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좋은 랩 가사란?

2016.07.27유지성

좋은 랩 가사는 어떤 걸까? 그것은 노래 가사와 어떻게 다르며,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나? 래퍼, 평론가, 시인, 디제이 등 각기 다른 관점과 입장의 8인이 꼽은 한국 랩의 반짝이는 여덟 마디.

이센스 ‘Writer’s Block’

“무표정으로 보는 뉴스 / 보다가 끄고 문자온 거 보는 중 / 야 어디갈라고 오늘은? / 몰라 작업해야지 넌 노는 중? / 괜히 조바심에 어제 쓰다만 / 거 뒤져봐도 하나같이 구린 가사 / 버린 이유가 있네 그냥 나갈까? / 전에 사다놓은 맥주는 남았나 없네”

― 이센스의 첫 정규 음반 < The Anecdote >에서 결정적인 여덟 마디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그의 가사에는 흔한 말장난도 비유도 펀치 라인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에게 지어준 이름(에세이스틱 센스Essayistic Sens)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 The Anecdote >는 자유로운 동시에 치밀한 한 편의 에세이에 가깝다. 그렇다고 ‘감성적’이나 ‘감상적’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일찍이 몽테뉴는 한 에세이에서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부드럽고 기교도 부리지 않으며, 애쓰지도 않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수식 없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그려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라고 썼는데, 그것이 바로 이센스가 < The Anecdote >에서 하고 있는 일이다. 일상적인 패배와 나태와 흔들림과 수치와 그럼에도 던져버릴 수 없는 어떤 마음 같은 것들. 여덟 마디에 넣기는 불가능하지만 각각의 곡과 하나의 앨범에 이센스가 분명히 담아내고 있는 것들. 그러니 이렇게 말하는 건 어떨까. 몽테뉴가 에세이라는 글쓰기를 발명했다면 이센스는 에세이로서의 힙합을 완성했다고. 최소한 한국 힙합 신에서는. 금정연(문학평론가)


 

피타입 ‘돈키호테’

“나는 아직 초라한 나그네 오늘도 꿈을 꾸네 / 품에 새긴 현실과 내 운명 덕분에 / 가진 것이라곤 오직 이 고독뿐 / 절망을 지나온 거친 언어의 폭풍 / 꾸는 꿈은 불길을 뿜는 거칠은 / 저 화산이다 지금의 자화상이 아직은 / 비록 타다만 불씨 같다만 / 이뤄질 꿈인지도 장담할 수도 없다만”

― 피타입이 < Show Me The Money >의 탈락 장면으로만 기억되는 건 아쉬운 차원을 넘어 부당한 일이다. 한국어 랩의 정립은 그(와 버벌진트)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핵심 근거는 이 곡, ‘돈키호테’다. 2004년에 나온 이 노래는 한국어 랩이 제대로 된 ‘아트 폼’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치밀하게 보여줬다. 예를 들어 “나그네”와 “꾸네”, “덕분에”로 이어지는 라임은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한국어 라임은 꼭 같은 글자를 써 맞춰야 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같은 품사일 필요도, 또한 같은 글자 수일 필요도 없다고 외치는 듯했다. 이는 곧 서사의 확장을 불러왔다. 그전에는 메시지가 라임에 종속되는 경향이 있었다면 피타입은 메시지의 피부 속에 라임을 숨겨놓았다. 실제로 ‘돈키호테’는 텍스트만 눈으로 본다면 랩 가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보단 문학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소리를 내어 읽을 때 비로소 라임 가득한 랩으로 변모한다. 즉, ‘돈키호테’는 “모든 랩은 공연되길 기다리는 한 편의 시”라는 랩의 양가적 속성을 완벽히 증명한다. 한국어 랩의 정립을 위해 피타입이 특별히 어려운 이론을 동원한 것은 아니다. 대신에 그는 구개음화나 자음동화 같은 국어의 기초 문법을 적절히 활용하고, 거센 소리와 된소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어절과 어절 사이의 구분에 얽매이지 않았을 뿐이다. 또한 피타입은 꼭 라임의 자리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발음을 가사 곳곳에 최대한 심어놓았다. 래퍼 빅 펀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예를 들어 “꾸는 꿈은 불길을 뿜는 거칠은”이라는 구절의 핵심은 다음 구절의 “아직은”과 쌍을 이루는 라임 “거칠은”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꾸는”, “꿈은”, “뿜는”이라는 비슷한 발음이 연쇄적으로 반복되며 시종일관 운율의 긴장을 조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돈키호테’가 한국 힙합 역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에릭 비 앤드 라킴 시절, 라킴의 랩이 미국 힙합에서 차지한 위치와 본질적으로 같다. 교과서이고 기념비이며 시간을 이겨낸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현재에 갖다놓아도 챔피언이다. 김봉현(음악평론가)


