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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이츠가 몰고 온 배달 전쟁

2020.12.03GQ

쿠팡이츠가 저변을 넓혀가며 견고해 보이던 배달 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빠진 속도 전쟁은 어디까지 치닫을까.

“띵동, 배달의민족 주문!” 배달의민족 주문 접수 앱의 알림음이 울렸다. 요청 메뉴는 6가지. 조리부터 포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15~20분. 주문을 승인하려면 조리 시간에 배달 시간을 더한 예상 시간을 입력해야 한다. 60분, 클릭. 잠시 뒤 매장 전화벨이 울렸다. “정말 60분 걸리나요? 그러면 취소하려고요.” 수화기 너머의 공격적인 말투에 흠칫했다. 배달 대행사 앱에는 주문 폭주로 배달이 지연되고 있다는 공지가 떠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고객님, 죄송합니다. 저희가 조리하는 시간은 20분 내외지만 배달 접수가 많이 밀려 시간이 그보다 더 걸릴 수 있어요.” 답변을 마치기도 전에 고객이 수화기 너머에서 쏘아붙였다. “어떻게 1시간이나 걸려요? 그럼 취소해주세요. 쿠팡이츠로 주문할게요.” 뚜뚜뚜. 잠시 후 똑같은 메뉴 주문이 쿠팡이츠로 들어왔다.

온라인 공간에서 소비자는 기업의 예상보다 빠르게 변심하고 이동한다. 특히 O2O(Online-to-Offline) 플랫폼에 대한 소비자의 충성도는 모래성이나 다름없다. 품질이나 혜택 면에서 차별점을 가진 다른 플랫폼이 있다는 전제하에서다. 취향을 소비하는 시대가 됐지만 여전히 소비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은 가격이다. 최저가 검색처럼 동일 매장이나 동일 메뉴라면 어느 플랫폼에서 어떤 매장의 음식과 배달료를 포함한 결제 금액이 더 저렴하고 가성비 좋은지 찾게 된다. 이런 부분을 배달 앱 회사도 배달 음식 매장도 알고 있다. 그래서 거의 동일한 가격과 배달료를 책정한다. 배달의민족과 요기요, 배달통 이 세 회사가 지난 몇 년 동안 99퍼센트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큰 순위 변동 없이 이어져 온 이유다. 하지만 쿠팡이츠와 위메프오가 대대적인 투자와 마케팅에 나서면서 아스팔트 같았던 점유율과 순위에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 매장이 쿠팡이츠를 시작한 건 올해 7월부터다. 5월경 매장에 찾아온 한 남자의 권유에서다. 배달의민족 앱의 매장 지도 화면이 뜬 스마트폰을 손에 쥔 그는 익숙한 로고의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coupang’. 그는 쿠팡이츠의 장점을 3가지로 설명했다. 라이더와 고객 간의 일대일 매칭 배달 시스템을 통한 빠른 배달 속도와 쿠팡이츠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한 추가 수익, 쿠팡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한 할인 혜택이었다. 탐탁잖은 장점이었다. 배달 속도를 빼면 5천원에 가까운 쿠팡이츠의 ‘수수료+배달료’, 언제 종료될지 모르는 할인 혜택만 남는다. 타 플랫폼에 비해 입점 매장 수나 다양성도 빈약했다. 소위 동네에서 잘나가는 배달 전문점은 거의 없었다. 그런 부류의 매장은 박리다매 형태가 대부분이라서다. 직접 배달하는 매장이나 박리다매 매장은 배달료로 이익을 남기거나 낮은 마진을 수량으로 밀어붙여 유지하기 때문에 쿠팡이츠와 궁합이 별로다. 오히려 단가가 높은 메뉴가 주력인 매장과 잘 맞는다. 아니면 한두 건의 주문도 반가운 소규모 매장이나. 최소 주문 금액을 1만5천원 전후로 권유한 것도 수수료+배달료 때문이다. 그때는 몰랐다. 배달 속도가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을 거라고는.

