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서울, 미로에서 길 찾기

2016.10.04GQ

2016년, 서울에서 내 나이로 산다는 것, 도시를 관찰하지만 발붙이지 않는 40대, 미로 속에 빠진 듯한 30대, 밥벌이를 고민하는 20대. 개인이 쌓고 제각각 흡수한 서울의 시간에 대하여.

김영혁 44세, 김밥레코즈 대표

서울의 어디에 사나? 잠실. 예전엔 장점이 몇 가지 있었는데 최근에 모두 사라졌다. 낮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는 곳은? 동교동과 서교동 인근. 그렇다면 밤 시간은? 김밥레코즈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가장 좋아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이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인가? 작년까지 11년간 운영에 참여했던 카페 비하인드. 한적한 오전 시간. 서울에서 가장 가치 있게 돈을 쓰는 방법은 뭘까? 건물을 매입해 문화 시설 또는 공원으로 만드는 것. 이곳과 가장 달라 보인 세계의 도시는 어디인가? 파리.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가장 자주 만나는 사람은? 음악가 오타키와 김원준(코가손). 여기가 견딜 수 없이 지긋지긋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작은 가게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프랜차이즈 매장이 일렬로 들어올 때. 최근 서울에서 10년간 벌어진 일 중 가장 인상적인 건 뭔가? 일명 ‘연트럴파크’ 앞 편의점에 식음료를 사기 위해 늘어선 줄. 서울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무엇’을 꼽는다면? 청계천, 아파트 가격, 주요 상권의 월세, 일부 가요 레코드의 거래 가격. 그렇다면 가장 과소평가된 것은? 독립 음악계. 서울 외곽 한적한 곳으로의 이사.

고교 시절에 음반을 사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압구정에서 잠시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처음 와본 동네였지만 직감대로 길을 찾아갔고 결국 원하는 음반을 손에 넣었다. 부산에서 살던 그 시절 서울은 공연이 좀 더 많고, 원하는 음반이 좀 더 많은, 그러니까 ‘음악’이 좀 더 많은 도시처럼 보였다. 그래서 잘 통하는 음악 친구도 더 많을 것 같았고, 대학에 가면 밴드도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후자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덧 20년 넘게 살게 된 도시 서울에서 그때처럼 길을 잃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 관한 일을 업으로 하고 있는 현재, 그 속에서 길을 찾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오래전 그랬던 것처럼 직감에 의존하고 있는 것 같다.

