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슬리먼을 벌써 잊은 건 아니다.
에디 슬리먼은 늘 제멋대로였다. 입고 싶고 입히고 싶은 옷만 만들고, 찍고 싶은 피사체 앞에서만 셔터를 눌렀다. 낮에는 말리부 해변에서 얼굴에 모래가 묻은 서퍼들과 시간을 보냈고, 해가 지면 싸구려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망나니 뮤지션들과 늘 취해 있었다. 배우보다 뮤지션 친구가 많았고 모델보다 뮤지션에게 관대했다. 팔리든 말든 여름엔 롱보드와 스케이트보드를 만들었고(물론 다 팔렸다), 당황스럽게 파리가 아닌 할리우드 팔라디움에서 쇼를 했다. 쇼 맨 앞줄에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괜 사람과, 허벅지와 발과 손을 악기처럼 다루는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쇼 음악으로 쓰인 전자 기타 소리는 20여 분 동안 계속됐는데, 당연히 사운드하운드에선 찾을 수 없었다. 이미 마지막 쇼가 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때였고, 그래서인지 2016 F/W 쇼는 해가 지기 전 마지막 폭죽처럼 환하게 터졌다. 그 뒤론 에디 슬리먼을 볼 수 없었다. 빅 브랜드의 패션 디자이너가 이동식 주차 타워처럼 바뀌는 지금, 에디 슬리먼에 대한 새로운 소문도 아지랑이처럼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다.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만든 그냥 소문일 수도 있겠지만, 모른다. 그가 하고 싶은 게 과연 어떤 걸지.
- 에디터
- 박나나
- 포토그래퍼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