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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트 패션의 대가들이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은 비결

2018.09.12GQ

스트리트 패션의 원조, 안젤로 바크, 브랜든 바벤지엔 그리고 크리스 깁스. 대디 코어 캡과 후디, 럭비 셔츠로 어떻게 ‘쿨 키즈’를 사로잡았나.

지난 20년간, 특히 지금 패션계에서 스트리트웨어보다 영향력 있는 건 없다. 스트리트웨어는 트렌드를 좇는 쇼핑몰부터 하이 패션 런웨이까지 모든 곳에 침투하고 모두를 열광시켰다. 그리고 패션에서 가장 스릴 넘치고 극단적인 반응을 끌어내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다. 게다가 그 속도는 아직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에 지금 꼭 얘기해야 할 세 사람이 있다. 이들은 스트리트웨어로 패션계를 강타하고 옷 입는 룰을 확 바꿔놓았다. 어웨이크 NY의 안젤로 바크, 노아의 브랜든 바벤지엔, 그리고 유니온 LA의 크리스 깁스. 바크와 바벤지엔은 슈프림의 창립자 제임스 제비아와 함께 뉴욕의 다운타운 스케이트 브랜드를 10억 달러의 사업으로 끌어올렸고, 깁스는 이들의 정신을 로스엔젤레스로 가져가 미 서부 젊은이들의 패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 90년대 중후반, 이들이 처음 만났을 무렵 뉴욕 다운타운에는 스트리트 문화의 르네상스가 꽃피고 있었다. 슈프림, 스투시, 유니온은 소호의 사무실에 본사를 두고 업계를 선도했다. 이들은 패션을 좋아하는 의식 있고 선동적인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독립적인 반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더욱 대담한 야심을 갖고 더 큰 세력, 더 넓은 타깃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친다. 바크와 바벤지엔, 깁스를 초대해 그들의 크루를 촬영하고 뉴욕에서 시작한 이유, 지금까지도 티셔츠를 만들고 있는 일관성, 하위 문화에서 최정상까지 오른 스트리트웨어의 힘에 대해 물었다.

처음부터 시작해보죠. 어떻게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나요?
크리스 깁스 CG(유니온 LA 오너) 제 아내 베스가 유니온에 일자리를 구해줬어요.
브랜든 바벤지엔 BB(노아 설립자) 크리스보다 훨씬 ‘쿨’한 사람이죠.
CG 그게 96년이에요. 베스는 다운타운 문화에 완전히 녹아 있었고, 저는 아니었죠. 그때 스투시, 슈프림, 유니온 셋 모두가 한 곳을 본사 사무실로 쓰고 있었어요. 그게 다운타운의 모든 것이었는데, 저는 얘기로만 들어서 겉만 아는 정도였죠. 하지만 그 사무실은 업계를 축소해놓은 소우주 같았어요.
안젤로 바크 AB(어웨이크 NY 설립자) 1996년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진 컴퍼니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어요. 열여덟 살이었고요. 그리고 2000년에 프린스 스트리트에 있던 스투시가 우스터로 자리를 옮기면서 거기서 일하게 됐어요. 그때 슈프림의 헤드 디자이너였던 브랜든을 만났죠. 저한텐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었어요.
BB 저는 접근이 달랐어요. 얘네는 좀 더 다운타운에서 왔고, 저는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아이였죠. 당시 스트리트 브랜드 퍼버트에 있던 친구 돈이랑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래서 슈프림의 창업자 제임스 제비아가 이렇게 생각했던 거예요. ‘아, 쟤 돈이랑 일했었지. 슈프림을 확장 중이라 물건을 좀 더 만들어야 되는데, 쟤가 뭘 좀 알지 않을까?’ 근데 전 할 줄 아는 게 없었죠. 하지만 제임스는 그걸 몰랐고 그래서 괜찮았어요. 나중엔 방법을 찾아냈죠.

