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질렌할이 톰 포드의 두 번째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에 출연했다. 그리고 톰 포드가 그를 인터뷰했다.
톰 포드의 두 번째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제이크 질렌할은 주연을 맡았다. 그는 단순히 숨 막히는 미소와 부지런한 직업 의식을 가진 배우가 아니다. 폴 뉴먼의 대자이자 콜롬비아 대학에서 (우마 서먼의 아버지이자 명망 높은 철학자인) 로버트 서먼으로부터 불교에 대해 배웠으며, 맡은 배역에 따라 자신의 신체와 정신을 송두리째 탈바꿈시키는 남자다. 톰 포드 역시 그저 패션 디자이너 겸 영화 감독, 정도로 말할 순 없다. 그는 21세기의 르네상스 인이다. 패션계에 혁명을 일으키더니 영화계에서도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첫 영화 <싱글맨>에 출연한 콜린 퍼스는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에 올랐고, <싱글맨> 또한 그의 복식만큼이나 뛰어난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녹터널 애니멀스>에서 1인 2역을 맡은 제이크 질렌할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를 한동안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톰 포드가 제이크 질렌할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예요? 뉴욕이에요. 얼마 전 한국에 다녀왔고, 한 일주일 정도 여기 있다가 런던으로 가요. 감독님은 계속 런던에 있나요?
지금은 LA예요. 여기서 1년 정도 살아보려고요. 집을 구한 지는 오래됐는데, 어떤 도시를 좋아하려면 최소한 그 정도는 머물러봐야 되잖아요. 아직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런던이 좀 그립기도 하고. 얼마 전 런던에 다녀왔는데, 거기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흥미로운 사람이 정말 많아요. 그 친구들이랑 얘기하는 게 너무 재밌죠.
곧 런던으로 다시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촬영이 있어요. 모든 영화가 다 그렇듯, 막상 실제로 연기하기 전까지는 내가 뭘 하게 될지 몰라요. 국제 우주정거장을 공격하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얘기예요. 그런데 사람들 각자의 상상과 반응에 따라 그 생명체의 형체가 바뀌어요. 심리 스릴러에 가깝죠.
<녹터널 애니멀스>를 찍을 때도 그랬나요?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어떤 역을 맡게 될지 아리송한 상태. 좀 달랐어요. 배우는 다른 사람의 마음과 언어를 해석하려고 노력하죠. 톰 포드라는 사람에 대해 알긴 했지만, 꿰뚫고 있다고 말할 순 없는 관계였잖아요. 그래서 더 궁금했어요. 일할 땐 어떤 모습일지 걱정이 되기도 했죠. 멀리서 봤을 때도 호락호락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니까. 하지만 대본을 읽으면서 그런 맘이 없어졌어요. 거기엔 관계라는 것이 무척 연약하고,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얼마나 친밀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적혀 있었죠. 다들 잘 알고 있지만, 쉽게 말로 꺼내지 못했던 부분이고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다른 건 꽤 재밌죠. 심지어 이런 얘기도 들은 적이 있어요. “<싱글맨>을 봤는데 톰 포드가 이렇게 깊이 있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라고.” 비슷한 일이 종종 생길 텐데, 특히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하는 부분은 뭔가요? 진짜 저는 어떤 사람이나고요?
달리 묻자면, 어떤 점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특히 놀랄까요? 사실 제가 막 배우 경력을 시작했을 때, 저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절박할 정도로 걱정했어요. 지금은 아니에요. 저는 그때보다 관객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사람이 됐어요. 그렇게 되어야 할 책임감도 있고요. 관객들을 도발하는 영화를 찍고 싶죠. 그런데 실제 성격에 대해서라면, 글쎄요. 전 어떤 사람인가요?
굳세고 정직하고 예민한 사람. 일할 때는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완벽을 추구하죠. 몇 주 전 이메일을 보냈잖아요. 어떤 신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그런 부분을 존중해요. 항상 자기 일을 되돌아본다는 점. 뭔가를 만드는 건 언제나 예민한 일이잖아요. 그리고 배우가 감독에게 첨언을 할 때는 정말 고심한 뒤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예민한 사람들에게 배우는 썩 좋은 직업이 아닌 듯해요. 자기를 다른 사람 손에 맡겨야 하잖아요. 감독이 더 적성에 맞는 거 아닌가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맘은 있죠.
제작사 대표이기도 하죠? 작년에 막 시동을 걸었어요. 얼마 전에 영화 하나 끝냈죠. 데이비드 고든 그린 감독이 맡은 <스트롱거>. 보스턴 폭탄 테러에서 다리를 잃은 제프 바우만이란 남자에 대한 얘기예요. 요즘은 감독판 작업을 한창 하고 있어요.
