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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관린의 맑은 생각 그리고 지금 하고 싶은 음악

2019.04.24GQ

“보리수나무가 세월을 거꾸로 먹어 오십 년 전엔, 그 무성한 그늘에서 관옥같이 아름다운 청년이 단꿈을 꾼 것 같은 착란에 빠졌다.“ 갓 관에 장마 림을 쓰는 라이관린을 만나고,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구절을 떠올렸다.

스팽글 재킷, 터틀넥 스웨터, 새틴 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 앵클 부츠, 지방시. 안경, 프로젝트 프로덕트. 호랑이 자수가 놓인 치아바리 체어, 구찌.

새틴 재킷, 톰 포드.

자카드 재킷, 블랙 셔츠, 팬츠,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 앵클 부츠, 지방시

로브 셔츠, 김서룡 옴므. 골드 장식 팔찌, 다미아니.

자수 장식 코트, 화이트 셔츠, 라이닝 팬츠, 앵클 부츠, 모두 지방시. 크로스 목걸이, 다미아니.

페이즐리 재킷, 에트로.

벨벳 수트, 앵클 부츠, 모두 구찌. 실크 셔츠, 알렉산더 맥퀸. 안경, 뮤지크. 옐로 골드 목걸이, 부쉐론.

술 장식 수트, 실크 셔츠, 앵클부츠, 모두 알렉산더 맥퀸.

숄칼라 재킷, 김서룡 옴므. 뱀 모티브 링, 다미아니.

화이트 수트, 김서룡 옴므. 패턴 셔츠, 지방시. 앵클 부츠, 톰 포드. 블랙 사파이어 스완 링, 부쉐론.

자수 장식 코트, 블랙 슬리브리스, 자카드 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 앵클부츠, 톰 포드. 자카드 패널 스크린, 구찌.

띠 장식 재킷, 에트로.

자카드 재킷, 블랙 셔츠, 팬츠,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

벨티드 재킷,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자카드 재킷, 블랙 셔츠, 모두 에르메네질도 제냐 쿠튀르.

<GQ>와 2년 만이네요. 그동안 뭐가 변했어요? 몸이 좀 커졌어요.

키도 더 크고, 어깨도 넓어졌네요. 그런데 몸만요?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하니까, 마음은 달라진 게 없어요.

워너원을 마무리하고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바쁘게 지내는 중이죠. 힘들진 않아요? 잠은 나중에 잘 수 있지만, 지금 하는 일들은 지금 말고는 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저밖에 할 수 없는 거니까. 그게 뿌듯해서 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전 그걸 빨리 하고 싶어요. 그래야 재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거든요. 무언가를 결정할 때도 바로바로 하는 편이죠.

2년 전에 그랬죠. 빨리 성공하고 싶어서 한국에 왔다고. 그때 전 되게 애매했어요. 공부도 애매했고, 농구선수를 계속하기엔 다리를 다쳤고. 하지만 빨리 성공하고 싶었죠. 그런데 우연히 기회가 온 거예요.

전교 2등까지 했던 걸로 아는데요? 마지막으로 본 시험은 전교생 500명 중 50등 정도였어요. 그러면 전국에선 몇 등이겠어요? 별로 의미가 없죠.

결국 빨리 성공했네요.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최정상도 올라보고, 또 새롭게 시작했잖아요. 그러고도 아직 열여덟 살밖에 안 됐어요. 그렇네요. 한국에 왔을 때 데뷔까지 3년은 걸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벌써 3년이 흘렀네요. 운이 좋았어요.

그런 얘기 들어요? 어린데 묘하게 세상사에 초연한 구석이 있어요. <프로듀스101> 시즌 2에서 2등에서 20등으로 떨어졌을 때, 눈 하나 깜짝 않고 “사실 11등 안에 있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죠”라던 느낌으로. 절 2등 만들어주는 게 국민 프로듀서님들 일은 아니었잖아요. 내 인생은 내가 정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아요.

