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쇼핑의 미래가 된 중고 거래

2020.08.25GQ

지속 가능한 소비, 공유 경제, 미니멀 라이프, 이유가 무엇이든 중고를 사고파는 행위가 쿨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중고는 쇼핑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토요일 2시에 건대역에서 만날까요?” 열여섯 살 생일 즈음이었다. 프리챌 스니커즈 커뮤니티 ‘나이키 매니아’를 샅샅이 뒤져 찾아낸 귀한 매물 ‘나이키 맥스 97 리비에라’ 직거래 날. 개찰구 건너편에 있는 판매자에게 신발을 받아 상태를 확인하고 돈을 건넸다. 20만원이 넘는 거금이었지만 상태는 ‘민트’에 가까웠으니 이 정도면 쿨거래였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사온 신발을 보곤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남이 신던 걸 그 돈 주고 왜 사?” 아마 엄마는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20년 후엔 누구나 ‘남이 쓰던 걸’ 흔쾌히 사게 된다는 걸. 나는 얼마 전 잃어버린 오른쪽 에어팟을 당근마켓에서 단돈 3만원에 득템했다. 엄마가 된 한 선배는 아무리 사도 끝이 없는 아이의 물건을 처분하고 구하느라 정신 차려보니 매너 온도 40도의 당근마켓러가 되어 있었다고 털어놨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물건들은 곧 쓰임새가 사라졌기에 새 물건을 사야 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런가 하면 패션 위크 때마다 유럽에서 구입한 빈티지 아이템으로 나를 부럽게 만들던 한 후배는 얼마 전 (런던 브릭레인이 아니라) 번개장터에서 리바이스 501 데님을 샀다며 자랑했다. 모두의 스마트폰엔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헬로마켓 중 하나 이상의 앱이 필수로 깔려 있다. 넷플릭스 아니면 왓챠 혹은 둘 다의 문제처럼 이젠 그저 취향 차이일 뿐이다.

‘모두 중고 거래를 한다’는 사실은 숫자로 보면 더 명확해진다. 국내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의 중고 거래 앱 시장 분석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3월 중고 거래 앱 사용자는 492만 명. 지난해 1월 대비 76퍼센트 증가한 수치다. 특히 중고 거래 앱 부동의 1위를 자랑하는 당근마켓은 전체 쇼핑 앱 가운데서도 11번가, 위메프, G마켓 등을 제치고 사용자 수 2위에 올랐다. 이커머스의 제왕 쿠팡 바로 다음이다. 10대와 20대 사이에서는 압도적으로 사용량 1위를 자랑하는 번개장터 역시 2019년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돌파했으며, 3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패션 비즈니스 전문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 BoF>은 이미 팬데믹 전 중고 마켓의 규모가 2배 이상 커졌으며 코로나 이후 그 성장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 전망했고, AI 분석 기업인 ‘Vue.ai’는 2029년까지 중고 의류 거래 시장이 패스트 패션 마켓의 2배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구글에서 10분만 검색해도 이런 종류의 기사를 수십 개는 찾을 수 있는데, 대부분 비슷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밀레니얼과 Z 세대, MZ 세대가 중고 거래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는 거다. MZ 세대는 중고를 사고파는 행위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아니, 이건 오히려 멋진 일이다. 이제 멋지다는 말의 의미는 변했다. 더 이상 시즌마다 H&M이나 자라에서 한철 입을 옷을 사고 버리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하는 소비가 트렌드다. 지구 온난화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재앙이고(9년 만에 50여일이 넘는 최장기 장마가 찾아온 기상 이변을 보라), 패션 산업은 석유 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환경 오염을 많이 일으키는 산업이며, 패스트 패션이 그 중심에 있다는 건 모두가 다 아는 얘기다. 세컨드 핸즈 판매 프로그램 ‘Pre-Owned’를 선보이기도 한 온라인 쇼핑 플랫폼 파페치는 지난 1년간 최소 한 개 이상의 중고 제품을 산 미국, 영국, 중국 소비자 3천여 명에게 구입한 이유를 물었다. 42퍼센트는 합리적인 가격, 30퍼센트는 희소성, 13퍼센트는 환경을 생각해서, 11퍼센트는 과거에 좋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환경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는 경우는 아직 13퍼센트에 불과했지만, 이는 새 제품 57퍼센트의 생산을 막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환경과 패션에 대한 문제의식이 실제 행동으로,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화려하고 비싼 물건들을 잔뜩 쌓아놓는 맥시멀 라이프보다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곤도 마리에 식의 미니멀 라이프가 쿨하게 여겨진다. 무언가를 영원히 소유할 필요는 없다. 물건을 누군가와 순환적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다는 공유 경제의 개념은 몇몇 공유 경제 사업체의 위기와는 별개로 여전히 힙하다. 레트로가 유행이라고? 뭐 하러 디자인만 흉내 낸 2020년산 새 제품을 사겠나? 이왕이면 1990년대에 만든 폴로와 타미 힐피거를 ‘디깅’해서 구입하는 게 진짜다.

