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라이언 VS 브라운

2016.10.30GQ

싸우면 누가 이길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 끝내 결과는 알 수 없겠지만, 그 구도가 지금에 관해 말하는 게 있다.

2016년 1월, 카카오 프렌즈는 새 캐릭터 라이언을 론칭했다. 뒤늦게 합류하는 멤버를 바라보는 아이돌 팬처럼,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 갈기 없는 수사자의 뚱한 표정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미스터 도넛의 ‘폰 데라이언’이나 <카드 캡터 체리>의 ‘케로’를 닮았다는 말도 들려왔지만, 라이언의 단추 같은 눈빛을 한 번 마주한 사람들에게 그런 건 쓸데없는 소리였다. 그들은 그의 단추 같은 눈빛이 그려진 쿠션을, 머그컵을, 그리고 하늘색 후드를 뒤집어쓴 라이언(약칭 ‘후라이’)의 인형을 숨 가쁘도록 원했다. 7월 오픈한 강남 카카오 플래그십 스토어는 입장만 1시간이 걸린다는 줄이 늘어섰고, 누군가는 직장이 그 앞이란 이유로 친구들의 애원 섞인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다. 매출액이 워낙 높은 나머지 카카오 사내에서 ‘라 상무님’이라 불린다는 소문도 돌았다.

경쟁사의 대항마로는 ‘브라운’이 있다. 라인 프렌즈의 초기 멤버인 이 갈색 곰은 2011년 대중에게 선보인 이래 뛰어난 존재감을 입증 해왔다. 말하자면 라인 프렌즈에서 자연스럽게 추대된 ‘원톱’이다. 하지만 멤버들과의 관계는 평등하다. 그저 코니와의 ‘소속사 공식 커플링’ 을 통해 조금 더 눈에 띌 기회가 많았다. 늘 조금은 수줍은 듯한 모습으로 곁에 가만히 있어 주는 곰이다. 특정 멤버와 각별한 관계가 되진 않으면서 멤버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인 라이언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관계 맺기다.

두 캐릭터의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무표정이다. 익살스럽거나 음흉한 표정도 얼마든지 해내는 라인과 카카오의 다른 캐릭터들과의 가장 큰 차이다. 그들은 사용자의 감정을 대신 전달하기 위해 비를 맞으며 좌절하기도, 춤을 추기도, 하트를 날리기도 하며 다종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그들의 최소화한 얼굴에 변화가 생기는 일은, 땀을 흘리거나 얼굴에 홍조를 띠는 정도다. 대신 몸짓으로 모든 것을 소화한다. 물론, 바로 그 점이 귀엽다. 꽃가루를 뿌리거나 손날로 술병의 목을 쳐부술 때 조차 얼굴은 변하지 않는다. 몽실몽실한 몸으로 열심히 움직이는 와중에도 변치 않는 표정. 깜찍하게 애교를 부리기에는 부끄럽다는 듯한 어색한 공기. 팬들은 바로 그 ‘갭’ 속으로 기꺼이 지갑을 내던지고 있다.

그러나 둘의 무표정은 결코 같지 않다. 정지 화상에서 브라운은 뭔가 자세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라인이 6월 말 론칭한 팝업 스티커 기능을 통해 코니와 브라운이 화면 한가득 날 뛰며 하트를 뿌려댈 때 그 움직임이 충격적으로 사랑스러운 것도, 정지 화상의 브라운이 갖는 정적인 모습과의 대비 때문이다. 그에 비해 라이언은 사용자를 향해 상체를 좀 더 들이민 듯, 조금 더 큰 얼굴과 조금 더 긴 팔로, 제법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소파에 늘어져 있을 때도 그는 배를 힘껏 내밀고, 말하자면 ‘힘차게’ 늘어진다. 그것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브라운의 무표정이 얼굴로 감정을 담아내지 못 하는 자의 ‘결핍’이라면, 라이언은 마치 불필요하기 때문에 표정을 갖지 않는 것만 같다. 그래서 때로 라이언은 쑥스러워하는 아저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브라운이 결핍된 존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가슴을 파고드는 동안, 라이언은 좀 더 능글능글한 친구로 자리매김한다.

