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dget

두 얼굴의 포르쉐, 2세대 파나메라

2016.08.06GQ

포르쉐가 베를린에서 신형 파나메라를 공개했다. 2세대 파나메라는 911을 쏙 빼닮은 외모와 첨단 디스플레이 가득한 실내로 거듭났다. 성능이 궁금했지만 포르쉐는 얄밉게도 스킨십만 허락했다.

간절히 꿈꾸면 이뤄진다는 말. 숱하게 들었지만 좀처럼 와 닿지 않는 격언이다. 알고 보면 세계적인 업적을 세운 이들 역시 숱한 좌절의 순간을 겪었다. 스포츠카의 아이콘, 포르쉐.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를 일군 주역에게도 당대에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다. 지난 6월, 포르쉐 창업주 일가의 애타는 열망을 담아 뒤늦게 선보인 차를 만날 기회가 왔다. 그러나 설렘은 오래가지 못했다. 6월 28일 오후 8시, 포르쉐는 독일 베를린에서 신형 파나메라를 세계 최초로 공개할 참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 누군가 빼돌린 사진이 온라인에 퍼졌다. 독일에서 누구보다 먼저 신형 파나메라를 만나 한국에 소개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말을 미리 알고 극장에 들어서듯, 나는 허탈한 심정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우여곡절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정상 경유한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서는 공항을 떠난 지 15시간 후 끔찍한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하지만 베를린에 내린 우리는 이 같은 미래를 전혀 모른 채 호텔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이날 늦은 오후 우린 호텔 로비에 모였다. 로비는 신형 파나메라와 첫인사를 나누기 위해 모인 전 세계 기자들로 북적였다. 우린 셔틀을 타고 베를린 외곽의 커다란 창고로 이동했다. 환영 만찬 장소인 건물 로비에선 전설적인 레이서이자 포르쉐 전속 테스트 드라이버 발터 뢰를, 포르쉐 디자인 총괄 마이클 마우어 등 쟁쟁한 인물들이 웃고 떠들며 샴페인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후 7시, 우린 스태프의 안내를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침침한 조명이 서늘한 긴장을 부추겼다.

가뜩이나 층고 높은 3층 건물 한복판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수직으로 뻥 뚫린 공간. 신형 파나메라를 세계 최초로 만날 무대였다. 오후 8시, 장엄한 카운트다운으로 긴장을 한껏 고조시킨 뒤 공식 행사의 막을 올렸다. 포르쉐는 먼저 역동감 넘치는 영상으로 신형 파나메라를 소개했다. 포르쉐가 영상에 담은 핵심 메시지는 ‘스포츠카와 럭셔리 세단의 조화’였다. 1세대 파나메라 역시 추구하는 방향은 같았다. 그런데 이번 신형은 둘 사이의 간격을 한층 넓혔다. 파나메라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포르쉐 회장 올리버 블루메는 “포르쉐는 2009년 파나메라로 럭셔리 세그먼트에 진출했다. 이후 전 세계 시장에서 파나메라를 15만 대 이상 판매했다. 이번 신형은 새 디자인과 엔진, 기술을 담은 2세대”라고 밝혔다. 전반적인 실루엣은 원조와 비슷했다. 그러나 한눈에 봐도, 외모가 911과 한층 가까웠다. 이번엔 포르쉐 디자인 총괄 마이클 마우어가 마이크를 쥐었다. 그는 “지붕 선을 보다 날렵하고 역동적인 쿠페 스타일로 다듬었다. 신형은 누가 봐도 한눈에 파나메라라는 사실을 알 수 있되, 기존 파나메라의 단점은 지우고 장점은 한껏 부각시켰다”고 설명했다. 신형 파나메라는 기존보다 34밀리미터 길고, 6밀리미터 넓으며 5밀리미터 높다. 이전과 거의 비슷한 덩치인 셈이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1세대보다 한층 낮고 길어 보인다. 비밀은 지붕의 흐름. 뒷좌석 머리 공간을 챙기되 지붕을 기존보다 20밀리미터 낮췄다. 휠베이스도 이전보다 30밀리미터 더 늘렸다. 앞바퀴는 이전보다 더 범퍼 쪽으로 바짝 당겼다.