같으면서도 다른 이유로 이커머스에서 중고 거래 앱과 함께 급성장하고 있는 또 다른 시장은 바로 리셀 마켓이다. 리셀 Resell은 직역하면 재판매, 중고 거래 Resale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의미다. 한정판으로 나온 제품을 당첨이 되든 발매일에 맞춰 밤새워 줄을 서든 각고의 노력과 천운을 쏟아 구입한 다음 되판다는 쪽에 가깝다. 애초에 수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품목에 따라 ‘샤테크(샤넬+재테크)’, ‘슈테크(슈즈+재테크)’로 불린다. 주식이나 부동산처럼 불패를 약속하는 품목도 정해져 있다. ‘에어 디올’의 경우 본래 로는 2백70만원, 하이는 3백만원이던 가격이 즉시 로는 2천만~4천만원, 하이는 1천5백만~ 3천만원까지 치솟아 로또 2등과도 마찬가지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을 정도다. 실제 당첨 확률도 0.16퍼센트 정도로 확률이나 수익이 정말 복권과 비슷하긴 했다. 오프화이트 조던 4, 컨버스 피어 오브 갓, 뉴발란스 327…. 없어서 못 사고 못 파는 제품천지다. 상황이 이러니 진품 검수 시스템을 갖춘 한정판 전문 온라인 거래 플랫폼이 속속 등장 중이다. 먼저 3월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가 출시한 한정판 스니커즈 중개 플랫폼 ‘크림 Kream’은 수수료 0퍼센트를 앞세웠고, 서울옥션의 ‘엑스엑스블루’ 역시 실물을 볼 수 있게끔 오프라인 드롭존까지 마련해 경쟁력을 높였다. 마지막으로 지난 7월 21일, 애초에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이라는 프리챌 커뮤니티로 출발한 이 분야의 전문가 무신사가 ‘솔드아웃’을 내놓으면서 리셀 거래 앱 시장은 한층 뜨거워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업자’나 ‘되팔러’로 불리던 리셀러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변하는 추세다. 한정판을 생산하는 건 브랜드지만 그걸 프리미엄으로 만드는 건 리셀러라는 거다. 시장이 커지면서 자연히 리셀러만큼 본인이 신기 위해 구입하는 ‘실착러’도 늘었다. 귀한 한정판은 몇몇 마니아의 소유가 아니라 모두의 공유가 됐다. 새 제품에 가까운 물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는 데서 나아가 숨겨지고 희귀한 물건을 찾는 데서 재미와 희열을 느끼는 요즘 중고 거래의 진수를 모아놓은 시장이 바로 여기다. 이곳에서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판매자다. 물건의 개수가 아니라 가치를, 물건을 손에 쥐는 일 자체보다 경험을 습득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마 앞으로 10년간 이런 흐름은 지속될 것 같다. 그냥 던지는 말이 아니고, 지구촌 1등 힙스터 버질 아블로가 영국 <데이즈드>와의 인터뷰 중 한 얘기니 어느 정도는 믿어도 좋다. “확신하건대 향후 10년 안에 스트리트웨어는 죽게 될 거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티셔츠와 후디, 스니커즈를 가질 수 있겠으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젠 빈티지로 개인의 지식과 스타일을 표현하는 때가 온 것 같다. 이미 세상에는 너무 멋진 빈티지가 넘쳐난다. 새로운 옷을 사서 입는 패션의 시대는 끝났다.” 여기서 빈티지는 상대적으로 희귀하며 고유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정판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 ‘레어템’을 우리는 찾고, 사고, 또 팔게 될 것이다. 솔드아웃과 크림, 당근마켓과 번개장터에서. 글 / 권민지(프리랜스 에디터)

    피쳐 에디터
    김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