 

빈지노 ‘젖고있어’

“Sometimes it shines, and sometimes it rains / Sometimes u break my heart / 내 심장에도 먹구름이 낀 것만 같아 / 그 크기는 extra large / 날 위로해주러 온 친구도 / 어느새 젖고 있어 / 내 친군 지금 우산을 / 먹구름에게 씌워주고 있어”

― 한때는 무조건 중의적이고 복잡한 가사만 좋아했다. 말장난의 단계를 뛰어넘어, 언어의 기예를 느끼고 싶었다. 직접 가사를 쓰는 래퍼로서, 끊임없이 연구하기도 했다. 기발한 ‘라인’을 쓰기 위해서. 하지만 언젠가부터 곡마다 어울리는 옷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직접적이고 1차원적인 말이 더 좋을 때가 있고, 간단한 비유가 더 크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빈지노의 ‘젖고있어’의 이 구절은 비유를 간결하지만 효과적으로 사용한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우울함이나 슬픔 같은 단어가 등장하진 않지만, 이 곡의 후렴구 여덟 마디에서는 곡이 그리는 상황이 구체적으로 전달된다. ‘어떤 위로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위로해주려던 친구마저 덩달아 슬퍼지는’ 순간. 처음엔 “심장에 먹구름이 끼었다”고 구절을 시작한 뒤, 마지막엔 본인이 먹구름 그 자체라고 표현하며 은근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식도 색다르다. 결국 화자가 비를 쏟아붓는 먹구름인 셈이고, 먹구름에게 우산을 씌우는 건 무의미한 일이니까. 서출구(래퍼)


 

버벌진트 ‘Ad Hoc’ 중 영국의 여덟 마디

“개뻘짓 전문 난 힙합 마빡이 / 랩하는 형들 좆밥 따까리 / 여기나 거기나 결국 마찬가지 / 필요한건 손과 혀의 사탕발림 (중략) / 국힙 전체가 내 타작극 / 니들은 타자를, 난 매타작을 / 아무리 짖어봐야 우리는 타자들 / 투수도 야수도 없는 타자들”

― 버벌진트의 < 누명 > 앨범에 실린 ‘Ad Hoc’에 피처링한 영국의 가사다. ‘Ad Hoc’은 버벌진트와 영국 두 래퍼가 한국 힙합 신, 일명 ‘국힙 신’에 환멸을 드러내는 곡이다. 온라인 힙합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구성된 국힙 신은 한국 힙합에 애정과 관심을 가진 이와 한국 힙합이 자신에게 애정과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이로 구성된 흥미로운 공간이다. 들여다보면 전자보다는 후자가 많아 보이는데, 이것은 언제라도 수요가 공급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부자의 결집을 공교히 하(고 외부자에겐 놀림감을 안겨주)는 힙합 고유의 나르시시즘과 형님-동생으로 얽힌 한국 남성 문화 특유의 ‘조폭 위계질서’가 더해진다. 저녁 7시의 트위터 타임라인처럼 모두가 말을 하지만 아무도 듣지 않고 새벽 3시의 술자리처럼 서로를 형님 동생이라 부르지만 다음 날이 되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신의 탄생이다. 이 곡이 발표된 지 8년이 지났지만 현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랩 스타’가 탄생했고 < Show Me The Money >처럼 이것을 활용하려는 미디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거기에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타고, 한국 힙합 신의 구조적 폐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투수도 야수도 없는 타자들”이라는 가사가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다. 아무리 이런 얘기 해봤자 여전히 우리는 서로에게 타자他者겠지만. 하박국(영기획YOUNG,GIFTED&WACK 대표)

