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숫자로 본 세상

2018.03.16GQ

미국은 세 자리 수의 신용 점수 시스템을 발명했다. 중 국은 그 시스템을 극단으로 몰고 가, 빅 데이터로 개인의 행동을 추적하고, 구매 내역이나 여가 활용, 실수 등으로 점수와 순위를 매긴다. 곧 정부가 합세할 것이다. 사회 크레디트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2015년, 라자루스 류는 영국에서 3년 동안 물류를 공부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변화를 금방 느꼈다.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대금을 결제하고 있었다. 맥도날드, 편의점, 심지어 동네 음식점에서조차 상하이의 친구들은 모바일 결제 수단을 쓰고 있었다. 류는 현금이 크게 알리페이와 위챗페이, 두 앱으로 대체되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시장에서 어머니뻘의 여성이 먹을 것을 사고 스마트폰으로 결제하는 광경을 보았다. 그걸 보자 그도 시도해보고 싶어졌다. 일단 알리페이 아이디부터 얻고자 류는 휴대전화 번호와 주민등록 카드를 스캔해 제출했다. 그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가입을 해치웠다. 일단 알리페이는 평판이 좋았으며, 은행처럼 느리지도 않았다. 늘보처럼 느리면서도 고객 관리에는 무관심한 은행에 비하면 알리페이의 회원 가입은 거의 재미있을 지경이었다. 알리페이의 슬로건인 “신뢰라는 지름길”에 맞아떨어지는 경험이었다.

써보니 너무나도 편한 탓에, 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알리페이를 쓰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음식 배달 앱과 알리페이를 통한 아침 식사 주문이었다. 알리페이의 ‘내 자동차’ 메뉴로 주차 요금도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운전면허와 번호판, 몰고 다니는 아우디의 엔진 번호를 등록했다. 곧 자동차 보험 대금도 앱으로 낼 수 있었다. 악명 높은 대기를 피해 앱으로 병원도 예약할 수 있었으며, 알리페이의 사회 관계망에 친구도 추가하기 시작했다. 약혼녀(현재의 아내)와 태국 여행을 갈 때도 비행기 표 구매는 물론 여행지 레스토랑의 식사 대금 결제를 전부 알리페이로 해치웠다. 휴가를 갔다 오고 자동차 대금을 내고도 남은, 얼마 안 되는 돈도 알리페이의 머니 마켓 계좌에 예치했다. 원한다면 전기, 가스, 그리고 인터넷 요금도 알리페이의 시티 서비스를 통해 낼 수 있었다. 알리페이와 위챗이 제공하는 모바일 대금 결제 시스템에 매료된 여느 젊은이처럼 류도 지갑을 놓고 다니기 시작했다.

미국에 산다면 기업에 개인 신상 정보를 넘겨주는 데 이제 익숙할 것이다. 신용카드 회사는 당신이 언제 바에서 술을 마시거나 섹스 토이를 사는지 안다. 우버는 당신의 행선지와 경로를 안다. 하지만 알리페이는 그 전부는 물론이고 이외의 정보도 안다. 때로 슈퍼 앱이라 불리는 알리페이는 거대한 알리바바그룹의 자회사인 앤트파이낸셜이 소유한다. 한편 주 경쟁 앱인 위챗은 사회 관계망과 게임 대기업인 텐센트의 제품이다. 알리페이와 위챗은 개별 앱보다 하나의 생태계에 가깝다. 류가 스마트폰에서 앱을 열 때마다 삼성 휴대전화의 홈 스크린과 조금 비슷한 아이콘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몇몇 아이콘은 본격적인 서드파티 앱이었다. 원한다면 류는 에어비앤비, 우버, 우버의 중국 경쟁 업체인 디디를 모두 알리페이 앱 안에서 실행시킬 수 있었다. 마치 아마존이 이베이, 애플 뉴스, 그루폰,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시티은행, 유튜브를 집어삼킨 형국이었다. 물론 앱은 개별 기업과 함께 딸린 데이터도 함께 빼돌릴 수 있다.

 

어느 날 류의 알리페이 앱 홈 스크린에 새로운 아이콘이 등장했다. 즈마 크레딧(참깨 크레딧)이라 불리는 앱이었다. 알리페이의 모기업 상호처럼 즈마 크레딧도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에서 따왔다. “열려라 참깨” 주문만 외우면 문이 열리는, 보물이 가득한 동굴의 비유 말이다. 류가 아이콘에 손가락을 올리자 지구의 이미지가 그를 맞이했다. “즈마 크레딧은 개인 신용의 상징입니다”라는 문구가 아래에 딸려 나왔다. “즈마 크레딧은 빅 데이터로 객관적인 평가를 실시합니다. 점수가 높을수록 신용도도 올라갑니다.” 그 아래에는 깔끔한 흰 글씨로 “신용의 여정을 시작하세요”라는 문구가 쓰인 버튼이 있었다. 류는 버튼에 손가락을 올렸다.

