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평화를 노래하는 두 뮤지션이 만났다. 페기 구와 오혁, 예상치 못한 두 세계의 평행 이론.
PEGGY GOU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됐죠? 3월 말에 들어왔어요. 사실 이렇게 오래 한국에 머물러본 적이 없어요. 6월 마지막 주에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비행기가 있을지 모르겠네요.
천재지변 같은 지금의 상황이 일상을 많이 바꿔 놨겠네요. 오랜만에 한국말로 인터뷰를 하니까 오늘 할 말이 굉장히 많네요(웃음). 정말 많이 변했죠. 좋은 방향으로요. 작년에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200회 가까운 공연을 하다 보니까 일 년 중 대부분의 시간을 비행기에서 보냈어요. 룸서비스 아니면 넷플릭스, 그런 루틴이었죠. 규칙적인 생활을 못 하니까 건강이 좀 안 좋아졌어요. 몸이 보내는 신호를 계속 무시했죠. 2020년에는 조금 천천히 가자고 마음먹고 몸을 회복하는 시기로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은 밤 12시쯤 잠들어 9시 전에 일어나고, 채소도 많이 먹어서 컨디션이 좋아요.
어젯밤 인스타그램에 ‘World Freedom Listen Now Us’라는 문구를 올렸던데. 제 노래 ‘Starry Night’ 2절에 나오는 가사예요. 최근 불거진 인종 차별 사태로 인해 주변 친구들이 모두 혼란에 빠져 있어요. 제가 슈퍼히어로는 아니지만 이 문제에 대해 뭘 할 수 있을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어요. 세상의 모든 차별이 없어지는 날까지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싶거든요.
포스트 코로나 이후로 공연 패러다임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나요? 2020년은 공연을 사실상 거의 못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11월에 호주에서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그것조차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에요. 백신이 개발되어야 예전처럼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트리밍 중계로 몇 번 라이브 공연을 해봤는데, 사람의 열기가 없으면 확실히 다르긴 해요. 언택트 공연의 한계는 있지만 좋은 음악을 공유하는 일을 멈추고 싶지 않아요.
최근에 발견한 진짜 좋은 음악은 뭐였어요? 페기 구만의 표현에 따르면 “구린내 나는 것처럼” 미간을 찡그리고 몰입해서 듣게 되는 그런 음악. 디엠엑스 크루 DMX krew의 음악을 꼭 추천하고 싶어요. 일렉트로닉, 하우스 장르를 즐겨 듣지 않는 제 지인도 저와 똑같은 그 표정을 지으며 듣더라고요. 좋은 건 누구에게나 좋은 거구나 싶어요. 최근에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토니 앨런은 정말 최고의 드러머거든요. 제가 아프리카 음악을 좋아해서 그분의 음악에서도 영감을 많이 받았어요. 잊히면 안 되는 음악가죠. 옛날에는 아프리카 음악과 한국적인 사운드를 믹스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그동안 앨범에서 흥부, 한 판, 한잔 등 번역하기 쉽지 않은 한국어 제목을 소리 나는 그대로 썼어요. 음악뿐 아니라 ‘Starry Night’ 뮤직비디오에는 태권도, 하회탈, 강강술래가 등장하고요. 한국적인 요소를 계속 접목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런 걸 하는 게 가장 나다운 것 아닐까 생각해요. 저의 뿌리를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정말 흔한 영어로 가사나 제목을 쓰면 그 음악을 찾기가 힘들어요.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음악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글을 음악에 사용하는 것이 희소성도, 의미도 있죠.
가야금도 잠깐 배운 적 있다고 들었는데. 제가 가장 처음 만든 노래가 ‘흥부’라는 곡이었어요. 라이브 공연에 사용해보고 싶어서 배워봤는데 정말 어렵더라고요. 정말 매력적인 소리를 가진 한국 악기가 많은 것 같아요.
새로운 음악에 대한 촉이 빠르다고 생각하는 채널이 있나요? 밴드 캠프에서 음원을 많이 사요. 음악 판매에 대한 수익이 아티스트에게 바로 전달되는 스트리밍 플랫폼이에요.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면 좋은 노래를 많이 들어볼 수 있어요.
작년에 DJ Mag에서 주최하는 ‘Top 100 디제이’ 안에 들었지만 정작 본인은 순위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고 말한 적 있어요. 한국인 최초로 순위 안에 들었다고 하니까 기분은 좋았어요. 제가 최초라는 단어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거기 순위 안에 들은 디제이의 이름을 쭉 훑어봤더니 제가 플레이하는 음악과는 전혀 다른 장르를 하는 사람들이더라고요. 어느 리스너에겐 제가 1위일 수도 있는 거고, 반대로 누군가에겐 99위일 수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순위는 무의미한 숫자가 되죠.
