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드레이퓌스의 아서 백을 보고 한마디만 했다. “우리는 왜 이제야 만났을까.”이 가방은 우선 날씬하고 가볍다. 변변하게 넣은 것도 없는데 벌써부터 소금 궤짝처럼 무거운 여타의 가방들과는 다르다. 요즘 유행하는 식으로 귀여운 장식이나 발랄한 색깔을 넣지도 않았다. 광택이 없는 흑연색 송아지 가죽을 대담하게 잘라 쓰고 지퍼와 끈만 더했다. 탁자 위에 두고 보자니 힘없이 고꾸라지거나 풀썩 주저앉지 않고 침착하게 한 자리를 지킨다. 가볍고 날렵하니 혹시 물건을 많이 넣을 수 없는 건가 의심이 들어 이것저것 넣어보았다. 뚱뚱한 텀블러와 무거운 사진집을 함께 넣었는데도 공간이 꽤 넉넉하다. 크지 않은 미디엄 사이즈 가방이지만 속이 깊어서 새끼 고양이 몇 마리쯤은 너끈히 들어가서 놀 수 있겠다. 제롬 드레이퓌스의 남자 가방은 이런 식이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자세히 볼수록 마음에 드는 점이 많다. 우선, 끈의 길이를 조절할 수 있어 짐이 많은 날은 백팩으로, 가볍게 나온 날은 토트백으로 들 수 있다. 또한 재미있는 면모는 가방 안에 든 미니 램프와 병따개다. 정전이 된 플랫폼에서 재빨리 가방 속 휴대전화를 찾을 수도 있고, 여럿이 모인 야외 테이블에서 패기 있게 맥주병 뚜껑을 딸 수도 있다. 실제로 쓸 일이 별로 없어도, 이런 생각 자체가 순진하고 엉뚱해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입꼬리를 올린 채 동시에 생각한다. ‘아서, 너 좀 귀엽다.’
- 에디터
- 강지영
- 포토그래퍼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