1956년 전기 기술자인 빌 페어와 수학자인 얼 아이작이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에서 작은 테크 회사를 차렸다. 각자의 이름을 따서 페어, 아이작 앤 컴퍼니라 이름 지었지만 곧 약칭인 파이코라 불리게 되었다. 컴퓨터로 처리한 통계 분석을 통해 개인의 세부사항과 재정의 개인사를 간단한 점수로 환산해, 대출을 갚을 능력이나 시기를 예측하는 시스템을 창안한 게 그들의 주된 혁신이자 업적이었다. 파이코 이전의 신용 평가 기관은 건물주, 이웃, 동네 식품점 주인으로부터 들을 수 있는 소문 따위에 의존해 신용도를 평가했다. 지원자의 인종도 점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청결도, 도덕성, 말투나 습관도 영향을 미쳤다. 페어와 아이작은 알고리즘을 통한 점수 환산이 불공정한 현실에 비해 더 타당하고 과학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트랜스유니언, 익스페리언, 이퀴팩스 같은 신용 평가 업체도 결국 파이코의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그리하여 1989년 파이코는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신용 점수를 도입했고, 몇백만 명의 미국인이 대출을 받고 신용카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중국은 지난 삼십 년 동안 변변한 신용 시스템 하나 없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은행 감독 기관인 중화인민은행은 몇백만 명의 고객 정보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내실은 전혀 없어, 거의 혹은 아무 내용도 담기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 탓에 얼마 전까지도 주거래 은행이 아니면 신용카드를 발급 받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지출은 현금으로 이루어졌는데, 주택 가격이 치솟자 유지가 어려워졌다. “옛날엔 수트 케이스 1개면 충분했지만 요즘은 2개에 돈을 채워가야 집을 살 수 있어요”라고 재정 및 기술 컨설팅 회사인 카프로나시아를 이끄는 제논 카프론은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드파티 신용 점수 평가 주체가 없었으므로 믿을 만한 신용 시스템을 쌓기 어려웠다. 대신 2011년까지 스마트폰 사용자가 3억 5천6백만 명으로 늘어났다.

화면에는 깔끔한 흰 글씨로 “신용의 여정을 시작하세요”라는 문구가 쓰인 버튼이 있었다. 류는 손가락을 올렸다.

 

2011년, 앤트파이낸셜은 QR 코드를 읽을 수 있는 알리페이 앱을 출시했다. 표준 바코드보다 1백 배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기계로 읽을 수 있는 정사각형의 코드 말이다.(2013년에 출시한 위챗 페이도 비슷한 내장 스캐너를 탑재했다.) QR 코드를 읽으면 앱을 구동하거나 개인의 소셜 미디어 프로파일을 읽을 수 있다. 코드는 무덤에도 나타나기 시작했고(스캔하면 고인의 정보를 더 얻을 수 있다), 웨이터의 셔츠(스캔해 팁을 줄 수 있다)에도 등장했다. 거지도 QR 코드를 출력해 길에 세워놓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세계를 사상 최대 규모로 연결해주는 코드였다. QR 코드를 탑재한 첫해에 알리페이 모바일 결제액은 7천억 달러에 이르렀다. 2013년, 앤트파이낸셜의 임원들이 항저우 외각의 산에 모여 새로운 제품의 개발을 논의했다. 임원들은 알리페이의 데이터 수집 능력이면 개인의 경제 활동을 바탕으로 신용 점수를 계산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의 책 <앤트파이낸셜>에서 이 과정을 담아낸 기업 전문 기자 유시는 “대금 결제 데이터로 개인의 신용도를 평가할 수 있으니, 아주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쳤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앤트파이낸셜은 유시가 “삶의 모든 것의 크레디트”라 설명하는 점수를 구축하는 과정을 시작했다.

앤트파이낸셜만 데이터로 개인의 가치를 측정하려는 시도를 한 건 아니다. 우연의 일치든 아니든 2014년, 중국 정부도 “사회 크레디트”의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2014년에는 중국의 내각인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이 개인, 사업체, 심지어 정부 관료의 평판을 점수화하는, 범 국가적인 추적 시스템의 설립을 공식 발표했다. 2020년까지는 공적 및 사적 출처에서 획득한 데이터의 축적을 통해 추적이 가능하도록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데이터베이스에 오른 사람은 지문을 비롯한 기타 생체 정보로 검색도 가능했다. 인민회의는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크레디트 시스템”이라고 규정했다.