올해 글로벌경영학회지에 발표된 <O2O 플랫폼 혜택 요인이 고객의 지각된 가치에 주는 영향에 관한 연구> 논문은 “가격적 이점, 품질적 이점, 보안적 이점이 외식산업 O2O 플랫폼의 사용자 충성도에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할인쿠폰과 저렴한 배달료가 신규 이용자를 끌어모으는 가장 효과 좋은 수단이라는 설명이다. 당연한 결과다. 반면 배달 과정이나 배달 시간 같은 프로세스적 이점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결론도 내놨다. 이는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배달통의 프로세스적 차별점이 딱히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쿠팡이츠가 치타배달을 통해 차별화된 배달 시스템을 구축하고,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이어지며 상황이 크게 변했다. 쿠팡이츠는 이 기회를 틈타 5천원 할인쿠폰이나 배달료 무료 등을 내세우며 고객과 업장을 끌어모으기 위해 열을 올렸다. 공고하던 배달 앱 점유율에 미묘한 동요가 일어났다. 발품에서 시작된 배달판의 변화이자 로켓 배송의 철가방 버전을 통한 지각변동이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과 올 여름 기나긴 장마는 변화를 재촉했다. 배달 주문 급증으로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배달 대행사의 앱에는 1시간 지연은 예사, 2시간 지연 알림까지 등장했다. 음식을 조리해놓고 1시간이 지나도 라이더 배정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기다리는 손님들 때문에 죄송하다는 문자를 보내고, 직접 차를 몰고 배달을 다닐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쿠팡이츠의 일대일 매칭 배달 시스템은 한 줄기 빛이었고, 사용자 사이에서는 아는 이들만 아는 치트 앱이었다.

매장 입장에서 쿠팡이츠의 주문 접수 시스템은 다른 배달 앱과 달리 조리 시간만 입력하면 된다. 나머지는 쿠팡이츠의 AI 알고리즘과 라이더의 몫이다. AI의 자동 배차는 속도도 빠르지만 예상 시간도 타이트하게 잡는다. 자연스레 라이더의 픽업과 배달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단축된다. 배달 대행사 라이더가 대개 포장 완료 후에 픽업한다면, 쿠팡이츠 라이더는 포장 완료 전에 도착해 기다린다. 시간 단축은 ‘치타배지’의 영향도 크다. 치타배지는 쉽게 설명하면 우수 매장 표시인데 ‘고객 평점’과 ‘조리 시간’, ‘주문 수락률’을 평가해 일정 조건을 넘어서면 주어진다. 그중 조리 시간과 주문 수락률은 매장 업주에게 2가지 요구사항을 간접적으로 채근한다. 한 매장에 여러 플랫폼의 주문이 동시에 들어오면 쿠팡이츠 주문을 먼저 조리하도록 유도하고, 쿠팡이츠 주문 거절을 어렵게 만든다. 덕분에 1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와 달리 쿠팡이츠는 빠를 때는 20분, 늦어도 40~50분 안에 배달이 완료된다. 20분이라니. 고객들도 안다. 시간은 돈이라는 걸. 더군다나 핫푸드는 따뜻함이 생명이고, 그 온기가 유지된 채 받은 음식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하지만 불과 한두 달 전부터 쿠팡이츠의 배달 픽업이 조금씩 늦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AI 알고리즘의 원활한 자동 배차는 라이더의 수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배달의민족의 배달을 지탱하는 게 매장과 계약한 수만 명에 달하는 라이더가 모인 띵동이나 생각대로, 부릉 같은 배달 대행사인 반면, 쿠팡이츠는 개인 프리랜서형 배달 파트너에 의존한다. 배달료를 업계 평균보다 높이고, 교육만 받아도 2만원, 가입 7일 이내 배달 10건 소화 시 5만원 지급 등 신규 라이더 유입을 위한 파격 이벤트를 여는 배경이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를 타고 배달 음식을 픽업하는 라이더나 배민커넥터 헬멧과 가방을 멘 쿠팡이츠 라이더, 먼저 픽업한 배달의민족 음식보다 쿠팡이츠 음식을 더 빨리 배달하는 라이더 같은 진풍경도 벌어진다.

그럼에도 쿠팡이츠의 한계점은 머지않았다. 배달 성수기가 다가와서다. 12월부터 2월까지는 배달 음식의 활황기다. 기온이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주문은 늘어난다. 고객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배달에 지치고, 애꿎은 매장과 라이더에 울화를 쏟아붓다 지쳐 쿠팡이츠로 유입될 것이다. 과연 그 많은 주문이 치타배달로 이어질 수 있을까. 바로 쿠팡이츠가 요기요를 잡고 배달의민족을 위협할 수 있을지 판단하는 분수령이다. 배달의민족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당장은 배민라이더 확충에 열을 올리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로봇 배송 서비스를 2년 내 상용화하기 위해 시험 운행을 거듭하는 바탕이다. 역시 뛰는 배달 위에 나는 배달이 있다.

    에디터
    김은희
    안상호(프렌치 레스토랑 오너, 미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