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뭔가 보인다

2013.03.14GQ

영화감독 이재용은 처음으로 되돌아 왔다. “원래 하고 싶었던 게 보이니까요.”

셔츠와 턱시도 모두 비아, 포켓스퀘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시계는 까르띠에. 제품 협찬/ 미키마우스 빈티지 뷰마스터는 원데이.

셔츠와 턱시도 모두 비아, 포켓스퀘어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시계는 까르띠에. 제품 협찬/ 미키마우스 빈티지 뷰마스터는 원데이.

<여배우들>도 그렇고,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이하 <뒷담화>)도 보통 영화감독들은 안 하는 영화다. 남들이 안 하는 영화라기보단 내가 안 본 것을 하고 싶다. <여배우들>이나 <다세포 소녀>는 실험이랄까, ‘이런 것도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며 만들었다. 정형화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이를테면 <다세포 소녀>란 영화는 <스캔들>과 너무 다르고 아주 엉뚱해서 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내가 <정사>와 <스캔들>을 만들었으니까 나를 상업적인 감독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에겐 장르 영화를 하는 것이 오히려 파격적인 일이었다. 변혁 감독과 함께 만든 첫 단편영화 <호모 비디오쿠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처음부터 실험적인 영화를 하고 싶었다. 오히려 <여배우들>이나 <다세포 소녀> 같은 영화가 영화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하고 싶었던 영화다.

<다세포 소녀>는 사실, 너무 새로운 것을 보여주려고만 한 영화 같다. 그 영화는 <순애보>에 가까운 영화다. 사회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아웃사이더에 대한 이야기니까. <순애보>엔 미혼모, 재수생, 포르노 배우,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면, <다세포 소녀>는 가난한 소녀, 복장 도착자, 외눈박이, 동성애자 같은 사람들이 만나는 지점이다. 특히 <다세포 소녀>는 비주류에 대해, 우스꽝스러워도 뮤지컬과 같이 가벼운 방식으로 풀고 싶었다.

<순애보>의 경우 화면의 대칭과 구조를 작정하고 만든 영화 같았다. 그 표현 방식이 담담하면서 간결해 소수자의 이야기가 부담 없이 표현됐다면, <다세포 소녀>의 경우 너무 은유적으로 층층이 쌓아놓아 일종의 과시같이 보였다. 나는 늘 몇 가지 층이 있는 게 좋다. 안 읽히면 안 읽힌 대로, 읽히면 더 재미있게 보는 걸 노린다. 사실, <다세포 소녀>도 처음 제안이 왔을 때, 이 영화는 너무 컬트 팬을 위한 영화가 될 것 같다고 고사했다. 그래도 내가 아닌 걸 할 수는 없다. 관객들은 <다세포 소녀>를 <몽정기>나 <색즉시공>과 비슷하게 골 때리는 고교생들의 질펀한 섹스 코미디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니 화가 났겠지. 누구에게나 팔천 원은 소중하니까. 변명이겠지만, 당시 방학이 되면서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다세포 소녀>에 빵점 주고 오자는 놀이가 실제로 있었다. 그리고 김옥빈이 말을 잘못한 구설이 겹치면서…. 게다가 영화 <괴물>이 개봉했다. 여러 가지가 악재가 겹쳤다.

일부 동성애자들은 <다세포 소녀>에 대해 “불편하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런 얘기가 있었나? 거기다 내가 대꾸했나? 글쎄…. 그게 다 콤플렉스에서 비롯되는 거다. 그냥 즐기면 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든 부분에서 너무 그런 것 같다. 이를테면 진중권 씨가 “<디 워>가 너무 후지다” 하면, 그걸 본 우리를 후지다고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사람들이다. 물론 그건 후지다. 하지만 무엇을 욕할 때는 본질을 봐야 되는데 일단 발끈부터 한다. 모든 걸 자신의 이야기로 이입해버리지 않나? 같이 그냥 “So what?”이라고 하면 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소수자에 대해 표현했지만 대변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대변은 아니라지만…. 내 안에선 그런 곳을 따듯하게 보려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자 하는 자정작용이 늘 있지만 그들을 대변하는 건 전혀 아니다. 내가 소수자에 대해 악의 없이 얘기하기 때문에 괜찮지 않을까? 사실, 나는 자기비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비하가 오히려 재밌지 않나? 먼저 자기비하를 하면 그건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나다. 한데, 그런 걸 들춰냈다고 공격했다고 생각하고, 그걸로 서운해하면, 누군가는 또 놀리지 않을까? 우리가 극복해야 할 정서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만든 <뒷담화>엔 나를 비하하는 내용이 많다.

