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
박재범이 2015년 발표한 < Worldwide >의 첫 곡에서 그는 이렇게 랩을 한다. “몇 년 만에 도끼는 벌써 날 따라잡았지 우리 1년의 수익을 합치면 아마 20억이 나오겠지.” 그리고 도끼는 같은 곡에서 “난 절대 (박재범이 이끄는) AOMG 이길 맘이 없네 2010년부터 우린 형제처럼 컸네” 라며 화답한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 양극화 불경기의 시대에서 자란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인기를 얻으며 각각 연 10억은 번다는 그들은 완전무결한 영웅이자 새로운 귀족일지도 모르겠다. 따지고 보면 사회적으로 큰 주목을 받아야 하는 대단한 수입은 아니라서 힙합 신의 내부와 외부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괴리가 생기기도 하는데, 이런 부정합이 오히려 힙합 신과 팬의 지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것도 흥미롭게 바라볼 일이다. 둘의 존재 자체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신앙적 가치까지 부여했다고 하면 좀 실소가 나오는 분석일까? 신의 ‘플레이어’들에게는 따라가야 할 존재이면서, 팬들에게는 적극적으로 지지할 때 자존감을 채워주는 어떤 판타지가 되었으니 말이다. 둘은 현재 거의 20년 전에 미국의 힙합 그룹 록스 The Lox가 정의한 (힙합의 관점에서) 성공의 조건인 돈, 힘, 존경 삼박자를 완전히 다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 박재범과 도끼는 여태껏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유형의, 랩스타를 넘은 ‘파워 맨’이 되었음은 확실하다.
둘은 얼핏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각각 AOMG와 일리네어 레코즈라는 레이블을 설립하고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CEO인 동시에 놀랍게도 레이블에서 가장 많은 활동을 하는 뮤지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룹의 멤버로 활동하다 솔로의 길을 선택했다는 것도 닮았다. 더해서 겉의 화려함에 비해 내부적으로 취약했던 한국 힙합을 단숨에 흡수해버린 랩 경연 프로그램 < 쇼미 더 머니 >에 3년 연속 심사 위원으로 번갈아 출연하며 승승장구하는 레이블의 수장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하지만 박재범과 도끼를 (자기들이 쓴 가사처럼) 그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선의의 경쟁자이자 닮은꼴로 논할 수만은 없다. 따지고 보면 둘의 공통점이라 여기는 대부분에서 명확한 차이점이 발견되고, 그 차이점을 하나씩 짚어 가는 것이 둘을 함께 이야기할 때 필요한 핵심이기 때문이다.
먼저 힙합 신의 플레이어들이 둘을 바라보는 입장. 박재범과 도끼는 단연 모든 래퍼가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는 뮤지션이다. 하지만 그 결은 꽤 다르다. 우선 도끼와 함께 같은 곡에서 랩을 하고 싶은 이들의 입장은 자기 인정 욕구다. 물론 흥행에 도움은 되겠지만 도끼가 참여했다고 어마어마한 대중적 노출을 기대할 수도 없거니와, 애초에 그것을 목적으로 도끼를 원하는 래퍼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보다 도끼와 한 곡에서 랩을 했다는 것은 신인 래퍼들에게는 어떤 자격증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목적은 자기 자신과 신의 내부로 좀 더 향해 있다. 랩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효과는 물론, 도끼와 작업을 했다는 것은 힙합 래퍼로서 무결한 정체성을 인정받았다는 과시로 취급된다. 그 수가 많지 않은 것도 이런 정서에 한몫하는 데, 실제로 그런 욕망이 신인 래퍼들의 가사 속에 꽤 등장하기도 한다. 반면 박재범과의 작업은 아무래도 대중적 인기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목적이 앞설 것이다. 박재범은 신의 실력 있는 플레이어들이 장르적 타협이나 ‘구린 것’ 을 하지 않고 기존보다 수천 배는 높게 자신을 노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물론 이것은 상호 간 이해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솔로로 전향 후 꾸준히 힙합 신 내부의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진행하는 협업은 박재범이 취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의 음반 < Worldwide >에 -과거 래퍼들이 뭉쳐 만든 컴필레이션 ‘대한민국’ 시리즈로 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수많은 래퍼가 참여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재미난 점은 박재범과 도끼 역시 이런 상반된 입장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성장했다는 것이다. 박재범은 도끼와 함께하며 장르적 인정 욕구를 채워나갔고, 도끼는 박재범과의 활동으로 대중적 기반을 닦아나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다음으로는 레이블 운영 방식의 차이다. 일리네어 레코즈는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3인 체제고 그 자체가 레이블의 정체성처럼 자리 잡았다. 빈지노가 뒤늦게 합류했지만, 애초부터 멤버 추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랩스타는 자신들뿐이었으면 좋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기도 하고, 각자의 활동에도 어쩐지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 매력이기도 하다. 