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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와 M의 미묘한 밤

2013.10.25유지성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진 남녀가 만났다.

장선우의 <거짓말>에서 남자 제이와 여자 와이가 나누는 첫 대화는 이렇다. “니가 와이니?” “좀 늦었지?” “난 네가 어떤 앤지 보고 싶었어.” “나도.” 그렇게 만난 이후 둘은 섹스를 할 때마다 ‘SM 플레이’를 즐긴다. 엉덩이를 손으로 때리는 게 시작이었다. 이후엔 회초리가 등장한다. 처음엔 제이가 때렸고, 나중엔 제이가 맞는다. 제이는 자주 묻는다. “아프니?” 와이는 대답한다. “행복해.” 섹스를 할 때마다 때리고 맞는다. 널리 알려진 SM은 그런 개념이다. 실제론 그보다 넓고 복잡하다. ‘에세머Smer’(그들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른다)와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 정도만 알아선 의사소통이 어렵다. 사용하는 언어는 거의 암호에 가깝다. 크게 보면 네 가지 성향으로 나눌 수 있다. ‘멜돔’, ‘멜섭’, ‘펨돔’, ‘펨섭’. 멜은 남자, 펨은 여자다. ‘Male’과 ‘Female’의 줄임말이다. 돔은 지배자를 뜻한다. 섭은 피지배자다. 각각 ‘Dominance’와 ‘Submissive’의 약자다. 즉, 멜돔은 지배적 위치를 선호하는 남자를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꼭 성관계에서의 역할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뜨거운 섹스 얘기를 기대했다간 실망할 수도 있다. 섹스는 SM의 한 부분일 수 있지만, SM은 섹스에 속하지 않는다. 대신 ‘플레이’의 종류는 다양하다. 체벌을 뜻하는 ‘스팽킹’, 상대를 밟는 ‘트램플링’, 배설물을 이용하는 ‘스캇’ 등등. ‘버칭’, ‘패들’, ‘벗플러그’ 등은 사용하는 기구를 뜻한다. 이를테면 “펨섭을 찾습니다. 패들을 주로 사용하고, 트램플링을 즐깁니다”라는 문장이 완성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SM 성향은 존재한다. 주로 섹스에 관해 그렇다. 가볍게는 “거친 여자가 좋다”고 말하는 것도 SM의 일부일 수 있다. 체위도 마찬가지다. 여성상위로 섹스를 주도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끝까지 정상위에서 자기 리듬대로 밀어붙이는 남자도 있다. 오히려 ‘에세머’들의 SM엔 정신적 요소가 더 크게 작용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주종관계에 가까운 계약을 맺는다. 멜섭은 펨돔과, 펨섭은 멜돔과 짝이다. 섭은 돔에게 복종한다. 그것을 D/S관계, ‘디엣’이라 칭한다. 좀 더 심화된 ‘마스터/슬레이브’ 관계도 있다. 여전히 SM 성향을 ‘커밍아웃’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SNS를 통해 비슷한 취향의 친구를 찾는 것처럼, 에세머들도 밤이면 그곳에 모인다. 사진 위주의 다른 SNS보다 문자 기반의 트위터가 유독 강세다. 의외일 수 있지만, SM의 본질적 성격상 그것이 더 알맞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성향이 있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 파트너를 구하는 어려움 탓이기도 하고, 성향을 온전히 드러내기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일 수도 있다. 즉, SM은 아직 일정 부분 이상 상상과 ‘판타지’의 영역에 있다. 현실적으론 망설임의 영역이라 말할 수도 있다. 에세머들의 계정엔 “가짜들은 멘션이나 쪽지 보내지 마세요”라는 유의 말이 유독 많다. 어쩌면 대다수의 이용자들은 그저 가학적, 피학적인 말을 주고받으며 욕구를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꼭 실천에 옮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자극적인, 완전히 새로운 언어와 놀이로 구성된 세계니까.

좀 더 실질적인 활동이 벌어지는 곳은 인터넷 카페나 커뮤니티다. 그곳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게시물은 무시무시한 십계명 같은 공지다. 그저 간편하게 즐기고 말겠다는 생각으론 곤란하다는 선언. SNS에서 ‘가짜’를 가려내고자 하듯, 동호회에선 좀 더 높은 수준의 신뢰를 시험한다. 모바일 메신저 주소나 휴대전화 번호를 써야만 가입할 수 있는 곳도 있다. SM 동호회에선 기본적으로 <거짓말>처럼 남녀가 만나 섹스로 직행하는 행위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비디오나 상상 속의 SM과 현실의 SM은 다르다. 실제 관계에선 환상이 무너질 확률이 높다. 맞으면 진짜 아프다.

주종관계가 수치스러울 수도 있다. 도시인이 유행처럼 귀농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 시골마을처럼, 에세머들은 그들의 취향이 한 번의 호기심에 시험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들은 SM 성향이 없는 사람들을 ‘바닐라’라 칭한다. ‘변바(변태바닐라)’는 거기에서 나온 신조어로, SM을 즐기는 척하며 펨섭을 유린하는 남자들을 뜻한다. 간혹 멜섭을 꼬드기는 여자도 있다지만 보편적이진 않다. 동호회에 가입하는 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용기를 낸 여자에게 ‘변바’는 SM 성향을 가장해 섹스를 요구한다. 즉, 강력한 규율과 신뢰 없이는 그들만의 공간이 유지되기 어렵다. 인증 사진을 올리는 게시판엔 밧줄 자국이 선명한 몸이 올라와 있다. 혈서로 순을 맹세하듯, 확실한 신뢰를 얻는 방법이다.

한편 쾌락과 규율이란 말이 서로 썩 가깝게 들리진 않는다. 쾌락만을 원한다면 동호회의 규율은 번거로울 뿐일 터. 야밤의 SNS에 모인 사람들 중 가짜만 있는 건 아니다. 진짜들의 판은 노골적이다. SNS의 강력한 익명성 때문이라기보다, 답답한 환경을 원치 않는 남녀가 몰려 나온 듯한 인상이다. “주인님을 찾는다”며 알몸 사진을 올리는 여자와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새로운 여자를 찾는다”며 펨섭에게 시킨 행위를 찍어 올리는 남자가 공존한다. 동호회와 SNS의 SM 행태를 두고 무엇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긴 어렵다. 그들만의 리그엔 거기에 맞는 룰이 있고, 관찰자는 간섭하기보다 가만히 있는 편이 낫다. 이를테면 SM 세계에서 온갖 불편함을 야기하는 ‘변바’야말로 적극적 간섭의 일종일 테니까.

독일엔 바운드콘이라는 SM 관련 박람회가 있다. 올해가 10회로,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아볼 수 있다. 묶고, 조련하고, 끌고 다니는 와중에 분위기는 극히 일상적이다. 꼭 그렇게 모든 부분을 공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공통의 취향으로 모인 사람들이 즐거움을 추구하는 행위에 장벽이 생긴다면 이상적이라 보긴 어렵다. <거짓말>에서 제이는 와이에게 말한다. “나 변태잖아.” 와이가 대답한다. “나 미쳤다고 말하는 미친 애들도 있냐? 내가 본 아저씨들 있잖아, 정숙한 척해도 속으로는 재수 없어. 음흉하고. 근데 넌 그렇지 않잖아. 네 맘대로 해.” 와이의 말처럼, 문제는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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