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맑아 있고 햇살은 따스한데, 이문세가 새 앨범을 낸다. 13년 만의 일이다. 어쩌다 봄이라야 했는지 물었더니, 그는 라일락을 손에 쥐고 커다랗게 웃었다.
이렇게 정열이 넘치실 줄이야, 촬영하는 컷마다 어느새 춤을 추셨죠. 오 마이 갓, 인터뷰가 남았다는 걸 잊고 있었어. 그래도 에너지 있어요. 괜찮아요.
인터뷰를 준비하는데 이런 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어떻게 이문세를 만날까?’라는 말입니다. 오매불망 앨범을 기다렸느냐? 아니었어요. <별이 빛나는 밤에>를 기억하느냐? 제가 자란 충남에선 지역방송을 따로 했어요. 이문세가 13년 만에 앨범을 낸다는데, 그럼 13년 전 앨범은 뭐였지? ‘빨간 내복’? 모르는 노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문세를 만나야 할까? 맞아요. 80년대에 나를 좋아하던 제너레이션의 핵심이 아닌 사람은 뭐, 저 사람 전설이라는데 그런가 보다, 하는 정도죠. 그 말이 저는 오히려 편하네요. 저를 비켜간 거군요.
말하자면 이문세는 ‘누나가 좋아하는 가수’였달까요? 누나들만의 성숙한 세계가 있잖아요. 그래선지, 이문세 노래는 내 앞에 떡하니 펼쳐진 게 아니라 옆에서 슬며시 들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13년이라는 공백도 새삼스러워요. 이문세 노래라면 늘 들려왔고,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친근한 게 좋죠. 요즘 부쩍 주위에서 형이라는 호칭을 자주 써요. “문세 형이 떴어!”, “문세 형 결국 살아나셨네.” 뭐 이런 느낌으로.
새 앨범이 2015년 봄에 나오네요. 왜 지금인가요? 왜 지금이냐…. 13년 동안 준비한 거죠. 사실 13년 동안 준비했다는 말에는 게으름도 들어 있지만, 과연 내야 할까? 그런 생각이 컸어요. 지금 우리 가요계 현황? 이건 너무 맥빠지고 진빠지잖아. 너무 옛날이야기를 하면 싫지만, 어쨌든 이문세가 음반을 낸다 그러면 여고생들이 쪼르르 달려와 예약도 하고, 누나들이 그랬답니다.
그랬죠. 지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때보다 적진 않을텐데, 그렇게 열정적으로 음반을 대하는 분위기는 사라졌잖아요? 음악이 흔하죠. 어디서 어떻게든 들을 환경이 되니까요. 구입하지도 않죠. 그냥 불법으로 다운받고 말죠. 그런데 나는, 나의 프라이드로서, 또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프라이드로서, 앨범을 그렇게 흔하게, 하찮게 대하지는 않겠어, 정말 정중하게 한 곡 한 곡을 만들고, 듣고, 그래야 한다는 자부심이랄까? 스스로 고취되기 전에는 힘들었어요. 그런 13년이었던 거죠. 하지만 쉬어 갈 수는 있어도 멈출 수는 없지 않나? 나는 대중가수인데, 가수가 추억 팔이 식으로 옛날 음악만 계속, 이문세가 이영훈의 그 아름다운 음악만 계속 되풀이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죠. 작년에 갑상선암이 재발해서 수술을 받았어요. 회복만을 위해 멍하니 지내기보다는 뭔가 가치 있는 걸 해야 되겠다, 그럼 밀린 숙제를 하자. 앨범을 만들자. 어떤 사명처럼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했죠. 그 후로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그래서 이문세의 새 노래는 누구와 어떻게 만들었나요? 닿을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노래를 모았어요. 앨범 제목이 ‘뉴 디렉션’이거든요. 이번 앨범에서, 또 제 삶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곡은 정말 다양한 경로를 거쳐서 받았어요. 국내외를 망라하면서요. 그러는 동안 가장 큰 주제는 이문세답다는 걸 배제하는 거였어요. 이문세다운 것을 뺀 ‘뉴 디렉션’이고자 한 거죠. 그런 음악이 뭘까? 찾고 또 찾았죠. 결국 아홉 곡을 추렸더니, 조규찬 씨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첫 작품으로 선물하듯이 준 곡들, 노영심 씨 곡 하나. 또 현재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는 김미은 씨 곡. <빨간 내복> 프로듀서이자 작곡자였던 분이죠. 또 강현민 씨. 그리고 지금까지는 완전 무명에 가까웠던 작곡가들….