한 발짝 떨어져서 세상을 봐요? 그게 더 좋아요. <손자병법>을 재미있게 읽었고, <삼국지>는 여섯 번은 봤을 걸요. ‘이 사람은 백 명으로 어떻게 천명을 이겼지?’하면서요. 제일 좋아한 건 관우였어요. 이것도 되게 좋아해요. 한국말로 뭐라고 하지? 장기? 저 이거 진짜 잘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배웠어요. 처음엔 아버지를 못 이겼는데, 열심히 연구해서 나중엔 이겼죠. 이런 게 인생 공부였어요.

장기로 수를 읽는 법을 배웠군요? 네. 상대방이 무슨 생각하는지 알면서도 내 수를 두는 게 중요해요.

정적인 사람이죠? 맞아요. 전 조용한 게 좋아요. 말은 아낄수록 좋죠. 사람이 많을수록 사건사고가 생기고, 말은 많을수록 위험해요. 내게 듣기 좋은 말들이라고 해도, 그런 말만 듣는 것도 좋을 건 없으니까.

호불호가 강할 것 같아요. 음, 좀 시끄러운 사람들은 힘들어하긴 하고. 하하. 낯을 많이 가려요. 진짜 많이.

좋아하는 거엔 직진하잖아요. ‘우석 형’을 비롯해서, 어디서든 좋아하는 사람을 하나씩은 만들죠. 표현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요. 사람들은 누굴 좋아하면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할지에 얽매여 표현을 못 해요. 그럼 상대는 알 수 없어요. 그런 게 싫어서 전 표현해요. 물론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요.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없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전 상대가 받는 만큼 돌려주길 바라거나 기대하지 않아요. 제가 우석 형을 좋아한다면, 그건 제가 좋아서 하는 거고 우석 형이 절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주면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받는 것보다 주는 데 관심이 많네요. 받는 것보다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하는 게 더 소중하니까요.

언제 행복해요? 저는 자주 쉽게 행복해요. 바라지 않으니까 조금이라도 기쁜 일이 생기면 행복하거든요.

왜 바라지 않아요? 기대하면 실망하게 되니까요.

보통 비관적인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데, 그런 것 같진 않고. 나는 나에 대해 만족하니까. 꼭 올라가야 한다, 그런 게 없어요. 높을수록 쓰러지면 아프잖아요.

‘갓 관’에 ‘장마 림’을 써요. 갓은 고결한 사람이 쓰고, 장마는 오래도록 내리죠. 긍지 높은 사람이 쓸 것 같은 이름이에요. 저도 좋아해요.

라이관린의 긍지는 뭐예요? 전 사람들한테 착하게 해요. 또 하나는, 내가 단단하면 겁낼 게 없다는 것.

당신이 생각하는 멋진 어른은 어떤 사람인가요? 어떤 자리에서도 예의를 지키고 겸손한 사람. 전 스스로에 대해 자랑하는 건 그렇게 멋있지 않은 것 같아요. 자기는 자신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지키려고 하는 예의가 있나요? 입이 무거워요. 다른 사람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아요.

그런데, 한국말 정말 늘었네요. 문장을 많이 봐요.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싶으니까. 한국어는 예술처럼 들려요. 한 단어가 두 뜻을 가질 수 있는 게 신기해요.

모국어로는 글도 잘 쓰죠. 열세 살 때 쓴 편지를 봤는데 문장력이 좋더라고요.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때그때 생각나는 문장을 써요. 가사가 되기도 하죠.

어릴 때 어떤 아이였어요? 말 잘 안 듣는 애요. 하하.

모범생인 줄 알았는데? 농구, 승마, 테니스, 피아노, 안 해본 게 없다면서요. 부모님이 열심히 시키셨어요. 하지만 장난기가 많아서 골치 아프게 하는 애였죠.