<<뒷담화>는 좀 복잡한 영화다. 갤럭시 노트 홍보를 위해 만든 단편영화 <십분 만에 사랑에 빠지는 방법>을 만드는 과정을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단편영화는 영화감독인 하정우가 원격으로 영화를 찍는 내용인데, 당신은 그 영화를 원격으로 만들면서 다시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든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 형식에 집중하는 비디오 아트에 가깝지 않을까? 고백하자면 맞다. 이 영화는 ‘유레카’처럼 ‘원격으로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트위터 보고, 자료 검색하며 앉은 자리에서 영화의 모든 걸 준비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실제로 영화를 원격으로 찍으면 기발하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갤럭시 노트 프로모션용 단편영화의 주제를 원격으로 영화를 찍는 감독으로 정했다. 그러다가 단편으로만 이 내용을 끝내기엔 아쉽다고 생각해서, 단편영화를 찍는 걸 원격으로 찍고, 그 과정도 영화로 만들자고 생각한 것이다.

영화 중간에 히치콕의 말을 삽입했다. “극영화의 신은 감독이고, 다큐멘터리의 감독은 신이다.” 이 영화는 극영화를 만드는 당신이 주인공인 동시에 다큐멘터리다. 내가 단편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우리끼리 하자. 감독이 뭐 알겠나?”이다. 영화라는 게 감독이 진짜 모를 수도 있고, 적당한 합의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감독은 마치 신처럼, 확 디렉션을 주기도 하지만, ‘내 수가 읽히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하며 만드는 게 영화다. 사실, 스태프들도 알 사람은 안다. 혹은 감독을 절대자로 믿는 게 편하지 않을까?

영화에선 여러 가지 돌발 상황도 있고, 중요한 반전도 있다. 이런 것들은 전부 당신이 설정해서 지시한 것인가? 모든 상황이 연기일 수도 있고, 진짜일 수도 있다. 정말로 현장이 험악해진 부분도 있다. 다들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루어진 게 하나도 없으니까, 이러다가는 망하겠다고 생각해서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반전을 만들었다. 만약 그 반전이 없었으면 이 영화는 큰일날 뻔했다.

원래 단편영화를 의뢰한 삼성전자 쪽에선 별말 없었나? 얘기했다. 어쨌든 우리는 나름 프로페셔널하게, 갤럭시 노트 프로모션을 위한 단편영화는 문제없이 납품할 생각이었다. 나한테는 사실 <뒷담화> 장편이 중요해서 이 프로젝트를 결국 수락한 거다. 하지만 이 두 편을 찍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무모한 프로젝트인지 알 수 있었다.

자신에 대한 비난을 영화에 많이 담았다. 좀 위로해달라는 애교인가? 위로나 애교는 아니고 다 아는 사실이니까. “내가 잘나갔는데, 잘 안 나가나?”, “<다세포 소녀> 역대 최악의 평점?”, 이런 걸 감추고 싶지 않다. 어떻게 보면 애교일 수도 있겠다. “나를 가지고 농담해도 좋다”라는 애교. 자기를 패러디하거나 비하할 때가 진정한 코미디인 것 같다. 그냥 드러내 뒤에서 웃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콤플렉스는 없다.

다른 감독들과 비교해서 콤플렉스는 없나? 전혀 없진 않지만, 아주 크진 않은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다’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남이 이뤄놓은 거에 대한 부러움은 없다.

극영화를 안 하는 이유도, 잘할 수 있으니 안 하는 건가? 오만일 수 있는데, 내가 할 줄 알기 때문에 안 하는 면도 있다. 어떤 코미디들을 보면 안 웃기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떤 걸로 되게 잘돼도, ‘난 저걸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한다. <뒷담화>도 1993년에 하려고 했던 콘셉트와 비슷하다. 결국은 그냥 초심으로 돌아간 거다. 내 근원적인 관심은 ‘이런 것도 영화가 될 수 있어’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건 영화감독보다는 미술가의 태도 같다. 사실 어쩌면 스스로도 컨셉추얼 아트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예전에 했던 <한 도시 이야기>도 하루 동안 서울의 하루를 칠백여 명이 사백 대의 카메라로 담았다. 그때도 행위가 중요하지 결과가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사실 이 영화도, 홍보할 때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그냥, “아 영화고요, 재미있자고 만든 거고요”라고 하지만 사실은 이게 해프닝이고 퍼포먼스다.

그렇다면 <다세포 소녀> 이후부터 원래 하고 싶었던 걸 하는 건가? 관심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극영화에 대한 동경도 있고,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는 부분도 있다. 대중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다가도 ‘어휴, 차라리 혼자 하고 말지’ 한다. 왜냐하면 캐스팅이 너무 힘드니까.

