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가장 유쾌하게 진보한 단 한 대의 차. 9월엔 2013 재규어 XKR-S 컨버터블이다.
엔진 V8 가솔린 | 배기량 5,000cc | 변속기 자동 6단 |
구동방식 후륜구동 (FR) | 최고출력 550마력 | 최대토크 69.4kg.m |
최고속도 시속 300킬로미터 | 공인연비 리터당 6.8킬로미터 | 가격 2억 2천3백50만원 |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빨리 달리는 차는 많다. 서울 도로가 다 트랙이라면, 좀 더 세세하게 따져봐야 옳다. 배기량과 토크, 접지력과 횡중력, 무게중심과 서스펜션 등. 상상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하는 자동차의 모든 것. 경주에선 무조건 이겨야 하고, 재규어 XKR-S는 딱 그런 자동차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까지 가속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4.4초다. 포르쉐 911 카레라 S와 비슷한 수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LP550-2보다는 0.2초 느리다. 벤틀리 컨티넨탈 GTC보다는 0.6초 빠르다. 스포츠 모드, 레이싱 모드로 엔진과 서스펜션을 바짝 조여놓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정수리에 피가 몰린다. 인간의 몸은 80퍼센트가 물이라는 걸 격하게 체감할 수 있다. 물구나무 선 것처럼 거꾸로 매달려서 빙글빙글 돌면 이런 느낌일까?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문제는 속도가 아니다. 일단 소리와 관련이 있다. 시동을 거는 순간, XKR-S는 가던 사람도 뒤돌아보게 만드는 엔진 소리를 낸다. 8기통 엔진이 내는 소리는 자극적이다. 여지없이 우렁차긴 마찬가지인데 어딘가 살짝 풀려 있다.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모든 섹시함이 거기서 나온다. 한 개 더 풀어놓은 단추, 은은하게 비치는 실루엣, 완벽하게 ‘타이트’한 차파오 가운데 칼 같은 옆트임 같은 것들. 달리면, 더 적나라해진다. 후두둑, 단추는 다 떨어진다. 실루엣만 보여주던 천도 찢겨 없어진다. 차파오? 이젠 상상하기 나름이다.
최고속도가 300킬로미터에 이르는데 최대토크가 70kg.m에 가깝다는 건 거의 모든 주행 영역에서 뒷골이 뻐근하도록 잡아채는 힘이 있다는 뜻이다. 패들시프트로 기어를 한 단 한 단 내리면서 엔진을 흥분시키다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이후의 모든 변속마다 누군가 뒤통수에 지속적으로 잽을 날리는 것 같았다. 습도가 높았던 밤, 경부 고속도로 진입로를 달릴 때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속도계는 안 봤지만, 다른 모든 차가 뒷걸음질 치는 것 같았다.
이런 자극을 결국 아름다움으로 수렴한다는 게 재규어 XKR-S의 핵심이다. 얼굴은 좀 퉁명스럽게 생겼다. 엉덩이도 옆으로 퍼져 있다. 전체적으로 양감이 도드라지는데도 공격적이고, 직선도 곡선도 과하지 않다. 전체적으로 절제하는 가운데 빨간색 브레이크, 보닛에 가로세로 선으로 뚫어놓은 숨구멍에서 그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바우어 앤 윌킨스가 만든 소리는 다른 여느 스피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날 새벽 1시 KBS 1FM은 이제 잊을 수 없게 됐다. 슈베르트 교향곡의 빠르기 그대로 가속페달을 밟다가 비로소 멈췄을 때, 누군가 맑은 목관 악기를 불기 시작했다. 주자의 숨소리가 빗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때, 가만히 지붕을 닫았다. 재규어 XKR-S 운전석에서 온전히 혼자인 새벽의 이런 아름다움.
1. 벤틀리 컨티넨탈 GTC 엔진 V8 4.0 트윈 터보 배기량 4,000cc 최고출력 507 마력 최대토크 67.3kg.m 공인연비 리터당 7.4킬로미터 가격 2억 6천8백만원 |
2.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스포츠 엔진 V8 배기량 4,691cc 최고출력 450 마력 최대토크 52kg.m 공인연비 리터당 5.3킬로미터 가격 2억 4천6백10만원 |
그래도 다른 차를 사고 싶다면?
2억이 넘는 자동차를 두고 고민할 때 고려해야 할 건‘ 취향’ 하나뿐이다. 세 자동차 모두 도로에 있는 다른 모든 차를 한 순간에 정지화면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힘과 속도가 있다. 그 와중에 벤틀리의 좌표는 영국적 품위와 고집스런 전통, 마세라티 그란카브리오 스포츠의 좌표는 이탈리아 특유의 다혈질적 감성과 피를 끓게 하는 배기음에 세밀하게 기울어 찍혀 있다. 지붕을 열고 달릴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해도, 벤틀리와 마세라티의 지향점은 확연히 다르다. 하나 같이 황홀하긴 해도.
- 에디터
- 정우성
- 포토그래퍼
- 김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