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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정우성의 여운은 길다

2019.08.30GQ

<삼시세끼-산촌편>의 정우성은 가도, 그의 ‘참견없는 호의’는 프로그램보다 더 길게 남았다.

tvN <삼시세끼-산촌편> 속 정우성의 첫 등장은 인상적이었다. 그는 오래된 음악을 틀어놓고 밖으로 나올 채비를 하는 중인 염정아를 기다리며 콧노래를 부른다. 어디서 들리는지 모를 콧노래에 염정아는 의아하다는 듯 눈이 동그래진다. 잠깐 사이에 정우성이 카메라 앞에서 벌인 일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로맨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보인다. 하지만 <삼시세끼>는 영화가 아니다. 이전까지 수많은 남성 출연자들이 진행해온, 시골을 배경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일 뿐이다.

<삼시세끼-산촌편>에는 프로그램 시즌 사상 최초로 여성 연기자들이 고정 출연자로 등장한다.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라는 쟁쟁한 여성 배우들과 함께, 정우성은 새로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삼시세끼> 시리즈에 등장했던 수많은 이성(異性)의 게스트들과 그는 사뭇 다르다. 그동안 대부분의 남성 연기자들이 여성 게스트들을 대접받는 존재, 하지만 요리와 설거지 중 어느 하나에는 익숙한 애교 많은 존재 정도로 인식했다면, <삼시세끼-산촌편>의 여성 연기자들은 정우성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것이 없다. 정우성 또한 함께 만든 음식을 먹으며 “맛있다”, “좋다”는 표현을 하며 즐거워하는 게 전부다.

하지만 정우성은 친근하다. 그는 음악을 틀고 장난을 치며 염정아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듯이, 커피를 볶고, 원두를 빻아 액체를 내리는 일련의 과정에서 느긋하고 여유롭게 세 여성과의 조화를 꾀한다. 염정아가 아무리 집채만 한 토스트를 만들지언정, 윤세아가 4인분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재료를 준비할지언정, 그것은 모두 자신이 머무는 산촌의 주인들 몫이기에 참견하지도 않는다. 까마득한 후배인 박소담과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선배임을 강조하거나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시키지도 않는다. 성큼성큼 밭에 가서 채소를 공수해오는 여성들 옆에서 “오빠가 도와줄까?” 같은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소시지를 굽고, 커피를 내리면서 땀을 닦거나 연기자, 스태프들과 농담을 즐기며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요리하는 남자가 멋지고 섹시하다’는 구호보다 훨씬 나은 구호가 정우성에게 어울린다.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멋지다.’ 애꿎은 참견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성실하지도 않은 남성. 하지만 자기 몫으로 주어진 분량에 로맨틱한 장면을 연출할 만큼 캐릭터는 또렷한 연예인. 그가 시청자들의 칭찬을 받을 만큼 뛰어난 요리 실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오히려 정우성의 다른 매력들에 눈을 돌리게 만든다. 밥 먹는 프로그램에서 요리가 뒷전이고 요리하는 사람의 태도에 더 관심이 간다는 의미다. <삼시세끼> 시리즈를 이끌었던 남성 출연자들이 놀라운 요리 실력으로 박수를 받았다면, 정우성은 여성 시청자들 앞에 가장 예의 바른 끼니를 완성해 박수를 받는다. MBC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만난 이영자가 자신을 불편하게 인식하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시종일관 신경을 쓰고 있던 것처럼. 이런 사람과 함께 먹는 밥은 맛있지 않을 수가 없다.

    에디터
    글/ 박희아('아이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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