감독판요? 이렇게 되면 제작자판 아니에요? (웃음) 아니에요. <녹터널 애니멀스>는 픽션이니까 감독과 작가의 의중이 100퍼센트 반영되지만, 논픽션은 그러면서도 실제 벌어진 일을 제대로 다루는 데 충실해야 하죠. 여전히 충격적인 사건이고, 재현하는 데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하죠.
배우로서는 어떤 배역을 선호하나요? 아주 많은 대본을 받을 텐데. 익숙하지 않거나 혹은 두려워하는 감정을 자극하는 이야기요. 그렇게 머릿속을 완전히 헤집어놓는 것들이 있어요. 신대륙을 탐험하는 기분이죠. <녹터널 애니멀스>가 그랬고요.
1인 2역을 맡은 토니 헤이스팅스와 에드워드 셰필드는 전통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있죠. 하지만 결국엔 그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고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인자를 추적해 결국 승리하잖아요. 감독으로서, 보편적으로 약하다 여기는 성품이 물리적 힘보다는 강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어땠나요? 남자가, 연인이, 아버지가 된다는 게 뭔지에 대해 자문해봤죠. 특히 토니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물리적으로도 분투하죠. 굉장히 연기하기 힘든 장면이었어요. 아니, 영화 시작부터 저를 무시무시한 신 안으로 밀어넣었잖아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신나게 얻어맞았죠. 아주 오래.(웃음)
감독으로서는 완벽했죠. 의도대로 배우의 완전히 얼어붙은 모습을 찍을 수 있었으니까. 헤드라이트에 비친 사슴처럼요. 찍을 때도 우리 이런 얘기 많이 했던 거 같은데, 저는 카메라가 꺼진 뒤에도 계속 그 배역의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요. 촬영장에서 계속 뛰어다녔잖아요. 그래야만 어떤 감정이 생길 것 같았어요. 힘을 절박하게 원하던 사람처럼 느끼길 원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거기까지 생각이 닿는 거지, 그때는 거의 본능적으로 했어요. 캐릭터의 힘은 결국 감정을 숨기지 않는 데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죠.
완벽했어요. 표현하기 진짜 미묘한 부분이었는데. 곧 브로드웨이에서 랜포드 윌슨의 연극 <번 디스>를 공연한다면서요? 80년대에 원작을 봤어요. 존 말코비치와 조앤 앨런이 나왔고요. 조앤 앨런은 그 연기로 토니상도 받았어요. 기분 좋은데요? 사실 80년대에 극장을 다닌 사람들 중에서도 이걸 봤다는 사람을 많이 못 만났거든요.
극장에서의 연기와 영화 속 연기는 어떻게 다른가요? 무대에 직접 오르는 걸 정말 사랑하지만, 그냥 둘은 다른 것 같아요. 극장은 작가의, 영화는 감독의 영향력이 더 크죠. 또 배우로서 연극 무대에 서면 실시간으로 관객들과 상호작용을 해요. 종종 순간적으로 객석에서 뭔가 확 밀려올 때가 있는데, 그걸 잡을 줄 알아야죠. 극장의 좋은 점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리허설할 시간도 있고, 창문도 없는 방에 혼자 오래 앉아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가기도 하고. 그런 점에서는 각본을 쓰는 것과도 비슷해요. 그러다 가끔 연극 무대에서 사람들을 웃기면 우쭐해지죠. 내 공이라고 생각하고. 그런데 다른 배우가 동일한 배역을 연기할 때 보면 사람들이 똑같은 장면에서 웃어요. 그래서 연극이 작가의 것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연극이나 영화 각본도 써본 적 있나요? 희곡요. 부모님이 극작가예요. 저는 정말 글을 못 쓰는데. 그래서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더 존경하게 돼요. <녹터널 애니멀스>의 각본은 진짜 훌륭해요. 사람들은 이제 톰 포드가 좋은 감독이라고는 말하지만, 그것까지는 잘 모르죠. 저는 오히려 그래서 더 같이 작업하고 싶었어요. 내가 작품의 일부가 되어 자랑스러운 각본이 몇 개 있죠. <브로크백 마운틴>, <나이트크롤러> 그리고 <녹터널 애니멀스>.
만약 다른 영화도 같이 찍고 싶다고 묻는다면요? 단답형으로 대답해야 하나요?
아니요. 맘대로. 단 한 가지 의심하는 건, 과연 톰 포드가 이런 작품을 또 쓸 수 있을까예요. 비범한 재능을 가진 감독이고, 그만큼 주변에 뛰어난 인물도 많죠. 그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영감을 얻어요. 배우를 특히 아끼고, 결과물 뿐만 아닌 절차 자체를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거침없잖아요? 직접 바닥에 누워 소리 지르는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고. 지금까지 그렇게 한 사람은 톰 포드와 짐 쉐리단 뿐이에요. 그러니 대답은 당연히 한다, 예요. 다음엔 같이 출연도 해보는 건 어때요?
- 에디터
- 글 / 톰 포드(Tom Ford)
- 포토그래퍼
- MATTHEW BR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