이 너무 많고, 하나하나의 크기가 너무 작으니 부수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한 아일랜드 석공은 그의 눈을 보고 “제러미, 배우 밑에서 일하는 게 뭐가 문젠지 알아요? 빌어먹을 리허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본능은 날카로웠다. 초기에 아이언스는 메인 탑 2층의 둥근 천장 모르타르에 나뭇가지 같은 줄무늬가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현재 그곳은 큰 스누커 테이블이 있는 게임 룸이다. 아이언스는 중세에 둥근천장을 만들 때는 부드럽고 잘 휘는 개암나무와 버드나무 등의 가지로 짠 큰 판을 휘어서 댄 다음, 튼튼한 나무 기둥으로 아래를 받쳤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다음에는 판 위에 돌과 모르타르를 발랐다. 모르타르가 나무 판 틈으로 스며들어 건조되고 나면 아치형이 고정되기 때문에, 아래를 받쳤던 나무 기둥은 제거했다.
이 이야기를 알고 난 아이언스는 킬코 전체에 고리버들로 만든 판을 데커레이션 요소로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난 기술자 카트린 슈바르트가 코크에 산다는 걸 알아내서 게임룸 천장을 맡겼다. 그 결과물이 너무나 멋져서 슈바르트의 정교한 고리버들 작업은 킬코 전체의 모티브가 되었다. 게스트룸 천장, 아이언스 침대의 헤드보드, 심지어 욕조 바깥 벽에도 들어갔다.
성의 색깔 역시 아이언스가 받은 영감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엔 킬코의 외관은 최대한 원래 모습 그대로, 즉 회색 돌로 된 요새로 남겨두려했다. 하지만 모르타르를 아무리 발라도 실내에 물이 들어왔다. 벽의 두께가 1.5미터 정도 되었는데도 비 내리는 로어링워터만의 겨울바람 탓에 자동차 한 대 크기의 물웅덩이가 솔라에 생겼다. 그래서 벽에 두껍게 석회 모르타르를 발라야 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할 harl한다고 하는 작업이다. 그 회칠을 여러 겹 해야 한다.
제레미의 아내 시네드 쿠삭은 “그는 낭비를 참지 못해요. 킬코성을 반드시 구해야 할 아름다운 폐허, 죽지 말아야 할 무언가로 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아이언스는 일단 크림색 회칠을 시도해보았지만 결국 황산철을 섞어 회칠했다. 처음에는 연두색이 나다가 산화를 거치며 초록빛으로 변한다. 영국과 아일랜드 신문들은 킬코성의 새로운 색상에 트집을 잡았다. 텔레그래프의 한 기자는 성이 빛바랜 회색에서 갑자기 따뜻한 핑크색으로 바뀌어서 지역 주민들이 화났다고 주장했다. 아이언스는 그런 이야기들은 난센스였다고했다. 그리고 석양빛이 드리워졌을 때도, 이 성의 색이 핑크로 보이려면 마약인 LSD에 취하기라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황토색인지 녹슨 빛인지 알 수 없을 킬코성은 웨스트 코크에서 사랑받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따스한 색상과 만 옆의 위치가 어우러져, 영원한 금빛 황혼 속에 있는 듯한 모습이다.
내가 킬코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밤 아이언스는 만찬을 열었다. 홍합, 드센 불길, 다양한 손님, 그리고 흥을 돋워줄 아일랜드 피들 연주자 프랭키 개빈이 있었다. 아이언스는 풀오버 대신 자수가 놓인 진홍색 예복을 입었다. 중세 아일랜드 성에 사는 영국 배우가 입기에 이보다 자연스러운 옷이 있느냐는 듯 침착했다. (그는 이런 예복을 두 벌 가지고 있다. 다른 한 벌은 녹색으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전 대통령이 준 것이다. 아이언스가 전 세계 국가 지도자 중 조금이라도 옷을 잘 입는 사람은 당신 뿐이라고 칭찬했더니 그가 준 옷이다.)
손님들 중에는 킬코 복원에 참가한 경험 많은 아일랜드 노신사 두 명이 있었다. 사교적이고 소탈한 전기 기사 팀 콜린스와 평생 이 지역에서 농사를 지었으며, 은퇴한 뒤 가진 직업이 킬코의 크레인 기사였던 온화한 성품의 제임스 울리다. 울리는 피아노와 목제 말을 조심스럽게 성 꼭대기로 올린 사람이다. 그러면 천장에 있던 팀이 구멍을 통해 아이언스의 침실로 옮겼다. “목제 말 작업에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았어요. 1만4천 파운드짜리였거든요. 콜린스가 말했다.
식사를 마치자 개빈이 몇 곡 연주하고 농담을 했다. 아이언스도 끼어들었다. 콜린스는 일어나서 노래를 잘 못한다고 사과부터 하더니, 사실상 코크의 주제가 ‘내 사랑스러운 만의 둑 The Banks of My Own Lovely Lee’을 아카펠라로 불렀다.
여위고 수줍음이 많은 울리마저 나서서 코크에서 사랑받는 시 ‘신부의 도약 The Priest’s Leap’을 암송했다. 74행에 달하는 아일랜드 민족주의 시로, 말을 탄 성직자가 뒤쫓아오는 사악한 영국 군인 대부대를 기적적으로 피한다는 내용이다. 예복을 입은 아이언스는 명랑하게 즐겼다. 자신을 차갑고 열정 없는 앵글로 색슨이라고 생각하던 과거는 영원히 쫓아버린 듯했다.
바깥 날씨는 험악했다. 비가 매섭게 내리고 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불이 타닥타닥 타고, 이야기 소리가 바람소리를 능가하는 킬코성에서는 바깥 날씨가 어떤지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이언스가 내게 말했다. “성이란 곳은 정말 특별한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모두 새벽 서너시까지도 이야기하고,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고, 함께 술을 마십니다. 결코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이곳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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