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추격하고 소방차가 출동했다. 훌라걸과 데이트중인 스모 선수, 지금 막 결혼하는 커플도 있었다. 다섯 대의 자동차 위에서 벌어진 귀여운 일들.
2013 미니 JCW
미니 JCW를 부정하면 안 된다. ‘핸들이 무겁다’거나 ‘승차감이 딱딱하다’는 주관을 단점으로 내세울 수도 없는 일이다. JCW는 가능한 모든 불만을 주관적인 재미 하나로 설득해낸다. 그 아찔한 재미가 심신의 스트레스를 동시에 풀어줄 만큼이다. 타봤는데도 못 느꼈다면 그건 미니의 잘못이 아닐 것이다.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한번 운전해봐야 옳다. 뮌헨 공군 기지에 만들어놓은 미니 트랙이 아니어도 반드시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에스프레소 더블? 레드불? 샤워하고 얼음잔에 마시는 맥주? 다른 무엇과도 섣불리 비교해선 안 된다. 미니 운전석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다른 데서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 이런 유일함이야말로 미니의 성격을 규정한다. 아무도따라올 수 없으나, 경찰은 쫓을 수도 있겠다. 쉽게 잡히진 않겠지만.
폭스바겐 더 비틀
더 비틀의 빨강이야말로 진짜 빨간색 같다. 선과 면이 조합해낸 드라마가 차체에 그대로 살아 있어서 그렇다. 뒷바퀴 위에서 분방하게 돌아나가는 선 하나하나에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 위에서 색깔의 의도 또한 분명해진다. 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더 비틀은 남성성이 도드라지는 차다. 불붙은 듯 달리고 유연하게 꺾인다. 그럴 때 바람은 어디를 스쳐서 어디로 지나가는 걸까? 이전의 비틀은 꽃병 꽂는 자리를 따로 마련할 정도로 예쁘고 귀여운 차였다. 더 비틀의 새 디자인은 ‘예쁘고 귀엽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틀의 고전성을 확립하는 식으로 진화한 고집스런 결과다.
피아트 500
피아트 500은 휴양이다. 다분히 이기적이고, 즐기자고 마음만 먹으면 만끽할 수 있는 상쾌함이 이 작은 차체 안에 가득하다. 엔진이 차체를 소리통 삼아 내는 소리에는 호방한 기개가 있다. 빨리 달릴 수 있는 차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귀엽다. 핸들을 돌릴 때의 차진 감각에도 재미가 있어서, 구불구불한 서울 어느 골목에서 이탈리아 어느 산맥의 굽잇길을 상상하곤 혼자 웃는 순간도 오곤 한다. 따라서 급할 것 없는 산책이거나, 잎이 넓은 나무 아래 가만히 앉아 있는 오후, 벤치에 둘이 앉아서 해가 떨어지는 걸 바라보는 저녁이야말로 피아트 500답다.
메르세데스-벤츠 B200 CDI
메르세데스-벤츠 B클래스에는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누구를 태우거나,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마음도 닿아있다. 이 차의 운전석이야말로 편안해서 그렇다. 안전하고 안정적이다. 한 가족의 단출한 주말을 보장하기에도, 한 커플의 멀리 가는 여행을 돕기에도 충분한 공간, 벤츠가 보장하는 고급함의 맥락에서도 벗어나지 않는다. 선한 눈매, 보닛에 잡힌 부드러운 곡선도 B클래스의 이런 성정을 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이미 가족이거나, 가족 같은 연인처럼 편안하고 또한 충만하다.
지프 그랜드 체로키 오버랜드
지프 그랜드 체로키를 탈 때마다 내가 좀 자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조수석에는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조카를 태우거나, 정년을 앞둔 아버지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그런 주말에는 산으로 가서 나무와 흙 냄새를 기꺼이 맡을 수 있는 밤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반면, 아주 상반된 쪽에서는 힙합에 가까운 정서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한껏 부풀려서 펼친 깃털을 과시하는 밤, 오늘 밤만은 아무것도 자제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조차 불필요할 만큼 풀어진 시간…. 그랜드 체로키의 담대하고 당당한 차체 안에 내포된 이렇게나 극적인 가능성.
- 에디터
- 정우성
- 포토그래퍼
- 이신구
- 스탭
- 어시스턴트 / 정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