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애시튼 커처의 주변은 가십으로 떠들썩했다. 하지만 요즘은 뛰어난 벤처 투자가로서의 역량에 대한 얘기로 넘친다. 타블로이드 연예 면에서 <포브스> 표지로 위치를 바꾼 이 남자를 오랜만에 만났다.
애시튼 커처를 인터뷰한 뒤로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당시 그는 데미 무어와 결혼한 상태였고 패션쇼마다 맨 앞줄에 앉아 있었고, 어마어마한 양의 의상을 갖고 있었다. 그 옷 중 일부는 아이다호에 있는 창고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분류되어 있다가 버튼을 누르면 즉각 LA로 공수되었다.
당시 애시튼 거처는, 자신이 패션의 가치를 과소평가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남자 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그는 투자자와 미팅을 할 땐 꼭 수트를 갖춰 입는다. 하지만 그의 옷차림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의 인생에 배우 말고도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서른 살에 실리콘 밸리에서 첫 번째 거래를 튼 벤처 투자가가 되었다. 사업 파트너(이자 마돈나의 매니저)인 가이 오서리 Guy Oseary와 함께 그는 우버, 에어비앤비, 스카이프 같은 회사에 투자했다. 두 남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갔고, 어느새 그 규모가 2억 5천만 달러가 되더니만 최근에는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 커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배우 밀라 커니스와 결혼한 뒤, 처음 아빠가 된 애시튼 커처는 심지어 이번에 사진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새로운 투자 가능성을 살피고 있었다. 지금 먹고 있는 칠면조 고기 샌드위치가 최근에 생겨난 캘리포니아의 건강 패스트푸드 체인점 ‘멘도시노 팜스’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곧바로 어시스턴트에게 이 기업에 대한 투자 가능성을 확인해보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포브스>에 소개된 바와 같이 당신과 가이 오서리는 상당히 이른 시기에 우버에 50만 달러를 투자했고, 그게 지금은 무려 5천만 달러가 되어 돌아왔다. 어떻게 할리우드 스타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나?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스타트업 회사를 알아보는 비법이 있다면? 이를테면 우리가 투자한 회사의 창업자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한 배를 타자며 우리를 투자에 끌어들이려는 동업자를 통해서도 알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미래와 기술 혁신이라는 주제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어 새로운 제품으로 소비자를 만족시키고 싶은 욕구로 늘 충만해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다. 주위의 친한 벤처 투자자들과 대화하면서도 많은 걸 배운다. 특히 론 콘웨이 같은 사람은 멘토 중 한 명이다.
콘웨이는 실리콘 밸리에서 촉이 가장 좋은 사람, 별명이 ‘개코’로 통한다. 종종 어느 누구보다도 이른 시기에 투자하는 이른바 ‘천사 투자자’이기도 하다. 그 밖에 어떤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가? 데이비드 워렌(저명한 헤지펀드 매니저, DW 파트너스 투자사 CEO)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밖에는 전 세계의 많은 사람과 의견을 교환한다. 우리 파트너들은 샌프란시스코, 뉴욕, 디트로이트, 오마하, 이스라엘과 브라질, 영국과 독일에도 있다.
투자할 때마다 리스크를 평가하는 편인가? 물론이다. 백 퍼센트, 매번 한다.
그래서 이 정도로 성공했단 뜻인가? 수치상으로 완벽한 자료를 받았더라도 모든 걸 확인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히려 내겐 충격이다. 많은 기업이 미래에 대한 성공적인 전망을 과장하려고만 한다.
이른바 천사 투자자로서 자기 제어 능력은 어느 정도인가? 큰 이익을 얻으려면 항상 일정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새로운 스타트업 기업의 성공을 예언하는 것과 영화의 성공을 예언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쉬운가? 사실 두 가지 모두 프로세스는 별반 다르지 않다. 대개 너무 다양한 요소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에 결과는 예측 불가다. 성공한 경우 누군가는 운이 좋았다 하고 타이밍이 좋았다고도 말한다. 아무튼 과학적, 수학적으로 계산할 수 없는 건 분명하다.
