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고수의 진짜 마음 2

2013.01.07장우철

<반창꼬> 홍보로 충혈된 나날을 보내는 중, 이 인터뷰는 그날의 마지막 스케줄이었다. 그는 소주 한 병을 비웠고, 불쑥 “방황할 때 읽었던 책 얘기해도 될까요?” 물었다.

티셔츠는 준지 by 10 꼬르소 꼬모, 신발은 우영미 컬렉션.

티셔츠는 준지 by 10 꼬르소 꼬모, 신발은 우영미 컬렉션.

사람은 대개 그렇죠. 한결같을 수는 없죠. 근데 캐릭터는 일관되어야 하잖아요. 촬영하면서 부딪히진 않았어요?
감독님이랑 (한)효주 양이 당황하는 일이 많았던 거 같아요. 저는 제가 생각하는 강일이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부터 표현하니까 자유로울 수 있는데, 영화는 뭔가 필요한 장면을 편집해내는 거니까요. 결국 효주 양은 공격하고, 강일이는 방어하는 공식으로 나왔죠.

보이지 않는 부분을 생각하려는 배우에게, 단박에 눈에 띄는 얼굴이라는 점은 참 역설적이네요. 혹시 고수라는 배우는 고수라는 얼굴을 극복해야 하는 걸까요?
젖살이라고 그러죠? 제가 그게 빠졌어요. 여기 보세요, 주름도 많아요. 다 한때라고 생각해요. ‘고비드’라는 별명으로 불러주시지만 언제까지 가겠어요? 저는 그냥 제 자신을 잘 만들어가고 싶어요.

갑자기 교복을 입어야 한다면요?
하하, 고등학생요? 지금은 못하겠죠. 아, 글쎄요. 아주 긴 시간을 다루는 작품 속에서라면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고수가 서른 몇 살이라니, 새삼스럽긴 하네요.
네, 그렇게 됐어요.

세상이 빨리 돌아가나요?
어렸을 땐 성격이 굉장히 급했어요. 그래서 실은 말도 더듬었어요. 근데 저를 잘 아는 분도, 제가 서두르거나 급하게 구는 걸 본 적이 없대요. 속으론 엄청 급하거든요. 결국엔 느려보이지만요.

천천히 늙게 될까요?
아니요. 시간 앞에선.

방황 중인가요?
한참 방황할 때, 산을 많이 다녔어요. 가방 하나 메고 지리산에 갔어요. 큰 산으로 처음 간 산이 지리산이었어요. 가는데, 너무 춥더라고요. 겨울이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열 개가 넘는 봉우리를 계속 넘어가야 하는데, 너무 추운 거예요.

화이트 셔츠는 릭 오웬스, 베이지색 러닝톱은 제이 신.

화이트 셔츠는 릭 오웬스, 베이지색 러닝톱은 제이 신.

혼자서?
네, 주위를 돌아보니 온통 새하얘요. 지금 몇 개의 봉우리를 넘어 왔는지 기억도 안 나고,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그러면 얼어 죽을 거 같고, 진짜 살기 위해서 한 발 한 발 갔어요. 어떨 땐 걷고 있다는 것도 실감이 안 나요. 그런데 땀이 나더라고요. 아 그때 정말…세상을 녹이는 건 심장밖에 없구나, 내 심장밖에 없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땐 이십대였죠?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던 걸까요?
저는 이십대 때 굉장히 슬펐거든요. 그냥 왠지 모르게 슬펐어요. 그냥 뭘 보는 게 슬펐고, 그냥 살아있는 게 슬펐던 것 같아요. 예, 그랬어요. 그래서 최대한 내색 안 하려고,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게 제 숙제였던 것 같아요. 한겨울에 산에 가면 의지할 건 내가 준비한 가방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그 가방을 잘 싸려고 노력하는 거 같아요. 일상에서도요.

고수는 그래서 앞으로 가고 있나요?
누구한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챙기고 해결하고 그렇게 자문자답하는 경험이 많았어요. 지금 이 자리도 마찬가지예요. 인터뷰를 하는이 자리도 그냥 자연스레 들여다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요. 한 잔 더 주시겠어요? 음, 예전엔 현실과 캐릭터 사이에서 혼란을 심하게 겪었어요. 저는 다 내놓고 몰입하는 경우라 좀 위험했던 것 같기도 해요. 스릴러를 할 땐 스릴러를 아예 안 봤어요. 뭔 일 날 것 같아서. 그런데 요즘은 막연하지만 시야가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이 들면 조금 편안해지죠.
네, 맞아요. 예전엔 내가 이 인물을 이렇게 연기하면 누군가 보겠지, 보면서 뭔가 느끼겠지 그렇게 생각했어요. 이제는 뭔가 좀 열정적으로 뭔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부터 저는 열정적인 사람을 굉장히 부러워했거든요. 그러면서도 내가 스스로 열정적인 모습이 되는 건 막 부끄러웠고요.

<런닝맨>에서 배추 들고 열심히 뛰었다면서요. 열정 그 자체였다던대요?
흐흐, 여전히 좀 주저해요. 하지만 주저하고만 있진 않는 거죠.

자신을 좀 알 것 같나요?
음, 오늘 이렇게 말을 하다보니 좀 알 것 같기도 한데, 글쎄요. 아, 한 병으로는 모자라다.

    에디터
    장우철
    포토그래퍼
    목정욱
    스탭
    스타일리스트/권혜미, 헤어 / 채수훈(Chae Soo Hoon), 메이크업/ 김다름, 어시스턴트/ 이상민, 정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