당시 스투시와 유니온, 슈프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CG 온갖 직업과 흥미를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인 집합이었죠. 모두가 아웃사이더였어요. 그런데 모인 사람들이 죄다 부적응자니까, 누구도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니더라고요. 브랜든이 큐어 밴드를, 안젤로가 그라피티에 대해 알려줬죠. 저는 그냥 캐나다 출신의 스케이트보드 타는 애였으니 이 사람들은 저한테 배울 게 없었지만요.
BB 어느 도시를 가도 그렇지만, 특히 뉴욕 젊은이들의 공통분모는 나이트라이프예요. 일할 때 말고는 뭘 하나? 무슨 음악을 듣고 그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은 누구지? 저는 다 경험했죠. 뉴웨이브, 하드코어, 펑크 클럽에 전부 들락거렸어요. 그러다 멜리 멜의 힙합을 들으러 가기도 했고요.
AB 내가 스물둘일 때 브랜든은 서른이었잖아.
BB 난 늙은이야.
AB 그땐 막 ‘나이 진짜 많네!’ 싶었죠. 뭐랄까, 어른이잖아요. 스물두 살에 그런 세계에 노출된다는 건 새로웠죠.
BB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마흔여섯이에요. 회사에 20대 초반인 스태프들도 있지만 항상 잘 어울려요. 같이 음악을 듣거나 스케이트보드도 타죠.

여러분이 공유한 역사를 기반으로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하나요?
CG 그 시절 굉장히 중요하게 느낀 게 있어요. 그땐 20대 초반이었으니, 결정권이 있는 사람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하나도 신경을 안 썼어요. 그런데 이제 제가 그 자리에 왔고 사람들이 의견을 구하죠. 내 의견이 중요해졌고, 자유롭게 내리는 결정에 따라 사람들이 돈을 벌거나 잃어요. 두 경우를 모두 겪은 거죠. 스태프들한테도 같은 기회를 주려 해요. 게다가 저는 확실히 나이가 들고 있잖아요. 열여덟 살짜리가 뭘 입고 싶어 하는지 알기가 점점 어려워요. 그래서 스태프들에게 결정을 맡기죠. 그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좋아요. 그 나이 땐 그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대단한 일이었으니까요.
BB 제겐 역사가 전부예요. 그게 음악의 역사든 스케이트보드의 역사든, 뭐든 간에요. 안타깝게도 요즘은 역사가 잊혀 가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자리에 도달하게 됐는지 일깨워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언제부터 모든 애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게 된 거야? 제가 열세 살 때 그건 놀림거리였다고요. 어쩌다 한순간에 전 세계가 스케이트보드를 쿨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냐고요? 아니면 옷을 좀 특이하게 입는 게 쿨하다고? 그게 새로운 현상이더라고요.
CG 그 얘길 듣고 보니 최근에 젊은 스태프랑 나눈 대화가 생각나네요. 아래층에서 박스를 싣고 있는데, 어쩌다 도와주게 됐어요. 그때 샤데이를 틀어놓고 있었는데 스태프가 갑자기 멈추더니 “저 샤데이를 좋아하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하더군요. 샤데이가 뭔가, 척도가 됐더라고요.
BB 우주의 중심이지.
AB 맞아. 샤데이 같은 사람은 다신 없어.
CG 내 말이. 그 스태프는 우리 세대 때문에 그걸 좋아하려 노력하는 거예요. 그래서 샤데이는 한 시대의 감성을 대변한 거라고 말해줬어요. 그 시대를 살고 있지 않으니 그걸 이해하기가 힘든 거라고. 그러고는 어떤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는지 보여줬어요. 그러면 젊은 친구들은 자신의 시선으로 그걸 다시 체험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BB 멋지다고 생각하는 일은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절에만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시절에 만든 음악, 옷, 정치적 사건, 인상에 남는 모든 일이 그 사람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는 거죠. 어느 바에서 버즈 컷의 여자와 처음 얘기를 나눴을 때의 짜릿함, 그때 나오고 있던 노래를 기억하게 될 거고 그 후 평생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감정이 살아날 거예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계속 흥미를 느끼려 노력하는 거예요. 언제나 호기심을 가져야 해요.

