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세대의 잔소리를 한 방 먹이는 표현 ‘오케이 부머’가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어린 세대들의 ‘부머’를 향한 불만과 증오는 어디까지 계속될까?
“제발 제 영화를 폰 화면으로 보지 말아주세요.” 얼마 전 ‘넷플릭스’에 <아이리시맨>을 공개한 마틴 스코세이지가 <롤링스톤> 매거진의 저명한 영화평론가 피터 트래버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역시나, 곧바로 트위터에서 반응이 왔다. 누군가 “마틴 스코세이지가 의도한 방식으로 그의 영화를 보고 있다”라며 4.4센티미터짜리 애플 워치 화면으로 <아이리시맨>을 보는 사진을 올렸다. 폰으로 본 건 아니니, 스코세이지의 뜻에 따랐다는 의미다. 연달아 다른 조롱의 사진들이 올라왔다. 게임보이로 보는 <아이리시맨>, 13인치 브라운관 티브이로 보는 <아이리시맨>, 아이팟 셔플 화면으로 보는 <아이리시 맨> 사진이 그날의 트위터 피드를 장식했다. “오케이 부머 OK Boomer.”
지난 11월 4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뉴스가 있다. 뉴질랜드 녹색당 소속의 스물다섯 살 초선 여성 의원 클로에 스워브릭이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 제로’ 법안의 중요성에 대해 국회에서 발언하던 중이었다. 스워브릭은 강한 어조로 짧은 시야의 정치적 이득에 치우쳐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기후 변화라는 거대한 재앙을 초래한 동료 노땅 의원들을 질책했다. 연단 아래에서 탄식과 비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스워브릭은 나이 든 의원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사뿐하게 “오케이 부머”라고 말했다. 화를 내지 않고도 상대에게 깊은 모멸을 주는 한 방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부머’는 인구 통계적으로는 1946년부터 1964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말하지만, 더 다양한 속뜻이 있다. 밀레니얼(1981년부터 1996년 사이 태생)과 Z세대(1997년 이후 태생)가 ‘부머’라고 말할 때는 보통 세계 경제가 단물 빨아먹던 1980~1990년대에 생애 주기에서 가장 많은 월급을 받는 30~40대를 보내며 부동산과 금융으로 부를 축적한 세대,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느라 플라스틱을 마구 써 재끼고, 하루가 멀다 하고 육식을 하며, 다음 세대에게 병들고 아픈 지구를 물려준 세대를 뜻한다. 게다가 이 세대는 약 7천4백만이 넘는 인구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의 소비와 정치권력의 정점에 서 있다. 어린 세대들의 부머를 향한 증오의 마음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통계로도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다. 뉴미디어 <액시오스>의 2018년 설문에 따르면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의 51퍼센트는 부머 세대가 세상을 더 살기 나쁜 곳으로 만들었다고 답했다. 이 설문에서 ‘부머 세대가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었다’고 답한 비율은 고작 13퍼센트였다. 스물다섯 살 초선 의원의 “오케이 부머”라는 조용한 일갈이 다분히 정치적인 증오의 표현이었다면, 스코세이지를 향한 조롱은 정치적 증오가 문화의 영역으로까지 번진 현상이다.