디제이 가운데 리스펙트하는 인물이 있나요? 디제이 하비는 30년 동안 디제이로 활동하고 있어요. 사실 그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거든요. 보통 디제이의 수명은 길어야 10년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근데 그건 ‘It Depends’,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제가 2012년에 처음 디제이 일을 시작했어요. 앞으로 10년 뒤에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봤을 때 과연 뭐가 남아 있을지 궁금해요. 그동안 제가 존경해온 디제이들은 모두 자신만의 히스토리와 스타일이 있고, 휴머니티를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휴머니티는 의외의 단어네요. 공연장에서 감동을 받았던 일화가 있어요. 정말 좋아하는 디제이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중간에 갑자기 어떤 여자가 디제이 부스로 난입하더니 엉엉 울며 답답함을 호소하더라고요. 저라면 당황했을 텐데 그 디제이는 음악을 멈추고 이 사람이 열쇠를 잃어버렸으니 다들 한 번만 발아래를 확인해달라고 말하더군요. 오히려 음악을 껐다 다시 트니까 그 순간 에너지가 확 솟구쳐 올랐어요. 제가 요즘 휴머니티에 관심이 좀 있다 보니까 그때 기억이 더 특별하게 남아 있네요.
굿즈를 팔아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하고, <포브스> 선정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 30인’에 선정되고, 최근에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개최하는 좌담회 초청 강연까지. 음악 그 이상의 무언가를 계속해서 해나가고 있네요. 옥스퍼드를 언급해줘서 고맙습니다. 그 이야기는 한국에서 보도를 거의 안 해주셨거든요(웃음). 그것도 한국인 최초였어요. 그동안의 라인업을 보면 에이셉 라키, 칸예 웨스트, 안나 윈투어, 마크 론슨 등등 굉장한 분들이 많이 다녀가셨어요. 똑똑한 학생들 앞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엄청 긴장했어요. 그 자리에 섰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였죠. 재미있는 질문도 많이 받았어요.
페기의 인생에 극적인 드라마가 있는 편인가요? 힘든 시기가 분명히 있었죠. 그런데 그런 이야기는 일부러 많이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빨리 성공했고,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거라고 쉽게 말해요. 처음엔 저를 무시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누구인지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그 과정을 사람들은 잘 몰라요. 답장도 없는 레이블에 계속해서 이메일을 보내고, 낮에는 레코드 숍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에서 곡을 만들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때도 지금도 음악을 멈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가끔 친구들이 “너는 한번 말한 건 꼭 이룬다”고 말해요. 어떻게 보면 제가 굉장히 독한 거죠(웃음).
스스로를 하이퍼에 비유한 적 있어요. 사람들의 에너지를 북돋우고 분출시키는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릴랙스하는 시간도 필요할 것 같은데. 2020년에 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그게 항상 숙제 같았어요. 늘 하이텐션 상태로 살다 보니까 조금 다운 상태가 되면 ‘내가 지금 우울한가?’라는 착각도 들어요. 요즘엔 책을 많이 읽고 있는데 <미움받을 용기>, <당신이 옳다>, 친오빠가 추천해준 <Give and Take>가 좋았어요.
오혁 씨가 그런 걸 궁금해했어요. 수백 개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공연하는 일이 힘들지 않은지. 초반에는 쓸쓸함을 많이 느꼈어요. 하이텐션 상태에서 공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면 에너지가 훅 꺼지는 기분이 들거든요. 그래서 항상 운동도 하고,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으려고 해요. 저 역시도 쉬는 방법을 잘 몰랐어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패기 넘치는 페기라서(웃음).
음악과 패션을 제외하고 요즘은 어떤 것에 꽂혀 있어요? 인테리어에 엄청 관심이 많아요. 최근에 이원우 작가의 작품을 사서 집에 걸었어요. 제가 스마일을 좋아하는데 그분의 작업 중 엄청 큰 스마일 형상의 작품이 있거든요. 요즘 가장 스마트하게 투자할 수 있는 건 인테리어 아니면 아트 같아요. 발리를 좋아해서 자주 가는데 거기에 있는 비치 클럽 포테이토헤드에서 리사이클링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요. 그쪽과 협업해서 홈 웨어나 가구를 만들어볼 생각도 있어요.
