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 서인국은 많이 눌려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은 마음 놓고 웃는다. 내내 서울말로 이야기했지만, 부산 사투리로 활개를 친 ‘윤윤제’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두번 째 인터뷰예요.
한 일 년 됐나요?
6개월 됐어요.
아…. 6개월밖에 안 됐구나. 작년이 아니고 올해네요?
그 사이에 ‘윤윤제’가 있었죠.
크게 변한 건 없어요. 계속 활동을 하고 있고,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까 제가 느끼는 큰 변화는 없어요. 그런 말만 듣지.
극적이에요.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좀 극적이에요. 가수 데뷔도, 올해<응답하라 1997>로 많은 걸 뒤집은 것도.
그게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말에 되게 공감했거든요. <슈퍼스타 K>할 때만 해도 정말 가수가 될 줄 몰랐고, 활동을 하면서 좋은 점, 힘든 점도 많았고…. 당시엔 계속 감정이 변하는데, 결국 지나고 보면 그것들이 인생 스토리가 돼버리니까, 되게 재미있어요.
처음엔 윤윤제 역할을 고사했다고 했어요. 서인국이 생각보다 패기가 없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저도 잘할 자신은 있는데, 대중한테 비춰지는 서인국의 모습에 겁이 났어요. 위치적인 부분인 거죠. 그러니까 전 가수라고 하기에도 인지도가 그렇게 썩 좋은 편이 아니었고, 말 그대로 톱스타가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감독님한테 얘기했죠. “감독님, 제가 윤윤제라는 캐릭터를 하게 되면, 시청자 분들이 되게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전 차라리 방성재 역할을 하는 게….”
방성재를 했으면 어땠을까요? 솔직히, 계속 감초 역할만 했을 것 같아요.
서인국이 아닌 윤윤제라면 누굴까요?
아, 그런 얘기를 배우들끼리 한 적이 있어요. 근데, 솔직하게 얘기해서 재수 없으실 순 있는데, 다른 배우 생각이 안 나요. 스태프들도 그러더라고요. 왜냐하면, 윤제는 그냥 멋있기만 한 게 아니에요. 만약에 진짜 멋있기만 했으면 다른 배우들이 많이 연상될 텐데, 저는 윤제 캐릭터가 멋있다기보단 그냥 좀 재수 없는 사람 같았거든요. 부모님이 안 계시고 부모 같은 존재인 형을 항상 생각하고, 게다가 성시원이라는 사람한테 맨날 당하고, 뭐 그런 복합적인 부분에서 그저 ‘시크’할 순 없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뾰루퉁한 표정을 많이 지었어요. 좀 삐쳐 있는 듯한?
<응답하라 1997>은 세부가 전체를 대신할 만큼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서 서인국이 만들어낸 것도 많군요?
아무래도 그렇죠. 대본이 나오면, 특히 상대역 정은지 씨랑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 부분에서는 내 감정은 이런 식으로 표현할 것 같다, 네가 좀 참고를 해줘라, 이런 식으로 얘길 하고 은지 씨도 저한테 얘길 하고요. “만나지 마까” 하는 부분에서도 지금까지 ‘성시원’이었으면 그 말에 “야, 미쳤냐” 이럴 성격인데, 그렇게 안 했잖아요. 은지 씨한테 “난 네가 좀 여자처럼 보이면서 약간 당황하지만 가만히 받아줬음 좋겠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본능적으로 잘하는 것도 봤어요. 사투리 그리고 자다 일어난 표정 같은 거.
하하. 사람이 자다 깨면 눈이 시렵잖아요. 계속 감고 있고요. 그런 걸 한 건데 다들 좋아하시던데요? 제가 또 추구하는 부분이 약간 생활 연기거든요. 성동일 선배님이랑 같이 작업하면서 되게 옆에서 많이 보고 배운 것도 있고…. 대본을 받으면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준비를 많이 하면 그 안에서 연기를 못하겠더라고요. 왜냐하면, 이미 제가 감정을 벌써 정리를 하고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기본적인 게 캐릭터라고 생각하고, 캐릭터 잡을 때는 진짜 신중하게 생각을 좀 많이 하는 편이에요.
부쩍 어른 같네요.
으하하. 제가 이래요. 좀 많이 까불고 있죠? 물론 대한민국 성향에서 이런 말을 쉽게 하는 저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되게 재수 없다고, 뭐 그렇게 표현할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원래 좀 그러니까…. 잘 안 되든 잘되든 제 자신을 되게 믿었거든요. 믿었기 때문에 스물세 살까지 가수 지망생으로 계속 버틸 수 있었던 거고요. ‘나는 할 수 있다’ 이렇게….
<응답하라 1997> 끝나고 바로 <아들녀석들>에서 주연을 맡았어요. 맹수처럼 뭔가를 낚아챈 걸까요?