흥미를 유지하게 만드는 건 뭔가요? 왜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았나요?
BB 저한테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게 바로 저예요. 절대 철들지 않을 거고, 멈추지 않고 규범에 맹렬히 저항할 거예요. 계속해서 질문하고 앞으로 나아갈 거예요. 그걸 사랑해요. 우리의 문화를 사랑해요. 저는 스케이트보드를 사랑해요. 음악을 사랑해요. 옷을 사랑해요! 이걸 통해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통해 배운 것들을 사랑해요. 그러니 더 큰 질문은 이거죠. “왜 멈추겠는가?”, “이게 아니면 뭘 할 것인가?”
CG 제가 창조적인 표현을 하는 출구가 우연히도 패션인 거예요. 그게 아니라도 뭐든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발 디딘 곳이 우연히 여기였던 거죠.
BB 베스가 구해준 직업 말이지.
CG 그러니까.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패션에 관심도 없었어요.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지. 음악을 좋아했거든요.
BB ‘패션’이란 단어도 정확하지 않아.
CG 스타일!
BB 스타일이지. 언제나 자신만의 뭔가를 가지고 있는 거죠. 그건 오직 하나뿐이고, 그게 바로 자신인 거예요.
AB 왜 계속하고 있냐고요? 우리는 창조적인 사람으로 성장해왔고, 아주 멋진 시간이었죠. 저는 언제나 브랜든을 멘토로 생각하고, 크리스 말대로 친형 같아요. 사업이든 뭐든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크리스한테 가고, 언제나 절 도와주죠.
CG 난 그냥 브랜든한테 전화해.
AB 이 두 사람은 제게 영감을 줘요. 지난 10년간 다른 사업을 하겠단 생각은 안 해봤어요. 대신 이 플랫폼으로 진짜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해봤죠. 단순한 스타일이나 패션, 면티를 찍어내는 것보다 더 큰일요. 1년 반 전에 슈프림을 떠날 땐 제가 지금 하는 일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저는 누구에게도 휩쓸리지 않고, 여기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예요. 노아 매장에 갈 때마다 저는 그곳이 바로 브랜든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헛소리도 없고, 서핑을 좋아하고, 영국 밴드 큐어와 수지 앤 더 밴시스를 좋아하는. 그게 제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의 브랜든이에요. 크리스는 처음 만난 그날부터 언제나 흑인 인권을 지지해왔고요.
BB 진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게 된 점을 감사히 여겨요. 이들은 계속 자기 생각을 전진시키는데, 살면서 어느 순간 자신을 지워버리고 나이만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냥 모여 앉아 “이런 음악은 이해가 안 돼”, “대체 어떻게 저런 괴상한 옷을 입는 거야?” 같은 얘기나 하는. 얼마나 지루해요.

왼쪽부터 | Brendon Babenzien, Angelo Baque, Chris Gibbs

“저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환경에서 자랐어요.
흔히들 ‘깨어 있다’고 하죠. ‘깨어 있는’ 건 없어요. 멍청이가 아니면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거예요.”
― 안젤로 바크 ―

 

Awake NY

왼쪽부터 | Victor Vegas 스웨터, 아이스버그 히스토리. 팬츠, 로베르토 까발리. 슈즈, 버팔로 런던. Jon Lopez 후디, 모자, 모두 어웨이크 NY. 팬츠, 슈프림 × 리바이스. 스니커즈, 반스. Oscar Sanchez 티셔츠, 더 루어 NYC. 비니, 어웨이크 NY. 진 팬츠, 헬무트 랭. 부츠, 아솔로. 카디건은 빈티지 제품. Angelo Baque 재킷, 이세이 미야케. 모자, 어웨이크 NY. 티셔츠, 소셜 스터디즈 for 버질 아블로. 팬츠, 랄프 로렌. Lucka Ngo 재킷, 서치 & 디스토리. 모자, 어웨이크 NY. 티셔츠는 빈티지 제품. Jo Park 드레스, 다시엘 브라만. 모자, 어웨이크 NY. Anastasia Howe Bukowski 블레이저, 장 폴 고티에. 티셔츠, 어웨이크 NY. 진 팬츠, 리바이스. 슈즈, 버켄스탁. Stanley Ortega 후디, 모자, 모두 어웨이크 NY. 팬츠, 콜롬비아 스포츠웨어. 운동화, 나이키.