이러한 차이는 두 집단의 그림체에서 비롯된다. 카카오 프렌즈를 좋아하는 사람과 라인 프렌즈를 좋아하는 사람은 귀여움에 대한 서로의 감각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부드러운 선으로 여백 많게 그려진 라인 프렌즈는 무슨 행동을 해도 어떤 상황의 스냅샷처럼 느껴진다. 메신저 이용자의 감정 표현을 거드는 이모티콘으로서는 준수한 조건이다. 아프리카 어느 섬에서 왕이 될 예정이었으나 꿈을 찾아 떠났다든지, 붙잡히는 게 두려워 꼬리가 짧다든지 하는 라이언의 세세한 설정은, 사실 라인 프렌즈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다. 사용자 경험의 측면에서, 제작사가 제공하는 것은 사용자의 감정 표현에 끼워 맞출 수 있는, 정보의 적당한 공백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이는 스토리텔링이 약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카카오 프렌즈의 그림체는 제법 진한 외곽선과 상대적으로 많은 디테일을 갖췄다. 보다 만화적이다. 그만큼 매 순간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사용자가 메신저에서 이모티콘을 소환하는 순간은, 그들이 사용자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액팅’하는 시간이 된다.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온디맨드’형으로 연기하는 배우들이다. 대중이 자연인으로서의 배우를 궁금해 하듯, 카카오 프렌즈에게는 스토리텔링이 의미있다. 훌륭한 출신(라이언은 왕위 계승자였다), 귀엽고 무해한 콤플렉스(갈기가 없다), 요란스러운 카카오 프렌즈 멤버들을 중재하고 이끄는 맏형의 다정함 같은 설정들이 라이언에게 매력을 더해준다. 또한 ‘네오’, ‘튜브’ 등 마치 상품명 같던 기존의 ‘네이밍 코드’를 바꿔 라이언이란 인명을 취하고, 표정의 부재를 통해 감정 이입의 여지를 늘린 것은 카카오 프렌즈가 라인 프렌즈의 비결을 성공적으로 참조해 자기화한 것이기도 하다. 무표정하다고는 하지만 빗질을 할 때 눈썹이 당겨지거나 하며 조금씩 인상이 변하기도 하는 라이언은, 카카오 프렌즈 기존 멤버들과 브라운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은 결과다.

라인 프렌즈가 연갈색 피부의 소녀 곰 ‘쵸코’를 런칭한 것도 같은 배경일 수 있다. 이제 와서 코니는 4학년 때 반장을 한 적 있다든지 브라운이 표정을 잃은 데는 다 사연이 있다든지 하는 설정을 덧붙여봐야, 지금껏 감정 이입해온 사용자들에게는 ‘설정 붕괴’일 뿐이다. 그러니 차라리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되, 이미 파괴력이 검증된 코니x브라운 커플링 관계를 응용해 새로운 ‘케미’를 이루게 스토리텔링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패착이었다. 쇼핑을 좋아하고 오빠에게 의지하는 등 편견으로 점철된 여성상을 별 고민 없이 도입한 것이 문제였다. 코니와 브라운 커플 사이에 끼어든 것도, 팬들이 환호하던 ‘케미’에 금이 가게 했다. 뒤늦게 쵸코의 남자친구로 판다 ‘팡요’를 도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쵸코는 더 깊은 곳에서 팬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브라운은 코니와의 커플링 속에서 종종 남성 역할로 설정되면서도 공격적이지 않고 무해한 이미지를 선보여왔다. 그것은 그의 남성성이 두드러지지 않고 감춰져 있으면서, 남성이라는 확증이 없기에 가능했다. (이 또한 ‘갈기 없는 수사자’, 즉 남성성을 제거한 남성인 라이언과는 미묘하게 다른 지점이다.) 간혹 애교스러운 섹시 코드가 포함되는 와중에도, 둘의 관계에서 성애는 탈색돼 있었다. 이 커플은 서로 ‘애인’이지만 각각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쵸코가 등장하면서 브라운은 그녀의 오빠로 호명되었다. 동물이던 브라운이 남자가 되는 순간. 그것은 성별도 연령도 가족주의도 떠난 존재라는 동물 캐릭터의 위력을 반쯤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브라운이 조그만 새 샐리를 손에 거머쥐거나 코니에게 과격한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은 몸집 작은 친구나 여자친구를 대하는 남자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지금도 라인 스토어 웹사이트에는 쵸코가 올케 격인 코니를 제치고 브라운과 나란히 맨 앞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라인 프렌즈는 가여운 쵸코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라이언에 대항하지 못했고, 그것은 지금 여기에서 쵸코가 아닌 브라운을 다시 불러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카카오 프렌즈와 라인 프렌즈 모두 모회사 카카오와 라인으로부터 자회사 독립을 이뤘다. 그리고 첫해, 두 기획사, 아니 캐릭터 사업체는 라이언과 쵸코로 캐릭터 대전을 벌였다. 카카오의 승리라는 점을 의심할 이는 그다지 없을 것이다. 카카오 프렌즈는 협업 상품들마저 줄지어 매진시키며, 작년 하반기 순이익의 2/3를 올 1사분기만에 넉넉히 달성했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카카오의 일등 공신이 라이언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라인 프렌즈가 만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메신저 이용자는 라인이 카카오톡의 4배 이상이고, 특히 해외 시장에서 압도적인 호응을 얻고 있다.

따지고 보면 모든 면에서 좀 더 뜨겁고 역동적이며 촘촘한 카카오 프렌즈는 일종의 국내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담담한 미드 템포보다는 절절한 발라드나 화끈한 댄스를 선호하는 한국 음악 시장처럼. 짓궂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프로도나 네오의 얼굴은 한국이 가진 얼큰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경쟁사의 강점을 조심스레 참조해 라이언이 나왔다. 그렇다면 다음은, 올해 1패를 기록한 라인 프렌즈가 라이언에 진중하게 화답할 차례일 것이다. 설마, 이 사랑스러운 곰을 ‘지는 해’라고 부르는, 상상만 해도 가슴 아픈 경험을 팬들에게 강요할 생각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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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장우철, 손기은, 정우영, 유지성
    미묘(웹진 편집장)
    일러스트레이터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