TFO ‘반복되는 의미의 축제’ 중 PNSB의 여덟 마디

“상상조차 못할 곳으로 널 데려다줄게 / 그 상상을 현실화시킬 의미의 축제 / 난 빚을 졌고 방방까지 탔지 마취제 / 꽂혀있던 뇌 속에 혈흔들을 배출해 / 하나, 둘, 셋 하면 너도 키디팝 / 이 파티 안의 사람들 바보같애 깽값 / 물어줄 준비하고 애새끼들 다 팰까 / 오 이런 어린 생각들은 다 fade out”

― 래퍼 B.A.C와 프로듀서 사일러밤이 결성한 듀오 TFO(티에프오)가 2014년 발표한 음반 < PTSM >에 수록된 곡이다. < PTSM >은 음습한 분위기로 색다른 청각적 경험을 이끌어내는 프로덕션과 비틀린 유머를 덧씌운 랩으로 함량 높은 대안적 힙합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리고 ‘반복되는 의미의 축제’는 < PTSM >의 하이라이트다. 그런데 그 하이라이트를 만드는 주인공은 게스트 래퍼인 PNSB다. 군산에서 출발한 레이블 애드밸류어는 인상적으로 음악 신에 등장했지만, 프로덕션에 비해 빈약한 래퍼와 보컬 때문에 그 매력이 다소 반감되곤 했다. 그중 유일하게 발군의 랩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래퍼는 PNSB였고, ‘반복되는 의미의 축제’를 여는 그의 랩 또한 독창적이다. 앰비언트 성향의 프로덕션 위에 변칙적이고 속도감이 느껴지는 랩을 더해 기이한 흥겨움을 연출하는데, 함께 주목할 것은 그의 가사다. 초반에 어둑한 클럽이 연상되는 공간을 순식간에 그려내더니, 넘치는 자의식의 표출과(거기에 따른 누군가에 대한 혐오를 포함해) 약간의 자기비하까지 단숨에 섞어 여덟 마디를 내달린다. 할 말을 응축시키되 적절히 안배하고 배치해 ‘타이트’한 여덟 마디를 구성했달까. 구체적으로는 “마취제”, “뇌”, “혈흔” 같은 날것에 가까운 단어를 선택하며 PNSB의 시뻘건 내면을 드러내는 듯한 네 마디에 이어, 다음 네 마디에서는 눈을 번쩍 뜨자 보이는 현실을 비아냥대는 식이다. 이런 전개는 노골적이지 않게 잘 짜인 라이밍 설계와도 일치한다. 전반의 라임 “줄게 / 축제 / 마취제 / 배출해”는 나른하고, 후반의 “키디팝 / 깽값 / 팰까 / fade out”은 그 내용처럼 묘한 흥분을 돋운다. 여기에 자기 곡 이름 ‘방방’과 ‘키디팝’을 넣어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발견의 잔재미를 주기도 한다. 남성훈(웹진 <리드머> 부편집장)


 

엠씨 메타와 디제이 렉스 ‘무까끼하이’

“문제도 아인기라 인간이 아인기라 / 사짜들 막 온데 다 천지삐까리 / 글마들 때메 내는 맨날 빛갈이 / 음악은 음악이고 사업은 사업이라 / 음악으로 장난치는 사업이 사업이가? / 근데 니는 내한테 내 음악을 판다메? / 내 하고 싶은 음악으로 장사를 한다메? / 그림도 그리고 마 소문도 돌리고 마”

― 오래전, 처음 이 가사가 랩으로 들려왔을 때 충격이었다. 모국어의 질감과 속살이 이렇게 잘 전해질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고, 사투리가 빚어내는 감성이 주는 흥이 새로웠다. 한마디로 모국어의 식감이 새로웠다고 해야 할까? 당시 경상도 방언의 가사가 일본어 느낌이 전해진다는 이유로 방송 불가 조치를 받은 사실에 격분하기도 했던 것 같다. 가리온과 엠씨 메타가 랩으로 전개해온 여정을 고려해보았을 때, 이 곡은 모국어의 차진 맛을 서걱거림 없이 제대로 비틀었다고 생각한다. 시를 쓰는 내게도 모국어의 운용 범위에 대한 확장에 많은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시인과 래퍼는 쌍생아처럼 라임 속에서 태어나고 라임을 먹고사는 존재들이다. 필요하다면 둘은 “그래 잘 지내고 언제 한번 보자” 식으로 전화를 끊곤 했던 상투를 벗어나야 한다. 근황을 묻지 말고 서로 만나서 그동안 붙어먹고 살고 있는 라임을 공유해보아야 한다. 시적 선언이 필요한 이 시대에 ‘무까끼하이’는 용기 있는 시적 선언으로, ‘라임 시장’에서 이런 작업은 더욱더 요원해 보인다. 김경주(시인, 극작가, 포에트리 슬램 운동가)