캐스팅이 어렵다고? 이렇게 많은 배우가 참여했는데? 전작들이 주는 어떤 신뢰감이 제일 클 것이다. 배우들은 그것밖에 볼 게 없다. 두 번째는 한번 같이 해보니 또 같이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외에는 어떤 면에서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데, 내가 경계가 좀 없다. 내 세계만 있거나, 상대하기가 힘든 게 아니니까 편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고백하면, 그냥 내가 본 그 수만 편의 영화가 자기들끼리 화학작용을 해 소화가 돼서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나만의 형식이라는 건 진짜 천재들이 하는 일이다.

고백하면, 그냥 내가 본 그 수만 편의 영화가 자기들끼리 화학작용을 해 소화가 돼서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나만의 형식이라는 건 진짜 천재들이 하는 일이다.

다른 노력은 없나? 자연스럽게 소개를 받을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걸러진다. 배우란 사람은 진짜 매력적이고 탐구하고 싶지만, 또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사람들이다. 진짜 친해진 걸까 싶은 의심이 들 때도 있고. 물론 모든 인간관계가 다 그렇지만.

특히 여배우들과의 폭이 넓다. 여배우들이 먼저 호감을 갖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왜냐면 여자가 많이 나오는 영화를 하니까. 그들한테 나는 친해서 손해볼 게 없을 것 같은 게 있으니까 그들도 호감을 보인다. 그들이 호감을 보일 때 나도 같이 얘기를 하며 영감을 받으면서 선순환이 되는 거다. 그러면서 <여배우들> 같은 영화를 만들게 되니까. 그러다 보니 남성적인 영화에 많이 나오는 남자 배우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는 건 사실이다.

남성적인 영화엔 관심이 없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를 지금 평균 삼 년에 한 편씩 하는데, 호기심에서 밀리는 거지. 결과물은 자식 같은 거지만, 작품을 선택하는 건 배우자를 만나는 것과 같다. 주변에 배우자 후보가 많아도 한 명하고밖에 결혼할 수 없지 않나.

<이정재는 <스캔들>을 못한 게 후회스럽고, 이재용 감독과 영화를 계속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하하. 나로선 배용준이 해서 잘됐다. 영화도 잘됐고, 배용준한테도 좋았으니까. 이정재하고는 이런 거였다.내가 막 모르는 사람 새로 사귀어서 부탁하는 걸 싫어한다. 나도 편한 사람이 편하니까. <정사>와 <순애보>를 잘 끝냈고, 그 많은 배우 중 이정재도 할 수 있는 거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떤 감독은 ‘페르소나’로 누구를 삼아야지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편하다.

<뒷담화>에서 어떤 배우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어떤 배우는 단편영화를 만드는 일에만 집중한다. 하정우도 단편영화만 열심히 찍는 것 같던데. 하정우는 원래 안 하기로 했다. 자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였는데 참여하고 싶지 않아 했다. 그리고 하면 적극적으로 해야 되고 아니면 빠져야 되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고 해서, 단편영화만 하라고 했다. 다른 배우들도 다 자율권을 줬다. 그 대신 <여배우들> 같은 것을 해본 배우들은 다들 좀 능력껏 해주길 바랐다. 한편으론 배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김민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건 의외였다. 여러 작품을 함께했는데. 김민희는 안 하기로 마음먹고 왔다. 자기는 좀 어색하다고. 그래서 그냥 있으라고 했다.

“엄청나게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험만큼 감독을 흥분시키는 것은 없다”는 마이클 피기스의 말도 삽입했다. 그냥 표면적인 걸 찾은 것뿐이다. 내가 피기스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피기스에 대해 잘 모른다. 나도 어느 순간부터 영화를 많이 안 보니까 잘 모르지만 최근 마이클 윈터보텀의 행보를 보면서, 나도 비슷한 부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예술가한테 롤 모델이 누구냐 이런 거 묻는 거는 한편으론 실례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유일해야 되니까. 지금도 “윈터보텀이 롤 모델인가요?”라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유일하기 위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형식을 찾았을까? 정말 새로운 것은 없다. 나도 내가 본 그 수만 편의 영화가 자기들끼리 화학작용을 해 소화가 돼서 나오는 거다. 그러니까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나만의 형식이라는 건 진짜 천재들이 하는 일이다.

스스로 천재적인 예술가는 아니라고 생각하나? 스스로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그런 목표를 두지 않는다. 미켈란젤로, 고흐, 피카소, 엔디 워홀 같은 혁명가들이 있지 않나? 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정도로 의심할 뿐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못 된다. 그냥 발뒤꿈치…. 아, 너무 자기비하적인가? 하하. “쟤는 흉내를 냈다”는 정도로 욕먹지 않는 게 최선의 방어인 거 같다.

