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가장 유쾌하게 진보한 단 한 대의 차. 8월엔 토요타 86이다.
엔진 수평대향 4기통 2.0리터 가솔린
배기량 1,998cc
변속기 수동 6단
구동방식 후륜구동 (FR)
최고출력 203마력
최대토크 20.9kg.m
최고속도 시속 225킬로미터
공인연비 리터당 14.7킬로미터
가격 3천8백90만원(수동), 4천6백90만원(자동)
토요타 86을 보고 일렁이는 감정선엔 실체가 있다. 86은 꿈같은 슈퍼카가 아니다. 가격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목적은 분명해야 한다. 86은 정조준하고, 아랑곳없이 금색 과녁을 명중시키니까.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서 한 번 더 해보라고, 그 정도밖에 못 하냐고 몰아세운다. 운전석에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게 된다. 수련하는 기분으로, 이 드리프트를 반드시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그러니 86에겐 낮보다 밤, 고속도로보단 굽잇길, 가끔은 공터, 궁극적으로는 트랙이 어울릴 것이다.
겉은 명백한 스포츠 쿠페다. 그저 ‘꽤 달리는 차려니’ 싶다. 그러다 모든 선을 음미할 작정으로 주위를 몇 바퀴 돌다보면 곧, 이 차가 한 손아귀에 쥐이는 스물여섯 살 여자애 손목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애태워서 얻을 게 없다는 걸 깨달을 나이도 됐으니, 이제 운전석에 앉아야 옳다. 망설이지 말고, 충분히 조심스럽게.
버킷 시트는 낮게 깔려 있다. 끈적하게 달궈진 아스팔트와 엉덩이 사이에 방석 한 장만큼의 간격도 없는 것 같다. 보닛에는 스바루와 같이 만든 4기통 복서 엔진이 들어 있다. 직렬식 엔진은 피스톤들이 곧게 서 있고, V형은 V자로 서 있다. 복서 엔진은 네 개의 피스톤이 두 개씩 엇갈려 수평으로 움직인다. 가장 납작하고, 따라서 가능한 한 가장 낮은 위치에 엔진을 놓을 수 있다. 86의 키도 140센티미터 남짓이다. 무게중심이 낮은 차가 코너에서 유리하다는 건 상식이다. 운전석에선 네 바퀴의 위치를 시각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86의 크기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는 뜻이다. 손목이 한 줌인데 허리나 허벅지라고 다를까? 이 작은 몸이 허락하는 어떤 공간이든 파고들 수 있다.
시동을 걸 땐 몰랐던 86의 가능성은 좀 한적한 도로에서 곧 터진다. 엔진 회전수는 금세 7,000rpm을 넘는다. 2단, 3단, 4단에서 다시, 계속해서 한계 회전수까지 엔진을 혹사시키다 5단에 이르렀을 때 속도는 얼마였지? 2.0리터 엔진이 그래도 넉넉하게 느껴지는 건 86의 잠재력일 것이다. 경기 북서부 어딘가의 공터에서 네 바퀴로 원을 그리고, 다시 8자를 그릴 때의 파찰음. 그래도, 어떤 치기라도 다 받아줄 것 같은 믿음직스러운 소리를 낼 때. ‘자동차는 이동수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명제를 넘어서면 그제야 재미가 보인다. 손과 발, 엉덩이와 감각으로 몸과 기계를 일치시키는 순간의 쾌락을 아는 사람은 안다. 만화 <이니셜 D>에서 전 일본의 언덕을 헤집던 주인공 타쿠미가 타던 차는 AE86이었다. 토요타 86은 그 정신을 그대로 계승해 부활시킨 차다. 지금까지 너무 편안한 차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마음, 토요타의 기술력이 보장하는 재미의 한계를 가늠해보라는 자신감으로. 토요타의 판단은 옳았다. 남은 건 86을 감당할 수 있는 운전자의 실력 혹은 매 순간 86과 정면승부하는 데 필요한 정신력과 체력일 것이다. 86을 선택하는 모두에게 건투, 안전, 그리고 겸손을.
그래도 다른 차를 타고 싶다면?
현대 제네시스 쿠페 380 GT
엔진 V6 3.8 GDi
배기량 3,778cc
최고출력 350 마력
최대토크 40.8 kg.m
공인연비 리터당14.7 킬로미터
가격 3천3백17만~3천8백77만원
- 에디터
- 정우성
- 포토그래퍼
-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