“서울 외에 공연을 할 곳이 한국에는 없느냐”는 외국 음악가들의 질문은 익숙하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지방에 거주하는 누군가가 지금 일하고 있는 레코드점에 찾아와서 “왜 우리 지역엔 이런 작은 가게조차 없는 걸까요”라며 자조적 질문을 하는 것도 들었다. 전체 인구 대비로 보면 공연을 자주 보거나 레코드를 일상적으로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퍼센트는 그리 높지 않지만, 그래도 한국의 다른 도시나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그 수요가 큰 도시. 서울은 그런 의미로 있어 왔다. 그런 이유로 나 역시 서울에서 살아가고,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언제나 믿기 힘들 정도로 작고, 불확실하며, 보수적이었다. 이 시장은 한국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보다 더 빨리 보수화되어 왔다. 10~20대들이 중심이 된 케이-팝 시장이 주류로 존재하고 있고, 그곳에서 새로운 음악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소비되고 있지만, 그 시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시장은 변두리 어딘가에서 추억의 음악을 반복해서 틀어주는 ‘음악 살롱’같은 분위기에 가깝다. 전자 음악과 힙합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은 90년대 중반 재즈가 TV 드라마 덕분에 반짝 인기를 얻었을 때의 분위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것을 극복하는 일은 20대 후반과 30대를 보낸, 음반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가장 큰 숙제였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일련의 그룹을 꾸준히 지속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방법을 찾아 고민했던 것이다. IMF 직후 음반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때 이미 많은 사람이 ‘새로운 음악 듣기’로부터 은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30대 음악 애호가들이 40대가 되어도 시장에서 퇴장하지 않게 하고, 음악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10~20대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방법들을 실행 가능한 범위에서 만들어보고자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축적된 경험도 생기고, 사내에서 발휘할 수 있는 권력도 생기면서 좀 더 많은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상황이 오는가 싶었지만, 그러던 와중에 회사를 그만뒀다. 시장의 흐름에 맞춰 점점 더 보수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짜야 했던 회사에선 실험을 위한 비용을 치를 의향이 없었고, 그것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의욕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40대의 문턱까지도달하자 거뜬하게 2~3일 밤을 새우던 체력도 어느새 쇠퇴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무렵에 새롭게 시작한 일이 몇 가지 있다. ‘서울레코드페어’라는 이전에 없던 종류의 행사. 그것 역시 불확실성으로 가득했지만, 잠시 신기루라도 본 것마냥 그 일에 집중했다. 작은 공연을 만드는 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레코드페어와 작은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하면서 무형의 존재처럼 느껴지던 그 어떤 시장을 눈과 피부로 경험했고, 그러면서 시장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었다. 상상했던 것만큼이나 작았지만, 어쨌든 서울에선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은 빠르지만 동시에 느린 곳이기도 하다. 출퇴근길의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에 접어 들면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량들의 속도를 공유 해야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레코드와 공연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시간 그 도로에 접어드는 것과 비슷한 경험이었다. 서울레코드페어를 진행해온 지난 5년 간 시장은 생각처럼 쉽게 확대되지 않았다. 아니, 제자리걸음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 소비 시장에서 은퇴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진 탓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쩌면 장기 불황에 의한 구조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빠른 시간 안에 개선될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새로운 세대의 음악 소비자들은 레코드를 사거나 공연을 볼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이전 세대보다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에, 자동차 정체 구간에서 언제나 상상하게 되는 뻥 뚫린 길, 즉 시원한 정체 해소는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사이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는 부정적인 징후들을 지속적으로,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오프라인 레코드 가게가 문을 닫았으며, 내가 일하고 있는 홍대 상권의 월세는 빠른 속도로 상승하고 있고,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빨리 지쳐가는 것 같다. 서울은 때때로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는 일들을 포기하게끔 끊임없이 밀쳐내는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를, 그 속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 음악을 선택하거나 소개하는 직업인으로서 새로운 음악을 찾고 경험하는 일을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여전히 더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일련의 사람들을 여전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이 도시에 있기 때문에 쉽사리 그 일을 포기 할 수가 없다. 비록 소수라 하더라도 그들의 열정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10대부터 일관되게 음악에 대한 애정으로 살아온 스스로를 계속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많은 음반 가게가 문을 닫았지만, 새롭게 문을 여는 곳도 있다. 그중에는 현대카드가 브랜드 마케팅 목적으로 운영하는 대형 매장도 있고,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조심스럽게 문을 연 작디작은 매장들도 있다. 또한 서울에서 열리는 공연은 점점 더 많아진다. 그것들이 늘어나는 만큼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는 징후는 아직 없지만, 조금 더 많은 사람이 이전에 하지 못했던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은 있다. 얼핏 무척 많은 사람이 공연을 즐기고 음악을 만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대다수의 사람이 이런 흐름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다. 내가 일하는 레코드 매장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통 쇼윈도우에 진열된 레코드를 60-70년대에 나온 골동품 정도로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무언가가 생기고, 어떤 일이 지속적으로 시도된다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이곳의 음악계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일 것이다. 이를테면 더 많은 소비,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그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동력은 자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생각, 창의력으로부터 비롯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하고 있는 일에 더 집중하고, 동시에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전 압구정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감으로 길을 찾았지만 지금의 서울은, 지금 서울의 음악계는 혼자서라면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더욱 복잡한 길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취향과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생각을 공유하고 힘을 합치는 것은 그 길을 헤쳐 나가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서울은 크고, 빠르게 변화하고, 때때로 역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하고 있는 이 업계와 이 신이 더욱 작고 초라하고 보수적인 분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처럼 서둘러 지름길을 찾거나 앞으로 나아가야겠다는 조급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전보다 나이가 들어 삶을 관조하게 된 것은 아니다. 내가 들어와 있는 길이 긴 터널과 복잡한 미로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전진하다 보면 더욱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은 이 도시를 떠날 수가 없다.

무작정 서울, 무작정 어른

예민함에 배타적인 도시, 서울

ABNORMAL, 서울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투룸이 있었더면

서울, 버스에서 생긴 일

영화가 사랑하지 않는 도시, 서울

나와 서울과 노포

굳이, 서울

서울이라는 이름의 슈팅 게임

    에디터
    손기은, 유지성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