 

Union La

왼쪽부터 | Matt Williams 판초, 브라운스톤. 진 팬츠, 리바이스. 모카신, 비즈빔. Oronde Garrett 스웨트 셔츠, 마하리시. 팬츠, 칼하트 윕. 운동화, 나이키. Chris Gibbs 트렌치코트, 마르니. 카디건, 브라운스톤. 티셔츠, EWF by 생 루이스. 팬츠, 라프 시몬스. 운동화, 아디다스 × 라프 시몬스. Jesse Williams 재킷, Oamc. 셔츠, 질 샌더. 팬츠, 마르니. Arthur Jafa 코트, 아크로님. 블레이저, 티셔츠, 팬츠, 모두 릭 오웬스. Coire Williams 트렌치코트, 워커, 모두 비즈빔. 진 팬츠, 리바이스.

여러분은 모두 옷을 통해서 어떤 형태든 사회 운동, 액티비즘에 관여했죠.
CG 처음 저를 스트리트웨어로 끌어들인 게 뭔지 생각해보면, 물론 그땐 스트리트웨어라는 말조차 쓰지도 않았지만, 고객으로 처음 유니온 매장에 들어갔을 때, 모든 직원이 정치, 사회, 문화적 메시지가 담긴 슬로건 티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그전까지 제가 머물던 세계에선 좋아하는 스포츠팀, 스케이트보더, 밴드의 로고가 찍힌 티셔츠를 입을 뿐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예술적이고 창조적인 표현들이 적힌 티셔츠로 가득한 매장에 들어선 거예요. 그걸 입으면 누군가 내 생각을 알 수 있죠. 그게 핵심이었어요. 옷을 입는 행위를 통해 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 그게 바로 제 감정이에요.
AB 아티스트네.
CG 꺼져.
AB 스트리트 업계의 마사 그레이엄이야.
CG 야, 내가 처음 산 티셔츠가 유니온에서 산 퍼버트 티야. 절대 못 잊을 거야. 말 그대로 닳아 없어졌거든요. 흑인 꼬마 셋이 브루클린의 집 앞 계단에 앉아 있는 사진이 찍혀 있었는데, 아름다운 사진이었어요. 그리고 그 밑에 “멍청한 놈들은 지들 시선에 내가 겁먹을 거라 욕을 해대지 Suckers Be Swearing That Their Staring Is Gonna Scare Me”라고 적혀 있었어요. Ed O.G.의 랩 가사거든요. 아니, 대체 어느 가게에서 Ed O.G. 가사가 적인 티셔츠를 살 수 있겠냐고요?

도널드 트럼프가 일깨운 문화들의 영향이 있었나요?
AB 저는 도덕적 책임을 느껴요. 슈프림에 있던 말미에 많은 애들이 길에서 절 알아보곤 했거든요. 어떤 애들은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나요?”, “당신 비전 완전 죽여요. 나한테 엄청 영감을 줘요. 함께 일하고 싶어요”라는 반응이 있었죠. 사람들이 내가 뭘 하는지 안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CG 나도 네가 뭐 하는지 모르는데.
AB 내가 암을 고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쿨한 브랜드에서 사진 찍을 때 아트 디렉팅이나 할 뿐인데. 사실 정말 짜증 났던 건 사회 리더들이 대선 기간 내내 그리고 대선이 끝난 후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 그럼 내가 하지 싶더라고요. 제가 나서야 했어요. 뭐라도 해야 했죠. 그래서 처음 어웨이크 모자를 내놨을 때, 스탠딩 록 인디언 보호구역을 지키는 시위에 수익금의 반을 기부했죠. 실제로 내가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돈을 기부할 수는 있잖아요. 그리고 저를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어떤 의식을 갖도록 일깨워줄 수 있잖아요. 그 애들이 저 같은 일을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요.

