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책 산업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뉴 노멀 시대, 책의 미래와 출판계의 지형도.
어딜 가도 코로나 시대 전후를 살피며 이에 적응하거나 대응하려는 모습으로 가득한 요즘이다. 사회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다 보니 출판과 독서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거란 예상이 이어진다. 한국의 코로나 이슈가 정점을 찍던 2월 말, 3월 초는 대학 교재와 초중고 참고서 시즌으로 서점가의 연중 최대 성수기다. 그런데 개학이 연기되고 각급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학기를 시작하며 전에 없던 상황이 벌어졌다. 온라인 서점이 의외의 특수를 누린 것이다. 대학이 문을 열지 않자 학생들이 교재를 구매하던 구내서점도 영업을 하기 어려워졌는데, 이 수요가 온라인 서점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독자의 온라인 서점 구매 집중은 어느 정도 예상된 상황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거나 여러 사람이 오가는 곳을 방문하는 일을 줄이는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책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상품군의 온라인 매출이 늘어났으니 말이다. 최근에는 교보문고의 온라인 매출이 오프라인을 넘어섰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는데, 업계 내외의 반응은 충격적인 소식이라기보다는 지난 세기말부터 시작된 온라인 서점의 출판 시장 진출과 확장이 하나의 장을 마무리하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오히려 이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의 경쟁이 아니라 온라인 서점과 온라인 종합 쇼핑몰의 경쟁이 본격화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상황이다. 비대면 시장의 확장과 더불어 몸집이 훨씬 커진 종합 쇼핑몰이 도서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곳에서 구매 경험을 시작한 이들은 여러 상품군의 복합 구매 가능성이 높고 편의와 속도에서 우위를 점하는 곳으로 옮겨가기 쉬우니, 코로나 시대의 온라인 서점 매출 상승은 온라인 서점으로 보나 서점 업계 전반으로 보나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새로운 지경에 들어섰다.
책을 파는 시장이 아니라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마음일까. 독서 시장이 단기간에 크게 위축되었다는 소식은 없으니 평온한 마음으로 늘 읽어오던 책을 펼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할 따름이다. 가장 아쉬운 건 공공 도서관의 휴관이다. 정부 정책에 맞춰 선제적으로 대출과 열람을 금지한 곳이 다수이고, 상황의 추이에 따라 사전 예약을 하면 도서관 안까지 들어가지 않고 책을 받아볼 수 있다거나 대출 신청한 책을 택배로 보내주는 정도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사는 가정의 경우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가지 않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 책을 만나고 읽을 기회는 충분해졌는데, 막상 필요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릴 수 없는 상황이라 직접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기 시작했고, 이는 어린이, 유아 분야 시장의 유지 및 상승으로 이어졌다. 어려운 가계에 도서 구매까지 더해지는 상황이 안타까운 한편, 책을 직접 구매해서 읽어보는 경험을 보다 많은 어린이가 마주하게 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반갑다.
독자들의 마음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타난 분야는 바로 경제경영, 그중에서도 주식 관련 도서다. 지난 3월, 코로나 사태가 점점 심각해지자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적극 매도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개인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매수에 나섰고, 이를 동학농민운동에 빗대어 ‘동학개미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런 불안한 마음에 많은 사람이 주식/펀드 분야의 도서를 찾아 읽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자구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여지가 주식 아니었을까 싶다. 이 분야 도서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간 대비 1.5배에서 2배에 이를 정도로 상승폭이 컸다. 결과를 예측하긴 어려우나 부디 주식에 투자한 노력 못지않게 도서를 구매하고 열심히 읽은 투자도 제값을 해내길 바라는 마음뿐이다.(그래야 사람들이 다음에도 책을 거쳐 주식에 투자를 할 테니.)
시장과 독자에 이어 저자의 상황도 궁금해진다. 아마 세 주체 가운데 가장 큰 어려움을 마주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지식 교양 분야 저자의 경우 학교에 적이 있다면 곤궁함은 피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 저작 인세보다 강연 수입이 훨씬 큰 경우가 대다수라, 코로나 이슈로 취소된 행사들은 그대로 수입 감소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문학 분야의 경우도 상황은 다르지 않겠다. 독자와의 만남, 낭독회 등은 저자가 독자와 만나는 뜻 깊은 자리인 동시에 책을 알리는 홍보의 기회이기도 하고 저자에게는 수입까지 전하는 장이다. 정확하게 상황을 확인하는 지표는 아니겠으나, 통상 한 달에 서른 건 이상의 저자 행사가 올라가는 온라인 서점의 홍보 공간에 3월에는 두세 건의 행사만 걸린 때도 있었으니, 어려움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관련하여 최근 1, 2년 사이 각광을 받은 오프라인 독서 모임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혼자 읽고 즐기는 취미로 여겨지던 독서를, 함께 읽고 나누는 적극적 행위로 바꾸어낸 신선한 바람이, 예상하기 어려운 외부 환경으로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라 안타깝다. 한편 온라인 독서 모임이 새롭게 시작되어, 모임에 참여한 이들이 채팅으로 의견과 감상을 나누고, 이 대화에 저자가 참여한다거나 화상 채팅 기능을 활용해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는 모습에서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유구한 격언을 떠올리게 된다.(왠지 90년대 피시통신의 각종 게시판이 떠오르는데, 당면한 현실이 엄중하니 너무 멀리 돌아가지는 말자.)
아직 살펴보지 않은 출판의 주체는 출판사다. 각자의 고민은 깊겠으나 당장 시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은 잡히지 않는 분위기다. 독자의 관심도에 맞춰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방법을 책으로 펴내는 일은 가능하겠으나, 출판사의 운영 방식이라든지 책을 만드는 과정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책 자체가 크게 바뀔 거란 예상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생각해보면 이번 코로나 이슈에 책만큼 영향을 적게 받은 상품군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른 문화 영역과 비교해보면 여럿이 모여 즐기는 방식이 아니라 혼자 언제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매체라는 점에서 이동이나 집합 제한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또한 국제 이동이 가로막혀 세계화의 이점을 누리는 데 제약이 커졌으나, 숱한 외국 저작물을 꾸준히 한국어로 번역 출간해왔기에 해외에서 제작되어 국내로 들어오는 상품에 대한 소구나 새로운 상품의 전달 속도에서도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늘 변화의 속도가 더디고, 그래서 꾸준히 콘텐츠를 생산해내면서도 커다란 기회와 수익을 다른 업계에 빼앗긴다는 자책과 반성이 오래 이어졌는데, 이번만큼은 책과 출판이 갖고 있는 성향이 장점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 시대가 장기화됨에 따라 지금 이 시기를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늘 변화의 속도가 더딘 업계에서 오래 지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와중에 여전히 지켜봐야 할 것들, 달라지지 않고도 적응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관심이 간다. 변화의 기회보다는 보존의 가치가 눈에 들어온다고 할까. 코로나 시대의 책과 출판에 대한 관심도 이런 방향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책이야말로 오랜 세월 온갖 풍파를 겪으면서도 강건하게 살아남은 매체이자 상품이니 그때그때 변화하며 살아남은 비결이 충분하겠지만,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 살아남았기에 그 변화보다 유지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책이 여전한 힘을 갖고 있다면 뉴 노멀 시대에 우리가 찾아야 할 지혜도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글 / 박태근(알라딘 인문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