테이블 매너에 대해 잘 알던데, 격식 갖춘 자리에 갈 일이 많았나 봐요. 배우려고 한 건 아니고, 많이 봐서 그래요. 아빠 사업 때문에 LA에 5년 정도 왔다갔다 하면서 거기서 2년 정도 초등학교를 다녔죠.

마냥 잘 자란 도련님인 줄 알았는데, 어떤 팬을 위로해주다가 중학교 때 친구들과 잘 지내지 못했던 시절 이야기 해준 걸 듣고 조금 놀랐어요. ‘삼인행 필유아사’라고 하잖아요. 셋이 길을 가면 그중 한 명은 스승이 있다. 어떤 힘든 일도 배울 점이 있어요. 나쁜 사람에게서도. 누군가 내게 상처 준 걸 내가 또 다른 사람에게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그들도 미워하지 않았어요. 나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라이관린에겐 상처를 받아본 적 없는 듯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잘 울지도 않고. 아니에요, 하하. 제가 말하면 깜짝 놀랄걸요. 말하거나 티내지 않을 뿐이죠. 음…, 외롭고 힘든 시절도 있었어요. 해외를 다니면서 환경이 자주 바뀌었는데, 누나는 여섯 살 위라 터울이 많았고, 아버지는 마흔 살에 저를 보셨거든요. 그러다 보니 외로웠던 것 같아요.

왜 그런 걸 드러내지 않아요? 원래 삶은 외로운 거라고 생각해요. 결혼을 한다 해도, 상대가 괜히 걱정할까 봐 안 하기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러면 또 외롭겠지만, 삶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외로움은 어떻게 극복했어요? 흘려보냈죠. 요즘 사회에 힘든 일이 많잖아요. 학교를 다녀도 사회에 나와도 힘들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살아야 되잖아요. 저는 굳이 끊어내지도, 기억하지도 않아요. 누가 상처를 주면, 그 사람에게 더 잘해줘요. 미안하게 만들게. 하하. 누구라도 굳이 피해주고 싶지 않아요.

라이관린은 뭘 믿나요? 뭘 하면 그게 돌아와요. 부메랑처럼. 제가 사람들에게 착하게 하면, 다음 생에라도 그게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해요. 나쁘게 해도 마찬가지죠. 그리고 전 제 자신을 믿어요.

중국 드라마 <초연나건소사>에서 연기하는 건 어때요? 지금 못 누리는 학창 시절을 연기하는데. 그래서 어려워요. 안 해봐서 모르거든요. 어떤 시험을 보고, 그런 것도 모르니까. 열여덟 살 또래들이 하는 걸 못 해서 아쉬운데, 대신 만족되는 것도 있어요.

우석 × 관린의 솔로 음악은 비트가 강한 힙합이더라고요. 원래 이런 걸 하고 싶었어요? 네. 연습생 때부터 이런 음악이 취향이었어요. 요즘 꽂힌 건 88Rising의 ‘Midsummer Madness’. 워너원을 마치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잘할 수 있는지 생각해봤어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이런 음악이에요.

지금 가장 빨리 이루고 싶은 건 뭐예요? 제 솔로 앨범을 얼른 보여드리고 싶어요.

한국에서의 음악 활동과 중국에서의 연기 활동, 다 놓치고 싶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한국에서 저를 뽑아주신 팬 분들 덕에 데뷔했고, 중국 팬 분들도 응원해주시기 때문에 모두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팬 분들, 그리고 도와주신 많은 분들이 없었으면 오늘의 라이관린도 없었을 거예요. 매니지먼트가 없었으면 ‘프듀’도 못 나갔을 거고, 응원해준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 여기에 앉아 있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학생으로서의 일상, 농구선수로서의 미래, 가지 못했던 길들에 대한 미련은 없나요? 여태까지 한 선택들에 대해서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그게 나니까. 라이관린이라는 사람은 한 번밖에 못 사니까.

    에디터
    피쳐 에디터 / 이예지, 패션 에디터 / 안주현
    포토그래퍼
    곽기곤
    헤어
    한지선
    메이크업
    김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