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리그가 중단된 시기에 농구의 신이 다시 소환됐다. 마이클 조던은 영원한 승자다. 그건 그냥 당연하다.
<더 라스트 댄스>는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시즌인 1997~1998 시즌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 마이클 조던을 중심으로, 영광의 시대를 이룩했던 그들이 왜 갈등을 빚었고, 어떻게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지를 말한다. 사실 큰 줄기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농구에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이미 꿰고 있을 만한 내용이다. 1980년대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의 폭력에 가까운 수비에 고전했고, 7년 만에 NBA 우승을 거머쥐었으며, 야구선수로 외도했다가 돌아와 또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이야기는 조던의 팬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왕조 해체가 단장 제리 크라우스의 작품이었다는 내막도 말이다.
22년 만에 다시 등장한 조던이 현역 스타들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시카고 불스가 다시 구글 검색에서 사랑을 받은 이유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는 있었어도 보지는 못했던 장면과 생각들을 생생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ESPN은 1997~1998 시즌 동안 시카고 구단을 근접 취재할 권한을 얻었다. 사적 공간이라 할 수 있는 전용기 내부부터, 연습 체육관과 숙소까지도 영상으로 담았다. 보통 취재진들에게 공개되는 연습 장면은 시작 후 15분, 혹은 끝나기 전 15분 정도다. 허가받지 않은 곳에서 카메라를 꺼내면 그 매체는 곧장 블랙리스트에 올라 전 구단에 공유된다. 경험상 이 블랙리스트에서 벗어나는 과정은 굉장히 고달프다. 그래서 ESPN이 얻은 권한은 상당한 특혜였고, 그들은 그렇게 얻은 장면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조던과 스카티 피펜, 필 잭슨 감독, 데니스 로드맨이 치르는 ‘마지막 시즌’의 팽팽한 감정선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잘 보존돼 질투가 날 정도였던 아카이브와 수많은 인터뷰이의 코멘트도 장편 다큐멘터리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자신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에도 등장하지 않은 조던이 직접 스토리텔러 역할을 해 사실감을 더했다. <더 라스트 댄스>가 나오기 전까지, 나는 전 세계에서 조던을 가장 잘 표현한 미디어는
그런데 흥행의 이면에는 비판도 있다. <더 라스트 댄스>는 100퍼센트 전지적 조던 시점이다. 조던이 선수를 짓궂게 대하는 방식, 크라우스 단장을 조롱하는 장면 등 불편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지만, 조던이 농구를 잘하는 선수를 넘어 위대한 승자가 되는 과정이 부각된다. 옛 동료 호레이스 그랜트는 현역 시절에도 시카고가 조던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더 라스트 댄스>에 대해서도 ‘거짓이 많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조던은 수백만 명이 보는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악행이 담긴 <조던 룰스>라는 책의 소스 제공자(정확히는 밀고자)가 그랜트라 말했다.(제리 크라우스도 책이 발간됐을 때, 밀고자가 그랜트와 어시스턴트 코치 조니 바흐였을 것이라 추측했다. 책의 저자이자 다큐 출연자였던 샘 스미스 기자는 내게 “나와 가장 친했던 불스 선수는 그랜트였다”라고 말했지만, 소스 제공자가 그랜트였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아이재아 토마스가 1992년 드림팀에 승선하지 못하도록 입김을 넣은 인물이 조던이라는 루머도 등장한다. 조던은 부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녹음본이 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 난감하게 됐다. <더 라스트 댄스>는 철저히 승리자를 위해 만든 다큐멘터리로도 남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라스트 댄스>가 역대 최고의 스포츠 다큐멘터리 중 하나로 남을 근거가 있다. 우선 ‘아카이브의 올바른 활용법’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경기 장면 중에는 처음 보는 앵글도 있었다. 예산 탓도 있겠지만, 한국의 경우 일단 중계가 끝나면 남은 소스들은 대부분 폐기한다. NBA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타 종목을 압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료의 가치를 잘 이해했기 때문이다. 재료가 풍성해야 아이디어도 다양해진다. 그나마 한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스포츠 다큐멘터리는 KBS가 서울올림픽 30주년을 맞아 제작한 ‘88/18’ 정도였고, 이 역시도 아카이브와 제작진의 끈기 있는 취재로 가능했다. KBL이 2018년에야 출범 원년 경기를 디지털화했다는 사실을 헤아리면 우리는 굉장히 늦은 셈이다.
두 번째로 조던이라는 농구선수에 대한 재조명이다. 디트로이트에게 패한 후 버스에서 울었다고 고백하고, 첫 트로피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새로운 세대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농구는 잘하지만 팀은 챔피언십에 올려놓지 못하는 선수’로 인식되던 시절이 있었지만 기어이 극복해냈다는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한편 <더 라스트 댄스>는 조던과 관련된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조던의 리더십이다. 스티브 커 감독은 내게 “조던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라고 말했다. 연습 때도 실전처럼 몰입해 긴장된 분위기를 연출했다. 동시에 팀 플랜을 쫓아오지 못하는 동료들에게는 욕설도 서슴치 않았다.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악마 같았다”라는 호레이스 그랜트의 말처럼 조던의 이런 면모를 확인한 몇몇 시청자는 내게 “불편했다”는 감상평을 털어놨다. 요즘에도 통할 리더십인지는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조던과 같은 직장 동료 혹은 상사를 둔다면 어떨까. 모질더라도 기어이 성과를 내고, 우리 부서에 충분한 영광이 돌아온다면, 그래서 내가 더 나아진다면 받아들이겠다는 의견도 있지만, 반대로 자존감이 떨어지고 괴로울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2020년의 NBA 경기장은 사방이 카메라로 둘러싸인다. 20년 전과 달리 팟캐스트, SNS 등 불만을 말하고 부조리를 폭로할 플랫폼도 늘었다. 케빈 듀란트와 드레이먼드 그린의 라커룸 말다툼도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모두 공개되지 않았던가. 조던이 1990년대 스타일로 팀을 강하게 이끌었다면 슈퍼스타가 되진 못했을 것이란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 방식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시대에 따라 인정받는 리더십의 스타일은 계속해서 달라져왔기 때문이다. 그땐 맞았지만, 지금은 틀릴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그가 승자가 됐기에 맞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시대가 변했어도 이것만은 확실하다. 스스로 완벽을 추구하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은 조던이었지만, 결국 ‘팀’이 가장 중요함을 깨닫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동료들을 믿고 패스했다는 사실, 그리고 승부처에서 믿음을 줄 수 있는 리더가 되기 위해 누구보다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는 역사적 기록 말이다. 글 / 손대범(<점프볼> 편집장)
- 피쳐 에디터
- 이재현
- 사진
- 넷플릭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