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라는 중국 전국시대의 맹장이 있다. 경영을 전쟁에 갖다 붙이기 좋아하는 국내 기업문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졸병들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한 데서 자던 오기는 병사 중 하나가 독한 종기로 쓰러지자 환부를 입으로 빨아냈다.(환부는 항문이었다고 전해진다.)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 정도는 해줘야 역사가 기억한다.
오기가 한국 리더들의 ‘워너비’인 이유는 종창을 빨아준 행위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부하들이 목숨 바쳐 싸우게 할까’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해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일개미 없이 위대한 리더는 없다. 열정, 헌신, 근성…. 자기계발서들의 이 현란한 어휘를 걷어내면 리더의 고민은 딱 하나다. 어떻게 하면 부하들을 말과 개처럼 뛰게 할 것인가. 오기는 단 한 번도 ‘목숨 걸고 싸우면 성과급 줄게’라든지 ‘이번에 승리 못하면 국물도 없어’라 한 적이 없다. ‘채찍과 당근’을 잘못 쓰면, 부하들은 오직 그 두 가지에만 반응하게 된다. 시킨 것만 잘하게 된다. 동양의 최고수들은 상대에게 뭔가를 먼저 해주고(대가성이 없는 듯한 연출이 중요하다) 상대의 마음을 얻었다. 감동해야 움직인다는 소리다. 마음을 얻는 기술은 관점이동에서 나온다. 영민한 리더라면 ‘내가 부하라면?’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오기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당대 최고 엘리트인데 왜 병사들과 뒹굴며 종기까지 빨았을까? 그는 병사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그들의 관점을 파악한 것이다. 심리의 가장 취약한 면을 파고들었다. 오기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인 전쟁터에서 사람 대접 좀 받고 싶다’는 병사들의 욕망을 본 것이다.
페덱스의 창업자 프레드릭 스미스는 “월남전에서 리더십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월남전에서 나이 많은 노동자 계급의 부하들을 이끌어야 했다. 함께 먹고 자고 싸우면서 부하를 움직이는 버튼을 발견했다. 그것은 ‘공평함’이었다. 돈과 지위가 없어 세상이 주는 설움을 온몸으로 겪은 이들이라, 함께 싸워 얻은 걸 공평하게 나누고 싶어 했다. 현재 페덱스 간부들은 대부분 군이나 커뮤니티칼리지 출신들이다. 스미스는 아예 “우리 회사엔 잘난 척하는 아이비리그 출신들은 필요 없다”고 못 박았다. 능력만 가진 사람들이 페덱스로 몰렸고, 그것이 기업의 최고 자산이 됐다. 리더십의 핵심은 관점이동에 있다. 상대의 욕망, 약점을 읽는 것이다. 동고동락은 수단일 뿐, 그 자체를 리더의 고매한 인격으로 오해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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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 김남인(<태도의 차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