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욱은 가차 없이 아름답고 이동욱과 보낸 시간은 환상인 듯 황홀하다.
며칠 전 드라마 <구미호뎐> 촬영이 끝났어요. 이동욱만큼 이연을 잘 이해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는 누구인가요? 멋있죠. 능력도 뛰어나고. 하지만 외양보다 마음이 아주 멋지다고 봐요. 유치한 얘기일 수 있는데 산신은 보통의 성품으로 될 수 없어요. 내면이 탄탄하게 가꿔진 캐릭터, 그렇게 생각해요.
작년 이맘때도 이렇게 마주했죠. <지큐>가 자신 있게 선정한 ‘올해의 인물’ 이동욱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구미호뎐>은 어떤 부분에서 도전이었던 걸까요? 남자 구미호라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좋았어요. 우리가 외국 판타지물에 익숙한 것에 비해 그런 작품은 드물잖아요. 전통 설화와 한국적인 요괴라는 소재가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충분히 매력적인 스토리가 될 수 있어요.
대본을 보면서 황당무계하다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느 지점에서 ‘이거다’라는 확신이 섰나요? 일단 잘 읽혔어요.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을 보는 것 같았죠. 또 대사가 맛깔스러웠어요. 잘 읽히고 대사도 좋은 작품이니 최소 기본은 하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타인은 지옥이다>는 철저히 준비하기보다 현장에서 부딪혀가며 연기를 해냈고, <구미호뎐>에서도 그 방식을 이어갔다고. 감사하게도 감독님이 그린라이트를 주셨어요. 상황 설정, 디테일, 대사에 있어 자유롭게 연기를 할 수 있었죠. 실제로 대사 중 3분의 1 정도가 애드리브였어요. <도깨비>도 그랬지만 판타지물은 작가님이 만든 세계관 안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구미호나 요괴를 취재할 수도 없고, 준비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현장에서 자유롭게 풀어가면 돼요.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믿음에는 책임감도 깔려 있을 거고요. 계속 되뇌었던 질문이 있어요. ‘과연 버틸 수 있을까?’ 4월에 촬영을 시작해 7개월 동안 찍었어요. 긴 일정이었고 힘에 부쳤어요. 아귀의 숲에서 동생을 구하는 시퀀스는 일주일을 공들여 완성했어요. 조금 건방진 소리일 수 있지만 제가 짊어진 짐이 많았어요. 동료 배우와 스태프 대부분이 저보다 어리기도 했고요. 선배로서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감독님, 작가님께 누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저를 지배했던 것 같아요.
일 년의 절반 이상을 한 작품에 매달린 줄은 몰랐어요. 대중에게 보여지는 건 드라마가 방송되는 딱 두 달뿐이죠. 제 이름을 건 토크쇼를 2월 말까지 진행했고, 그게 끝나자마자 드라마 준비에 들어갔어요. 21년 동안 거의 매년 작품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작품 단위로 시간을 기억하는 편이에요. 언제부터 언제까지 뭘 했고, 이렇게.
작년 인터뷰에서 꽤 열심히, 바쁘게 살았다고 말했는데 올해도 변함없네요. 2020년은 어떻게 자평하나요? 계속해서 새로움에 적응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자연인 이동욱으로서 코로나 시국의 변화에 어떻게든 사회적, 생활적 적응을 해야 했고, 일적으로는 새로운 현장의 인간관계와 시스템에 적응하려 노력했어요. 그게 익숙해질 무렵 한 단락이 끝났고요. 다음 주부터 영화를 찍어요. 거기서도 적응을 해야겠죠.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를 맡으면서도 비슷한 역을 연달아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다음 행보가 늘 기대돼요. 이번에는 아주 현실적인 캐릭터예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십 대 중후반의 남자. 멜로 장르인데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한 번쯤 떠올릴 수 있을 만한 이야기예요.
인터뷰마다 잊지 않으려는 듯 남기는 말이 있어요. “배우란 선택과 인정을 받아야 하는 직업이다.” 작품의 선택과 대중의 관심에서 비껴나간 적이 없는 것 같으니 한번 물어볼게요. 선택받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배우의 기본은 무엇인가요? 연기는 당연히 잘해야 하는 거고, 성실함이 중요해요. 어떻게 21년간 쉬지 않고 일을 했냐고 물어보기도 하는데, 저를 찾아줄 때 열심히 하다 보니 이제는 ‘이동욱은 꾀를 안 부린다’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성실하게 하다가 손해보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남들보다 느리게 가는 것 같고. 그런데 그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적어도 한 번은 찾아와요. 그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어요. 저도 투덜대면서 해야 하는 건 다 해요. “꼭 해야 돼?”라고 하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죠. 이런 면도 저의 매력이라면 매력 아닌가 싶어요.
