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추천 알고리즘만으로는 부족한가? 색깔이 뚜렷한 6인의 취향으로 항해하는 넷플릭스의 바다.
윤이나 칼럼부터 에세이, 드라마부터 스탠드업 코미디까지 거의 모든 장르의 글을 쓰는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21세기에도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해서 로맨틱 코미디를 어떻게 더 잘 쓰고 잘 볼 수 있을지 고민한다.
<앨리 웡: 베이비 코브라> 앨리 웡은 뛰어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작가로, 만삭의 몸으로 작은 몸집의 아시안 여성은 웃기지 않다는 편견에 어퍼컷을 날린다. 이 미친 쇼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구성됐음을 알 수 있는 마지막 5분을 놓치지 말 것.
→ <하산 미나즈: 금의환향>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춘 보기 드문 스탠드업 코미디 쇼. 미국 이민자인 부모님을 둔 인도계 소년의 이야기가 밀레니얼 세대의 방식으로 금의환향하는 구조로 정확히 맞물릴 때의 희열은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다.
→ <플리즈 라이크 미> 우울증과 퀴어와 젊음이 뒤죽박죽된 세계에서 성장하는 스무 살 게이 조쉬와 여정을 마치면 이렇게 말하게 된다. “(기획, 연출, 각본, 주연 모두를 맡은) 조쉬 토마스는 천재다.”
→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아이비리그의 한 대학교에서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이라는 이름의 라디오 방송과 함께 벌어지는 인종 논쟁, 이를 둘러싼 일상의 정치에 대한 드라마. 이 작품에 여전히 백인 남자들의 악플이 따라오고 있다는 건 왜 드라마가 있어야 하는지를 반증한다.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클리셰 범벅인 하이틴 로맨스는 여자 주인공을 아시안계인 라나 콘도르를 캐스팅하면서 새삼스러울 만큼 새로워진다. 캘리포니아에 두고 온 첫사랑의 기억을 조작해내는 피터 역의 노아 센티네를 주목!
→ <빌어먹을 세상 따위> 세상의 끝으로 도망치는 가파른 길 위에서도, 서로의 손을 겨우 붙잡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성장하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황효진 잠깐만 봐도 불쾌한 한국 TV를 피해 넷플릭스에 피신한 전 TV 비평 전문 기자, 현 칼럼니스트. 여성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충분히 고민한 여성 성장 드라마를 좋아한다
<글로우: 레슬링 여인 천하> 여자에 대한 오래된 편견 중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게 있다. 여기선 여자의 적도, 친구도, 동료도 모두 여자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여성과 여성이 맺는 관계는 복잡할 수밖에 없고, 레슬링 쇼라는 목표를 위해 모인 여성들은 그 복잡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성들이 제대로 몸 쓰는 모습을 보는 것도 엄청난 쾌감.
→ <원데이 앳 어 타임> 쿠바 출신의 미국 이민자 가족이 주인공으로, 싱글맘과 인종차별, 페미니즘 등 현재 중요한 이슈와 모순까지 함께 다룬다. 할머니부터 손녀까지 다른 세대의 여성들이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이야기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 <빨간 머리 앤> 앤은 말이 많다. 누구나 사랑스러워할 만한 소녀도 아니다. 그 때문에 이 드라마를 좋아한다. 앤은 괴로운 일이 닥치면 자신을 코딜리어 공주라 상상하고, 애번리 이야기 클럽을 만들며, “엄청난 일을 잘해내고 싶다”고 크게 말한다. 슬프게도, 여전히 미디어에서 앤처럼 욕망을 자유롭게 드러내는 여자아이는 찾기 어렵다.
→ <해나 개즈비: 나의 이야기> 코미디란 무엇인가? 무대는 세상과 분리될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단호한 대답이 될 스탠드업 코미디. 배우이자 코미디언, 여성 성소수자인 해나 개즈비는 코미디 대부분이 약자의 자학에서 비롯되고 있었음을 지적하며, 실재하는 차별을 웃음으로 얼버무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관성적으로 코미디를 만드는 모든 사람이 봐야 할 콘텐츠.
→ <앨리 웡: 베이비 코브라> 아시안계 미국인, 출산을 앞둔 여성으로서 온갖 사회적 차별을 고도로 빈정댄다. 결혼과 임신이 여성에게 족쇄로 작용하는 이유를 분명히 밝히는 마지막 5분이 압권.
→ <그레이스> 여성 스스로 구성하는 이야기 속에서 여성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여성이 만드는 여성 서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드라마.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TV를 없애고 넷플릭스만 구독하는데도 다 볼 수 없음을 한탄 중이다. 욕망의 끝을 따라가는 콘텐츠를 찾는다.