또한 보닛엔 한층 두드러진 주름을 새겼다. 앞 범퍼의 흡기구는 좀 더 바깥쪽으로 벌렸다. 헤드램프는 눈물샘 쪽을 좀 더 뾰족하게 다듬었다. 나아가 네 개의 LED 점으로 구성한 주간 주행등을 심었다. 그 결과 멀리서 봐도 단박에 포르쉐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옆모습은 좀 더 쿠페 같은 형상과 비율로 다듬었다. 초점을 흐리고 보면 단박에 911이 떠오른다. 신형 파나메라의 외모에서 가장 크게 바뀐 부분은 꽁무니다. 911의 뒷모습을 그대로 복사해서 붙인 듯하다. 어둠 속에서 불 밝힌 테일램프만 보면 감쪽같이 속을 정도다. 이전 파나메라에 이 테일램프만 붙였다면 어색할 법도 했 다. 그러나 이번에 전반적인 실루엣을 세심하게 다듬은 결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개인적으론, 가장 마음에 드는 부위다. 포토세션이 끝난 뒤 우린 우르르 무대로 몰려갔다. 세상 누구보다 먼저 신형 파나메라의 속살을 엿볼 기회였다. 문을 열고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유저 인터페이스를 획기적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눈부신 디지털 디스플레이 때문에 눈이 아렸다. 우선 계기판부터. 한복판의 타코미터(엔진회전계) 빼곤 좌우의 7인치 띄운 정보창이 모두 디지털 방식이다. 이른바 ‘어드밴스드 콕핏’이다. 센터페시아엔 12.3인치의 터치스크린을 심었다. 포르쉐는 이 시원시원한 화면 속에 기존 포르쉐 커뮤니케이션 매니지먼트PCM와 애플 카 플레이, 포르쉐 커넥트, 음성제어 시스템 등 연결성을 높일 다양한 기능을 녹여 넣었다. 좌우 뒷좌석 사이에도 옵션으로 디스플레이를 달 수 있다. 기회를 틈타 직접 조작해보니 터치가 민감하고 반응이 빨랐다. 그래서 큰 수고 없이 다양한 메뉴를 넘나들 수 있다. 화면이 워낙 크다보니 내용이 전환되는 과정이 유독 화려하고 극적이다. 손가락이 긴 외국인이 시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제스처 컨트롤 기능으로 착각할 정도다. 아울러 그래픽도 아주 정교해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앞뒤 좌석은 이전보다 한층 입체적으로 디자인했다. 고급 세단의 탈을 쓴 스포츠카답게 기본형 시트부터 몸을 꽉 움켜쥐는 형태다. 욕심도 많은 포르쉐는 마사지 기능까지 챙겼다. 뒷좌석은 40:20:40의 비율로 나눠 접을 수 있다. 따라서 필요에 따라 짐 공간을 넓히기 좋다. 해치백 스타일답게 짐 공간은 495리터를 기본으로 최대 1304리터까지 쓸 수 있다. 엔진과 출력(hp 기준)은 파나메라 4S가 V6 2.9리터 가솔린(440마력), 파나메라 터보가 V8 4.0리터 가솔린(550마력), 파나메라 디젤이 V8 4.0리터 디젤(422마력)이다. 모든 엔진은 두 개의 실린더 뱅크 사이에 트윈터보를 달았다. 그 결과 엔진의 부피를 줄였고, 차의 무게 중심을 낮췄다. 또한 터보차저와 연소실이 가까워 반응이 훨씬 빠르다. 신형 파나메라 터보는 구형보다 배기량을 약 0.8리터 줄이고도 출력을 30마력 더 높였다. 최대토크는 78.5㎏•m로 이전보다 8.3㎏ •m 더 높다. 스포츠크로노 패키지를 달 경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을 3.6 초 만에 마친다. 최고속도는 시속 306킬로미터. 어마어마한 성능이다. 그런데 연비는 오히려 개선했다. 유럽연합의 복합 사이클 기준으로, 파나메라 터보는 1 리터당 10.6~10.7킬로미터를 달릴 수 있다. 또한, 파나메라 터보는 포르쉐 가운데 최초로 가변 실린더 제어 기술을 도입했다. 따라서 부하가 크게 걸리지 않게 달릴 때 엔진은 8기통 가운데 4기통만 작동시킬 수 있다. 그만큼 연료를 추가로 아낄 수 있다.

파나메라 4S는 V6 2.9리터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을 품었다. 직분사 방식으로 효율을 높여 이전보다 최고출력을 20마력 더 끌어 올렸다. 크로노패키지를 달 경우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에 걸리는 시간은 4.2초. 연비는 유럽 복합 사이클 기준, 1리터당 12.1~12.3킬로미터로 이전보다 11퍼센트나 개선 했다. 최고속도는 시속 289킬로미터다. 파나메라 4S 디젤은 포르쉐 양산차 가운데 가장 강한 디젤 심장을 품었다. 최대토크가 무려 86.6㎏•m에 달한다. 게다가 이 뜨거운 힘을 1000rpm부터 콸콸 쏟아낸다. 터보차 저는 두 개를 물렸는데, 2700rpm을 기준으로 그전엔 하나, 그 이상에선 두 개를 동시에 터뜨린다. 게다가 이번 파나메라 4S 디젤은 이전과 달리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을 단다. 파나메라 4S 디젤의 최고속도는 시속 285 킬로미터로, 양산 디젤차 중 가장 빠르다. 시속 100킬로미터 가속 시간은 4.3초, 연비는 1리터 당 14.7~14.9킬로미터. 모든 신형 파나메라엔 포르쉐의 신형 8단 PDK(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물렸다. 그 밖에 통합 4D 섀시 제어 기술과 뒷바퀴 스티어링, 능동제어 에어 서스펜션으로 몸놀림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이번 파나메라엔 유전자를 나눌 아우디 차세대 A8의 기술도 두루 스몄다. 매트릭스 헤드램프가 대표적이다. 수많은 점으로 나뉜 LED가 상대방의 눈부심은 줄이되 밤길은 훤히 밝힌다. 자율주행 전 단계 기술도 담았다. 소위 ‘포르쉐 이노드라이브’로, 레이더와 비디오 센서, 내비게이션 정보로 전방 3킬로미터까지 파악하며 정속 주행할 수 있다. 이제 시동을 걸고 달릴 차례. 하지만 행사는 여기까지였다. 우린 애꿎은 호기심만 한껏 부풀린 채 파나메라와의 짧고 굵은 만남을 정리해야 했다. 흥겨운 음악과 신형 파나메라를 뒤로 한 채, 우린 셔틀을 타고 호텔로 향했다. 이때 누군가 이스탄불의 폭탄 테러 소식을 전 했다. 기대와 실망, 감동과 반전, 충격과 공포가 정신없이 교차된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에디터
    컨트리뷰팅 에디터 / 김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