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싶은 차가 너무 많아 곤혹스러울 때, 우리는 단 한 대의 차에 집중했다. 4월의 명예는 렉서스 NX200t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았을 때 보닛 끝에서 나는 ‘쉬익- 쉭’ 소리를 들었다. 거인의 숨고르기, 독이 잔뜩 오른 표범, 방울뱀이 위협할 때 내는 소리처럼. 소리와 가속 사이에는 틈이 없었다. 가슴 왼쪽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조금은 어지럽기도 했다. 이건 렉서스가 만든 SUV 아닌가? 렉서스가 이렇게까지 공격적이었나? 하지만 가죽의 질감과 스티치의 정직함, 나긋하게 돌아가는 볼륨 버튼의 감각은 과연 렉서스였다. 창문을 내리고 올리는 방식도 렉서스다웠다. 빠르게 오르내리다가 마지막 즈음에 속도를 줄였다. 섬세한 성품으로 렉서스를 따라잡을 수 있는 브랜드는 많지 않다. 여기에 사륜구동 SUV의 미덕과 아찔한 고성능을 자연스럽게 섞었다. 안정적인 네 바퀴, 듬직한 핸들의 감각, 겸양과 고요…. 곧게 뻗은 길, 가파른 코너에서도 엔진은 레드존까지 가파르게 치솟았다. 이쯤 되면 지쳤겠지 싶은 구간에서 한 번 더 치고 나갔다. 웬만한 코너에서는 휘청이지도 않았다. 요즘 렉서스는 심상치 않다. 저것도 잘할 수 있고, 이건 원래 우리가 최고였다는 식이다. 거대하고 위압적인 라디에이터 그릴, 날카로운 선과 모서리가 도드라지는 디자인은 그 방향성을 보여주는 방편일 것이다. 일견 과하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실제로 봐야 한다. 렉서스는 일부러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아예 확장해버렸다. 그 기개가 과연 등등하다. 렉서스는 끝내 설득해냈다.
01 기계적이고 체계적인 엔진룸, 렉서스 NX200t의 힘이 보닛 안에 가지런히 정리돼 있다. 02 핸들은 양손에 쏙 들어온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놓는 부분은 적당히 움푹하고, 패들 시프트로 기어와 엔진을 희롱하는 재미에도 감칠맛이 있다. 03 기어봉 주변의 세부는 만질 때마다 좀 뿌듯할 정도로 효율적이다. 형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 컨트롤러의 감각은 부드럽고 정확하다. 빨간색 스티치의 간격과 색깔 역시 과하지 않게, NX200t의 날카로운 정체성을 강조한다. 여기에 알파벳 ‘L’을 기본으로 다양하게 형상화한 금속 세부까지 감상하고 나면 어떤 감동마저 느낄 수 있다.
[렉서스와 터보, 그리고 ‘와쿠도키わくどき’ ]
렉서스 NX200t는 트윈 스크롤 터보차저를 적용한 1,998cc 가솔린 엔진을 쓴다. 엔진 반응이 빠르다. 보통 터보 엔진이 가속페달을 급하게 밟았을 때 그 힘을 폭발시키기까지 멈칫하는 느낌을 거의 없애다시피 한 기술이다. ‘터보랙을 없앴다’는 표현은 그렇게 이해하면 된다. 다양한 상황에서도 즉각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와쿠도키’는 (흥분 따위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 모양, 설레는 모양, 두근두근, 울렁울렁이라는 뜻의 일본어다. 토요타와 렉서스가 내세우는 제품 전략이기도 하다. 보거나 타거나, 내린 후에도 두근거림이 남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NX200t는 렉서스의 전략과 철학을 이해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이정표다. 게다가 미국 NHTSA(미 연방 고속도로교통안전국)의 신차 안전도 평가에서 최고 등급을 획득했다.
[Your Shopping List]
렉서스 NX200t는 독일 3사를 정조준한다. 아우디 Q3는 안정적인 크기와 성능의 SUV다. 도심과 야외를 아무렇지도 않게 가로지르고, 핸들을 돌리는 감각부터 모든 세부까지 한결같이 세련됐다. BMW X3는 더 역동적이고 듬직한 쪽. 조금 더 멀리, 더 험한 길도 주파할 것 같은 우직하고 효율적인 감성이 있다. 메르세데스-벤츠 GLK는 조금 더 도시를 지향한다. 타고 내리기 편하고, 그 품위가 넉넉하다. NX200t를 포함한 네 대의 차 모두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됐다. 수입 프리미엄 SUV를 사고자 했는데 딱 떠오른 브랜드가 독일 3사 뿐이라면, 그럴 때 렉서스를 잊어선 안 된다. 무척 아쉬운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LEXUS NX200t
배기량 → 1,998cc
변속기 → 6단 자동
구동방식 → 상시 사륜구동
최고출력 → 238마력
최대토크 → 35.7kg.m
공인연비 → 리터당 9.5킬로미터
가격 → 5천4백80만~
6천1백80만원
- 에디터
- 정우성
- 포토그래퍼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