<빌어먹을 세상 따위> 스스로 사이코패스라 생각하는 고교생 제임스는 좀 더 큰 것을 죽여보기 위해 동급생 앨리사를 만난다. 하지만 그녀에게 끌리면서 어쩌다 보니 앨리사의 친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에 동참한다. 새로운 세대의 무모한 사랑 이야기로, 사춘기의 반항과 사랑을 상상도 할 수 없는 곳으로 끌어간다.
→ <데빌맨 크라이베이비> 나가이 고의 <데빌맨>을 유아사 마사아키가 연출했다는 사실만으로 걸작에 진입. 인간과 악마의 경계를 지워버리는 상상력이 유아사의 강렬한 움직임을 만나 미학적 희열로 둔갑한다.
→ <이지> 지금 이 시대의 남녀, 아니 인간의 사랑은 어떻게 존재할까. 인간과 인간이 만나 빠져들고 헤어지는 갖가지 상황들이 단순하면서도 예리하게 그려진다. 동시대 다른 이들의 사랑을 알고 싶다면 정주행할 것.
→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공포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이며, 민담과 전설로 확장되고 변주된다. 그렇다면 역사가 미천한 미국의 호러는 어떨까? 세계의 공포가 몰려들고 뒤섞인 변종이 됐다. 미국의 엽기적인 사건 속에 그 모든 게 있다.
→ <다크 투어리스트> 어두운 욕망이 현실의 악몽으로 구현된 곳을 찾는 괴짜들의 생생한 여행기가 재미없을 리가!
→ <핫 걸 원티드> 최근 미국 포르노 업계는 아마추어의 약진으로 혼란을 겪었다. 구조적 여성 착취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포르노의 막이 내린 후에>를 같이 보면 이해가 쉽다.
김성훈 <씨네21> 기자. 논픽션 장르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고 믿는다. 실화 소재 다큐멘터리나 실화 원작 영화를 좋아한다.
<베스트 오브 에너미즈>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1968년 민주당과 공화당의 전당 대회가 열리는 동안 진보 논객 고어 비달과 보수 논객 윌리엄 F. 버클리는 피 튀기는 토론을 10차례 벌인다. 당시 시청률 꼴찌였던 방송사 ABC가 첫 시도한 생방송 정치 토론 프로그램에서 둘은 물고 뜯었고, 그 긴장감은 전쟁 영화 이상이었다.
→ <두기봉 : 경계를 넘는 감독> 중국에서 <고해발지련>을 찍을 때 두기봉 감독은 놀고 있는 중국 스태프들을 보며 시가를 연방 피워댄다. 칸의 단골 인사인 거장 감독이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생생한 한 장면. 감독과 제작자로서 홍콩과 대륙을 오가는 두기봉 감독을 따라, 홍콩의 현재를 필름에 오롯이 새긴다.
→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 열심히 일했는데 왜 저축은커녕 월세와 생활비에 허덕일까. 지금 전 세계 젊은 세대들이 하고 있는 고민이다.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보수, 아니면 진보?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한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권력이 좌우를 떠나 기업계와 금융계 엘리트에게 집중되는 게 문제라 진단했다. 권력의 재분배를 논하는 그의 경제학 강의를 들으면 속이 뚫린다.
→ <오자크> 동업자가 멕시코 카르텔의 돈을 빼돌린 탓에 오지에 가서 8백만 달러를 세탁하게 됐다는 미국 가장의 이야기. 현대 미국의 중산층이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어떻게 몰락했는지 생생하게 짚어낸 한 편의 경제학 드라마라 할 만하다.
→ <마인드헌터> 프로파일러라는 말조차도 없던 시절, 범죄자(와 범죄)의 속내를 분석한다. 드라마를 보고 난 뒤 원작인 동명의 논픽션 소설을 연달아 읽기를 권한다.
이다혜 여자, 칼럼니스트. TV가 없어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를 노트북 구독한다. 범죄물을 선호하는데, 범죄를 보면 그것이 발생한 사회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인드 헌터> 1970년대 미국, ‘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를 만든 이들을 그려낸 핀처의 드라마에 부제를 붙인다면 ‘살인자들과의 인터뷰’가 될 거다. 연쇄살인과 단발성 살인사건의 차이를 발견해가던 이 시기는 미국의 초상화라고도 할 수 있다.
→ <빨간 머리 앤> 유년기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 일본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앤 셜리의 본격 성장담.
→ <그레이스>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19세기 살인자 그레이스를 재구성한 드라마. 약자의 목소리를 지우는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사건의 진상에 수수께끼를 던진다.