타이틀곡은 강현민 작곡이라죠? 저는 결국 멜로디를 봐요. 그게 브리티시 록이든 재즈든 뭐든 간에 멜로디가 아름답지 않으면 못하겠어요. 강현민이라는 후배가 가볍게 써서 준 곡이 있었는데, 듣자마자 이거 너무 좋다, 그래서 옷을 입히고 색깔을 칠해서 만들었어요. 그저 기분 좋게, 스트레스 거의 안 받고 나왔어요.
13년 만의 타이틀곡인데, 스트레스가 없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그럼 가사는요? 가사가 제일 힘들었어요. 최고의 작사가들한테 맡겼는데, 노래 한 곡을 한 사람에게 맡긴 게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이 멜로디를 해석해주시오, 하는 식으로 창의적으로 생각했어요. 결국 라디오에서 저랑 15년 정도 입과 손을 맞췄던 정미선 작가가 육칠십 퍼센트를 썼어요. <별밤>과 <두 시의 데이트>도 했고, <오늘 아침 이문세입니다>도 함께한 베테랑 작가인데, 가사는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재미있네요. 글과 목소리로 오래 만나온 사이라는 거잖아요. 그냥 제 일부인 거죠. 이문세의 가치관, 이문세의 성격, 활동 영역, 말버릇, 다 꿰뚫어 읽는 작가니, 내가 어떤 건 닭살스러워 절대 안 할 거라는 것도 알죠. 좋아하는 문체, 말투 이런 걸 알고 쓴 가사니까 제 마음에는 쏙 드는 거죠. 근데 아까, 이문세 새 앨범을 기다리지 않았다고 그랬잖아요.
네, 기다린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저도 사실 그래요. 동료나 후배 가수가 “형, 나 이번에 새 앨범 나와요” 그러면, “축하한다”가 다예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아요. 가수끼리도 그런데, 이문세를 관통하지 않은 이삼십 대가 “이문세가 누구야?” 하는 거, 백 퍼센트 이해해요. 그런데 저는 그랬던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싶은 거예요. “이문세가 이런 가수였어?” 저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어요.
당연히요! 세상에 작품을 내놓는 사람이라면. 네, 저는 당연히 그런 욕심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자신감도 어느 정도 있고.
프로듀서는 누군가요? 이훈석 씨. 훌륭한 분을 만난 거죠. 무엇보다 저랑 잘 맞았어요. 이영훈하고 이문세하고 맞았듯이.
이문세와 이야기하면서 이영훈이라는 이름을 건너뛰기란 불가능하죠. 그럴 필요도 없고요. 이문세의 새 노래를 듣는 사람이 “이영훈 노래보다 어떻다”는 식으로 감상하는 것도 자연스럽죠. 이영훈과 이문세는 작곡가와 가수만의 입장을 뛰어넘었죠. 가사에 쓸 단어 하나를 고를 때도, 누구에게 편곡을 맡길까요? 어떤 연주자를 할까요? 어느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할까요? 이런 모든 걸 영훈 씨랑 같이 해왔잖아요. 이번에도 서로 조언하고 조언받으면서 했어요. 음, 좋은 프로듀서는 가수가 잘할 수 있는 걸 캐치해서 그것에 가깝도록 애쓰는 사람이죠. 근데 어떤 프로듀서들은, 특히 작곡가면서 프로듀서인 사람들은 함정이 있어요. 자기 걸로 만들려고 한다는 거죠. 자꾸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니까 맞춤형 음악이 돼요. 불행한 거죠.
갑자기 1984년에 신중현 선생님이 만든 이문세 앨범이 생각나네요. 하하, 그거 들어봤어요?
