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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현 "웃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2020.10.28GQ

시원시원하고 생동감 넘치며 자꾸 눈에 띈다. 이도현의 완벽한 루키 시즌.

그레이 체크 롱 코트, 던힐. 데님 팬츠, 구찌. 블랙 첼시 부츠, 던힐. 터틀 니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브라운 빈티지 블루종, 폴로 랄프 로렌. 데님 팬츠, 클럽 모나코.

그린 니트, 아크네 스튜디오.

브라운 트렌치코트, 르메르.

네이비 터틀 패턴 니트, 펜디. 스퀘어토 블랙 첼시 부츠, 라프 시몬스. 데님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오늘 같은 일요일은 어떻게 지내요? 드라마 촬영을 하느라 요일 개념이 없어요. 일요일이라는 것도 새벽에 알았어요. 내일 드라마 방송하는 월요일이구나, 해서. 평소 같으면 밀린 잠을 자고 가을이랑 산책해요. 가을이는 같이 사는 반려견이에요. 그리고 몸을 만드는 재미를 알게 돼서 집 앞 헬스장에 가거나 친구들과 농구를 해요.

아까 촬영하면서 능숙하게 농구공을 다루던데요. 드라마 <18 어게인>에서 농구 실력을 뽐낸 장면도 있었는데, 학창 시절에 농구를 하기도 했죠? 중학교 때 제대로 농구를 시작해 고양시 대표로까지 뽑혔어요. 아버지가 운동을 반대해서 고등학교 때는 취미로 했어요. 점심시간에 밥 먹고 농구하고 수업 끝나면 또 농구하다가 저녁에 연기 학원 가고.

농구 시즌인데 경기는 챙겨 봐요? 하이라이트 영상은 다 보는 편이에요. KBL이 개막했고 어제는 NBA 파이널에서 역대급 경기가 나와 눈이 호강했어요. 친구들과의 단체 톡방이 있는데 경기 얘기로 메시지가 가득해요.

어떤 선수의 팬인가요? 카이리 어빙과 김선형 선수를 좋아해요. 플레이가 정말 멋있어요.

화려한 테크니션을 좋아하네요. 자신 있는 플레이는 뭐예요? 3점 슛을 터뜨리고 세리머니를 하면 친구들이 “임동쓰리 터졌다”고 외쳐요. 임동현이 본명이거든요.

이러다 농구 얘기만 하겠어요. 본명은 무슨 뜻이에요? 수풀 림, 동녘 동, 검을 현. 처음에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어요. 동쪽의 검은 숲? 그런데 ‘현’에는 하늘이라는 뜻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동쪽 숲의 하늘’이라고 해석해요. 겉과 속이 다르달까, 겉은 검지만 속은 하늘처럼 청명하다는 의미가 좋아서 이도현이라는 활동명을 지을 때도 일부러 ‘현’을 넣었어요.

남들이 잘 모르는 이도현의 은밀한 모습 같은 게 있나요? 사람들을 웃기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그래요? 웃으면 다 좋잖아요. 상대방은 웃어서 힘이 나고, 저는 누군가 저로 인해 웃으니까 뿌듯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도 그래요. 지인들이 저한테 고민을 잘 털어놓거든요. 대화를 하는 동안 상대방의 힘들었던 마음이 풀어지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생각만 해도 미소를 띠게 하는 건 뭔가요? 가을이 때문에 늘 웃어요. 늦게까지 촬영하고 집으로 돌아가 드러누우면 가을이가 얼굴을 핥아줘요. 그러면 거짓말처럼 피곤이 싹 풀리죠.

말하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네요. 하이라이트 이야기가 나온 김에 두고두고 생각나는 인생의 명장면이 궁금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버지 몰래 연기 학원을 다녔어요. 이듬해 대학 진학을 위해 아버지를 설득해야 했죠. 연기 학원 선생님의 도움으로 대학로에서 <택시드리벌>이라는 연극을 하게 됐고,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어머니와 모의해 아버지를 공연에 초대했어요. 그리고 지하철역 계단부터 극장으로 가는 길까지 제 얼굴이 담긴 공연 포스터를 쫙 붙였어요. 대학로에 도착한 아버지는 깜짝 놀랐죠. 아들내미 얼굴이 길바닥에 붙어 있었으니. 여차저차 제가 나온 연극을 봤고 설득 끝에 연기하는 걸 허락하셨어요.

그런데 어쩌다 연기를 하고 싶어졌어요?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부모님과 드라마를 많이 봤는데 자연스럽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니 주목받는 걸 좋아했어요. 장기자랑에 빠지지 않고 나가서 춤추고 노래했죠. 박수와 환호성을 들으면 정말 짜릿했어요.

그 많던 끼는 어떻게 해소해요? 샤워할 때 볼륨을 올리고 노래를 불러요. 그래서 씻는 시간이 길어요.

샤워 메들리는 어떤 곡이에요? 맨날 다르긴 한데, 뮤지컬 무대에 대한 꿈이 있어서 뮤지컬 넘버를 많이 듣고 불러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실력이 더 쌓이면 노래, 안무, 연기를 무대에서 보여주고 싶어요.