중국공산당에게 사회 크레디트는 더 온건하지만 덜 눈에 띄는 독재의 시도였다. 에너지 절약부터 당을 향한 복종까지, 인민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도록 등을 슬쩍 떠미는 게 목표였다. 런던의 국제전략연구소에서 사회 크레디트를 연구하는 사만다 호프만은 안정을 미리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되려 공산당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사회 크레디트가 이상적으로 강압적인 측면만 강조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사회 복지나 실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측면도 제공해줘야 합니다. 그 또한 전체주의의 개념에 포함되거든요.”

2015년 앤트파이낸셜은 중화인민은행으로부터 독자적인 크레디트 점수 책정 플랫폼 개발 승인을 받은 기업 여섯 군데 가운데 하나였다. 그리고 곧 즈마 크레딧이 알리페이 앱에 모습을 드러냈다. 즈마 크레딧은 한 사람의 사회적인 행동을 350~950으로 신용 점수를 환산해, 점수가 높을수록 혜택과 보상을 주는 시스템이다. 즈마 크레딧의 알고리즘은 공과금을 꼬박꼬박 내는지 여부뿐만 아니라 쇼핑 내역, 학위, 친구의 점수까지 확인한다. 페어와 아이작이 몇십 년 전에 그랬듯, 앤트파이낸셜의 임원들은 데이터 바탕의 접근이 학생이나 시골 사람들처럼 운신의 폭이 좁은 이들도 경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2억 명도 넘는 즈마 크레딧의 알리페이 사용자에게 매력은 분명했다. 데이터가 마법의 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즈마 크레딧 가입은 자발적이며, 회원 가입이 정부 시스템의 개인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지 또는 얼마나 미치는지의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앤트파이낸셜은 직원의 인터뷰를 일절 거부했지만 즈마 크레딧의 최고 관리자인 후타오의 성명을 제공했다. 성명을 통해 즈마 크레딧은 “상업 환경 및 정부가 관여하지 않는 독립적인 사회 크레디트 시스템의 신뢰 구축에 헌신합니다. 그리고 사용자의 동의 없이는 정부를 포함한 어느 서드파티에도 크레디트 점수나 기반 데이터를 공유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앤트파이낸셜은 2015년의 보도자료에서 “사회 통합 시스템 구축에 공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앤트파이낸셜은 이미 굉장히 중요한 측면에서 중국 정부와 협력했다. 즈마 크레딧의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벌금 체납자 6백만 명의 블랙리스트를 통합한 것이다. 중국 국영 통신사인 신화통신에 따르면 거대 테크 기업과 거대 정부가 단결해 1백21만 명의 체납자를 징벌하는 한편 즈마 크레딧의 점수도 깎았다.

국무원은 국가 사회 크레디트 점수 체계를 통해 많은 범법 행위 가운데 온라인 유언비어 유포죄 같은 것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으며, “심각하게 신용도가 떨어지는 이”는 표준 이하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신호를 보냈다. 한편 앤트파이낸셜은 도덕 점수를 바탕으로 한 사회 계층 분리도 시도하는 것 같다. 회사 최고 경영자 루시 펭은 책 <앤트파이낸셜>에서 즈마 크레딧이 “질이 나쁜 이들은 갈 데가 없도록, 선한 이들은 자유로이, 방해받지 않고 거리를 누빌 수 있도록” 도울 거라고 밝혔다.

즈마 크레딧의 서비스는 사회적으로 질이 나쁜 사람은 어디로도 갈 데가 없도록 만들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10년 가까이 살다가 모바일 결제가 널리 퍼지기 전인 2014년에 중국을 떠났다. 오늘날 중국에서만 5조 5천억 달러가 모바일 결제로 지불된다.(그에 반해 미국의 2016년 모바일 결제 시장은 1천1백20억 달러 수준이다.) 8월에 방문했을 때, 나는 현금에서 자유로운 중국 생활을 체험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핏발 선 눈으로 비행기에서 내린 지 몇 시간 만에 알리페이와 즈마 크레딧에 가입했다. 거래 내역이 없으므로 나는 그릇된 판단 결과 같은 기분이 드는 점수를 바로 받았다. 550점이었다.

상하이에서의 첫날, 나는 즈마 크레딧을 열어 보도에 각을 맞춰 세운 노란 자전거를 스캔했다. 중국의 자전거 공유 문화는 모바일 결제처럼 뜬금없이 나타나 상하이의 거리를 밝은 자전거로 채웠다. 물론 타고 다니다가 어디에서나 내려 둘 수 있다. 자전거의 QR 코드를 스캔하면 뒷바퀴의 잠금을 풀어주는 네 자리 숫자가 나타나는데, 시내 주행 요금은 약 15센트다. 하지만 그저 그런 신용 점수 탓에 약 30 달러의 보증금을 물어야만 했다. 또한 보증금 없인 호텔 숙박이나 고프로 렌털도 할 수 없었고 원래 공짜인 우산도 빌릴 수 없었다. 나는 디지털 하층민이었다.

