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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전쟁,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신인상

2020.06.03박희아

여자 최우수 연기상만큼 박 터진다는 2020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신인상 후보 5. 그들의 명대사로 이틀 뒤의 운명을 점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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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이태원 클라쓰> 조이서 역 김다미 “이 충동이 억제가 되지 않아.”
조이서가 ‘단밤 포차’의 사장인 박새로이(박서준)이 술에 취해 잠든 모습을 보며 했던 말. 소시오패스, IQ 165 등의 수식어를 갖고 있던 그가 박새로이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그의 가게에 정식으로 취직하겠다는 마음을 내보인 이 날, 결국 그는 잠든 박새로이에게 입을 맞추기 직전에 위와 같이 말했다. 이는 조이서를 맡은 김다미가 캐릭터를 통해 구현했던 강단과 개성을 모두 드러내 주는 한 마디였을 뿐만 아니라, 다소 심심했던 엔딩 장면에서도 두 사람의 사랑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떠올리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본격적으로 모든 사건이 시작되기 전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해낸 김다미를 기억하게 만든 장면이 아니었을지.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채송화 역 전미도 “나도 찬성. 지금 네 생각에 나도 찬성이라고.”
전미도가 연기한 채송화는 ‘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신경외과의 의사였다. 그동안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만들면서 신원호, 이우정 조합이 보여주지 않았던 이런 걸출한 능력의 여성상은 사실 그 자체로 빛을 발한 것은 아니다. 이미 TV에는 잘나고 더 잘난 여성들이 많이 그려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채송화가 고민이 있는 친구 안정원(유연석)이 아무 얘기도 털어놓지 못하자 던진 이 한 마디는 다른 엘리트 여성 캐릭터와 신원호, 이우정 조합이 그려내는 엘리트 여성 캐릭터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나아가 공연계 바깥에서 이제 주목받게 된 전미도라는 배우가 그동안 어떤 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캐릭터들을 그려왔는지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JTBC <멜로가 체질> 이은정 역 전여빈 “세상에 덜 나쁜 사람이 더 많이 말해야 다음 세대가 덜 나쁜 사람의 영향을 받고 자라겠지.”
<멜로가 체질>에서 엉뚱하고, 때로는 괴팍하게 느껴지는 캐릭터였던 이은정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 그가 찍은 작품 하나로 대박이 났고, 그는 유명세와 부를 얻었지만 투병 중이던 연인을 잃었다. 극단적인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 난해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전여빈은 유독 위의 대사를 읊을 때 현실 속 인물에 가까워 보였다. 자신이 다큐멘터리를 찍어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는 이 한 마디는 전여빈이 그리는 이은정이 흔치 않은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쥐고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삶에 분명한 가치는 있는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tvN <방법> 백소진 역 정지소 “제 마음에 있는 악귀가 사람들의 저주를 좋아해요.”
이보다 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한 마디가 있었을까. 백소진은 자신을 방법하라는 임진희(엄지원)의 부탁을 받고서도 오히려 그를 역으로 방법해 임진희의 무의식에서 말을 꺼냈다. 사람의 물건과 이름 등을 가지고 그를 해한다는 방법의 능력을 지닌 10대 소녀 백소진은 드라마 내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살상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었고, 결국은 공동체의 운명이었던 진종현(성동일)을 없애기 위해 스스로를 버렸다. 이런 드라마틱한 줄거리 안에서 정지소가 맡은 백소진이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남을 미워할까요? (중략) 사람들을 저주하면 제 마음속에서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려요”라는, 그 무엇보다도 소름 끼치는 현실이었다. 임진희의 무의식에서야 비로서 꺼낸 10대 소녀의 진심을 알아줄 어른이 현실에 얼마나 될지는, 언제까지고 의문이다.

JTBC <부부의 세계> 여다경 역 한소희 “당신 제정신이야? 내가 당신 말을 믿을 거 같아?”
지선우(김희애)와 자신의 현재 남편인 이태오(박해준)이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다경은 분노에 가득 찬 모습으로 지선우에게 말했다. 이날 여다경의 입에서 나온 “천박해” 같은 말들은 멋모르고 저질렀던 불륜의 결과물을 뼈아프게 눈앞에서 마주한 20대 여성의 자기 비판에 가까웠다. 여다경을 연기했던 한소희는 때때로 김희애와의 연기에서 “토할 것 같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이 고통은 아마도 여다경이라는 인물의 나약한 모습을 폭력적으로 드러내야 할 때나, 끊임없는 자기합리화로 연기해야 했을 때 느낀 감정이 아니었을까. 한소희는 이 드라마로 높은 인지도를 얻었지만, 여다경을 통해 감내해야 했던 자책감은 그 인지도를 약속하지 않으면 해낼 수 없는 수준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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