그동안 세계 지도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점을 남겼어요. 팬데믹 시대가 마법처럼 끝나면 가보고 싶은 나라가 있어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가보고 싶어요. 의외로 하와이도 아직 못 가봤네요. 따뜻한 나라를 좋아해요. 어제는 실미도 바로 앞에 있는 무의도에 다녀왔는데 너무 좋아서 정말 깜짝 놀랐어요. 뭐야? 이렇게 좋은 곳이 숨어 있었다니. 아, 그리고 독도에 꼭 가보고 싶어요.
OHHYUK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아시아 투어를 하고 있었을 텐데, 경기도 끝 쪽에서 다시 만났네요. 사실 이렇게 오래 쉬어본 게 처음이에요. 다들 비슷한 상황일 것 같은데, 모든 일이 다 멈춰버리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정말로 어쩔 수 없는 변화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요즘엔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조금 더 집중하려고 해요.
지난 1월 발매한 앨범 <사랑으로>의 여파가 아직 남아 있나요? 그대로인 것 같아요. 앨범의 주제가 ‘사랑’이라는 태도였는데, 사실 요즘과 같은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앨범을 만들던 당시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블랙아웃 화요일 #blackouttuesday’에 대해 저도 힘이 될 수 있는 한 도우려고 해요.
때로는 음악이 가장 날 선 감각으로 시대를 예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앨범 소개 글에 우리가 매일 경험하고 있는 차별과 혐오, 고정된 우위, 세대 갈등, 환경 파괴 등의 문제를 언급했죠.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에서 더 넓어진 세계로의 확장이자 어떤 선언처럼 들렸어요. 과거에는 숫자를 나열하고 그 안에 기록물의 형태로 저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이번에는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어요. 사랑이 차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 한 장을 무덤덤하게 앨범 커버로 띄운 것도 잔잔하게 화제가 됐었죠. 몇 년 전 <The Plant>라는 잡지 커버에서 그 사진을 처음 접하고 뭔가에 빨려 든 기분이 들었어요. 앨범을 구성하던 도중에 우연히 그 이미지를 보게 됐고, 계속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죠. 사실 큰 기대 없이 연락을 드렸는데 다행히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고, 응원의 말씀도 해주셔서 굉장히 기뻤어요.
앨범을 만드는 동안 알게 모르게 그 사진의 정서가 음악에도 영향을 주었나요? 네. 그 이미지에서 순환 같은 것이 보였어요. 사진 속 식물들은 살아 있는 것 같기도, 죽어 있는 것 같기도 하죠. 앨범을 만들면서 그런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고 절제된, 절대로 과하지 않은 조화로운 느낌. 그런 지점에서는 음악과 이미지 사이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6곡의 타이틀곡 가운데 순환에 대해 말하는 ‘New born’은 혁오의 음악 가운데 가장 전위적이었어요. 설치 작품 안에 있는 것 같은 기묘한 체험을 한 기분이랄까. 감사합니다. 저도 좋아하는 곡이에요. 제일 처음 녹음했던 테이크가 그대로 앨범에 실렸어요. 보통은 녹음할 때 멈추지 않고 쭉 가는데, 그날은 잠시 멈추고 저희들도 가만히 음악을 들었죠. 멤버들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암묵적으로 ‘아 좋다’ 이런 감정을 느꼈어요. 알 수 없는 그 에너지가 곡에 잘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지금 들어봐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라요.
앨범 전체적으로 미지의 사운드가 많이 담겨 있어요. 미스터리하고 호기심 가는 낯선 소리들. 저희가 첫 앨범부터 가장 내고 싶었던 사운드에 가깝게 나왔어요. 아날로그적이고 따뜻한 사운드를 늘 지향해왔는데 그게 구현이 잘됐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들으면 느낄 수 있는 순간의 기분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 이것저것 실험을 해봤거든요.
360도 마이크, 부서진 타악기, 제3세계 악기 등등을 써봤다고 들었는데. 일부러 찾은 건 아니고 스튜디오에 있어서 여러 가지 악기로 테스트를 해볼 수 있었어요. 360도 마이크를 써봤더니 소리가 머리 위로 빙빙 돌더라고요. 그게 신기했어요. 악기 녹음을 진행한 영국 리얼월드 스튜디오의 주인인 피터 가브리엘이 월드 뮤직에도 관심이 많아서 악기 아카이브가 굉장히 다양해요. 그걸 개방해준 덕분에 여러 가지 소리를 실험해볼 수 있었어요.