중국에서 피앤쯔, 즉 야바위꾼을 향한 불신은 깊다. 세일즈맨과 전화 통화에서, 혹은 수리공이 집에 찾아왔을 때 “당신이 피앤쯔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나?”라고 자주 말한다. 물론 내가 정확하게 피앤쯔의 점수대에 속하는 건 아니지만, 즈마 크레딧이 그런 이들을 색출하겠노라고 공언했다. 기업은 자사 서비스의 사용자가 월세나 공과금을 안냈거나 법원의 블랙리스트에 오르지 않았는지 확인하고자 위기 관리 패키지를 살 수 있다. 그런 서비스는 사업체의 시간을 절약해준다. 텐센트 비디오 사이트에서 나는 즈마 크레딧의 광고를 우연히 보았다. 사업가가 등장해 지하철에서 낯선 이들을 훑어보며 “모두가 피앤쯔 같아 보인다고요”라고 탄식한다. 사원들은 미심쩍은 고객으로부터 기업을 보호하고자 회의실 벽을 하층민과 범죄자의 사진으로 도배했다. 그러는 가운데 짠! 사장이 발견한 즈마 크레딧 덕분에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직원들은 사진을 벽에서 떼어내며 기뻐한다.

즈마 크레딧은 평가가 좋은 고객에게 앤트파이낸셜이 계약을 맺은 수백 군데의 협력업체를 통해 혜택을 제공한다. 렌터카 회사인 센저우 주체는 신용 점수가 650점이 넘으면 보증금을 면제해준다. 그 대가로 센저우 주체는 데이터를 공유한다. 그래서 즈마 크레딧 회원이 차를 망가뜨리거나 지불을 거부할 경우 바로 신용 점수에 반영시킨다. 한동안 신용 점수가 750점 이상인 회원은 베이징 국제공항의 보안 검색대마저 건너뛸 수 있었다.

즈마 크레딧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2년 동안 라자루스 류의 점수는 계속 올랐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스물일곱 살 류를 토요일 오후 북적이는 상하이 중심가 쇼핑몰에서 만났다. 그는 검정 셔츠, 검정 스니커, 검정 에어 조던 반바지를 입고 갓 깎은 검은 머리를 한쪽으로 넘겨 얼굴을 강조한 남자였다. 류는 몇 년 전 천주교로 개종하면서 영어 이름인 라자루스를 택했지만 종교에 대해서 대놓고 이야기하고 다니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즈마 크레딧을 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정보를 얻을 수 있지만 혼자 확인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다. 그는 삼성 스마트폰의 알리페이 앱 배경에 언제나 깔려 있는 신용 점수도 잘 확인하지 않았다. 어차피 점수가 높았으므로 굳이 자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950점 만점에 600점에서 시작해, 그는 현재 722점이었다. 대출이나 아파트 임대는 물론, 아내와 헤어질 경우 의존해야 할지도 모르는 데이트 앱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 점수였다. 몇십 점만 더 모으면 룩셈부르크 입국 비자도 급행으로 받을 수 있다. 물론 여행을 딱히 갈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알리페이에 유리한 거래와 납부 이력을 그러모으는 동안 류의 점수는 자연스레 올라갔다. 하지만 교통 위반 과태료라도 납부를 게을리했다가는 떨어질 점수였다. 게다가 높은 점수에 딸려 오는 특혜는 소비 내역과 상관없는 행위로도 떨어질 수 있었다. 9백40만 명의 십 대가 끔찍한 대학 입학 고사를 치른 2015년 6월, 즈마 크레딧의 최고 관리자인 타오 후는 기자들에게, 신용 점수에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앤트파이낸셜이 부정 행위를 한 학생의 명단을 입수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정직한 행위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라고 그는 밝혔다. 선한 이는 자유로이 나다닌다. 나머지는 위협의 걱정을 떨쳐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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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에게 사회 크레디트는 더 온건하지만 눈에 덜 띄는 독재의 시도였다.

 

알리페이는 내 8월 26일의 움직임에 대해 거의 모두 안다. 나는 상하이의 옛 프랑스 조계지에서 오포 브랜드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서는 징안사에 세워놓았다. 그리고 오후 1시 24분에는 절 옆의 몰에서 과자를 산 뒤 근처 동네로 가는 디디 카를 타고 북서쪽으로 움직였다. 3시 11분에는 내려 슈퍼마켓에 들어갔고, 3시 36분에는 바나나, 치즈, 크래커를 샀다. 그다음에는 택시를 잡아 타고 내 목적지에 4시 1분에 도착했다. 4시 19분에는 아마존 배달에 8달러를 지불했다. 다만 수영장에서 보낸 이후의 즐거운 3시간 동안은 내가 무엇을 했는지 모른다. 다시 오포 자전거를 빌려 타고 상하이 시내를 10분 돌다가 7시 11분, 인기 있는 레스토랑에 세워 놓았을 때는 다시 추적이 가능했다. 앤트파이낸셜이 오포에 전략적 투자를 하기 때문에 알리페이는 내가 자전거를 탄 경로도 알 수 있다.