‘윤윤제’를 하면서 부족했던 점을 수정한 게 ‘유승기’니까, 더 많은 걸 거는 역할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제 감정 신이 좀 강한 게 있었는데, 부분에서 많은 분이 칭찬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박인환 선생님이 제 아버지 역할로 나오잖아요. 선생님하고 호흡을 섞고, 연기하는 것이 점점 더 자연스럽게 되더라고요. 심지어 박인환 선생님이 저 없을 때 칭찬을 되게 많이 하셨다고….
칭찬 받은 이야기를 은근히 많이 하네요.
맞아요. 흐흐흐. 해야 돼요. 그게 말하다가 자연스럽게 나오는데요, 사실 기분이 좋은 일이잖아요. 솔직히 저도 사람인지라! 게다가 선생님께서 칭찬해주셨다는데, 얼마나 자랑하고 싶겠어요.
그럼요. 올해 배우로서 ‘한 방’이 먼저 왔는데, 내 길은 연기였나, 이런 생각도 하나요?
그건 아닐 거예요. 제가 처음에 <사랑해 U> 뮤직비디오에서 연기를 했는데, 그때는 진짜 사람들이 다 연기 절대 하지 말라고, 너무 어색하다고….
데뷔 전, 울산 남자 서인국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가수 한답시고 계속 서울 올라오려고 했던 사람? 저는 서울을 거의 뭐 외국 수준으로 생각했어요, 가기 너무 어려운 곳이고 용기도 안났고요. ‘와, 서울 살면 뭔가 많이 다르겠지?’라는 그런 마음도 있었거든요. 근데 막상 서울에 올라오니 별거 없었어요.
울산이나 서울이나.
맞아요. 그냥 좀 낯선 울산의 어느 한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근데 괜한 색안경인데요, 울산에 있을 땐 떡볶이를 하나 먹어도 “조금만 더 주세요, 많이 주세요” 이렇게 애교를 떨면 아줌마가 더 주거든요. 그런데 서울은 이런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게, 서울 아줌마한테 많이 달라고 했더니 못 준다 그러시니까. 단칼에.
푸하하.
아주머니의 성격일 뿐인데…. 되게 촌놈적인 생각이죠.
사투리를 고치다 보면 서울말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걸 하는 자신을 견디는 게 더 어렵지 않아요?
어우 엄청 심했죠. 경상도 남자인데, 서울말 쓰는 거 장난 아니잖아요, 진짜. 처음엔 어우 너무 느끼하고 막…. 근데 ‘아래께’ 라는 말을, 서울에선 안 쓰더라고요. 몰랐죠. 그리고 친구들이랑 술을 먹다가 앞 접시를 시킬려고 했는데, 저도 모르게 “여기 쪼깨난 접시 하나 주세요” 이래 버렸어요.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어디예요?
전 집이 제일 좋아요.
그럴 것 같더라니.
외로운 거야, 뭐 이미 지나간 것 같고요, 요즘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가끔씩 혼자 술도 마시고요. 그냥 머그컵에다 소주 넣고, 맥주 넣고 TV 보면서 먹고 그래요.
혼자 술 마시는 장면은 으레 서러운 기억으로 연결이 되기도 하죠.
음… 우리 집이 그렇게 뭐 형편이 좋은 집이 아니어서 어렵게 서울 올라온 뒤 친구한테 좀 얹혀살았어요. 근데 그때 되게 친구가 눈치를 많이 줬거든요. 막 나가라는 식으로, 여름에 샤워하려니까 씻지 말라고도 하고…. 서러웠죠. 그래서 화장실 가서 엄청 울었죠. 안 들키려고. 쪽팔리니까.
데뷔 후에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있었지만 뭐, 당연시 여겼어요. 가수가 되기 위한 걸음이었고, 그리고 사회생활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겠지, 라고 생각했어요. ‘두고 봐라’보다는, 그냥 되게 단순하게 ‘아… 재수 없어’.
턱 성형설 같은 것도? 어우 저는 턱을 못 깎아요, 진짜. 제가 턱 관절 장애가 있거든요. 겨울 되면, 여기 전체가 아플 정도로 되게 심해서 턱에 대해서는 뭐 건드릴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심지어 제가 노래 부를 때 콤플렉스가 뭐냐면, 턱 관절 장애 때문에 턱이 약간 삐뚤어요. ‘아’ 하면 이만큼 튀어나오는 거예요. 카메라 받을 때는 이렇게 부어 보인단 말이에요. 만약에 진짜 정상이고 깎을 정도의 턱이면, 깎겠죠.
오늘 밤엔 뭐 할 거예요?
라디오 방송 갔다가 대본 외워야 해요.
재미없네요.
대사 엄청 많아요, 진짜. 아, 다음엔 포장마차에서 인터뷰해요. 그날의 마지막 스케줄로요. 술 마시면 욕도 엄청 해요, 저.
- 에디터
- 손기은
- 포토그래퍼
- 안하진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 헤어 / 현정(스타일 플로어), 메이크업/ 조히(스타일 플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