지금 시대에 생존하지는 않지만 만나보고 싶은 뮤지션이 있는지 궁금해요. 1960~1970년대에 전설이었던 분들을 만나보고 싶긴 해요. 존 레논, 조지 해리슨, 그 시대에 정말 좋은 뮤지션 많이 있었죠. 그분들을 만나면 도대체 앞으로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타협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타협과 완전히 멀어질 수는 없어요. 어찌 됐든 저만 들으려고 만드는 음악은 아니니까요. 청자를 고려하는 지점은 분명하게 있지만 어떠한 속임수나 장치를 통해 좀 더 자극적으로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적용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음’에 집중할 수 있을까 고민해요. 물론 절대적인 ‘좋음’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요.
‘좋은 음악’에 대한 정의가 있을까요? 언어로 설명하려면 굉장히 복잡한데, 좋은 음악은 직관적으로 알 수 있어요. 의도하지 않은 좋음이 있는 음악. 의도했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융화가 되면 남다르게 들려요.
크러쉬가 탐나는 목소리의 소유자로 오혁 씨를 뽑은 적 있어요. 오혁 씨에겐 누가 그런 존재인가요? 너무 많은데, 국내에서는 소금이라는 아티스트의 목소리요. 최근에 같이 공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톤도 톤이지만 그루브가 정말 특이하고 신선했어요.
관객이 있는 무대에 서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데, 답답하지는 않나요? 마지막 공연이 2월쯤이었는데 벌써 까마득해요. 무대에 대한 그리운 마음이 크죠. 뮤지션들이 온라인 기반의 언택트 공연을 조금씩 시도하고 있고, 저희도 거기에 몇 번 참여해보긴 했지만 좀 더 양질의 공연을 아카이빙해서 그걸 바탕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2월에 했던 서울 콘서트는 초현실적이었어요. 연극, 뮤지컬 등 공연 분야에서 이미 유명한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와 협업했죠. 여신동 감독님과는 2년 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대화가 잘 통해서 여러 번 작업을 했어요. 음악처럼 절제된 연출을 부탁드렸고 그래서 조명, 공간, 악기 배치 등 모든 것에서 이유가 없는 것은 다 빼자고 했죠. 의도했던 것들이 잘 반영된 무대였어요.
무대 위에서 자주 착용했던 동물 형상의 헤드 피스는 어디서 모티프를 얻은 건가요? 음악의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비주얼로 형상화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제 반려견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달라고 제안을 드렸죠. ‘오여’와 시간을 오래 못 보내니까 머리 위에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웃음). 그래서 진짜 오여를 똑 닮은 샘플을 제작했는데 지나치게 귀엽더라고요. 그래서 재질도 컬러도 조금씩 바꾸면서 지금의 형태가 완성됐어요.
음악이든 비주얼이든 협업하고 싶은 새로운 사람들은 어떻게 찾아요? 누군가 마음에 꽂히면 보통의 경우에는 1~2년 전부터 지켜봐요. 우리와 잘 맞을지, 어울릴지 계속 생각하면서.
평상시 그만큼 많은 리서치와 발굴의 시간이 필요하겠네요. 요즘엔 무엇에 꽂혀 있나요? 쉬는 동안 하루에 영화 3~4편은 꼭 본 것 같아요. 영화를 분류해서 보는 편인데, 이를테면 감독 한 명을 정해두고 그 사람의 필모그래피를 몰아서 다 보는 식이죠. 최근에는 구스 반 산트와 미카엘 하네케의 작품을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두 분의 작품 중에는 <싸이코>와 <퍼니 게임>이 가장 좋았어요.
잘 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사실 쉬는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제 기준에서 정말 잘 쉰 하루는 걱정 없이 아무것도 안 하는 상태 같거든요. 그 시간을 통해 회복이 된다고 생각해요.
페기 구 씨에게 크로스 인터뷰 질문을 부탁했더니, 오혁 씨가 최근에 구매한 인테리어 아이템이 궁금하대요. 이사무 노구치의 조명을 샀어요. 일본에 공연하러 갔을 때 그분이 만든 조명만 전시해 놓은 공간에 가본 적 있었어요. 먼 거리에 위치했지만 좋아하는 작가라서 어렵게 찾아간 기억이 있네요.
두 사람은 고요하고 목가적이며 절제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 보여요. 자발적 고립을 필요로 했다는 점도요. 고독이 주는 위로가 있나요? 고독은 제게 꼭 필요한 순간인 것 같아요. 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분주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오혁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어 같지만, 야심 혹은 야망이 있나요? 네, 야망 있습니다. 진짜 좋은 곡을 만들고 싶어요. 가끔씩 제 기준에 따라 좋은 음악을 분류해보곤 해요. 그 카테고리 안에 제 음악도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아 이 사람은 진짜 좋은 음악을 만들지, 이 사람이 하는 건 진짜 좋은 거지”라고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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