즈마 크레딧 점수의 알고리즘은 기업 비밀이다. 앤트파이낸셜은 점수에 반영되는 다섯 가지 넓은 범주를 공개하고 있지만 그뿐이다. 범주를 기준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내역에 대해서는 모호하게 밝힐 뿐이다. 여느 통상적인 신용 점수 시스템처럼 즈마 크레딧도 내 소비 내역을 모니터링하고 대출을 갚는지 본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알고리즘이 부두나 그 이하로 전락한다. ‘연결’이라는 항목은 알리페이의 내 연락처에 저장된 이들의 신용 점수를 본다. 내가 모는 차, 직장, 출신 학교 등도 감안한다. 한편 ‘행위’라는 항목은 내 소비 내역의 세부사항을 분석해 좋은 점수를 얻으려는 의도적인 시도를 솎아낸다. 즈마 크레딧의 출범 직후 최고 기술 책임자인 리 잉윤은 중국의 잡지 <카이싱>에 기저귀를 사면 점수가 올라가지만 게임을 오래 하면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알리페이에 탑재된 기부 서비스를 통해 자선 단체를 지원하면 점수가 올라간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하지만 새끼곰의 먹이를 위해 쓴 3달러를 인류애의 발로인지 아니면 점수를 올리려는 수작으로 볼지는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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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박적으로 점수를 확인하기 시작했지만 점수는 매달 갱신되므로 변동이 없었다. 나는 앱을 열 때마다 매번 불안한 오렌지색 스크린을 보았다. 배경에는 문자판을 통해 내가 잠재력의 ¼ 만을 일궈냈음을 보여주는 반원형 점수계가 있다. 포털 사이트 소후닷컴에 따르면 내 점수는 ‘평민’의 범주에 속한다. “문화 수준이 높지 않고 은퇴했거나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주로 이런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문화혁명 당시 몇 해 동안 교육을 받지 못한 노인이 많은 중국에서 이는 칭찬이 아니다.

점수를 올릴 수 있을까 싶어 어느 날 아침 택시를 타고 실외 쇼핑센터에서 서른 살의 삽화가 첸첸을 만났다. 그는 즈마 크레딧 점수가 훌륭한, 위챗 직원인 친구에게 조언을 들으라고 권해주었다. 우리는 커피를 사서 좌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즈마 크레딧 710점인 그의 앱 배경은 차분한 하늘색이었다. 그는 점수를 올리는 요령에 대해 설명했다. “친구들을 따져볼 거예요. 점수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면 유리하죠. 신용 점수가 나쁜 사람들이면 불리하고요.” 알리페이의 회원으로 가입한 뒤 나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모든 번호의 주인공에게 친구 신청을 했다. 고작 여섯 명만이 받아들였다. 알리페이의 새 친구 가운데 한 명은 내가 영어를 가르친 학생으로, 상하이의 지인 가운데 가장 부유했다. 그는 몇 개의 사업체, 차 여러 대, 고급 동네의 넓은 빌라를 소유했다. 하지만 다른 이는 늙은 재봉사로 천 무더기가 얇은 창문을 가리는, 쓰러져 가는 집의 단칸방에서 식구들과 함께 사는 이였다. 부자 친구의 후광을 재봉사가 깎아 먹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낮은 점수로 양쪽 모두를 갉아먹는 건 아닐까?

첸은 가까운 친구들이라면 모를까, 직장 동료의 점수는 모른다고 말했다. 적당한 점수를 가진 이들이 점수를 올려보려고 채팅방을 만들어 점수 높은 이들을 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그저 점수가 좋을 거라고 넘겨짚거나 친구를 맺지 않을 뿐이었다. 첸 같은 회원이 나처럼 점수가 낮은 이들을 인맥에서 차단하지는 않을 거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즈마 크레딧은 여전히 아주 새로운 제도이며 지인의 낮은 점수는 여전히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회원으로 가입한 지 얼마 안 돼서 점수가 낮은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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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통치자가 사회 공학에 느끼는 매력을 이해하려면 앱이나 빅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 몇십 년 전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1949년의 공산 혁명이 일어난 뒤 정부는 모두를 감시와 통제의 주체인 지역 노동 조직에 배당했다. 각자 이웃을 감시했고 각자의 당안, 즉 정부의 기록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은 엄청난 국가적 노력과 관리가 필요한 일이었다. 1980년대의 경제 개혁으로 몇백만 명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면서 노동 조직은 붕괴되었다. 그리고 이주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도시를 이방인과 피앤쯔가 채우게 된 것이다. 곧 중앙 정부는 바른 행위를 유도할, 게임화 가능한 정책에 대해 생각했다. “자발적인 시장 체계를 가지려면 역시 자발적인 신용 시스템이 필요합니다”라고 네덜란드 라이든 지역 연구소의 중국법 학자 로지에 크리머스가 말했다. 1990년대 말 중국 과학원의 실무자 집단이 사회 신용 시스템의 기본 콘셉트를 개발했지만 공산당이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는 기술 역량이 부족했다.

