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로서, 정윤호로서. 열정의 가치를 증명해온 유노윤호에게 공허한 노력은 없다.
땀 좀 닦고 시작할까요? 하하. 오랜만에 찍는 화보라서 힘든지도 모르고 했네요.
운동복을 입고 모든 촬영을 진행했어요. 각별히 눈길이 가는 아이템이 있던가요? 러닝 슈즈 ‘호버 마키나’에 자꾸 눈이 가더라고요. 신발에 칩이 내장돼 스마트폰과 연결되는 기능도 흥미롭지만, 신발 본연의 속성만 고려해도 탐이 나요. 발을 지탱하는 힘이 좋고 가벼워서 몇 시간 동안 역동적인 포즈를 취했는데도 발이 피로하지 않네요. 안무 연습 때문에 신발에 특히 예민하거든요.
1년 전쯤 SNS에 “이제 운동 시작한다”는 글을 올렸어요. 이후 신체에서 가장 도드라진 변화는 뭔가요? 무대 위에서의 활동은 정신력으로 감당한다고 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뎌지는 회복 속도는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런데 1년 동안 근력과 탄력이 늘었는지 스케줄을 소화한 후에도 신체적인 부담이 크게 줄었어요. “영원할 순 없다. 하지만 영원을 지킬 수는 있다”라는 말을 늘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데, 운동을 통해 실감하고 있네요.
반드시 지키고자 한 루틴이 있었나요? 일주일에 4번 이상 운동을 하고, 반드시 공복 상태에서 시작했어요. 전날 저녁에 식사를 했으면 다음 날 운동을 시작하는 오후 1시까진 아무것도 안 먹었죠. 혈액 순환이 빠르고, 독소가 신속하게 배출되는 게 느껴져요. 운동 이후에는 먹고 싶은 대로 먹고요.
장기간 운동을 하다 보면 중간에 고비가 찾아오기 마련이에요. 정체기가 찾아온 적은 없나요? 물론 있죠. 공복 운동도 슬럼프에 빠져서 여러 운동법을 시도한 끝에 찾은 방법이에요. 다만 운동법과 별개로 정체기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하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하루쯤이야 괜찮겠지. 오늘은 안 나가도 돼’라면서 자기 합리화 뒤에 숨으려고 하잖아요. 하지만 언더아머의 ‘오직 돌파’ 캠페인처럼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나가는 데 지름길은 절대 없어요. 꼭 땀 흘려 뛰지 않아도 좋으니까 일단 운동하는 장소로 가보길 권하고 싶어요. 막상 현장에선 생각이 바뀔 수도 있거든요. 시작이 어렵지, 운동으로 시간을 보낸 이후 주어지는 보상은 몸 편히 게을리 보낸 시간보다 훨씬 값어치 있어요.
스포츠를 보는 것 역시 즐기나요? 최근에 배구 경기장에 나타나서 화제가 됐어요. 어릴 때부터 운동이라면 하는 거든, 보는 거든 종목을 가리지 않고 좋아했어요. 이번에는 매번 스케줄과 겹쳐서 찾지 못했던 배구 경기를 드디어 관람했어요. 대한항공의 한선수 선수가 친구의 남편이라 한 번쯤 경기장에 가서 응원을 하려고 했거든요.
각별히 좋아하는 스포츠 선수가 있나요? 누구라고 짚어서 말한다면 큰 실례가 될 듯해요. 모두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잖아요. 특정 선수의 팬이라고 말하기보단 땀에 흥건하게 젖어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모든 스포츠 선수를 존중하고 싶어요.
음악 활동 이야기를 해볼까요? 동방신기로 데뷔한 지 벌써 17년 차예요. 아이돌이라는 말이 어색하진 않나요? 전혀요. 우상이라는 뜻이잖아요.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어린 가수에게만 한정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이를 통해 대중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여전히 아이돌이죠. 환갑 넘어서도 아이돌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쉰 살이 되어서도 아이돌로 남은 마이클 잭슨처럼요.
데뷔 초와 비교하면 지금의 유노윤호는 어떻게 다른가요? 그땐 음악으로 비춰지는 모습이 전부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막연히 ‘노래를 잘하고 싶다’, ‘춤을 잘 추고 싶다’ 같은 마음으로 직진만 했죠. 그런데 유명해질수록 대중에게 존재의 가치를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책임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동방신기로서 그리고 유노윤호로서 공인의 범주 안으로 들어갈수록요. 저의 어떤 모습을 좋아해주시는지 헤아려보고, 어떻게 기대치 이상을 보여줘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뒤따랐어요. 이후 심적으로 한결 평안해진 듯해요. 훨씬 솔직해지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거든요. 그게 팬들이 저에게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고.
