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 수상한 남자

2009.03.11장우철

배정남은 잘 정리가 안 된다. 모델이라고만 부르기엔 어긋난 길처럼 묘연하고, 스타일이 끝내준다는 말로는 물음표만 창궐한다. 그는 인터뷰하는 게 정말 어렵다고 했다. 감출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의상은 모두 배정남 본인 것.

의상은 모두 배정남 본인 것.

당신 키가 정확히 얼만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줄자도 준비돼 있다. 정확히 175.9다. 어떤날은 176도 나온다. 모델로 무대에 섰을 때는 크게 보는데, 평상시에보면 얼굴이 작으니까 키도 작게 본다. 부모님 키를 생각하면 170도 안 돼야 맞는데, 어릴때부터 농구를 많이 해서 그나마 좀 큰 것 같다. 솔직히 많이 아쉽다. 180 이상이고 싶다.

180 이상의 배정남이라니…. 뭔가 잘 되면 그렇게 말들 하지만 안 되면, 거봐라, 그럴 거다.

인터뷰 약속하면서 몇 차례 통화하는데 당신이 좀 변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약속을하고도 왠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무드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약속시간보다 5분 먼저올 것 같았다. 이 느낌에 대해 설명할 수 있나? 나이를 먹으니까 뭔가 현실이 현실로 보인다. 어릴 때는 뭐 어리니까 귀엽다 그러겠지만 이제 그럴 나이가 아니니까.

철들었단 얘긴가? 나름 모델 8년 차다. 그러니까 실수 안 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당신을 모델이라고만 부르기엔 좀 모호하다. 돌연변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지금도 소속사가 없는 상태인가? 2년 전에 엔터테인먼트 쪽이랑 계약했는데 매니저로사기꾼을 만나서…. 지금은 거의 해결했다.

여전히 그런 후진 일들이 일어나는군. 촌놈이라 남의 말을 좀 잘 믿는다. 2년 전까지만 해도마음이 급해서 이것 저것 해봐야지 그랬다. 또 전에는 캐스팅에 떨어져 본 일이 없었는데 몇번 떨어지면서 내공이 쌓인 달까? 좀 성격이 느긋해졌다.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난 것 같다.

이제 뭔가 좀 달라지는 건가? 원래 태생이 좀‘ 언더’라서 ‘언더’를 좋아한다. 솔직히 주위에다른 모델 출신 배우들 보면 떴다고 하겠지만, 이제 생활이 없어지는 거 아닌가? 남들의식하느라 이미지 때문에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사는 거, 생각하기가 싫다. 뭔가 뜨더라도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할 것 같다.

그건 다음에 당신이 하는 걸 보고 얘기하기로 하고. 근데 연기가 하고 싶나? 당신을 보면 아주 단순한 질문이 생각난다. 저 친군 꿈이 뭘까? 꿈이 되게 많아가지고…. 8년 차고,모델이라는 직업이 수명이 짧고. 근데 솔직히 지금 연기한다면 거의 뭐 말도 안되는 연기일 것이다. 방송이나 이런 데서 연락이 많이 온다. 근데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까.

부딪쳐 보는 것도 방법일텐데. 그러려고 하다가 사기꾼과 얽혔다. 지금은 완전 신중해졌다.

모델 8년 차라는 사실이 당신에게 의미가 큰가 보다. 처음할 때부터 편견이 많았다. 그때는 옷도 되게 루즈하고 모델도 (김)성현이 형처럼 키도 막 188 이렇게 되니까. 솔직히 단념하고 있었다. 딴 일 할 거라고. 그런데 어쩌다 보니 호빗족들이 좋아해주니까. 그냥 고맙다.

당신을 좋아하는 건 모델이라는 직업 때문일 수도 있지만 당신의 옷 입는 스타일 때문이기도하다. 그런 쪽으로는 자신 있었다. 모델은 옷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잖나? 자기가 연출할 줄알아야 워킹할 때든 촬영할 때든 뭐가 되는데, 요즘 나오는 모델들은 무슨 옷이든 다 똑같아보인다. 개나 소나 모델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키만 크면 다 모델이냐, 그런 게 너무 싫어서 깨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첫 쇼를 할 때 옷이 많이 컸다. 그래서 몰래 소매랑 바짓단을 접었다. 혹시 걸리면 혼날까봐 막 이렇게. 내가 어색하면 보는 사람들도 어색할 것 같았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운동해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작은데 뭐 보여줄 것도 없고.

오늘 입고 온 옷차림을 화보에 캡션 달듯이 한번 읊어볼까? 이 묘한 색깔의 재킷과 바지부터. 좀 언밸런스하게 입었다. 수트는 입고 싶어서 만들었는데 내 쇼핑몰에서 파는 거다. 모자랑 티셔츠는 오래전에 산 빈티지다. 포켓스퀘어는 그냥 시장 거, 멜빵은 영국 갔을 때 산 빈티지, 신발은 구찌.

양말은? 양말은 그냥 뭐 싼 거.

