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엔진의 변화를 함축할 표현은 ‘다운사이징’이다. 자동차가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전 세계가 분주하다.
지난 3월 제네바 모터쇼에서 아우디 신형 A8의 하이브리드가 공개됐다. A8 하이브리드는 최고급 세단 엔진의 암묵적 하한선인 6기통의 벽을 허물어 화제였다. 엔진은 아우디 A4와 같은 직렬 4기통 2.0리터 직분사 터보다. 여기에 45마력짜리 전기모터를 더했다. 엔진은 겸손하지만, 제로백을 7.5초에 끊고시속 235킬로미터까지 달린다.
자동차 업계가 ‘엔진 줄이기’에 발 벗고 나섰다. 자동차가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돼 강력한 규제가 예고되면서부터다. 배기량을 줄이는 건 기본이다. 가변 밸브 시스템으로 엔진의 들숨과 날숨의 엇박자를 상쇄시키고, 직분사 시스템으로 한 방울의 연료도 헛되이 태우지 않는다. 여러 부품을 한 덩어리로 묶어 엔진의 크기와 무게를 줄이기도 한다.
일단 유럽 자동차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유럽위원회가 2012년부터 시행 예정인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때문이다. 유럽에서 판매될 신차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30g/km에 못 박았다. 2012년신차의 65퍼센트를 시작으로, 2015년엔 모든 신 차가 규제를 받는다.기준치는 나날이 강화된다. 2020년엔 95g/km까지 내려간다.
벌금도 강력하다. 기준치를 넘어선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1그램 단위로 부과한다. 누진제가 적용된다. 1그램은 5유로, 2그램은 20유로, 3그램은 45유로다. 4그램 이상은 140유로다. 2019년 이후엔 초과 1그램당 벌금이 95유로까지 뛴다. 벌금은 판매되는 차 한 대마다물린다. 초과 배출량이 많은 업체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갈 길은 멀다. 유럽 자동차 업체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여전히 160g/km 이상이다. 지난 2007년,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피아트의 평균 배출량이 146.4g/km로 가장 낮았다. 그 다음이 149.9g/km의 PSA 그룹(푸조, 시트로엥)이었다. 폭스바겐 그룹은 162.5g, BMW 그룹은 190.1g/km였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낮출 방법은 여러 가지다. 가장 효과적인게 배기량 줄이기다. 저항과 손실을 동시에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배기량을 3분의 2로 줄일 경우 연비가 15퍼센트 개선된다. 배기량을 절반까지 줄이면 연비가 25퍼센트 좋아진다. 폭스바겐 신형 제타는 엔진을 6기통에서 4기통으로 줄여 연비를 5퍼센트 개선했다.
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는 직렬 4기통 엔진을 꿋꿋이 얹고 있다. 닛산 마치는 4기통에서 3기통으로 줄였다. 내년에 선보일BMW 신형 3시리즈는 3기통 1.4리터 터보 엔진을 얹고, 피아트는 500에 2기통 0.9리터 엔진을 올릴 계획이다. 폭스바겐은 1.4리터 엔진에 터보와 슈퍼차저를 한 개씩 달아 170마력을 내는 TSI 엔진을 선보였다.
유럽 최고급 세단의 엔진도 점차 작아지는 추세다. 벤츠는 S 63 AMG의 엔진을 기존 V8 6.2리터에서 5.5리터로 줄였다. BMW는 740i의 엔진을 기존 V8에서V6 터보로 바꿨다. 미국 자동차 업체도 동참하고 있다. 올 초 열린 북미 모터쇼가 증거였다. 몇 년 전만 해도 GM은 16기통 1만3,600cc 엔진의 캐딜락 식스틴 콘셉트카를 모터쇼에 올렸다.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의 위상에 걸맞은 초대형 차였다. 올해 모터쇼에서 GM의 얼굴마담은 V6 3.6리터직분사 엔진를 얹은 XTS 플래티늄 콘셉트였다.
GM은 주력 엔진도 V6 3.0리터급으로 빠르게 바꾸는 중이다. 캐딜락 SRX와 CTS, GM대우 알페온이 이엔진을 얹는다. 배기량은 줄였지만 출력은 263~265마력으로 이전의 3.6리터 엔진을 웃돈다. GM대우 젠트라 X의 후속인 아베오 RS는 1.4리터 터보 엔진을 얹는다. 토스카 후속과 이란성쌍둥이인 뷰익 리갈 GS는 2.0리터터보 엔진이 주력이다. 포드는 미국의 빅 3 가운데 가장 적극적이다. 2013년부터 휘발유 직분사와 터보차저 두 개를 조합한 에코부스트 엔진을 신차 150만 대에 얹어 연비는 20퍼센트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5퍼센트 줄일 계획이다. 머스탱 엔진도 기존의 V64.0리터에서 3.5리터로 줄였다. 2012년 이후엔 1리터급 2~3기통 엔진을 유럽시장용 모델에 얹을 예정이다.
