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매도 중요하고 피부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얼굴이다. 눈, 코, 입의 형상과 크기와 배치가 성격과 운명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았다. 담박하게 촬영된 6장의 프로필 사진과 64개의 증명사진을.
인피니티 G35 스포츠
V6 3498cc 315마력, 4980만원.
적절한 입을 단정하게 다물고 그 아래 관조적인 턱까진 점잖았는데, 꼬리를 끌어 올린 눈매에서 난폭한 본성을 감추지 못했다. 정숙하게 달리다가 일단 성이 나면 꽁지에 불이 붙은 치타처럼 질주하니 늘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앞바퀴에서 시작되어 뒷바퀴를 감싸 안으며 사라지는 사이드 캐릭터 라인은 이 차가 명백한 후륜구동 혈통임을 표현하고 있다.
아우디 RS4
V8 4200cc 420마력, 1억4550만원.
범퍼를 무시하고 아래 위로 넓힌 커다란 입을 가진 이후 아우디의 운명은 달라졌다. 전작이 사무실에 앉아 조용히 일하는 엘리트였다면 현재 얼굴은 일과 잡기에 모두 능하고 운동신경까지 남다른 완벽한 쿨 가이다. 큰 입과 꼬리를 살짝 올린 눈매는 날렵한 성격을 대변한다. 여기에 달리는 자의 전유물인 벌집무늬 그릴과 알루미늄 장식까지 더해져 RS4의 성격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는‘완전’빠르다.
렉서스 LS460
V8 4608cc 380마력, 1억3000만원.
은근한 내공이 비치는 비장한 눈매를 시작으로 든든하게 돌출된 범퍼로 이어지는 라인은 충직한 믿음의 증거물이다. 그 뒤에 긴박하게 당겨진 앞바퀴는 후륜구동 세단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요, 아무런 굴곡 없이 단아하게 펼쳐진 측면 실루엣은 철판을 더욱 커보이게 만들고 유리창은 작게 만들어 날렵한 비례감을 선동하고 있다. 휠 속의 스포크가 10개도, 8개도 아닌 9개인 이유는 충격을 유연하게 분산하고 시각적 풍만함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볼보 S80 D5
직렬 5기통 2401cc 185마력, 5700만원.
우뚝 솟아올라 전진 배치된 라디에이터 그릴에서 우리는 안전을 우선하는 볼보의 고집을 읽을 수 있다. 두툼하게 올라온 그릴은 북유럽 벌판을 질주하는 순록과 충돌했을 때 그대로 앞으로 밀어내는 효과를 지녔다. 전면이 날렵하게 깎여 올라간 스포츠카가 그러한 사고를 저질렀다면 순록의 몸통이 보닛을 지나 유리창을 부수고 들어와 앞좌석에 앉은 운전자와 동승자에게 치명상을 입히게 된다.
혼다 CR-V
직렬 4기통 2354cc 170마력, 3490만원.
독특하게 배치된 얼굴은 지구에서 보던 것이 아니다. 빛의 속도로 몇 백 년을 질주해야 당도할 수 있는 소행성으로부터 공수된 외계인처럼 보이지 않나? 커다란 눈은 겁이 많아 보이지만 믿음직한 블랙으로 감싸 안은 범퍼는 헤드기어를 착용한 권투선수처럼 전투적이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2층으로 쌓아 올린 그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
BMW Z4 쿠페
직렬 6기통 2996cc 265마력, 7290만원.
날쌔고 빠를수록 극적으로 좌우가 대칭한다. 좌측과 우측이 명백하게 나뉜 BMW의 얼굴은 전면을 극명하게 대칭시켜 역동적인 아이콘을 만들어 냈다. 좌우대칭은 곧 속도다. 빠를수록 좌우가 대칭하고 느리고 힘이 세면 포클레인처럼 비대칭이다. 보닛이 길게 나온 이유는 길고 강력한 엔진이 숨쉬고 있으니 웬만하면 덤비지 말라는 일종의 경고성 메시지다.
- 에디터
- 장진택
- 포토그래퍼
- 강봉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