빤한 감탄사로는 부족하다. 지금 가장 인상적이고, 가장 멋지고, 가장 남다른 사람들.
“유노윤호는 멈추지 않으며, 뭐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좌우명에 온 시간을 쏟았다.”
유노윤호
유노윤호가 다르게 보이는 요즘이다. ‘자다 일어나 춤을 춘다’는 이 웃긴 문장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웃기기만 하지는 않고,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눈빛으로 인간에게 가장 해로운 벌레는 ‘대충’이라는 말을 하는데 손가락이 저절로 오그라들거나 실없는 조소가 새어나오지도 않는다.
그들이 다섯일 때, 동방신기는 대단했다. 멋있고 세련되었으며 힘 있고 무려 섹시했다. 그들의 해산은 떠들썩했다. 탈퇴, 재조합 등. 어떤 단어가 맞을지 모르나 그들의 분리는 이른바 해체였다. 흘러나오는 잡음들은 흉흉했고 나간 셋과 남은 둘의 차이는 들이댈 수 있는 모든 잣대에 고루 극명해 보였다. 이 때 믿음직한 맏형이라는 소속사가 붙여준 하나마나한 수식 말고는 그의 가슴팍에 붙어 있는 게 없었다.
동방신기가 아니라 이방신기, 밋밋하고 매력 없는 둘만 남았다는 폄훼의 한가운데에서도 그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 꾸준히 앨범을 내고 공연을 했으며 병역의 의무를 마쳤다.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다른 멤버에 비해 내세울 게 없다는 말을 듣던 유노윤호는 이제 데뷔 16년 차가 되어 그 열심히 하는 것을 가장 잘하는 자가 되어 있다. 초등학생들의 일기에 “나는 오늘 하루를 유노윤호처럼 살았는가?”라는 말로 등장하면서 말이다.
유노윤호의 열정은 그야말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열정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살아 온 그의 얘기가 미담이 된 게 어제 오늘일 뿐이다. 연습생 시절, 광주에 집이 있는 그가 고속버스를 타고 오르내리며 고등학교에 개근을 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었지만 ‘아티스트’에게 어울리는 덕목은 아니라고 여겼다.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이나 매력이 넘쳐나 열심히 하지 않아도 그냥 다 되는, 입만 열면 시가 되고 손만 들면 춤이 되는 천재에 더 큰 환호를 보낸다. 그의 열정은 없는 재능에 대한 반대급부로 인식되었다. 유노윤호의 열정의 다른 이름은 그래왔다. 그런데 그 가진 거 많아 보이던, 얼굴 천재, 작곡 천재, 노래 천재라 불리던 이들의 본 모습은 참혹했다. 스웨그 넘치던 아티스트들은 범죄 역시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게시했다. 온갖 엽기행각에 폭행, 탈세, 마약, 도박, 성매매는 물론 알선까지도 하는 ‘전방위형 아티스트’들에서 얻은 환멸은 생각보다 뒷맛이 썼다. 첫 소속사 계약 조건에 한남동 유엔빌리지를 언급하고, 처음 정산과 동시에 부동산 전문가 번호와 절세형 세무사 번호 수급에 눈이 빨갛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성과 함께 거나한 파티를 거침없이 하는 것이 같은 직업군의 같은 연령대가 하는 일일 때, 유노윤호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학교를 짓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 아프리카 가나에 학교를 지었다. 작년 3일간 진행한 해외 공연에서만 5백61억의 수익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그의 부동산 관련 기사는 가나 학교 완공이 처음이라는 사실은 신선했다.
유노윤호는 멈추지 않으며, 뭐든 끝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자신의 좌우명에 자신의 온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위인전집의 어느 인물도 쉽게 얻어내지 못하는 ‘유노윤호처럼’의 유노윤호가 되었다. 연예계처럼 ‘열심’의 가치가 우스운 곳도 없다. 열심히 하면 뭐 하나, 알아주지 않으면 그만이고, 열정적이면 뭐 하나, 재능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인 곳이 그 세상이다. 더불어 연예계 밖의 세상도 다르지 않다. 열심히 하는 것이 물고 태어난 것을 절대로 이겨주지 못한다. 지금 중요한 가치는 그래서 대충, 열심히 말고 대강, 크게 벌이지 말고 적당히 소소하게, 작정하지 말고 무심하게, ‘얻어걸리면 고맙고 아니면 말고’라는 태도로 모이는 중이다. 내가 큰 노력 안 했으니 큰 상처는 받지 않을 수 있고, 그다지 애쓰지 않았으니 큰 결과를 얻어내지 못해도 아플 것도 없다. 보태어 내가 하기만 하면 잘할 수도 있고 더 얻을 수도 있으나 내가 원하지 않아 결정한 선택적 실패에 대한 안도감은 생각보다 크고 포근했다. 하면 된다는, 안 해서 그렇지 하면 될 거라는 희망 같은 미망의 당도와 한치 한푼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열정 부자가 눈에 들어온 건 이물감이어야 했다. 그런데 무구한 열정 청년의 순도 높은 열중은 오히려 이상한 감동을 주었다. 나는 못하지만 잘 해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존경을 불러 일으켰다. 더불어 지금은 하고 있지 않지만 저런 열정으로 산다면 할 수 있다는 이상의 현신으로도 그가 보이기 시작했다. 화수분처럼 번져나오는 미담들은 그 열정을 격려해도 배신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같은 것이 생겨나게 했다.
최선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최고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최선을 다하지 않고 최고가 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본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는 것이 안쓰러웠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최고들의 막다른 모습은 최악이었고 최하였다. 최선을 다해 최고가 되었고 최고이면서도 여전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자주 본 적 없는 우리는 그런 유노윤호에게 반하는 중이다. 찜질방에서 춤을 춰도 발끝의 각도를 한번 더 보고, 남대문 시장에서 신곡을 들려주면서도 마른침을 삼키는 그에게 말이다.
<하마터먼 열심히 살 뻔했다>가 <자칫하면 대충 살 뻔했다>를 압도적으로 이기는 지금, 유노윤호는 열정이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말한다. 그는 온나라가 함께 지키고 가꿔야 할 희귀종 나무다. 열심히 살거나 대충 살거나 각자 취향껏 살 일이지만 배운 대로 아는 대로 잘 사는 사람 하나가 아름드리 큰 나무가 되어 잘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유노윤호는 오늘 무척 좋은 사람이다. 그는 어제가 좋았으니 오늘이 그렇듯 내일도 좋을 것이다. 김태호가 <놀면 뭐하니?>의 답으로 유노윤호를 괄호 안에 세워뒀는지도 모르겠다. 글/ 조경아(<이상한국> 편집장)
- 에디터
- 김영재, 이예지, 이재현
- 일러스트레이터
- Kasiq Jungw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