네, 매우 기이한 ‘아름다운 강산’이 들어 있잖아요. 하하, 그런 거죠. 이문세의 장점이 배제되고, 저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따라갔던 거죠. 물론 신중현 선생님은 훌륭하신 분입니다.
앨범을 기다리진 않았다고 했습니다만, 웬걸요, 이문세 새 노래가 너무 좋았으면 바라기도 합니다. 다시 이렇게 묻죠. 이문세 새 노래는 좋은가요? 네, 정말 행복합니다.
정말요? 나이가 환갑에 가까워진 뮤지션이 새롭게 자기 길을 개척하는 자체가 이 앨범의 모티브죠. 이문세 하면, 이영훈의 음악을 부르는 가수, 후배들이 리메이크 많이 하는 가수, 그러죠. 감사한 일이지만, 벗어나야죠.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이영훈에서 벗어난 이문세만의 새로운, 창조적인 음악 공간이죠. 좋은 의미에서 벗어나겠다는 거예요. 사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어도, 이영훈의 아름다운 음악 이상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어요. 지금은 이영훈 씨가 없잖아요. 내가 뭔가를 선택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새로운 방향으로 가야죠. 이문세에게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보여줘야죠. 그러고 나서 다시 이영훈 씨 음악을 만났을 때 훨씬 큰 포만감에 젖을 수 있죠. 이문세는 옛날 노래가 제일 좋았어, 그럼 저는 그냥 거기에 머물러 있는 추억의 가수가 되는 거죠. 추억팔이 하면서 공연하는 가수로 끝이죠. 음, 아무리 새 노래가 좋아도 역시 이영훈 씨 곡이 이문세한테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겠죠. 그건 영원히 그렇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새 음악에 많은 애정과 기대를 주는 거죠. 지금 이 순간만큼은 새 음반과 새 노래가 제일 좋아요. 저한테만은요.
인디고 블루 재킷은 스펠바운드 by 오쿠스, 셔츠는 이스트 하버 서플러스, 타이는 타이 유어 타이, 포켓스퀘어는 브룩스 브라더스, 데님 팬츠는 브라운 오씨, 시계는 해밀턴, 세미 브로그 슈즈는 로크.
말씀을 듣고 있으니, 라디오를 듣고 있다는 착각이 들기도 하네요. 목소리는 전혀 변하지 않았어요. 노래할 때는 변화가 있죠. 20대 때는 그냥 파워로 거침없이 했는데, 나이가 들고, 세상도 알다 보니 힘만으로 통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인생과 같아요.
‘좋은 보컬’을 생각하면 확실히 어떤 공간을 주는 목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여백이 있는.
이문세 목소리가 그렇죠. <나는 가수다>에 나가서 1등은 못하시겠지만. 1회전에서 탈락이죠. 저는 3분 50초 만에 관객을 일으켜 세울 능력은 없어요. 하지만 1년 동안 제 노래를 듣게 할 수는 있어요.
그 말씀이 맞죠. 그럼 DJ나 MC로서의 이문세는 어떤가요? 한창 활동할 때는 어떤 기준이셨잖아요. 그랬나? 하하, 얼굴이 기준이었죠. 이 정도 얼굴 길이에 이 정도 생겨도 MC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유재석, 강호동 아주 자신감 있게 나왔잖아요.