하나같이, 배기량을 줄이되 힘은 키웠다. 연비와 출력을 동시에 높였다. 과거엔 불가능했다. 그러나 엔진의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속속 선보이면서, 두 가지 특징을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게 됐다. 직분사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연료를 폭발이 일어나는 실린더에 직접 뿜는 기술이다. 강력하게 압축해 분사하기 때문에 연료의 입자가 곱다. 강력한와류를 형성하기 때문에 흡배기의 순환도 빠르다. 차가운 연료가 실린더를 식혀‘노킹’(이상발화) 현상도 줄인다. 혼합기의 온도가 낮은 만큼 연료의 비율도 한층 농밀하다. 따라서 완전연소에 유리하다. 나아가 정확한 타이밍에 꼭 필요한 만큼의 연료만 쓰게 된다.
직분사 시스템만으로도 연비를 8~10퍼센트까지 높일 수 있다. 동급 최고 연비의 현대 쏘 나타 2.4와 아반떼 1.6이 대표적이다. 렉서스 LS460의 V8 4.6리터 엔진은 한결 복잡하고 정교한 직분사 시스템을 갖췄다. 인젝터를 실린더와 흡기 포트 양쪽에 마련했다. 공회전 땐 실린더 분사, 흡기 땐 포트 분사, 압축 땐 직접 분사 등 상황에 따라 연료 뿜는 곳을 바꾼다.
가변 밸브 시스템의 인기도 상한가다. 엔진의 호흡을 원활히 이끌어 효율을 높이기 때문이다. 고회전 때 엔진은 이론과 달리 실제공기의 흐름이 기계의 빠른 박자에 뒤처진다. 가변 밸브 시스템은고회전 때 밸브를 좀 더 깊이 연다. 아울러 흡기 밸브를 완전히 닫기 전에 배기 밸브를 열어 공기의 흐름을 돕는다.
과급기는 줄어든 파워를 보충할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엔진에 공기를 강제로 압축해 불어넣는 장치다. 터보차저와 슈퍼차저가 좋은 예다. 과거엔 힘을 키우면 연비가 떨어졌다. 이젠 2.0리터 터보로 연비까지 챙기면서 자연 흡기3.0리터 엔진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게 됐다.BMW는 창사 이래 경주차를 제외하곤 자연흡기 엔진만 고집했다. 이젠 터보 엔진을 전략적으로 밀고 있다. 적은 배기량으로 큰 힘을 낼 수 있어서다. 과거의 과급기 엔진은 반응이 굼뜨고 연비가 나빴다. 이 같은 단점은 기술력으로 극복했다. 트윈터보를 앞세웠던BMW는 최근 터보를 한 개로 줄여가는 중이다. 무게와 원가를 줄이기 위해서다.
아우디는 까마득한 과거, 경주차에 썼던 슈퍼차저 엔진을 부활시켰다. 신형 A6의 V6 3.0리터 슈퍼차저 엔진은 V8 자연 흡기 수준인 300마력을 낸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직분사(CGI) 시스템를 얹는 한편 과거에 즐겨쓰던 슈퍼차저 대신 터보차저를 쓰기 시작했다. 연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엔진의 무게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연비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포르쉐는 911 엔진의 부품 개수를 이전보다 40퍼센트나 줄였다. 또한 회전하는 부품의 질량을 7퍼센트 줄였다. 덕분에 엔진 무게는 5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아울러 코팅으로 마찰 저항도 줄였다. 냉각을 담당하는 엔진오일의 순환을 개선한 것만으로도, 출력을 3마력 끌어올렸고 연료 소모는 2퍼센트 줄였다.파나메라의 엔진은 마그네슘 부품으로 5.4킬로그램, 알루미늄 캠샤프트 조정 장치로 1.7킬로그램를 줄였다. 크랭크의 움직임을 최적화해 2.3킬로그램, 회전질량에서 16.5킬로그램을 감량했다. 파나메라의 V8 엔진 또한 직분사 방식. 나아가 급속 엔진 가열장치를 달면서 엔진 수명을 단축시키는 시동 초기의 마찰 저항과 연료소모율, 유해가스 배출을 골고루 줄였다.
모터로 힘을 보태는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선보이면서, 엔진의 다운사이징엔 더욱 가속이 붙었다. 한세기 넘게 진화하고도 내연기관의 효율이 30~40퍼센트에 머무는 점을 감안하면, 더 작아질 여지는 충분한 셈이다. 9월 현재, 자동차의 엔진은 이런 식으로 점차 작아지다가,언젠가는 전기차에게 바통을 넘기고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 에디터
- 김기범(컨트리뷰팅 에디터)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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