10년 전, 나는 상하이 인근 장쑤성의 시골인 쑤이닝에서 몇 주를 보낸 적이 있다. 당국은 무단횡단을 줄이고자, 지역 텔레비전에 내보낼 수 있도록 시민에게 위반자의 사진을 찍으라고 촉구했다. 그리고 2010년, 쑤이닝은 사회 크레딧 시스템을 최초로 시범 운영하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 당국은 학력, 온라인 행동 양식, 교통법 준수 여부 등의 지표로 거주민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쑤이닝의 거주민 1백10만 명 가운데 열네 살 이상의 전원이 1,000점에서 출발해 행동에 따라 점수가 가감되었다. 예를 들어 노인 식구를 보살피면 50점을 준다. 가난한 이를 도우면 10점, 매체에 보도될 만큼 두드러지게 가난한 이를 도울 경우에는 15점이 추가된다. 음주운전으로 기소될 경우 관료의 뇌물 상납 시도와 마찬가지로 50점이 깎인다. 점수가 누적되면 거주민은 A, B, C, D 등급으로 나뉜다. A급 거주민은 학교의 입학 사정이나 취직에 우선권을 주는 반면, D등급은 면허나 허가, 몇몇 사회 보장 제도의 접근이 금지된다.

쑤이닝의 시스템은 기초적인 것이었고, 몇몇 지표는 사회 크레디트 점수 반영 여부를 놓고 국가 차원의 논쟁마저 벌어졌다. 하지만 국가 차원의 활용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시험장 역할을 했다. 그리고 A~D로 나눈 등급은 난잡했지만 이후 등장한 시스템보다는 덜 난잡했다. 쑤이닝의 사회 크레디트 시험 결과를 통해 정부는 좀 더 눈에 덜 띄게 움직여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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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계를 통해 내가 잠재력의 ¼ 만을 일궈냈음을 알 수 있었다. 점수에 따르면 나는 ‘평민’이었다.

 

쑤이닝의 시도 이후 몇십 군데의 도시가 자체 시스템을 개발했다. 기술의 발전도 따라붙었다. 결국 지역의 시스템이 정부 차원의 전 국가 사회 크레디트 시스템으로 통합되었는데, 이후 더 큰 실행 문제도 딸려 왔다. 과업을 돕기 위해 정부는 테크 대기업인 바이두를 동원해 2020년까지 사회 크레디트 데이터베이스의 개발을 맡겼다.

중국의 테크 기업은 나름의 방법으로 공산당의 디지털 기술을 향한 태도를 바꿔놓았다. 블로그나 채팅방 등을 통해 인민의 삶에 쏟아져 들어오는 양태로 인터넷이 중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 공산당은 이를 위협으로 인식했다. 사람들이 마음을 터놓고 말하고 함께 모여 반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국은 이런 충동에 검열을 비롯한 공격적인 전략으로 맞섰다. 하지만 앤트파이낸셜 같은 기업은 디지털 기술이 정보를 수입 및 활용하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 보여주었다. 검색 용어를 금지하고 사이트를 폐쇄하는 것보다 정부는 이제 사기업과 얼굴 및 음성 인식 기술 및 인공 지능 검색에 협력한다.

2015년 즈마 크레딧이 출범한 지 몇 달 뒤, 알리바바의 창립자 마윈과 14명의 임원은 시진핑 주석의 첫 방미에 동행했다. 텐센트와 바이두의 경영자와 더불어 마윈은 공산당이 주관하는 준 정부 기관인 중국 인터넷 사회의 이사다. 하지만 이런 전략적 연계는 조심스러운 사안이다. 최근 중국의 규제 당국은 테크 기업을 좀 더 통제하기 위해 절차를 밟아왔다. 2017년 8월, 중화인민은행은 규제 당국이 거래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도록 모바일 및 온라인 결제 회사가 중앙 정부의 어음교환소를 거치도록 명령했다. 두 달 뒤,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인터넷 규제 당국이 주요 테크 기업의 지분을 1퍼센트씩 보유하려 시도한다고 보도했다.