10대에 데뷔해 지금까지 가수로 활동하며 보낸 시간 중 아쉬운 부분은 없던가요? 아마 모든 연예인이 공감할 거예요. 어딜 가도 주목받고,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으며 활동하다 보니까 혼자 뭔가를 할 기회가 마땅히 없어요. 남들에겐 평범한 일상이 저에겐 각별한 경험일 때가 많았죠.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어요. 생각보다 나이 들어서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많더라고요. 다만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처럼 한번 흘러가면 그만인 순간만큼은 놓치기 싫어서 유노윤호와 정윤호의 삶을 분리하려고 애썼어요. 그래서 지금도 주변에 연예인이 아닌 친구가 많아요.
동방신기의 유노윤호는 큰 성공을 일궜어요. 가수가 아닌 정윤호로서 성취한 바가 있다면요? 소소한 자랑거리가 하나 있어요. 기능성 컵 뚜껑으로 특허를 받았는데, 조만간 특허증을 하나 더 얻을 것 같아요. 디자인과 관련된 출원이에요.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비밀이에요.
‘열정 만수르’라는 별명처럼 무대 밖에서도 모든 일에 전력을 다하나요? 이런 이미지가 생길 줄은 몰랐어요. 뭘 하든 누구보다 프로페셔널하게 하고 싶을 뿐이었는데. 대신 ‘온 오프’가 확실한 편이에요. 혼자 있는 시간에는 말도 많이 안 하고, 축 처져 있죠. 지금까지 ‘업’된 모습만 방송에 나가서 대중에겐 조금 낯설지도 모르겠네요.
노력하는 삶이 설득력을 잃어가는 세상인데, 열정적으로 사는 자세가 의미 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들어 열정의 필요성을 크게 느껴요. 길에서 “손 한번만 잡아주시면 안 돼요? 기운 좀 불어넣어주세요”라고 말하는 취업 준비생이 정말 많아요. 사회 전반적으론 체념적인 분위기와 상실감이 존재한다고 해도 개개인의 관점에선 이야기가 다를지도 몰라요. 거대한 벽을 넘기 위한 에너지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열의만으로 모든 과정을 통과할 순 없겠지만, 상황을 돌파하고자 하는 용기가 될 순 있다고 믿어요. 제가 작으나마 힘이 될 수 있다면 큰 영광이고요.
아이돌에서 재미있는 열정남으로 이미지가 확장되는 과정을 팬들이 염려하진 않던가요? 오히려 응원을 받아요. 아프리카 가나에 세운 학교가 팬들의 지속적인 지원 덕에 잘 운영되고 있어요. 광주와 중국에 있는 도서관도 팬들 덕분에 건립됐고요. 예전부터 생각한 바를 실천에 옮긴 효과 같아요. 만약 누군가 맨땅을 파고 있으면 주변에서 처음엔 “저 사람 미친 거 아냐?”라고 할 거예요. 하지만 반년 동안 파면 “그 안에 뭐가 들었어?”라고 말해요. 3년 동안 파고 있으면 그 모습이 안타까워서라도 같이 땅을 파주기 시작해요. 사람들의 호기심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은 이렇게 확신을 갖고 꿋꿋하게 실천하는 행동에서 비롯돼요. 결국 공통의 지향점을 향해 함께 움직이게 되죠. 저 혼자였다면 절대 이뤄내지 못했을 결과예요.
자선 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동방신기로 성공하기 전 시절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어요.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땐 심적인 여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넌 크게 될 거야”라는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작은 간식 하나에 다시 일어선 기억이 많아요. 이미 잘 풀린 선배 중 한 분은 자주 밥도 사주면서 따뜻한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한번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도움이 궁금해서 왜 이렇게 잘해주냐고 물어봤죠. “너도 잘되면 이러면 돼”라고 하더라고요. 작은 호의가 중요한 기로에 선 누군가에겐 인생을 바꿔놓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어요. 공부할 여건이 갖추어진 학교와 도서관이 누군가의 삶을 양지로 옮겨놓을 수 있는 것처럼요.
뮤지션이 아니라 유니세프 직원이나 사회운동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해요. 하하. 주변에서도 그런 말 자주 들어요. 가수가 아니었다면 청년 운동가가 되었을 거라고.
어렸을 때 꿈은 뭐였는데요? 장래 희망은 검사였어요. 정의 구현처럼 멋있는 일이 없었어요. 실제론 평범한 사람이 되었을 테지만요.
아티스트로서 더 이루고 싶은 꿈은 없나요? 더 늦기 전에 제 이름으로 된 쇼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더라고요. 콘서트보다 종합적인 짜임새로요. 크고 화려한 무대도 좋지만, 그보다 스토리를 담은 촘촘한 프로그램을 구성해서 사람들 앞에 서고 싶어요.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노래하는지, 왜 저 곡을 선택했는지 영리하게 보여줄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결론은 제가 그려낸 세상을 근사하게 보여주는 거죠. 유노윤호스럽게.
- 에디터
- 이연주, 허람
- 포토그래퍼
- 박종하
- 헤어
- EZ at Jenny House
- 메이크업
- 최선혜 at Jenny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