안젤로, 당신도 그런 의식적인 사회 활동에 기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나요?
AB 저는 윤리적으로 올바른 환경에서 자랐어요. 흔히들 ‘깨어 있다’고 하죠. 멍청이가 아니면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거예요. 만일 운이 좋다면 자기보다 좀 더 많은 지식을 가진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고. 굉장히 진실한 친구가 있었는데 저한테 체 게바라와 아사타 샤쿠르, 엘드리지 클리버 등의 책을 소개해줬어요. 그래픽 디자인과 지금 가지고 있는 플랫폼으로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게 바로 제 의도예요. 가르치는 거요. 2백만 달러보다 더 값진 일이에요. 전 그거면 돼요. 다가오는 다음 세대에게 제가 영감을 준다는 뜻이니까요.

브랜든, 한동안 친환경 브랜드 파타고니아 로고를 웹사이트에 걸어놓은 적이 있어요. 한 브랜드의 웹사이트에서 다른 브랜드의 로고를 본다는 게 굉장히 참신했어요.
BB 저는 항상 어떤 사업을 하든, 아주 작더라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생각해요. 우리는 아주 구체적인 방법으로 그걸 구현해요. 블랙 라이브즈 매터 같은 것도 하고, 환경 관련된 것도 했고, 푸에르토리코에 기부금도 보냈어요. 푸에르토리코 관련해서는 뭔가 한 번 더 할 것 같아요. 여전히 거기서는 전기도 못 쓰고 물이고 뭐고 아무것도 구할 수가 없거든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수단으로 사업을 활용하고 있는 거예요. 그중에 사회적인 문제도 있고, 환경 관련된 문제도 있고요.

대통령의 당선이 더 많은 사회적 활동을 하도록 영향을 끼쳤나요?
BB 트럼프요? 그는 우리가 기존에 가진 모든 문제에 나타난 완전히 새로운 문제예요. 엄밀히 말하면 숨어 있었던 문제들을 노출시키고 있는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전 감사하기도 해요. 그런 사람들이 누군지 알게 됐으니까요. 어쩌면 이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종적, 경제적, 교육 분열과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일에 대해 진짜 대화를 시작해볼 수 있을지 모르죠.

고객들은 여러분의 제품을 구매함으로써, 그 제품이 가진 의미도 사는 걸까요?
CG 저희 매장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은 전부요. 이건 전혀 다른 사족이지만, 50세의 고객이 우리 매장에서 쇼핑을 한다면 그건 젊음을 다시 사는 거예요.
AB 문화를 공유하는 거죠.
CG 더 좋은 단어를 못 찾겠는데, ‘깨어 있는’ 거죠. 이런 매장에서 쇼핑을 한다는 건, 메이시즈 백화점이나 어번 아웃피터스에 가지 않기로 의식적인 선택을 했다는 뜻이에요. 그런 회사들에 대한 반감은 전혀 없어요. 다만 그런 고객들은 뭔가 다른 걸 찾고 있단 얘기예요.
CG 이들은 일종의 반문화를 찾고 있는 거고, 우리는 의류 분야의 분출구인 거죠.
BB 소비자들은 광고와 마케팅의 힘 때문에 길을 잃었어요. 조금씩 속고 있었던 거죠. 50년대부터 오로지 사도록 속아왔고 본래 소비자들에게 힘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죠. 어떤 물건을 구매한다는 건 찬성 혹은 반대표를 던지는 일이에요. 구매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여러분이 럭셔리 상품을 팔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CG 제가 생각하는 럭셔리는 말도 안 되게 사치를 부린 물건이에요. 그러니까 토끼털 브리프 케이스를 사는 거죠.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 우리는 럭셔리가 아니에요. 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정반대라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 럭셔리보다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어요. 어떤 물건, 좋은 물건을 갖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돈을 내야 할 수도 있죠.
BB 낸 만큼 가져간다는 말은 진짜예요.
CG 겉으로 보기엔 우리 제품이랑 똑같은 12달러짜리 티셔츠를 산다고 쳐요. 하지만 그건 중국에서 노동력을 착취해가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잉크로 만든 거예요. 당연히 싸죠.
BB 하지만 그 12달러짜리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서 누군가가 고통을 받는 거죠. 제 생각에 우리 제품들은 다 접근 가능한 수준인 것 같아요.

