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안미린의 첫 시집 < 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 >이 나왔다. “어린 신의 빛 감각”이라고 부연하는 자서로부터 시집 제목을 유추하자면, 그녀가 바라보는 신은 창의적인 존재다. 빛이라는 하나의 답을 제시하지 않고, 부정하고 다른 걸 내밀지도 않는다. 신은 찢어버리는 존재이고, 그의 시론이 놓이는 자리다. 이 시집 거개의 단어는 매우 친근하다. 하지만 그 지시적인 의미를 사용하지 않고, 단어가 주변과 맺은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낯설어진다. 낯선 것이 시어라지만, 명사, 형용사, 동사와 그 수식어들 사이의 거리가 이다지도 먼 시, 그래서 다른 실재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시는 흔치 않았다. 아슬한 비문의 경계에서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시를 읽다 보니 시의 문법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안미린의 시는 단어와 단어 사이, 문장과 비문 사이를 유유히 운동하는, 다만 찢어버리는 언어다.
- 에디터
-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