뭔가 배정남스러운 캡션이다. 당신의 스타일에 관한 관심이 폭발했던 것이 작년 ‘배정남청바지’였다. 그게 당신 사업은 아니었지만. 그건 불우이웃돕기 하려고 시작한 거다. 무료로 모델을 해달라고 해서 좋은 일이니까 했다.

그 일을 계기로 쇼핑몰을 시작한 건가? 그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아까 말한 그 매니저랑 소속사가 못하게 했다. 쇼핑몰은 오픈한 지 4개월째 접어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옷을 예전에 사람들이 많이 물어봤었다. 이 옷은 뭐냐 저 옷은 뭐냐, 그런 걸 많이 공유하게 됐고, 경제적인 것도 나아졌고. 스무 살 때도 잠깐 옷가게를 했었는데 옷은 안 버리고 갈 거라는 게 있었다. 계속 키워나가고 싶다.

비싼 옷과 싼 옷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솔직히 비싼 옷 만들어서 파는 건 많이 다르다. 재봉이나 안감처리나 핏도 그렇고. 근데 나는 잘사는 사람들 상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힘들게 자랐으니까 그냥 서민들이랑 같이 하는 거다.

서민이라는 말이 참 담백하게 들린다. 당신이 처음 ‘아 내가 옷을 좋아해’라고 생각한 것은 언제인가? 초등학교 때 이모집에 잠깐 살았다. 누나들이 셋이 있었는데 외모에 관심이 엄청 많았다. 그때 <논노>를 처음 봤다. 누나들이 자기 옷을 막 나한테 입히고 그랬다. 이것도 입히고 저것도 입히고. 그때부터 옷이 좋았다. 그러다 빈티지에 빠졌고.

부산이라는 도시가 당신의 스타일을 만들기에 좋은 조건이었겠다. 국제시장도 있고. 그렇다. 보물찾기 많이 했다. 지금은 못 하겠다. 그냥 ‘디피’ 잘 되어 있는 데서 산다. 귀찮다.

옷이 잘 어울리거나 스타일이 좋은 이유는 몸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얼굴 때문이라고생각하나? 진짜 체질이다. 트레이너들도 행운아라고 그런다. 일단 식탐이 전혀 없다. 살이 안찐다. 지방도 잘 안 생긴다. 며칠 동안 막 먹어도 하루 운동하면 쫙 빠진다. 오히려 나는 마른 거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운동 안 하면 살이 더 빠진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붙여야 된다. 그래서운동 하는 거다. 마르고 허약한 게 싫어서.

요즘 운동은 어떻게 하나? 일주일에 삼사일 정도, 유산소랑 포함해서 한 시간 반 정도씩.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다.

바빠서? 귀찮아서. 몸을 만들어 갈 땐 재밌다. 하나하나 발전되는 모습을 보는 건 재미있는데, 그걸 유지하는 건 지겹고 힘들다.

옷은 안 지겹나? 예전엔 빈티지를 너무 거하게 입었다. 모자 티 바지 모든 게 빈티지였다면 지금은 가볍게 믹스한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뭐든 걸치면 그림일 것 같은 당신도 실패했거나 도전하지 않는 분야가 있나? 완전 배기스타일이나 디올 같은 완전 스키니는 싫어한다. 난 여성성이 들어간 스타일이 안맞는다. 어떤 재킷을 보면 그냥 이렇게 입으면 예쁘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미리 맞춰놓거나 그러진않는다. 귀찮다. 나는 유행이 뭔지 잘 모른다. 이번 시즌 유행 컬러니 뭐 그런 거 모른다. 그냥 입고 싶은 대로 입는다.

옷 입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뭘까? 자기가 편한 걸 입어야 한다. 또 남의 시선이 두렵지 않아야 된다. 자기는 좋은데 남이 막 뭐라 그러면 다운되기도 하는데, 그럴수록 용기가 필요하다.

연기에도 용기가 필요하겠지? 남이 욕을 하든 말든 내가 좋으면 한다. 자신감 없고 나약한 애들이 꼭 남의 말 하고 그 말에 휘둘린다. 남이 욕을 하든 흉을 보든 주위 친구들은 다 나를 사랑해준다. 물론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사회생활이나 처세술이나 어른들을 만나는 일이나.

내일 여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상황이라면 어떻게 입겠나? 그냥 수트에다가 운동화를 신을 거다. 깔끔하고 깨끗한 걸로. 나는 구두가 불편하다. 구두는 뭔가 사람을 ‘올드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게 싫다.

연애하고 있나?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때니까, 이제는 뭘 해도 적은 나이가 아니니까 지금 열심히 해야 삼사십대가 체계적으로 풀릴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일이 먼저다.

올봄엔 뭘 입고 뭘 할 건가? 입던 대로 입고 일을 열심히 할 거다.

그렇다고 노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당신은 나이를 얘기하지만 배정남은 뭐랄까, 좀 놀고있어야 어울린다. 다른 건 몰라도 노는 건 절대 안 잊어버린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김정호
    스탭
    헤어 & 메이크업 / 권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