겸손이라고 하기엔 과해 보인다. 굳이 말하자면 자기방어다. 나는 천재가 아닌 걸 아니까. 내 기준에 부끄럽지 않게, 후지거나 뒤처지지 않은 감독으로 남는 게 목표다. <다세포 소녀>가 부끄럽지 않냐고 만약에 묻는다면….

필모그래피에서 지우고 싶나? 지우고 싶다는 건 부끄럽다는 거다. 최선이나 차선만 다했다면 부끄럽지 않다. 욕먹으면 부끄럽기는 하지만 내가 영화로 돈을 벌려고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서 한 거니까 욕먹어도 어쩔 수 없다. <다세포 소녀>도 뭐가 잘 안 맞은 거라고 생각한다. 대중은 내 작품 세계에 깊은 관심이 없다. 몇몇 소위 말하는 팬이 있다면 팬들이나 지켜보는 사람들일 뿐, 일반인들은 <여배우들> 재밌게 보다가도 “그 다세포 감독이었어?” 이렇게 말할 뿐이다. 이재용이라서 영화를 보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비춰질까에 대한 두려움이 별로 없다. 단지, 욕심이 있다면 영화를 계속 그래도 하고 싶다는 것과 남에게 금전적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된다는 것만큼은 너무너무 크다. 두려운 건 두 가지다. 나랑 일한 배우들이 “이 영화 괜히 했어” 하는 거와 금전적 손해를 끼치는 거.

영화엔 구로사와 아키라가 했던 말도 삽입했다. 뭘 썼는지 모르겠다.

“다음 작품은 최고의 작품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마음 때문에 영화감독을 할 수 있다.” 그냥 쓴 거다. “이거 멋있어 보이지 않니?” 하고 쓴 거지.

멋있어 보이냐고? 가감 없이 사실을 얘기한 거다. 방어기제도 있을 수 있고. 세상에 막 절대적인 건 없다고 믿는 것도 있다. 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성격적으로 진지한 걸 좀 못 견딘다. 진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거 같다.

진지하고 곱게 자란 것이 싫다고 얘기한 인터뷰를 읽었다. 하지만 그때도 진지하게 살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굴곡이 없는 거에 대한 콤플렉스가 약간 있었다. 그게 무슨 얘기냐면, 아티스트나 작가나 뭐가 되면 마치 가족사의 비밀이 있어야 될 것 같고, 대단한 사건들을 겪고 막 운명적인 뭘 하고 이래야지 대단한 작가가 될 거라는 신화나 믿음이 있지 않나?

그것이 없어서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난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난 에이, 썅, 뭐 이렇게 생겨먹었는데 그냥 이런 걸 해야지 하고 밀고 간 거다. 198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다. 6월 항쟁 바로 이전 시대에 이런 고민은 고민도 아니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은 뭘 할 수 없는 시대였다. 전부 투사가 돼야 하고, 모든 사람이 노동자의, 농민의 자식이어여야 했다. 그랬던 시기를 뻔뻔함으로 극복한 거다.

다음에도 그런 뻔뻔함이 보이는 영화인가? 극영화 형식인가? 내가 지금 꽂혀 있는 영화는 진지한 영화다. 근데 이것도 심각하게 풀지는 않을 거다. 형식은 크게 튀지 않는데 스토리 구성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실제 인물이 있는데, 반은 실제 이야기에서 반은 내가 완전히 재구성해서 만들 거다. 자전도 아니고 반자전도 아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섞어서 인물을 만드는 거다. 나머지는 보통의 극영화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배우들>과 <뒷담화>는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 같다. TV에선 리얼리티 예능의 다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약간 시대에 뒤처진 걸 수도 있다. 내 스스로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거다. 만약 리얼리티 쇼가 끝나갈 때 <뒷담화>가 나왔다면 그렇다. 내가 너무 그쪽에 무신경하기도 하고.

베를린엔 누구랑 가나? 매번 베를린 영화제에 간다. 정은채가 홍상수 감독 영화 때문에 간다고 해서 같이 가려고 한다. 매번 가을쯤에 영화가 끝나 베를린과 때가 맞을 뿐이다. 칸 영화제는 너무 멀고, 베니스 영화제는 끝나 있다.

좀 일찍 찍거나 좀 늦게 찍으면 가능하지 않나? 뭐든지 ‘아, 이건 나의 운이야’라고 믿을 때 기쁘다. 막 했는데 안 될 경우는 실망이 너무 크니까. 그리고 뭘 억지로 못한다니까.

이제 사진 찍을까? 저 턱시도 입어야 하나? 억지로 입기 싫은데.

    포토그래퍼
    김지양
    스탭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 헤어/ 정아 BY 컬처앤네이처, 메이크업/ 이가빈 BY 컬처앤네이처, 어시스턴트/ 이상민, 이채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