이를테면 오늘 촬영은 어땠어요? 짜증 나고 화가 난 듯한 표정을 계속 지어달라더군요. 아니 뭐, 할 수는 있는데 “짜증 난 느낌을 내주세요”라는 얘기를 반복해서 들으니까 진짜 짜증이…. 그러면서도 다 했어요. 나중엔 재미있었어요.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신체 나이를 검사했을 때 서른두 살로 나타났죠?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어리구나,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구미호뎐>에서 아역 배우나 동물들과 합을 맞췄는데 교감이 잘 이뤄졌어요. 철이 덜 든 건지, 정신 연령이 낮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나쁘진 않아요. 정신이 늘 맑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이동욱, 40이면 한창 멋있을 나이”라는 드라마 관련 댓글이 많은데 동의하나요? 그럼요. 전국에 계신 사십 대 분들, 한창 귀엽고 멋있을 나이니까 힘내세요. 자기 관리가 진짜 중요해요. 요즘 제 아이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더라고요. 과거 모습과 비교한 사진도 봤어요. 자연스럽게 눈가가 깊어지긴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몸무게가 15킬로그램 차이가 나요. 어린 나이만 믿고 관리를 소홀히 여겼던 거죠.
<구미호뎐>에서 이동욱의 얼굴은 상상과 비현실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요. 정작 자신은 어떤 판타지를 꿈꾸며 살아가나요? 세계적인 록 밴드의 프런트맨이 제가 품은 판타지 중 하나예요. 노래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많이 부러워요. 가끔 궁금하기도 해요. 밴드 무대에서 섹시함을 풍기며 열창하면 어떤 기분일지. 또 이런 판타지가 있어요. 유명한 운동선수가 되어 골을 넣고 세리머니를 펼치거나, 홈런을 치고 배트를 시원하게 집어 던진다거나. 저도 언젠가 그런 역할을…. 아우, 안 되겠다. 운동선수로 치면 은퇴할 나이잖아요.
대신 누구도 해보지 못한 남자 구미호 역을 맡았잖아요. 액션 연기가 어려웠지만 나름 재미있었어요. 와이어에 매달려 하늘도 날고 옥상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언젠가 하드한 액션을 꼭 해보고 싶어요. 아주 현실적인 19금 액션.
올해의 액션을 꼽는다면요? 아까 말한 아귀의 숲 탈출 시퀀스요. 방송된 것보다 편집 분량은 훨씬 많아요. 눈뜨면 뛰고, 눈뜨면 구르고. 그러다 지쳐 쓰러져 잠들고. 엄청 고생하면서 찍었어요.
말이 나왔으니, 3년 연속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이동욱 어워드를 해보면 어떨까요. 올해의 대사는? <구미호뎐>의 티저 영상에서 읊었던 “진짜 보고 싶어? 내가 사는 세상”. 시청자들을 판타지 세계로 안내하는 대사란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이동욱을 웃겨 자빠뜨린 올해의 웃음은? 지아(조보아)가 이연이 좋아하는 민트초코 아이스크림을 사다 주면서 “오다 주웠다”고 하는 장면에서 “오다 주웠다길래 재활용인 줄 알았네”라고 애드리브를 넣었어요. 나중에 방송으로 봤는데 진짜 웃겼어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럴 수 있나 싶었죠.
올해의 간식 같은 게 있을까요? 호떡요. 저한테는 늘 1등이에요. 이맘때가 되면 호떡 파는 가게를 수소문해요. 요즘은 검색해도 잘 안 나와요. 그래서 호떡 가게를 발견하면 전화번호부터 챙겨요.
전율을 느낀 올해의 스포츠 경기는? 류현진 선수의 정규 시즌 마지막 등판. 그동안 약했던 뉴욕 양키스를 상대해 7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았어요.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피날레로 완벽했어요.
올해의 패션은? <구미호뎐>의 첫 회에서 입은 블랙 수트. 또 하나를 꼽자면 오늘 입은 알렉산더 맥퀸 컬렉션. 하하하. 촬영 공간과 진짜 잘 어울렸어요.
뮤지션을 선망한다고 하니 이것도 빼놓을 수 없죠. 올해의 노래는요? 요즘 데이식스에 빠졌어요. ‘예뻤어’라는 노래를 특히 좋아해요. “예뻤어 날 바라봐 주던 그 눈빛 날 불러주던 그 목소리”라는 가사를 들으면 지아와 이연의 애틋한 사연이 떠올라요. 그리고 드라마 OST인 ‘Blue Moon’. 전주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거려요. 뭔가 사건이 시작되는 타이밍이네, 생각하게 되죠. 두둥두둥, 판타지의 기운이 막 끓어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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