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염으로부터 남자를 구해줄 여섯 개의 면도기.
전기면도기 19세기까진 면도를 ‘칼’로만 했다. 일단 칼로 면도를 하려면 물이 필요하다. 수염을 부드럽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등장한 혁신적인 발명품, 전기면도기의 다른 이름이 건식 면도기(Dry Shaver)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기면도기는 칼이 아닌 가위의 원리를 이용한다. 많은 작은 구멍을 지닌 면도망이 피부를 누르면 수염이 구멍 사이로 솟아오르고 진동 날이 금속박과 날 사이에 끼인 수염을 가위처럼 자른다. 덕분에 물 없이도 쉽게 면도를 할 수 있다. 습식 면도에 비해 건식 면도는 피부의 자극이 덜하고 간편해서 1931년 처음 등장한 이후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엔 그 비율이 30퍼센트까지 줄었지만 50년 전 미국에선 전기면도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정도였다. 역설적으로 최근 전기면도기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물로 세척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일자면도기 & 안전면도기 사실 사람은 털 없이도 살 수 있다. 자주 씻지 못했던 과거엔 털 위에 기생충이 살아 위생적으로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인류는 석기시대부터 면도를 했다. 흑요석을 쪼개 날카로운 면도칼을 만들고, 기원전 4000년경엔 구리칼로 수염을 깎았다. 기원전 1200년경부터는 철을 강하게 만드는 뜨임질을 발견하면서 더욱 날카롭고 튼튼한 면도칼을 만들 수 있었다. 일자면도기는 면도 방식의 원형에 속한다. 날이 한쪽에만 있고 날을 교체할 수 없기 때문에 날이 무뎌지면 매번 갈아야 한다. 이발사이자 살인마인 스위니토드가 소설의 주인공으로 탄생한 이유도 이발소에 면도를 하러 갔을 때의 공포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발사에게 면도를 맡기는 것보다 스스로 면도하는 것이 더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일자면도기로 면도하다가 피를 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스위니 토드가 처음 등장한 소설 <스트링 오브 펄스>(1847년)가 출간된 지 1년 후 T자 형태의 안전면도기가 발명됐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최초의 괭이형 면도기. 이후 안전면도기는 ‘스타Star’라는 회사를 통해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지만 매번 면도칼을 가죽에 갈아야 하는 불편이 따랐다. 게으른 남자들은 무딘 면도기를 그대로 사용했다. 결국 여전히 ‘쇠독’과 상처에 시달렸다. 안전면도기가 진짜로 ‘안전’하게 사용된 건 킹 캠프 질레트가 윌리엄 니커슨과 함께 일회용 면도칼을 만들면서부터다. 면도칼을 저렴하게 바꿀 수 있게 되자 남자들의 턱은 한결 더 깨끗해졌다. 1901년, 20세기는 새로운 면도기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 다중날 면도기 인류가 안전한 면도를 하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면도날이 두 개가 되는 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안전면도기가 출시되고 70년이 지난 1971년, 질레트는 트랙Ⅱ라는 이중날 면도기를 발표했다. 첫 번째 날이 수염을 누르며 들어 올리면 두 번째 날이 최대한 피부에 밀착해 수염을 깎아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모든 습식 면도기의 기준이 되었다. 이후 1999년, 질레트는 마하3라는 최초의 3중날 면도기를 발표했다. 이에 라이벌 회사인 쉬크는 4중날인 쿼트로로 대응했다. 면도날의 개수 경쟁은 최근까지 계속되었는데 도루코의 페이스7이 7중날로 가장 많다. 날이 많을수록 수염이 잘 깎일 확률이 높지만 그만큼 피부와 접촉면이 많아 자극도 커진다. 만약 수염이 많이 나지 않는다면 3중날 정도의 일회용 면도기를 자주 바꿔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고 위생적인 방법일 수 있다.
트리머 털이 턱과 인중에만 나는 것은 아니다. 콧속이나 귓속, 눈썹과 구레나룻 등 신경 써야 하는 ‘털’은 많다. 그럴 때 제대로 깎기 위한 트리머Trimmer들이 ‘부위’별로 출시되어 있다. 요즘은 전기면도기 뒷부분에 구레나룻를 정리할 수 있는 트리머가 탑재 된 것도 많다. 하지만 콧속이나 눈썹과 같이 아주 예민한 곳엔 말 그대로 다듬는 기계인 트리머가 꼭 필요하다. 수염 트리머나 눈썹 트리머 모두 전기를 이용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대체로 가격도 저렴해 구입하는 데 부담이 없다. 습식 면도의 인기 때문에 위축되었던 전기면도기가 여러 부위를 손쉽고 섬세하게 정리하려는 남자들에게 트리머의 역할로 다시 각광받고 있다.
- 에디터
- 양승철
- 포토그래퍼
- 이신구
- 참고 자료
-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