 

주석 ‘진 vs 위’ 중 메이크 원의 8마디

“도처에 널려있는 수많은 진리들을 / 적당히 주워서 입에 담긴 쉬워 / 허나 무지와 태만이 백일하에 드러나 / 그대로 끝나기 싫다면 그곳을 벗어나 / 수없이 쌓인 위선과의 게임 / 이미 두 눈이 패인 장님과의 게임 / 거짓에 붙어 기생하는 위자에 / 맞서 나갈 내 위치는 #1 position”

― 훗날 일 스킬즈라는 팀을 함께 (짧게) 하게 되는, 메이크 원을 처음 본 것은 1998년 마스터플랜의 대기실이다. 공연을 앞둔 팀 멤버 모두가 앉아 있는 자세의 ‘각’과 박스에서 새로 꺼내 신은 에어맥스의 발끝으로 순종 힙합의 기운을 강하게 내뿜으려 하던 그런 시기였다. 랩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운동화와 무대 매너나 눈빛과 손짓 혹은 같이 데려온 크루 멤버 등이 ‘멋’이라는 토털 패키지로 받아들여지던 시기. 디제이로서 공연을 보고 동참하는 입장에서도 가사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요즘은 한국 힙합에서 훌륭한 스토리텔링도 찾을 수 있고 표현 기법도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지만, 90년대 후반에는 주로 세상의 자명한 이치를 현학적이고 수사를 가득 덧붙여 말하는 동시에 결국은 내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가사가 정석이었다. 함축적인 가사 및 거친 태도와 함께. 아직 힙합 혹은 가사에 대한 다방면의 깊은 고찰이 있기 전, 그저 ‘언더그라운드’라는 기제를 아우르는 대명제가 존재한다는 믿음 같은 게 있었다고나 할까. 사실상 ‘진 vs 위’의 가사처럼 “거짓에 붙어 기생하는 위자에 맞서나갈” 일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세상의 위선과 거짓에 분노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더 진짜 같아 보일까, 를 걱정하던 당시의 나와 우리가 품은 허위의식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허세와 모순이 현실과 만드는 간극은 (역설적으로) 지금까지 나를 힙합 디제이가 되고 싶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박민준(디제이)


 

김아일 ‘Girlslike’

“헷갈려 너를 예술로서만 / 받아들여야 할지 아님 Take you by the heart / 네 손목시계에 내 숨을 맞춰 가/ 넌 마치 비너스 난 화성 같아, Mars / 설렘에 관해선 네가 더 최진리야 / You’re so city Kolkata, I’m teasing you/ Mother Theresa of the hood”

뜻: You gotta give it up, cause I’m doing it for good(Love, L.O)

― 래퍼들은 다른 주제에 비해 사랑에 관한 표현은 좀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상황 혹은 일차원적 비유. 그렇지만 김아일이 < Boylife in 12″ >에서 보여준 (사랑에 대한) 한없이 순수하고 내밀한 가사는 특별하다. 하나하나 자잘한 비유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너는 테레사 수녀의 도시, 콜카타와 닮았다”는 표현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콜카타는 마더 테레사가 고귀한 사랑을 실천한 도시이며 기쁨의 도시라 불리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그 누구보다 사랑과 헌신의 표상 같은 인물과 (그녀를 직접 대입하는 대신) 그 인물의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비유한 것이다. ‘스케일’부터 다르달까. 사랑에 대해 더욱 풍부하고 넓은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되는 가사다. 신세하(뮤지션)

    에디터
    유지성
    포토그래퍼
    정우영
    금정연(문학평론가), 김봉현(음악평론가), 서출구(래퍼), 하박국(영기획YOUNG,GIFTED&WACK 대표), 남성훈(웹진 부편집장), 김경주(시인, 극작가, 포에트리 슬램 운동가), 박민준(디제이), 신세하(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