부머에 대한 증오는 미국만의 현상일까?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비슷한 분노를 겪고 있다. 스웨덴의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는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과 산업계 관계자를 앞에 두고 “지금 (지구의 기후) 상황을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있는 거라면, 여러분은 악마나 다름없다”고 꾸짖었다. “기후 위기가 초래한 결과를 떠안고 살아가야 할 ‘우리’”를 부머 세대와 구분하고 “우리는 ‘당신들’이 우리를 배신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한다. 부유하지 않은 국가에서는 기후 변화보다는 경제로 분노했다. 지난 11월 내내 남미의 칠레를 시작으로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폭력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의 다수는 10대와 20대의 젊은이들 그리고 블루칼라 노동자들이다. 남미 시위의 도화선 격인 칠레의 시위는 한국 돈으로 50원 때문에 시작됐다. 정부가 지하철 요금 인상을 철회했지만, 시위대는 잠잠해지지 않았다. 지난 7개월간 계속된 홍콩의 시위에도 비슷한 양상이 있다. 홍콩에서 중국으로 범인을 인도하는 소위 ‘송환법’ 때문에 시위가 일어났지만, 홍콩 정부가 송환법 철회를 공표한 후에도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시위 초반인 2019년 7월 <뉴욕타임스>는 자동차 한 대를 겨우 주차할 정도의 넓이인 1.68평의 방에서 생활하는 홍콩의 3인 가족의 일상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썼다. “세계에서 가장 빈부 격차가 심한 곳.” 7백40만 홍콩 주민 중 21만 명이 이런 집에서 산다. 국가마다 세세한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홍콩의 시위를 이끈 젊은이들, 칠레의 지하철에 불을 지른 젊은이들의 마음에는 비슷한 분노가 자리한다. 호황기에 자기들 배만 불린 꼰대들, 앞으로도 자기들 배만 불릴 시스템을 성벽처럼 쌓아둔 꼰대들 때문에 거리로 나서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오케이 부머’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젊은 세대의 뜨거운 분노를 차갑게 갈음한 말이다.
부머 세대를 향한 증오는 좌우를 가르지 않고, 진보와 보수를 차별하지도 않는다. 그 일례로 한때 세상에서 가장 쿨한 정치인이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꼰대 취급을 받기도 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오바마 파운데이션’이 개최한 한 행사에서 “다른 사람의 언행을 판단하는 것만으로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라며, “그것만으로는 변화를 만들 수 없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의 ‘캔슬 컬처’를 꼬집은 것이다. 캔슬 컬처는 여성을 비하하거나, 인종을 차별하거나,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을 자신의 팔로우 리스트에서 ‘캔슬Cancel’하는 문화를 뜻한다. <뉴욕 타임스>는 이 발언에 대해 미국의 20대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오웬의 칼럼을 게재했다. 오웬의 칼럼 제목은 ‘캔슬 컬처에 대한 오바마의 매우 꼰대적 시선 Obama’s Very Boomer View of ‘Cancel Culture’이다. 이 글에서 어니스트 오웬은 캔슬 컬처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그는 “캔슬 컬처 혹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말한 ‘남을 판단하는 태도’는 사실 현대의 젊은이들이 사회에 관여할 수 있는 시위 도구”라며,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대학생들의 해시태그 운동은) 198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 사람들이 인종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확성기를 들고 나선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가 “소셜 미디어는 우리 세대가 가진 유일한 플랫폼”이라 주장한 데 방점이 찍힌다. 20대들이 애초부터 유튜브와 페이스북만 좋아해서 인스타그램 사진이나 공유하고 트위터에서 리트윗이나 누르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미 유명한 사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면 TV나 라디오 등의 공영 미디어에서 중심을 차지할 수 없다는 점은 ‘오케이 부머’ 현상이 던지는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일례로 미국을 대표하는 쇼 호스트 오프라 윈프리가 처음으로 자신의 쇼를 시작한 건 서른두 살 때다. 지미 키멜과 코난 오브라이언은 서른 살, 가장 늦은 지미 팰런이 서른다섯 살에 호스트로 데뷔했다. 현재 오프라 윈프리가 예순다섯, 코난 오브라이언이 쉰여섯, 지미 키멜이 쉰둘, 지미 팰런이 마흔다섯 살이다. 방송의 중심 세대는 갈리지 않고 있다. 20대의 입장에서는 TV를 틀어도 자신들의 세대를 대변할 얼굴이 없다.
세대를 대변할 얼굴이 없는 건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조금 차이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인기리에 방영됐던 SBS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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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김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