그게 그렇게 연결되는 거였나요? (웃음) 그런데 새삼 그때를 떠올려보면, 독보적인 발라드 가수 이문세와 엔터테인먼트 정중앙에 있는 MC 이문세를 헷갈려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문세쇼>, <이문세 라이브> 합치면 3년 정도 될까요? 짧게 했어요. 파급 효과가 크긴 했죠. 시청률이 60퍼센트를 찍었으니까요. 이문세가 당시 예능 프로그램을 다 진행한 것 같지만, 그 기간 동안 저는 방송에서 노래를 하지 않았어요. 여우같이 활동했다고들 그래요. 왜냐면 치고 빠졌으니까. 그런데 저는 계산해서 그렇게 한 게 아니라, 멀티플레이어가 될 수 없는 정신세계였던 거죠. 하나만 열심히 잘하게 해주십시오, 맨날 기도가 그거였죠. 요즘처럼 막 일곱 개, 여덟 개 프로그램을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돌이켜보신다면요? <별이 빛나는 밤에>를 하는 동안 인격을 다듬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도덕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하는 위치였으니까요. 그때 제 사명의식은, “내가 바로 서야 돼”였어요. 저도 담배 피우고 싶고, 사고 치고 싶고, 술 먹고 싸우고도 싶고, 대마초도 해보고 싶지 않았겠어요? 그때 아티스트들 다 하는데. 그런 모든 충동을 막은 게 “나는 별밤지기잖아”였어요. 전국의 중학생, 고등학생이 선생님 말보다 제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는 말이 있었으니까요. 총각이었는데도 여자 연예인 한번 따로 만난 적이 없어요. 연애를 못하는 거예요. 걸리면 장가가야 되는데, 또 그렇게 하고 싶진 않으니까, 아예 연애를 참자. <별이 빛나는 밤에>는 제 인격을 만들어준 대신, 매력 없고 재미없는 ‘범생’을 만들기도 했죠. 생각해보면, 저는 참 매력이 없어요. 매력이라는 건 좋은 모습, 이쁜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쟤도 인간이구나, 저럴 땐 약하고 저럴 땐 못됐구나, 이래야 되는데, 저는 참 매력이 없는 거죠.
가수는 어떻게 나이가 드나요? 가수요? 가수는요, 주름살이 지고, 머리가 하얘지더라도 생각만큼은 어린애였으면 좋겠어요. 노래할 때는 막 소년처럼 노래하고, 돌아서서 오늘 주식 시세가 어떻데? 이러는 거 말이 돼요? 저는 자유스러워졌어요. 회사가 있고, 매니저가 있고, 아내가 있고, 주변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하고, 저는 그냥 베짱이처럼 노래만 해요. 20년 전에는 무대에 올라 객석의 빈자리를 셌어요. 관객이 얼마 들어야 개런티를 얼마 받는데, 하면서 막 속물이 되어갔던 거죠. 정말 공연에 목숨을 걸지도 않으면서 히트곡 몇 곡 들고 나와 객석 빈자리를 세는,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이.
그런 배경이 ‘이문세 독창회’라는 공연의 출발점이 된 건가요? 맞아요. 여기서 벗어나야 되겠다. 제작이든 뭐든 내가 다 하면 안 되겠다, 포지션대로 다 전문가들이 해야 한다, 그렇게 파이를 키우면서 공연의 완성도에 집중하자, 내 지분은 적어져도 전체적인 파워로 공연을 이어갈 수 있어야 빈 객석 숫자 안 세고 노래에만 집중할 수 있겠다. 그때까지 콘서트엔 연출이라는 게 없었어요.
언젠가, 정말 하기 싫은 일이 있냐는 질문에 디너쇼에서 노래하는 거라고 답하셨죠. 맞아요. 디너쇼 안 해요. 술집에서도 노래 안 해요. 가수가 노래를 하는데 그게 백그라운드 뮤직이 되면 삼류잖아요. 음악한테 미안한 거죠. ‘사랑이 지나가면’ 한테 미안한 거예요. 묘한 제 콤플렉스일 수도 있어요. 통기타 가수로 시작했으니까요. 그렇게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시작하면서, 나는 언젠가 주연이 될 거야. 나는 열심히 노래하는데 사람들은 맥주잔 부딪치며 브라보를 외칠 때의 좌절감을 알았죠. 술집에서 노래 안 하는 게 꿈이야, 그랬죠.
지금은요? 지금요? 얼마나 훌륭해요, 이 음악이! 하하, 트위터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썼어요. “세상에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몇 안 되는 가수입니다.” 자회자찬을 했는데,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음악하는 이문세로는 굉장히 성공한 사람으로, 멋있게 지금까지 해왔다고 생각해요.