→ <다크 투어리스트> 에스코바르가 살던 콜럼비아 메데인, 방사능이 유출된 일본 후쿠시마 등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찾는다. 흥미롭지만 적지 않은 경우 철없는 미국 백인 남자의 ‘호기심 천국’ 분위기를 풍긴다는 점은 알아둘 것.
→ <오쇼 라즈니쉬의 문제적 유토피아> 구도자로 알려진 오쇼 라즈니쉬의 추종자들이 미국 소도시를 합법적으로 접수하려 든 이 다큐멘터리 속 사건은 놀랍도록 기괴하다. 옴진리교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일으킨 도쿄 지하철 가스 사건과 연결해 생각해볼 만하다.
→ <나르코스>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건 미국의 관심사에 접근한다는 뜻이다. 마약왕 에스코바르의 흥망성쇠를 다룬 이 드라마가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그의 죽음 후에도 다른 마약왕 이야기로 시즌을 잇는 중이다.
유지성 프리랜스 에디터. 넷플릭스를 달고 살진 않지만 종종 본다. 어떤 도시가 적나라하게 나오는 시리즈, 리얼리티 있는 작품이 좋다.
<테라스 하우스: 도시남녀> 각지에서 모인 이들이 도쿄 ‘테라스 하우스’에 산다. 공원을 달리고 바다로 데이트를 간다. 그럴 때마다 도시가 보인다. 저 대학 야구선수는 프로가 됐을까, 저 미용사는 아직 다이칸야마에서 일할까, SNS를 뒤지기도 했다. 자체로 훌륭한 리얼리티인 한편, 진짜 ‘리얼리티’마저 궁금하게 만든다.
→ <아틀란타> 애틀란타를 배경으로, 성공을 좇는 래퍼와 매니저의 고군분투. 도널드 글러버가 제작, 각본, 연출, 연기까지 맡은 시리즈로, 그의 음악적 자아 차일디시 감비노의 ‘This Is America’가 그리는 미국의 모습을 애틀랜타로 좁혔다.
→ <간지럼의 포르노그래피> 목숨을 내놓고 찍었다고 할 만하다. 저널리스트 패리어가 ‘간지럼 참기’라는 행사를 파헤치는 동안 호기심이 호러로 변모하는 비상한 다큐멘터리.
→ <나르코스> 후일담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일이 벌어지는 경험. 입체적 인물 앞에서 선과 악이 무의미해진다.
→ <앨리 웡: 베이비 코브라> 나는 미국에 사는 동양인도, 여자도, 엄마도, 임산부도 아니다. 그러니 이 강력한 스탠드업 코미디를 꼼짝없이 듣고 있을 수밖에.
넷플릭스로 보는 미개봉 예술영화 영화를 보고 고르는 직업을 가진 조지훈 프로그래머가 넷플릭스를 보는 이유는 단 하나, 한국에 수입되지 못한 보물 같은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찾기 위해서다.
팔자 좋다는 소리를 들으며 수많은 영화를 보는 영화제 프로그래머에게 넷플릭스는 한국에선 정식으로 볼 수 없는 새로운 영화,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는 창구다. 넷플릭스가 제작하거나 전 세계 독점 배급권을 가지고 있어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에는 늘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 오리지널 리스트가 점점 흥미진진해지면서, 넷플릭스는 이 영화들을 무기로 칸 영화제를 비롯한 전 세계 영화산업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올해 칸 영화제는 넷플릭스 영화를 거부했지만, 작년 경쟁 부문에는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가 2편 있었다. 한 편은 봉준호 감독의 <옥자>였고, 또 한 영화는 <프란시스 하>를 연출한 노아 바움백 감독의 <마이어로위츠 이야기>였다. <옥자>는 간신히 극장 개봉했지만, <마이어로위츠 이야기>는 그러지 못했다. 가끔씩 문화적 맥락은 달라도 가족의 본질을 짚어내며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미국 영화를 만난다. 유쾌하고 쌉쌀한 이 영화가 그랬다.