사회 크레디트 파트너십 가운데는 파이코 점수처럼 광범위한 측정 시스템 개발을 중앙 은행이 감독한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앤트파이낸셜 같은 기업이 데이터를 제공하면. 최종 구조와 상관없이 광범위한 사회 크레디트 시스템을 “정부가 분명히 통제하게 될 것”이라고 앤트파이낸셜에 대한 책을 쓴 유시는 말한다. “정부는 인민의 크레디트처럼 매우 중요한 간접 자본이 한 대기업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신용도가 떨어진다는 낙인이 찍힌 중국 인민은 통합 시스템의 분위기를 이미 맛보고 있다. 42세의 기자인 류후는 2017년 5월 항공편을 예약하려 여행 앱을 열었다. 하지만 이름과 주민 번호를 입력했더니 인민대법원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어 거래를 성사시킬 수 없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 명단(문자 그대로 부정직한 자의 명단)은 즈마 크레딧에 통합된 바로 그것이었다. 2015년 류후는 기사로 명예훼손 고소를 당했으며, 법원은 8천5백위안(약 1천3백5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는 벌금을 냈고 심지어 은행의 입금표도 사진으로 찍어 담당 판사에게 메시지로 보냈다. 왜 명단에 이름이 아직도

올라 있는지 어리둥절해진 류후는 판사에게 연락했고, 그제야 잘못된 계좌번호로 벌금을 입금했음을 알았다. 그는 서둘러 다시 입금하고 법원에 확인까지 했지만 판사는 응답하지 않았다. 류후는 즈마 크레딧에 회원으로 가입하지 않았지만 블랙리스트는 다른 경로로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사실상 2류 시민으로 전락한 셈이었다. 대부분의 여행이 금지되고 기차의 최저등급 좌석만 살 수 있었다. 특정 소비재는 살 수 없고 고급 호텔에 숙박도 못 하며 은행 대출도 소액이 아니면 불가능해졌다. 게다가 블랙리스트가 공개된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류후는 이미 충칭 부시장의 부당 거래에 대한 “날조와 유언비어 유포” 혐의로 1년 동안 옥살이를 한 바 있다. 그러고 나니 그는 이 새로운, 눈에 잘 띄지 않는 처벌도 그럭저럭 버텼다. 최소한 아내와 딸과 생이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류후는 블로그를 통해 동정 여론을 이끌어내는 한편 판사에게 명단에서 삭제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작년 10월에도 여전히 명단에 남아 있었다. 블랙리스트 관리 담당 직원이 “법원에서 전혀 관리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수정되지 않아요”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류후가 즈마 크레딧의 회원이었다면 그 밖의 문제에 시달렸을 것이다. 즈마 크레딧의 구조를 감안할 때, 블랙리스트에 오르면 급격하게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일단 점수가 떨어진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통보되니, 점수에 영향을 받을까 봐 조용히 명단에서 지워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알고리즘이 알아차리니 점수는 더 떨어진다.

 

우울증 약을 먹는가? 옷을 자주 반품하는가? 데이터 브로커는 이 모든 정보와 그 이상을 수집한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미국의 신용 점수 보고 기관인 이퀴팩스의 해킹 발표를 들었다. 1억 4천5백만 명의 신용카드 정보가 노출되었다. 대부분의 미국인처럼 곧 쓴맛을 보았다. 해킹 몇 주 전에 신용카드 번호가 노출되었지만 외국에 체류 중이어서 카드 동결을 시도조차 할수 없었다. 해킹 이후에 시도했지만 그렇지 않아도 어려울 과정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퀴팩스의 웹사이트는 일부만 가동했고, 전화 통화도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필사적으로 크레딧 카르마라는 신용 정보 모니터링 서비스에 가입했다. 보호하려는 정보를 제공하는 대가로 세 평가기관 가운데 두 군데의 점수를 보여주는 서비스였다. 미국에서도 즈마 크레딧와 같은 방식, 즉 색깔별로 신용 점수를 표시해 보여준다. 내가 모르는 거래 시도가 네다섯 차례쯤 벌어졌는지 신용 점수가 몇십 점 떨어졌음을 확인했다.

