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 호웰, 다이키 스즈키, 파비오 보렐리, 앤디 스페이드. 이 네 사람은 특별히 셔츠에 능통한 디자이너들이다. 이들은 어떻게 셔츠를 만들고, 또 어떻게 입을까.
이름마저 서정적인 마가렛 호웰. 이 브랜드의 시작은 디자이너 마가렛 호웰이 1970년대에 셔츠를 만들면서부터다. 그녀는 골드스미스에서 파인 아트를 전공했지만, 아티스트보단 스스로 뭔가를 만들어 입는 데 소질이 있었다. 그렇게 남자 셔츠를 한두 벌 만들면서 서서히 사람들의 반응을 샀다. 그러던 중 편집매장 방식을 도입한 독특한 전략으로 유명한 브랜드 조셉의 조셉 에티그위의 눈에 띄어 미국과 프랑스 시장에도 알려졌다. 1970~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패션, 아트 분야에 종사하는 워킹우먼들에게 마가렛 호웰 남성복은 대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걸 작게 만든 여자 옷으로 한 단계 더 성장했고, 더불어 1980년대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마가렛 호웰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특정한 유행을 따르지 않고, 좋은 소재로 만든 과하지 않은 기본적인 옷을 고집한다. 마가렛 호웰이 컬렉션을 만드는 방식은 큰 주제에 맞춰 그 요소를 옷에 대입하기보단, 셔츠면 셔츠, 레인코트면 레인코트처럼 옷 하나하나를 공들여 만들어 전체 컬렉션을 구성하는 식이다. 2004년에는 마가렛 호웰의 취향대로 신중하게 고른 몇몇 제품을 캡슐 컬렉션 형식으로 구성해 MHL 라인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가렛 호웰 하면 쇼장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늘 같은 공간이라 익숙하지만 날씨에 따라 분위기가 오묘하게 바뀐다. 마가렛 호웰의 쇼는 언제나 런던의 34번가 위그모어 Wigmore 스트리트에 있는 매장에서 열린다. 1990년대 후반에 거길 발견했다. 다행히 회사가 성장하던 시기였고 운이 좋았다. 빛이 잘 들어오는 통유리 천장의 매장을 갖게 된 건 분명 행운이다. 이 매장의 첫인상은 파티션이 많은 복잡한 구조였다. 그걸 모두 치우고, 나무 바닥부터 깔았다. 그리고 하얀 벽에 옷을 걸 수 있는 기나긴 레일을 설치했다. 옷이 마치 그림처럼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쇼장으로 사용될 때와 평소 매장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당신 말대로 갤러리처럼 천장이 높고, 조용하기도 하고, 옷 이외의 다른 오브제도 많다. 이 건물에서 마가렛 호웰의 디자인과 모든 행정 업무가 이뤄진다. 매장을 열 때부터 패션에 치중한 브랜드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라는 인식을 주고 싶었다. 영국에서 만든 빈티지 디자인 제품을 들여놨고, 전시나 이벤트를 하기에도 적합간 공간으로 꾸몄다.
당신의 매장에서 소박하고 단정한 가구를 본 기억이 있다. 어떤 제품들인가? 20세기 중반 디자인을 대표하는 에콜의 가구, 로버트 웰치의 스테인리스 제품들, 앵글포이즈 조명 같은 것들이다. 모두가 기능에 충실한,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이다. 마가렛 호웰의 옷과 맥락이 같다.
마가렛 호웰은 남자 셔츠로 시작했다. 세상에 셔츠의 종류는 수백 가지가 넘지만, 마가렛 호웰의 셔츠는 당신 말대로 드레스 셔츠보다 실용적인 디자인이 많다. 디자인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건 뭔가? 1970년대, 내가 디자인을 시작했을 무렵이다. 어딘가 마구잡이로 세일을 하는 곳에서 꽤 낡았지만 정교하게 바느질된 핀 스트라이프 셔츠를 발견했다. 그걸 보고 셔츠 컬렉션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한때 반짝 유행을 타서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은 언제나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만든 옷이 오래가길 바라고 시간이 지날수록 많이 입고, 많이 세탁해서 캐릭터가 살아났으면 좋겠다. 나이가 잘 든 옷이 좋다.
MHL 컬렉션은 풀숲이나 맑은 날 청명한 도시에서 나는 특유의 색이 있다. 색은 철저히 소재와 어울리는 걸로 정한다. 옷의 양감과 어울리는지에 따라 디자인이 바뀌기도 한다. 런던 시내와 외곽 곳곳을 산책하는 걸 좋아해서 풀과 도시에서 나는 색들이 내 눈에 많이 익숙한 건 사실이다. 아무래도 그 색들이 컬렉션에 반복됐을 테지. 뭐든 자연스러운 게 좋다. 색을 정할 때 우리가 그동안 썼던 일종의 방식을 따를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검은색과 남색, 회색처럼 살색과 대조되는 색은 캐시미어와 실크에 제일 잘 어울린다.
누군가는 마가렛 호웰만의 방식이 한결같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게 지루하다고도 말한다. 이런 얘길 들어본 적 있겠지? 그런 반응을 신경 썼다면 시작부터 지금까지 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을 거다. 반복되고 기본적인 옷들 가운데 매 시즌 분명히 다른 주제가 있고, 옷 어딘가에 숨겨진 신선한 세부나 고상한 색을 발견할 수 있다.
셔츠를 멋지게 입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다면? 틈이 나면 수영이나 걷기를 즐긴다. 덕분에 다부진 체격을 가졌다. 그리고 제철에 나는 싱싱한 재료로 만든 음식을 좋아한다. 셔츠를 예쁘게 입는 방법에 뭐 특별한 게 있을까. 단단하고 단정한 몸이라면 어떤 셔츠든 다 잘 어울린다.
요즘 런던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뭔가? 얼마 전 V&A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폴 스트랜드 Paul Strand의 사진 전시를 봤다. 20세기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광과 인물을 실컷 볼 수 있는 전시다.
어젯밤 자기 전엔 뭘 했나? 리앤 셰프턴의 < Swimming Studies >를 읽었다.
- 에디터
- 김경민
- 일러스트레이터
-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