“내 패션 취향은 항상 트렌드보다 퀄리티를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 시리즈 < 렌치 The Ranch > 를 공동으로 프로듀싱했다. 작품 속에서 당신은 고향인 콜로라도로 돌아오는 형제 역할도 맡고 있다. 실제로 당신은 아이오와의 한 마을에서 자랐는데, 이번 시리즈에서 주인공과 특히 친밀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 때문인가?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이번 시리즈는 내 이력과 상당 부분 관련이 있다. 우선 중서부 지방 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환경 같은 게 그렇다. TV에서 그들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는 걸 보는 게 불편했다. 내가 원한 건 그들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었다. 많은 젊은이가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서, 그리고 고액의 학자금 융자 때문에 다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가는 게 오래전 부터 미국에서는 국가적 현상이 되어버렸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와의 인터뷰에서는 <렌치>를 통해 시트콤이란 장르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무슨 뜻인가? 나는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금세 지루해한다. 그렇게 지루함을 느끼면 위험해진다.
혹시 지금도 지루한가? 당신의 회사 입구에 “더 큰 꿈을 가져라”라고 적혀 있던데, 사람들이 자신의 꿈이나 문제점 같은 것을 정의할 수 있다고 보나? 우리는 누구나 꿈을 좇고 있다. 하지만 장애에 부딪혔을 때 어떻게 처신하는가가 곧 성공을 좌우한다.
투자할 때든 아니면 드라마, 영화 작업을 할 때든 실패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떨 때 더 스트레스를 받는 편인가?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악평? 아니면 투자 실패? 위험을 감수하는 일에 익숙해지면 실패 했을 때도 그 실패를 뭔가 결정적이고 최종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오히려 좀 ‘스포티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안전한 직장을 가진 사람보다 실패에 대해 덜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프로듀서, 투자가, 그리고 팀의 고용주로서 사업을 하다 보면 부정적인 측면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계약이 파기되거나 송사를 겪기도 하고 불만을 표시하는 직원도 있을 테고. 그런가 하면 숟가락을 얹어서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별한 위치에 있는데 일상이 꽤 벅차지 않나? 때로는 재판을 치르기도 하는데, 개중에는 시간이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아 계속 끌려다니기만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평범한 상황으로 치환한다.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방법이 있나? 책으로 써낸다면 분명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은데. 책으로 낸다는 아이디어는 마음에 든다. 그런데 내 전략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매번 더 큰 리스크 안으로 걸어 들어가라! 그러면 지난번의 리스크는 덜 위협적인 게 되고, 그만큼 쉽게 해결할 수 있다. 혹시 내가 잠을 설치는지 물을 건가? 나 엄청 잘 잔다.
안 그래도 조금 전 당신의 어시스턴트가 그런 말을 했다. 할 일이 너무나 많아서 당신이 과연 잠을 자기나 하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8시간씩 잔다. 지불하지 못한 청구서가 있어서 밤잠을 설칠 일도 없고 대인관계 때문에 고민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빚지는 걸 싫어하고 갈등이 커지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소문이 생겨나고 여기저기 기사가 실리고 변호사가 개입되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기를 든다. 대부분의 경우 솔직한 대화를 하다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문제를 방치할수록 새로운 불신감만 생겨난다. 그러다 보면 사소한 오해가 엄청난 드라마가 되는 거다. 투명한 대화를 통해 나와 상대방의 의견을 일치시키면 된다. 그러고 난 뒤에도 상대방과 문제가 남아 있다면, 적어도 가능한 모든 방법을 취해봤다는 확신은 가질 수 있다.
오늘, 너무 편안해 보인다. 8년 전 인터뷰를 할 땐 그렇지 않았다. 그 당시 분위기는 말 그대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당신이 나에게 너무 완고하고 고집스럽다고 말했다. 요즘은 그런 말을 할 때 훨씬 더 조심한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나. 자신이 지금 왜 흥분했는지 원인조차 모를 때도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의 실수를 찾아 내는 것보다는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게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지금처럼 겸손해진 게 예전보다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과 상관이 있을까? 물론이다. 경험이 많다고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요즘 나는 그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캄캄한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더듬 걸어나가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해, 우주의 법칙에 대해 생각하는, 그런 시점이다.