최근 신인을 영입하긴 했지만, 그것을 위해 아예 산하 레이블을 만들며 자신들과 구분하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레이블 운영이다. 이에 반해 박재범의 AOMG는 공동 대표로 합류한 사이먼도미닉 정도를 제외하고는 가능성을 보고 영입한 뮤지션들이 많으며, 그 수도 지속해서 늘려나가고 있다. 아직 박재범만큼 큰 성과를 올린 이는 없지만, 멤버의 성공을 위해 하나의 큰 전략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박재범도 직접 종횡무진 새로운 멤버들의 곡에 참여하고, 같이 무대에 선다. 일례로 실력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한 래퍼 어글리덕은 아예 박재범과 팀을 이뤄 만든 EP로 자신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이런 특징은 자연스레 둘의 음악적 성향과도 연결된다. 힙합이 유행인 만큼, 그 선두에 있는 박재범과 도끼 모두 트렌디한 음악을 추구하는 뮤지션으로 쉽게 구분되곤 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맞고 어느 정도는 틀린 말이다. 박재범은 그야말로 힙합/알앤비의 틀 안에서 새로움을 쫓는 뮤지션이다. 보컬과 랩 전부 가능하다는 점도 한몫했지만, 붐뱁에서 레칫까지 가리지 않고 소화하되 세련됨을 잃지 않는 것을 최우선으로 둔다. 활동 초반 다소 부족하던 랩 실력이 안정된 것도 다양한 스타일에서 가장 세련된 느낌을 찾으려는 치열함 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끼는 많이 다르다. 본격적으로 솔로 래퍼로서 존재감을 드러낸 < Thunderground EP >에서부터 그는 북미의 서던 힙합을 재현하는 데 집중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거대한 유행이 몰아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도끼만이 독보적으로 프로덕션과 가사를 포함한 전반적인 구조를 이해하고 정체성으로 흡수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다. 도끼는 꾸준히 서던 힙합의 흐름을 따르고 영향을 받아 파생된 스타일의 음악을 보여줬다. 스펙트럼이 좁다 말할 수도 있지만, 대신 워낙 장르에 대한 이해가 깊어 독보적인 색과 캐릭터가 완성됐다. 대신 이런 집착에 가까운 재현은 참고한 노래의 카피곡에 가까운 결과물을 종종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역설적으로 그런 곡들이 도끼의 대표곡이다.
마지막으로 신의 외부에서 둘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꽤 차이가 있다. 도끼는 많은 가사에서 스스로 쌓은 부를 공격적으로 과시하며 자신을 전시한다. 슈퍼카를 여러 대 사들이며 허언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행위를 선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런 도끼의 과시는 희화화되거나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기에 십상이다. 미국 힙합에서도 부를 과시하는 가사는 흔하지만, 흑인의 주류 진출이 가로막혔던 미국 사회 속 흑인 커뮤니티의 1960~1980년대 상황과 그것을 겪은 대중의 이해가 긴밀하게 작용해 재미와 놀라움 또는 쾌감으로 자연스레 흡수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끼의 경우 본인이 직접 말하는 가난했던 시절이나 자수성가의 과정 정도를 배경으로 삼는 터, 대중들이 (그를 포함한 래퍼들을) 바라보는 모습에서는 미국 현지와 온도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즉, 미디어에서 주목하는 도끼의 모습을 ‘의리의 김보성’을 보듯 ‘돈 자랑 도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게 원래 멋진 거야!”며 답답해하는 힙합 애호가들의 목소리가 일견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런 모습이 도끼가 힙합 신 외부에서 소비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박재범은 정반대에 가깝다. 그는 < SNL 코리아 >에서 망가지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어떤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느냐의 허용 폭이 넓다. 그렇다고 그의 중량감이 훼손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박재범이 어떻게 대중 앞에 다시 서서 음악을 하고 있는지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다시피 그는 2PM 활동 이후 유튜브로 팬과 소통하며 극적으로 복귀해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스스로 원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고, 그것만 보여준다면 어떤 모습인지는 큰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런 다른 시선 속에서 도끼와 박재범 모두 어느새 대중의 호감 영역에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2016년 하반기, 둘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도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끼는 신인들로 구성된 레이블을 새로 만들었고, 타 레이블의 책임 프로듀서로도 활동한다. 박재범은 영어 알앤비 앨범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노린다. 스포트라이트 뒤로 빠져 힘을 키우려는 자와 더 큰 스포트라이트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 둘은 이렇게 닮은 듯 꽤 다르다.
- 에디터
- 장우철,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 글
- 남성훈(웹진 '리드머' 부편집장)
- 일러스트레이터
-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