매년 칸 영화제 수상작이 발표되면 꼭 확인하는 부문은 최고의 장편 데뷔작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이다. 데뷔작이니 유명 배우가 나올 리도, 마케팅 이슈가 있을 리도 없기 때문에, 이 상의 수상작이 국내 개봉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넷플릭스가 2016년 황금카메라상 수상작인 <디빈: 여신들>의 독점 배급권을 사들이는 결정을 했다. 그 덕에 청춘의 에너지가 펄떡 거리는 여성 영화 <디빈: 여신들>을 한국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 칸 영화제가 주목한 또 다른 작품 <아쿠아리우스>도 여성 주인공의 존재감이 빛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으나 개봉하지는 못했고,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
넷플릭스에는 극영화 외 좋은 다큐멘터리도 많다. 편견을 넘어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관객을 안내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미덕이라면, 뉴욕영화제 개막작이었던 <미국 수정헌법 제13조>은 훌륭한 작품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 금세 미국 인종차별의 역사를 일괄하게 된다. 멕시코의 범죄집단을 추적한 <카르텔 랜드>와 색소폰 연주자 존 콜트레인의 초상을 그린 <체이싱 트레인>도 추천작이다. 오리지널이든 아니든,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넷플릭스가 극장 위주의 영화산업을 변화시킬 것이란 우려와 별개로 넷플릭스가 불어넣는 활기 또한 부정하기는 어렵다. 영화제 상영 말고는 한국에선 볼 수 없는 미개봉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건, 일할 때나 쉴 때나 영화를 보는 사람에겐 놓칠 수 없는 플랫폼이란 뜻이기도 하다. 글 / 조지훈(무주산골영화제 프로그래머)
넷플릭스로 보는 음악 다큐멘터리 디제이로 활동하는 유지성 프리랜스 에디터는 음악 이면의 생생함을 즐길 수 있는 채널로서 넷플릭스를 본다.
8월 말 개봉한 다큐멘터리 <휘트니>를 보고 남은 감정은 분노였다. 가족이 개인을 몰락시켰지만 그들은 뻔뻔했다. 그런데 그걸 모르는 것 같았고 <휘트니>는 더 파고들지 않아 찜찜했다. 휘트니 휴스턴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인 단짝 로빈은 거의 생략된다. “최초로 가족이 승인한 다큐멘터리”라는 말로부터 이유를 짐작했다. 로빈은 휘트니의 가족에게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었다.
넷플릭스의 <휘트니 휴스턴: 그냥 나로 살고자>를 봤다. 남은 조각이 거기에 있었다. <휘트니>보다 재미는 덜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건 이쪽 같다. “로빈이 휘트니의 삶에 받아들여졌다면 휘트니는 살아 있을 거예요. 휘트니는 로빈 말고는 가까운 친구가 없었어요.” 휘트니 휴스턴의 전남편 바비 브라운의 말. <휘트니>가 영화적이라면 이 다큐멘터리는 침착하고 진지했다.
넷플릭스에서 음악 다큐멘터리를 즐겨 본다. 위키피디아나 올뮤직 등이 길잡이가 되지만, 잘 만든 다큐멘터리엔 문자로는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무대 밖 표정과 말투, 음악에 가려진 관계와 암투, 생생한 공간. <디 아트 오브 오거나이즈드 노이즈>는 애틀랜타 출신의 프로듀싱 팀 오거나이즈드 노이즈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래퍼가 아닌 프로듀서를 주인공 삼았다. 오거나이즈드 노이즈는 그들이 키워낸 아웃캐스트와 시 로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고, 아웃캐스트와 시 로도 각자 충분히 할 말을 한다. 하지만 균열을 봉합시키지 않고 내버려둔다. 과한 연출 대신 빈틈없는 취재가 이 작품을 꽉 채운다. 주류로 올라선 남부 힙합의 뿌리를 다룬다는 점에서 현재와의 연결성도 충분하다. <힙합 에볼루션>도 시의적절하다. 힙합 태동기 인물을 도장깨기 식으로 만나는 구성으로, 힙합 최전성기에 과거 ‘키 플레이어’의 증언을 빠짐없이 들을 수 있다.
음악에만 집중한 다큐멘터리 <프랭크 시나트라: 전부 아니면 무>엔 쉴 새 없이 음악이 흐른다. 거기엔 프랭크 시나트라의 잘 몰랐던 얼굴이 있다. 중절모를 벗은 이마가 땀에 젖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노래를 부른다.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사진과 영상”이란 문구를 내세워 네 시간이 넘는 다큐멘터리로 완성한 이유는 충분하다. 9월 21일 넷플릭스 공개 예정인 <퀸시 존스의 음악과 삶>에도 비슷한 기대가 있다. 다소 추한 말년을 보내는 그의 모습 대신 욕심 많은 재즈 뮤지션 퀸시 존스가 궁금하다. 1990년 작 <파리 이즈 버닝>은 마돈나의 ‘Vogue’로 보깅 댄스가 널리 알려지기 전, 뉴욕 LGBT 신의 드래그 및 댄스 시상식 ‘볼’을 다룬 작품이다. 용광로 같은 뉴욕 80년대 문화의 이면을 숨죽이고 지켜볼 수 있다. 매주 디스코와 하우스를 들으러 클럽에 가지만, 이런 얘기는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 글 / 유지성(프리랜스 에디터)
- 에디터
- 이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