천체 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나, 테슬라의 창시자인 엘론 머스크 같은 사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일종의 시뮬레이션으로 여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는 일종의 컴퓨터 게임 속 캐릭터이고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 자신들의 선조가 살았던 삶을 게임으로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 그 얘기를 꺼내다니 정말 기막힌 우연이다! 안 그래도 작년 어느 결혼식에서 엘론 머스크를 만났을 때 그 이론을 얘기해줬고, 그래서 몇 시간 동안이나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다는 이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과연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이론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는 게 좋을까. 나라면 그 정보를 통해서 시뮬레이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이라고 여기는 것이 정말 현실처럼 느껴진다면 결국 가상과 현실 중 어느 층위에서 우리가 살고 있든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엘론 머스크와는 친구 사이인가? 아니다. 하지만 함께 알고 있는 지인이 있다. 아빠가 된 이후로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이 줄었다. 얼마 안 되는 자유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어서다.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 안에서 아빠로서 느낀 첫 번째 사실은 시간이 전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족 외에 만나는 사람은 업무상 관련된 사람들 뿐이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인가? 아내인 밀라 말고는 사업 파트너인 가이 오서리. 너무 고마운 존재인 론 콘웨이. 다른 사람은 어떨는지 몰라도 나는, 나를 위해 일해주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하고 결코 그들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날마다 내 이름을 걸고 정말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나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함께 일하는 이들이 얼마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직접 경험하면서 알게 된다.
그렇다고 딸을 동료처럼 여기는 건 아니겠지? 두 살이라는 나이를 감안하면 전략적인 사고를 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니까. 그래도 딸에게 뭔가 배우는 게 있다면? 날마다 배운다! 딸 아이의 시선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다. 딸은 배우로서의 나에게 영감을 준다. 최근에는 일부러 딱정벌레를 발로 밟는 걸 봤다. 그때 딸아이는 다분히 공격적이었는데, 자신이 딱정벌레를 죽였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현실로 인식했다. 딸아이가 처음으로 경험한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 그 귀중한 감정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것은 내게 매우 인상적인 일이었다. 딸아이가 주변의 사물과 처음으로 접촉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진진한 일이다. 아직 직관적,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상품이 최적화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많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사용자 편의성을 테스트하기 위해 처음 사용해보는 사람을 활용하지 않나. 딸아이는 아직 배운 게 거의 없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건에 대한 이상적인 최초 사용자라 할 수 있다. 아이가 웬만한 사전 지식으로 어떤 물건을 다룬다면 그건 디자인 때문은 아니다.
디자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패션 얘기를 좀 듣고 싶다. 패션 산업 역시 끊임없이 변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사람들은 당신처럼 유명한 사람이 입는 옷을 보고 자신도 같은 옷을 사고 싶어 하기도 한다. 당신 자신이 전략가이자 패션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패션 산업이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나? 솔직히 말하면 예전에 비해 패션을 이론적으로 많이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말도 맞다. 우리가 뭔가에 주목하는 시간은 점점 더 짧아질 것이고, 그렇다면 패션쇼가 끝나자마자 바로 옷을 구입할 수 있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하지만 한편으론 모델을 기준으로 제작한 옷이 과연 우리 몸에 맞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사치스런 옷을 입는데 완벽하게 맞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난 3D 스캐너에 큰 잠재력이 있다고 본다.
최근의 개인적인 패션 취향은? 항상 트렌드보다는 퀄리티를 우선시한다.
스타일리스트가 따로 있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혹은 스타일을 바꾸고 싶은 기분이 들 때마다 몇 년 전부터 사만다 맥밀란의 도움을 받고 있다. 사만다는 내 마음에 드는 게 어떤 건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도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했다. “카디건이 지루해졌어요. 뭔가 새로운 시도를 좀 해 봅시다”라고.
뭔가 지루하다는 건 당신에게 곧 위험하다는 신호라고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나? 바로 그거다. 그래서 더더욱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자 이렇게 애를 쓰고 있다.
- 에디터
- 글 / 에스마 안느먼 딜(Esma Annemon Dil)
- 포토그래퍼
- CEDRIC BUCHET
- 스타일리스트
- 토비아스 프레릭스 Tobias Frericks