배우라는 말은 이제 좀 익숙해졌나요? 제가 했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안녕하세요, 배우 이도현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인사하면서 이름보다 먼저 직업을 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배우 이도현”이라고 말하는 게 혹시 제 스스로 특별하다고 여기는 건가, 싶더라고요. 배우는 수많은 직업 중 하나이고, 제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배우 이도현’보다 ‘이도현’이 더 편해요. 저는 한번 자만하기 시작하면 겉잡을 수 없는 성격이라 매일 초심을 되뇌어요. 주변에도 거만한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아무 말하지 말고 뺨을 때리라고 했어요. “왜 때려!” 하겠지만 왜 맞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이 일이 나와 잘 맞는다 싶은 부분은 뭐예요? 하나씩 알아가고 연구하는 과정이 너무 즐거워요. 감독님이 디렉션을 주시면 목소리 톤은 어떻게 하지? 꺾어볼까? 한 박자 늦게 반응할까?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게 할수록 재미있어요. 주연을 맡아 쉽지 않지만 최대한 즐기려고 생각해요. <호텔 델루나>에서 호흡을 맞췄던 아이유 누나가 모니터링을 해주면서 주인공의 무게는 무겁고 부담이 되지만 그만큼 즐길 거리도 많으니 즐기면서 하라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줬어요.

<18 어게인>의 ‘고우영’은 갑자기 열여덟 살 고등학생이 된 서른일곱 살 아저씨라는 독특한 설정을 갖고 있죠. 그런 점에서 신나서 연기하고 있겠네요. 맞아요. 언제 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겠어요. 또래에게 잔소리꾼처럼 설교를 하는 고우영처럼 평상시에도 일부러 훈계하듯이 말하거나 팔자걸음으로 걷기도 해요.

예전 인터뷰에서 주인공을 꼭 해보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했는데 금방 그걸 이뤘어요. 그러게요. 아버지가 바라는 게 있으면 입 밖으로 내야 한다고, 그래야 책임감이 생겨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고 하셨어요. 대신 결심을 말하기까지 시간을 들여 심사숙고해요.

평소 지긋지긋하게 듣는 잔소리는 어떤 종류예요? 지금처럼 트레이닝복 차림을 좋아해요. 저와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몸이 편하니까 마음도 편안해요. 하지만 주변에서는 좀 꾸미고 다니라고들 해요. 어머니한테는 치우고 살라는 말을 많이 들어요. 혼자 사는 중인데 나름 살림도 잘하고 청소도 하거든요. 하지만 탐탁지 않으신 거죠. 확실히 어머니가 왔다 가시면 뭔가 집이 달라지긴 해요.

격려나 다짐, 당부처럼 자기 자신에게 해주는 말도 있어요? 어제 드라마에서 같이 연기하고 있는 친구가 힘들어해 “잘하고 있어”라고 해주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너한테 조언 아닌 조언을 하고 있지만 사실 나한테도 하는 소리라고. 다른 사람에게 “잘하고 있어”, “잘 해낼 거야”라고 말하는 동시에 저도 마음을 다잡고 제 자신을 격려하게 되는 것 같아요.

어른스러운 구석이 있군요. 그런 소리를 종종 듣기는 하는데 아직도 철딱서니 없어요.

<호텔 델루나>로 얼굴 도장을 찍은 뒤 단막극으로 KBS 연기대상에서 상을 받았고 주연을 맡은 드라마가 순항 중이에요. 그사이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촬영도 마쳤고요. 본인의 루키 시즌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과분하다고 느낄 정도로 꽉 찬 한 해를 보냈어요.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예능에서도 저를 불러주고, 대성공이죠. 개인적으로는 무탈하게 잘 흘러오지 않았나 싶어요. 아픈 데 없고 주변에 큰 피해를 끼치는 일도 없이. 올해가 잘 마무리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 올라가고 싶어요? 뭘 하든 정상을 찍으면 좋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늘 정상에만 있지 않아요. 내려와서 백숙도 먹고, 계곡물에 발도 담그고, 다른 산에도 올라가보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믿고 보는 배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롤 모델이 주지훈 선배님이에요. 연기에 대한 신뢰와 믿음도 얻고, 나이가 들수록 섹시하다는 말도 듣고 싶어요. 얼마 전 선배님이 나온 광고를 보며 ‘우와, 이게 퇴폐미지’ 했어요.

드라마 촬영이 곧 끝난다면서요. 계획하고 있는 거 있나요? 할 수만 있다면 제주도에서 일주일 정도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요. 지금까지 세 번을 갔는데 다 좋았어요. 얼마 전 김하늘 선배님과 오픈카를 타는 장면을 촬영하다 쉬는 시간에 차의 천장을 열고 한번 달려봤어요. 날씨 좋고, 풍경도 예쁘고. 사람들이 왜 오픈카를 타는지 알겠더라고요. 제주도에서 오픈카를 빌려 드라이브를 해보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요.

    피쳐 에디터
    김영재
    포토그래퍼
    JDZ Chung
    스타일리스트
    정혜진 at MSG Seoul
    헤어 & 메이크업
    이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