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으로, 애정을 담아, 이다희는 시간을 걷는다.
GQ 그런데 어…, 왜 이렇게 기쁜 표정을 짓고 있어요? 엄청나게 행복한 표정으로 계속 절 보고 있어서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DH 하하하하하하. 아니, 제가 그냥 무표정으로 이렇게 듣고 있으면 (표정이 금세 가라앉았다) 되게
차가워 보이고, “기분이 안 좋으세요?” 이렇게 돼요. 그래서 더 웃으면서 얘기하려는 게 있거든요. 굉장히 차가워 보여요.
GQ 차이가 크네요. 정색했을 때 순간 흠칫했어요.
DH 화난 것처럼. 그게 아니니까 제가 더 웃고 있으려고 해요. 이렇게 웃지 않으면 되게 까칠하고 그런 줄 알아요. 물론 화나고 그러면 저도 욱하는 면도 있는데, 평상시에 그런 성격은 아니거든요. 저도 상대방이 무표정한 것보다 웃으면 기분 좋아서 마음이 열리고, 그러면 좋잖아요. 좋게, 좋게.
GQ 정말 빵긋 웃고 있어서 웃는 얼굴에 홀린다고 해야 하나 그렇네요, 네.
DH 아하하하하하.
GQ 이다희라는 배우가 어느 순간 끓는점을 넘어 확 끓어오른 물 같다 생각했거든요.
DH 왜요, 왜요?
GQ 드라마 <뷰티 인사이드>에 등장했을 때 빌런인데 빨간 립스틱을 바른 전형적인 빌런이 아니라 누디한 립의 새로운 빌런이 나타난 것 같았어요.
DH 오, 되게 신선한 표현이다.
GQ 그래요?
DH 누디 톤의 빌런.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라 신선하고 좋아요. 네, 뭔가, 그전까지 두 번째 여자 주인공은 흔히 사랑을 쟁취하려고 하고, 사랑을 받지 못한 결핍이 있어 첫 번째 여자 주인공을 괴롭히는 그런 캐릭터로 그려졌는데 <뷰티 인사이드>는 결이 달랐어요. 다른 결의 여자 서브 역할이었어요. 빌런이라 하더라도 너무 미운 밉상 역이 아니라, 자기 소신이 있고 그런 데서 나오는 모습들이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잖아요.
GQ 이다희가 연기한 강사라는 그런 캐릭터였죠.
DH 그래서 뻔한 서브 캐릭터, 뻔한 두 번째 여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캐릭터가 지닌 화려한 배경은 가져가면서 좀 특이한 시도들이라고 해야 하나? 그냥 진하고 쨍한 메이크업 으로 ‘세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깊이가 있는 어떤 스타일을 만들고 싶었어요.
GQ 그런 스토리텔링이 느껴져서 흥미로웠어요. 외견적으로 굉장히 연구했고, 그렇게 완성한 스타일이 또 배우에게 착 붙은 것 같다는.
DH 일단 과감하게 새로운 걸 찾아 나가보는 게 재밌어요. 너무 튀지 않는 선에서, 그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보여주자. 예전에는 몰랐어요. 어릴 때는 그런 거 전혀 모르고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가 점점점 살면서 이게 내 단점이구나, 이런 것들을 이렇게 커버하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예를 들면 저를 보고 몸이 말랐다, 옷들이 다 잘 맞겠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제가 뼈가 큼직큼직하다 보니까 그렇게 쉽게 맞지 않아요. 그런 단점을 보완할 수 있으면서 좀 예뻐 보이게 계속 입어보고, 찾고. 이번 <지큐> 화보 통해서 이런 컬러 마스카라도 태어나 처음 해봤거든요. 너무 재밌어요. 이렇게 하나씩 경험해가면서 나한테 이게 맞구나, 아니구나, 알게 돼요.
GQ 최근 작품으로 이렇게 말하기에는 20년 차 배우에게 실례일 것 같지만, 그래서 제겐 <뷰티 인사
이드> 때부터 이다희란 이름이 선명해졌어요.
DH 실례 아니에요. 저는 그 작품으로 기억해주시는 것만으로도 되게 고마워요. 그게 언제 작품이든 그 속에서 제 모습을 인상적으로 기억해주시는 거잖아요? 굉장히 좋아요. 실제로 <뷰티 인사이드>로 기억을 많이 해주세요. 그 전에는 작품을 거의 안 한 줄 아는 분들도 있고.
GQ 사실은 꾸준히 얼굴을 내비쳤는데.
DH 그런데 크게 기억할 만한 모습들이 아니었나 봐요. 제가 사람들 머릿속에 엄청 기억되고 그랬던 캐릭터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작품과 역할을 떠나서요. 작품이 사랑을 많이 받고 그런 걸 떠나서, 저도 시청자로 드라마를 볼 때 캐릭터적으로 깊게 인상이 남는 그런 배우들이 있거든요. 제게는 그런 면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나를 각인시키는 데 내 모습이나 내 연기가 부족하지 않았나, 그런 것들을 계속 혼자 생각했어요.
GQ 그 시간을 거쳐 <뷰티 인사이드> 강사라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차현으로 이다희표 캐릭터를 각인시켰잖아요. 그런데 최근 <루카:더 비기닝>에선 또 그 색을 확 벗어버렸죠. 자신에게 맞는 옷을 찾았으면 그 옷만 입을 수도 있을텐데, 돌변하는 데 거침없구나 싶달까.
