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 프랭크와 래퍼 김심야로 이뤄진 XXX는 가사에 쓴 대로 “빡치는 이유 서술해서 푼돈 버는 Business 중”이다. 그들이 연달아 낸 두 장의 앨범 <Language>, <Second Language>는 당신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하겠지만 듣지 않고 넘어간다면 매우 찝찝할 수작이다.
2016년 <KYOMI> 앨범 이후 느껴온 모든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감정을 <LANGUAGE>, <SECOND LANGUAGE> 2장의 앨범을 통해 정교하게 쏟아냈다. 음악 신에 엿을 먹였다고 생각하나?
김심야 우리가 엿을 먹었다. 음반을 완성하고 나서 ‘우린 이제 돈을 벌겠구나’ 생각했지만 안 됐다.
국내 및 해외 평단에서 기존 음악의 문법과 규칙을 깬 수작이라고 평가받고 있고, 많진 않지만 일부 청자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그 정도로는 만족을 못 하는 건가?
김심야 지나가다가 힙합 하는 분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그분의 반응으로 내 위치를 확인한다. 그걸로 미뤄봤을 때 우리의 입지 자체가 내가 원하는 위치가 아니다.
프랭크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 평단의 반응이 좋긴 하지만 내가 앞으로 활동하는 데 그게 그렇게 큰 영향을 줄 것 같진 않다. 보고 기분이 좋거나 나쁜 정도지.
그래도 기억에 남는 평이 있다면 뭔가?
프랭크 <이즘>의 평이 기억에 남는다. <KYOMI> 때 평점이 낮았는데 이번엔 높았다.
김심야 <SECOND LANGUAGE> 앨범에 대한 댓글 중 “이런 걸로 멜론 1위를 하겠다니 미친 놈들”이 기억에 남는다.
앨범의 완성도가 성공과 돈을 가져다주진 않는다는 건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지 않나?
김심야 공식석상에서 ‘멜론 1위’ 얘기한 건 반 농담이었지만, <SECOND LANGUAGE>는 힘을 조금 빼고 진짜 멜론 1위 하겠다고 만든 앨범이다. ‘괜찮아’, ‘다했어’ 같은 곡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청자들을 위해 이 정도까지 배려했는데 돈을 못 벌면 그건 ‘내 영역을 벗어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우린’이나 ‘사무직’ 같은 곡만 봐도 비트나 가사에서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할 의도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멜론 차트 1위라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김심야 우리나라 최고의 히트곡들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는 노래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감정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히트한다고 생각한다. <Show Me The Money> 보면 결국 감성 잘 판 사람들이 성공하지 않나.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안 되는 것, 슬픈 것, 깨지는 것이다. 이번 앨범의 곡들은 소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짜증과 우울을 줄 수 있는 음악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장르는 항상 발라드라고 생각해왔다. XXX의 곡들은 한국 힙합 발라드다.
보너스 트랙 빼면 <LANGUAGE>의 ‘18거 1517’부터 <SECOND LANGUAGE>의 ‘사무직’까지 총 20곡이다. 이 앨범을 만드는 데 영향을 준 것들은 무엇이었나?
김심야 음악 시장 안에서의 우리의 위치, 재정적인 상황, 유명세, 공연하러 갔는데 관계자로부터 들은 “어떻게 오셨어요?” 같은 말, 앨범 판매량, 나를 빡치게 한 애들이 이걸 듣고 나를 싫어해야 한다는 마음 등등이다. 랩을 잘해서 듣기 좋게 만들 생각은 아예 없었다. 거의 매일 화가 나 있었고 화가 나서 가사를 쓰고 화가 나서 녹음을 했다.
프랭크 이런 상황에 놓인 내 자신과 수많은 아티스트다. <SECOND LANGUAGE>에는 감정이 거의 안 들어가 있지만 <LANGUAGE>에서는 비트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후련하게 다 했다. 단어를 생각하고 문장으로 만드는 대신 소스를 고르고 패턴으로 만들었다. 분노, 짜증, 우울, 불안 등 표현하고 싶었던 감정은 다 표현했다. 비트에 관한 영감은, 내 사운드클라우드에 있는 믹스셋 ‘모방과 착장’을 들어달라.
음악 신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김심야 우리가 노력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한국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외국 신은 공들인 지 2년밖에 안 됐는데 어쨌든 앞으로 나가는 중이다. 한국 음악 신에는 보이지 않는 피라미드 구조가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위로 올려놓으려는 회사와 그 사이에서 짜증 나는 나, 정이 다 떨어졌다.