바람이 있다면, 이 노래를 부디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이 들었으면 좋겠다는 건데요. 무슨 말인지 알아요. 요즘은 모든 게 획일화되어서, 요즘 얘가 대세래, 이러죠. 몰려가서, 이거야, 이거 아니면 안 돼, 그런 형국이잖아요. 아이돌이 대세야, 콜라보가 대세야. 그런 것과 상관없이, 소수라 할지라도 개개인이 혼자서 음악을 듣는 거죠.
네, 음악은 결국 혼자 듣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순위 프로그램 1위 후보에 안 올라가도. 지나가던 한 사람이 툭툭 치면서 “이번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이런 말들이 저에겐 오히려 훈장과도 같다고 생각해요. (전화벨이 여러 번 울렸다) 전화 좀 받을게요. 변진섭이에요.
하하. (통화) 어 진섭아. 그래, 형이 아까 낮부터 지금까지, 인터뷰하느라고, (중략) 아 진짜로~? 그럼 빨리 와 술 한잔 하자. 뭐? 너 내일 골프 치러 가는구나? 새끼, 그지? 니가 웃으면서 “아니에요” 이럴 때는 골프야. 그렇지 않으면 당연히 올 놈이야. 진섭아, 그지? (중략) 어 그래, 그럼 이메일 주소 보내줘. 오케이 땡큐, 잘 쳐 내일.
재밌네요. 변진섭 씨 데뷔했을 때, 어떠셨어요? 진섭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죠. 이문세의 아성을 깨는 놈이 나왔나? 하하, 딱 보니까, 저랑 비주얼도 좀 비슷한 게, 썩 잘생기지는 않았는데 노래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근데 그때는 신인가수가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별이 빛나는 밤에>를 통과해야만 했어요. 통과의례였죠. TV 출연을 하더라도, <별밤>에 나오지 않으면 인정을 못 받으니까. 진섭이는 참, 각별히 아꼈죠.
요만큼의 질투도 없이요? 왜냐면 약국도 몰려 있어야 장사가 잘되잖아요. (웃음) 진섭이 나오고, 김민우 나오고 이랬잖아요. 요놈들을 내 사단으로 안아서 같이 해야겠다. 어차피 내가 형이니까.
별자리가 염소자리시죠? 염소자리의 기본 성격은 ‘나는 제어하고 싶다’라죠? 아, 내가 대장되고 싶은 거? 음, 그땐 바로 위 선배가 없었어요. 이광조 선배 이런 분들이 있지만 나보다 열 살 위이신 분들이니 갭이 컸죠. 그러다 후배들을 보니 기뻤던 거죠. 서로 도우면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어요. 한동안 음반 제작자 협회에서 이문세를 가장 미워했어요.
왜요? 신승훈, 김건모, 변진섭 얘네들한테, 너 독립해라. 언제까지 재주를 부리는 곰으로 살 거냐, 너의 권익을 위해서, 아티스트로서 네가 좋은 노래와 좋은 음반을 만들었으면 네가 로열티를 받아야지 왜 개런티 몇 푼에 끌려 다니냐, 그러니 제작자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어요. 지금에서야 하는 이야기죠. 그때는 뭐 이문세를 매장시켜야 한다, 쟤가 어디까지 가나 보자, 별의별 협박 다 받았죠. 그래도 후배들의 길을 터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 ‘형’이었기에. 그런데 내가 걔들한테 정말 뭐 하나 요만큼이라도 받았으면 말을 안 해. 그래놓고 이제 와 후회하잖아. 같이 골프 치러 가자는 둥, 그때 형의 깊은 뜻을 몰랐다는 둥.
하하, 지금 밤 10시를 넘겼는데,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와 <별이 빛나는 밤에> DJ의 통화를 생생히 들었네요. 아, 맞아요. 그때 진섭이가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였죠.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세월은 흘렀지만 이문세는 이문세죠. 오늘 이문세 4집을 LP로 샀습니다. 새 노래가 나오기 전에, 다시 혼자 들어보려고요. 아, 좋다. 진짜 샀어요?
더블 브레스티드 재킷은 꼬르넬리아니. 터틀넥은 유니클로. 포켓스퀘어는 알프레드 던힐, 팬츠는 볼리올리.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김형식
- 스타일리스트
- 박태일
- 헤어&메이크업
- 이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