그렇게 의도하는 건가요?
BB 당연히 의도적이죠. 여기 셋 중 잘사는 집 출신은 하나도 없어요. 전 롱아일랜드에 있는 선라이즈 하이웨이 옆에서 자랐다고요. 럭셔리는 대중들에게 접근 불가능하고 저희는 보다 친근한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슈프림은 루이 비통과 협업을 하고 버질 아블로가 루이 비통 맨즈 아티스틱 디렉터가 됐죠. 이렇게 되리라 예상했나요?
AB 만일 10년 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아니라고 대답했을 거예요. 하지만 5년 전이었다면 그렇다고 답했을 거예요. 조류가 바뀌는 걸 직접 봤으니까. 슈프림과 루이 비통이 협업할 줄 예상했냐고요? 아뇨.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CG 여기 있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거예요.
BB 인기가 있고 좋은 것들은 사그라지지 않아요.
AB 하지만 그렇다고 버질 아블로가….
CG 그러니까.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AB 제 경우엔 그 덕에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의 업무가 쉬워졌어요. “나 지하에 있기 싫어”라고 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게 대화 내용이었거든요. 지하로 들어갈 거면 아예 안 들어가는 게 나아요. 그런데 지금은 라프 시몬스가 디자인한 캘빈클라인 컬렉션이랑 같은 층을 쓰죠. 저한텐 이득이었죠.

매우 과감하고 빠르게 변하는 이 업계의 미래는 어떨까요?
CG 브랜드에 좀 더 깊은 의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AB 저는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아요. 티셔츠를 더 팔기 위해 제 메시지를 바꾸지도 않아요. 나에게 솔직할 뿐이죠. 그 중심에 있는 건 우리 모두의 작업에 담긴 진실성, 정통성이에요.
BB 사람들이 우리 사업을 통해 정치적 깨달음을 얻길 원하냐고요? 네! 판매와 반응이 그걸 보여주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게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거예요. 일어나야 할 일이에요.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으면, 우린 정말 심각한 상황에 놓일 거예요.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바다를 보세요. 소비자로서 우리가 행동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린, 세상은 완전히 끝날 거예요. 그게 핵심입니다. 그저 원하든, 꼭 필요로 하든, 변화는 일어나야 해요.

 

Noah

왼쪽부터 | Beau Wollens 파카, 노아. 진 팬츠, 리바이스. 슈즈는 빈티지 제품. Vrndavana Powell 라이더 재킷, 스트레이트 투 헬. 티셔츠, 모자, 모두 노아. 스커트는 빈티지 제품. Brendon Babenzien 니트, 팬츠, 슈즈, 모두 노아. Estelle Baile-Babenzien 블레이저, 팬츠, 로퍼, 모두 노아. 티셔츠는 빈티지 제품. Fred Rasuk 티셔츠, 길단. 조거 팬츠, 노아. Amir Abdellah 재킷, 노아. Auriel Rickard 피케 셔츠, 노아. 팬츠, 노스페이스 퍼플 라벨. 스니커즈, 컨버스. Core Rubin 블레이저, 리바이스. 티셔츠, 팬츠, 모두 노아. 워커, L.L. 빈.

    에디터
    Noah Johnson
    포토그래퍼
    Jake Jones
    그루밍
    Johnny Caru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