‘18거 1517’에서 아버지에게 차를 사주고 싶다고 했다가 생각해보니 안 될 것 같다는 마지막 구절 “아버지 벤틀리는 죄송하지만 없던 걸로”가 충격적이다. 한국 힙합 신의 지겨운 효자 타령을 조롱한 건가?
김심야 그건 아니고, 아버지에게 벤틀리를 못 사주는 상황이 정말 빡쳐서 쓴 거다. 일부러 반전을 노린 건 아니고, 앞부분의 가사는 2015년에 쓴 거고 뒷부분의 가사는 2017년에 쓴 거라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2015년에 만든 노래에 프랭크 형이 뭔가를 덧붙여서 내면 좋겠다고 해서 그때 떠오른 생각을 덧붙인 거다.
프랭크 비트도 앞부분은 2015년, 뒷부분은 2017년에 만든 것이다.
비트가 청자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뒤통수를 계속 때린다. ‘무뢰배’의 경우 당구 치는 사운드가 재미있는데, 어떻게 넣게 된 건가?
프랭크 내가 당구 치는 소리다. 함께 당구를 자주 치는 동네 친구가 있다. 둘이 당구장에 갔는데 옆 당구대의 아저씨들이 내는 소리가 너무 웃긴 거다. 우웩, 우왕, 땅다, 이런 소리를 막 내는 거다. 소스로 쓰면 재밌겠다 싶어서 휴대 전화 녹음기를 켜서 아저씨들 테이블에 살짝 갖다놓았다. 그 효과음은 곡 ‘FAD’에 넣었고 당구 치는 소리는 ‘무뢰배’에 넣었다. 앨범 만든다고 하는 일 없이 매일 당구장에서 놀고 있는 내 모습이 딱 무뢰배 같아서 그 곡에 당구 치는 소리를 넣은 거다. 내 목소리도 조용히 들어가 있다. 마지막에 “이런 걸 줘야지”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나다. 친구가 그때 공을 잘 줬다.
‘간주곡’의 경우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결합한 것도 신선했지만, 곡이 흐른 후 5분 정도까지 랩이 나오지 않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간주곡’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노래 상을 받았다. 당신들에게는 이런 상도 별 감흥이 없나?
프랭크 감사하지만 매우 아쉽다. 앨범상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김심야 난 아쉽지 않고 빡쳤다. 상 2개 타러 갔는데 1개밖에 안 줘서 굉장히 화가 났다. 끝나고도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가진 못했다.
그럼 앨범을 내고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해서 좌절한 상태인가?
김심야 <KYOMI> 이후 거짓말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든 가사는 사실 기반이다. 하고 싶은 말과 본능적으로 느끼는 걸 음악에 담아왔다. 이제 한국 음악 신에 대한 짝사랑을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국 음악 신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던 적이 없다. 더 이상 의미를 못 찾겠다. 이젠 화를 내서 뭐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좀 추하기도 한 것 같다. 화만 내면 추하고 멋이 없기 때문에 이제는 의식적으로 화를 내지 않는 곡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프랭크 난 인간적으로 그렇게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허점투성이고 어설프고 미성숙하다. 여자친구한테 혼도 많이 난다. 이제는 성숙해질 거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오피스 매거진>에서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겠다. “당신들은 지금쯤 얼마나 유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김심야 플라잉 로터스 정도는 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원하는 성공, 유명세, 위치, 권력, 돈을 얻으면 만드는 음악도 달라질까?
김심야 음악을 만들지 않을 확률이 높다. 거기에 도달하면 끝이다. 랩을 그만할 거다.
프랭크 사람도 변하고 음악도 변하고 무조건 변할 거다. 아마도 난 햄버거집을 차릴 것 같다.
각자 솔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내용인가?
김심야 욕 많이 먹을 각오하고 만드는 앨범이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유행을 거스르면서 돈 못 버는 음악을 한다고 하는데, ‘꼭 이렇게 특이하게 만들어야만 돈 못 버는 건 아니다’라는 걸 알려줄 수 있을 듯하다. 사랑에 관한 앨범이다.
프랭크 난 일단 랩을 절대 안 넣을 거다. 그리고 내 앨범은 돈이 될 것 같다.
곡 ‘사무직’처럼 음악하는 일, 사무직이던가?
김심야 미친 사무직이다. 우리 스스로 음악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려면 직장인들이 일하는 9시부터 6시까지는 음악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런 의미에서 우린 직장인이나 다를 게 없다. 단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누가 알아보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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