DH 맞아요,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화려한 모습을 보여줬으니까 이제 다른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뷰티 인사이드>와 ‘검블유’ 다음에 또 화려한 캐릭터를 하면 ‘맨날 연기가 똑같네?’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루카>를 택할 땐 너무 자신감이 넘쳤던 것 같기도 해요. ‘난 다 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었는데.
GQ 다 할 수 있었는데 못 한 것 같아요?
DH 그런데 저희 엄마도 그랬어요. 너하고 좀 안 맞는 옷이다. 엄청 잘 맞는 옷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안 맞는 옷을 억지로 입은 느낌이다. 한마디로, 연기가 좀 억지스러웠대요, 엄마가. 하하하하. 확 스며드는 느낌이 아니라고. 그런데 다른 모습을 해봐서 그게 저와 잘 맞으면 좋은 거고, 아니라면 또 잘 맞는 걸 찾아서 만회하는 거죠.
GQ 평소에도 다희 씨가 묘사하는 엄마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절친 느낌이었는데 정말 그렇군요.
DH 엄마는 정말 되게 냉정해요. 연기하는 제 뒷모습만 봐도 제가 딴 생각을 했는지 아닌지 다 알아요.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친구 이상으로 많기도하고, 엄마 앞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엄마, 난 뭐가 문제인 걸까” 물으면 엄마가 그런 생각하지 말라고, 아니라고. 그런 시간이 엄청 많았죠.
GQ 오늘 내내 참 명랑해서 지난 시간 동안 큰 부침이 없는 줄 알았어요.
DH 왜 없겠어요. 굉장히 우울한 시기도 있었고 내가 매력이 없나? 배우로서 뭔가 없는 건가? 자존감이 굉장히 낮을 때도 있었고. 제가 키가 크다 보니까 감독님들이 항상 “(상대 남자 배우와) 안 맞아, 안 맞아” 그러셨거든요. 그러면 몸이라도 왜소해야겠다 싶어 다이어트를 진짜 열심히 했어요. 엄마가 소고기 육수 내서 쌀떡 조금 넣어서 끓여주는 떡국을 하루에 한 끼 먹었거든요? 그걸 엄마도 같이 했어요. 항상. 어떤 엄마인지 아시겠죠? 그러다 “엄마, 그래도 오늘 떡국 하나만 먹고 굶었으니까 소주 한잔 마실까?” 그러고 엄마랑 소주 한 병씩 먹고.
GQ 하하하하,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는 숨겨지지 않네요.
DH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죠. 그런데 늘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그래야 기회가 왔을 때 또 잘할 수 있는 것 같고, 그래야 또 다음 기회가 오고.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의기소침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걸 알아서, 그래서 저부터도 다른 사람들을 더 칭찬해야겠다, 더 표현해야겠다 생각해요. 상처 주는 행동하지 말고, 상처 주는 말하지 말고. 항상 나를 예쁘다, 사랑해주면서 상대방한테도 예쁘다, 이쁘다 해주는 사람이 되자.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사람이 되자.
GQ 무릎은 왜 다쳤어요?
DH 아, 이거요? (왼쪽 무릎에 앉은 딱지를 만지며) 씽씽이 타다가. 집 앞에 있는 씽씽이 한번 타보고 싶어서 탔는데 전봇대 피하다 넘어졌어요.
GQ 그거 타다 넘어진 거면 꽤 아팠을 텐데?
DH 지금은 괜찮아요. 그때는 좀 심각했는데 그래도 얼굴 안 다치고 여기 다쳐서 그나마. 하필 처음 타본 날 넘어져서 아쉽긴 한데 타보고 싶어서 탔다가 안 되겠단 걸 알았으니 됐어요. 이제 씽씽이는 쳐다도 안 봐요. 저건 나한테 위험하다.
GQ 경험적 판단이 단호하군요.
DH 네, 절대 타면 안 된다.
GQ 목에도 상처가 있네요? 원래 잘 구르고 그래요?
DH 하하하하, 아니 이건, 얼마 전에 목걸이 한 채로 씻다가. 할머니 반지로 만든 목걸이인데 반지 날이 조금 날카로워요. 급하게 막 씻다가 긁혔어요.
GQ 할머니 손에 자랐어요?
DH 아뇨, 그건 아닌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거든요. 갑자기. 너무나 정정하셨고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제가 한동안 활동이 없을 때는 “하유, 언제 돈 벌려고 저러나”, “엄마 아빠한테 돈도 안 벌어주고 언제까지 저렇게 있나” 이렇게 얘기하시는 게 상처가 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제가 방송 나올 때는 누구보다 챙겨봐 주시고, 항상 언제 나오냐, 몇 번에 나오냐 물어보셨다가 꼭 시간 되면 텔레비전 앞에 앉으시고, 만나면 “아유, 내 새끼 기특하다” 손 잡아주시고 안아주시고…. 그랬던 게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보고 싶어요. 많이.
GQ 금세 눈물이 고였네요. 그런 애정들이 이다희라는 사람을 채우고 있는 것 같아요.
DH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하하하하, 침대 옆에 둔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보면서 항상 “할머니, 나 다녀왔어” 그래요. 속상한 일 있으면 “할머니, 나 이런 일에 너무 상처받았고 힘들어.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게 털어내고 그래요. 그래서 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잘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소중함을 더 알게 된 거죠. 가족들, 내일, 내가 사랑하는 것들.
- 피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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