그 뒤로 나는 미국과 중국, 지구의 양 끝에 있는 나라에서 신용 추적 시스템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 둘 말고도 다른 점수 체계가 존재한다. 대부분의 미국인은 두 자리 수의 점수 시스템에 노출되어 있는데, 대부분은 즈마 크레딧처럼 행위와 인구의 지표를 측정하며, 기업이 운영하지만 탈퇴는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는 대규모의 정보 중심 사회적 실험에 참여하라고 국민을 강요할 법적 근거를 갖추고 있지 않다. 하지만 나는 사기업에 매일 데이터를 제공한다. 대규모의 실험을 벌이라고 할 만큼은 신뢰하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기록하고, 아마존이나 이베이에 긴 구매 내역을 남기는 행위가 전부 여기에 해당한다. 한편 에어비앤비나 우버에서는 다른 이들을 평가하지만, 반대로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위대한 미국의 슈퍼 앱 같은 건 등장하지 않았고 데이터 브로커가 축적한 점수는 사회 통제가 이닌 맞춤 광고에 주로 쓰인다. 하지만 데이터 수집 업체는 여러 출처에서 수집한 데이터로 정체성 구축이라 일컫는 과정을 통해, 내가 남기지 않은 정보로 생기는 틈을 메운다.

우울증 약을 먹는가? 옷을 자주 반품하는가? 온라인 양식을 쓸 때 대문자를 고집하는가? 데이터 브로커는 이 모든 정보와 그 이상을 수집한다. 중국이 그렇듯 친구 때문에 불이익을 볼 수도 있다. 2012년 페이스북은 인맥 구성원의 신용 점수를 개인의 신용 평가에 참고하는 방법을 특허 냈다. 특허에 따르면 친구의 신용 점수 평균이 일정 수준 이하로 낮을 경우 나의 대출 신청이 거부당할 수 있다. 이후 페이스북은 운영 정책을 개정해 자사의 데이터로 외부 대출 업체가 신용 자격을 평가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크레디트 사업 진출 가능성은 열려 있다. (페이스북의 대변인은 신용 평가 특허에 대한 질문에 “페이스북은 실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기술도 특허를 내므로, 모든 특허가 미래 계획의 지표는 아닙니다”라고 응답했다.) “친구의 신용 점수가 떨어졌는지 확인하고, 정말 떨어졌다면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까 봐 관계를 끊는 미래를 상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두려운 일입니다”라고 메릴랜드 대학 커리 법대의 빅 데이터 전문가 프랭크 파스콸레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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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데이터 브로커는 그릇된 판단을 내린다. 어바웃-더데이터닷컴이라는 사이트에 모은 정보를 제공하는 데이터 브로커 액시옴은 나를 고졸에 “라스베이거스 도박사일 가능성이 높은” 미혼 여성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나는 석사 학위를 가진 기혼자인 데다가 복권 한 장도 산 적이 없다. 하지만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조차 없으므로 이런 평가를 수정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없다. 나는 즈마 크레딧의 알고리즘을 미국 데이터 브로커의 평가 지표보다 더 잘 안다. 바로 파스콸레가 “블랙박스 사회”에서 “반투명 거울”이라 지적한 상황이다. 중국을 떠나는 길에 나는 위챗에서 라자루스 류를 만났다. 그는 우리가 만난 이후로 8점이 오른 지마 신용 점수의 스크린샷을 보내주었다. 그의 점수는 “환상적”이었으며 글씨체도 부드러운 이탤릭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앤트파이낸셜이 KFC가 보유한 항저우의 한 콘셉트 레스토랑에 도입한, 스마일 투 페이라는 새 안면 인식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시스템은 레스토랑의 벽에 붙은 거대한 흰 스마트폰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원하는 음식에 손가락을 올리고 얼굴을 보여준 뒤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대금이 결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이 지갑을 없앴다면 스마일 투 페이는 전화기를 없애버렸다. 이제 얼굴만 있으면 된다.

류는 스마일 투 페이를 딱히 시도해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즈마 크레딧의 ‘정부 소식’ 페이지에서는 앤트파이낸셜이 지방 정부와 협력해 중국 전역에서 사용 가능한 안면 인식 기술을 시험 중이라고 밝혔는데, 단지 그것 하나 때문에 류가 불편한 것은 아니다. 류는 유학 기간 동안 안드로이드의 얼굴 인식 기능을 시험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와 얼굴 생김새가 비슷한 데다 결적정으로 사각턱이 꼭 닮은 룸메이트가 류 휴대전화의 잠금장치를 푸는 데 몇 번이나 성공한 것이다. “얼굴 인식은 아직 안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믿어도 되는지 제대로 확인한 뒤 쓰고 싶어요.”

류와 채팅하는 동안 나도 즈마 크레딧을 열었다. 내 점수는 그새 4점이 올랐다. 앱은 “점수를 좀 더 올리는 게 좋겠어요”라고 세심하게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의 새 점수 554점 옆에는 작은 녹색 화살표가 딸려 있었다. 어쨌든 점수가 올라가고 있다는 신호였다.

    에디터
    Mara Hvistendahl
    포토그래퍼
    Dan Winters
    일러스트레이터
    James Gra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